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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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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의 편지 '에 해당되는 글 129

  1. 2018.07.09 '편지'의 의식 지수(1)
  2. 2018.07.06 육신의 필요성
  3. 2018.07.02 원수 사랑의 경지
  4. 2018.06.24 천국이라는 존재 상태
  5. 2018.06.15 치유의 비결
  6. 2018.06.12 구세주의 의미
  7. 2018.06.11 제자로서의 삶
  8. 2018.06.10 우리 존재의 목적
  9. 2018.06.09 고통의 원인
  10. 2018.06.08 완벽한 사랑인 존재
2018.07.09 02:57 그리스도의 편지

제가 '신과 나눈 이야기'가 호킨스 의식 지수 540임을 확인하고 가지고 있는 네 권을 복습중입니다. 이 가운데 '편지'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을 인용합니다.

"대규모 공동체나 집단은 종종 결합된 생각(혹은 공동 기도)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힘을 찾아낸다. 그래서 개인의 생각(기도, 소망, 바람, 꿈, 두려움)이 놀랄 만큼 강하다면 개인 역시 당연히 그런 결과를 빚어낼 수 있다. 예수는 일상적으로 이런 일을 했다. 그는 에너지와 물질을 어떻게 다루며 어떻게 재배열하고 어떻게 재분배하며 어떻게 하면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대다수 선각자들 역시 이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이것을 알고 있다. (신나이 1, 95쪽)"

이러한 구절을 미루어 짐작하면 '편지'도 540 이상 깨달음에서 나온 책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의식 지수 540 이상은 깨달음에서 나오는 말씀이므로 꾸준히 읽으면 우리 의식이 거기에 편승해서 높아진다는 것이 호킨스 박사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호킨스 의식 지수가 확인된 책 가운데 제가 참고하는 책을 덧붙여봅니다.

바가바드 기타 910, 전심법요와 완릉록 850, 조하르 730, 금강경 700, 도덕경 610, 기적수업 600, 베티이디의 임사체험기 '그 빛에 감싸여' 595. 아직 의식 지수 측정치는 없지만 7세기에 지어진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와 별기' 및 8~9세기에 지어진 이고의 '복성서'는 동아시아에서 천 년 이상 수행의 교과서 구실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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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6 05:45 그리스도의 편지

우주의 창조 차원 문턱까지 진동주파수가 상승한 개체 의식은 <개체화된 빛> 또는 <개체화된 의식>이 되는데 이 <거룩한 의식>은 지고의 영적 세계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표현하고 누리는 데 육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에고를 높이 초월하지 못한 이들이 경험하는 욕구와 욕망과 충동 따위가 없는, 존재의 지극히 황홀한 상태다.

지상에 사는 동안에는 너희 마음이 진동주파수의 특정 변수에 고정되어 있어서 육신 속에 갇힌 채 육신의 고유한 욕구를 지닌다. 의식이 진정 그런 변수 너머로 솟아오르면 너희 세속적 자아는 사라질 것이다. 나 또한 육신 속에 갇혀 있었을 때는 대체로 이런 진동주파수와 의식 속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뿐 아니라 상상력만으로는 이전 경험을 넘어 솟아오를 수 없기 때문에 너희는 자신의 과거에 한정되고 그것을 미래로 투사한다. (205~206쪽)

-- 임사체험자들은 육체를 무겁고 누추한 것으로 느끼기 때문에 몸을 버린 후에 몸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을 꺼려한다고 합니다. 에고를 초월한 개체화된 의식만의 상태에서 보고 느끼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시야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수천 년 전 사막 수도자들 이래로 존재의 지극한 황홀 상태에 대한 체험은 대체로 '신과의 합일'이란 말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육신을 가진 체험을 해보는 것은 이런 체험이 없이는 그 황홀함을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란 것도 모든 영성 서적이 일치합니다. 그래서 많은 문학작품들은 누구에게나 영적 고향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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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2 04:55 그리스도의 편지

그들은 강한 확신이 바라고 상상하는 것을 무엇이든 가져다주지만 동시에 자신의 정신적-감정적 상태를 항상 주시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타인에 대한 앙심을 속에 품지 말고 재빨리 용서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큰 해를 입힐 수 있고... 그것은 조만간 스스로 뿌린 것의 결실로서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다. 게다가 그것은 그들이 뿌린 그대로 돌아온다. 나는 내가 무화과 나무에게 한 짓이 어떤 형태로든 내게로 불가피하게 돌아올 것임을 알고 있었다. (193쪽)

-- 무화과 나무에게 일어난 일은 교회가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그저 예수 우상화만이 답인 줄 알고 그 일마저 찬사를 보내는 것이 교회 입장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수난 전 두려움과 여러가지 현실적 걱정 때문에 하느님과 일체를 이루던 의식이 진동수가 떨어지면서 비이성적 행동을 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즉 "그것은 충격적 경험이었고 내 말이 무엇인가에 해를 끼친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다. (192쪽)"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생각이 미치는 힘이 얼마나 큰가를 제자들에게 보여준 점과 의식이 높을수록 말이 환경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깨닫게 한 점은 긍정정 효과라면 효과라고 합니다. 제 경우도 의식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비슷한 체험을 하였는데 몇 달 전 MBC와 연합뉴스의 보도 방식이 매우 고약하고 악랄하다고 판단하고 전화를 하여 마구 저주를 퍼부은 일이 있었습니다. 평소에 딸과 아내도 수구 세력에 대한 적대감을 마구 표현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던 차였습니다. 

아마도 이런 마음과 태도를 바꾸지 않고 고집한 결과라고 추정하는데 엊그제는 직장 동료가 저를 마구 곡해하면서 매도하고 적대하며 심지어 없애버리고 싶다고 공격하는 황당한 일을 당했습니다. 2~3일 열심히 기도하면서 도움을 구하였더니 오늘 명상 중에 그 모든 게 이해되었습니다. 수차에 걸쳐 꿈에서도 제 폭력성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적이라 생각하는 사람을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패는 체험을 두어번 했거든요! 그럼에도 그런가보다 하고 고치질 않았습니다. 

직장에서 겪은 경험을 돌아볼 때 아주 '리얼하게' 제 심사의 결과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적이라 생각하는 이들을 용서하고 나아가 결코 선악이나 적과 동지 여부를 심판하지 말 것이며 바이블 말씀대로 오히려 그들을 위하여 복을 빌어주어야 한다는 경고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실제로 가장 고치기 힘든 심사를 포기하고 열심히 기도하며 노력해서 원수를 사랑하는 경지까지 가고자 결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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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4 06:00 그리스도의 편지

하느님 나라는 온전히 하느님의 것이 된 마음과 가슴의 어떤 상태입니다. 이런 상태가 되면 '아버지'가 여러분 몸의 머리가 되어 여러분의 모든 행동과 삶의 모든 것을 지휘하십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소아를 비우는 것 - 소아의 욕망, 적의, 분노, 질투, 탐욕, 앙심 등을 완전히 비워서 여러분 마음과 가슴 속에 오로지 하느님만이 남아 주재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하느님이 주재하는 존재 상태로 들어갑니다. 그것은 너무나 아름답고 거룩하지요. 그것은 사랑이고 자비이며 자신을 아끼는 것처럼 다른 이들을 아끼는 것이며 다른 이들을 정확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심판하지 않는 것이며 그들 또한 아버지의 보살핌 속에서 하느님의 동등한 자녀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것은 측량할 수 없고 형언할 수 없는 행복이며 세상의 아름다움 속 환희이며 무한한 생명이며 넘쳐나는 기운이요 건강이며 자신이 그런 요구를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기도 전에 모든 것이 성취되는 그런 상태입니다. (171~173쪽)

-- 이 길은 소유를 통해 행복해지려는 세상의 방법과 전혀 다른 방법입니다. 즉 존재 상태를 통해 행복해지는 길입니다. 무지와 아집을 버리고 분류 판단 심판이 존재하는 이원성의 세계를 벗어날 때 비로소 가능한 상태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고정관념을 포기하고 과거의 과오를 아버지께 가져가서 치유를 받고 끝없이 명상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스승들이 돕고 신 의식이 우리를 인도하기 때문에 1인 우상화 국가에서 말하듯 신 의식이 우리 머리가 되고 뇌수가 되어 인도하는 경지가 느껴질 때까지 노력하는 것입니다. 세속적 경쟁에서 1% 안에 들기 위해서는 도전하지만 이 일에 도전하는 이는 드뭅니다. 대충 교회 출석하는 것으로는 불가능하리라는 것은 짐작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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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5 05:39 그리스도의 편지

어떤 사람이 병을 고치려고 나에게로 오면 나는 이내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아버지'이신 권능이 내가 청하는 순간 치유해주시려고 내 안에서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감사드립니다. 왜냐하면 나는 '아버지 뜻'이 병이 아니라 건강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 뜻'이 병든 사람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병든 사람 몸에서 병에 대한 믿음을 제거하고 '아버지 뜻'인 건강이 그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알면> 병이라는 현상(겉모습)도 '아버지 건강'이라는 실재로 바뀌어 몸이 다시금 온전해집니다.

병은 아픈 부위에 일어난 생기의 저하(<생명>의 감소) 이상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신체의 진정한 의도와 계획에 '아버지 생명'을 되찾아주기만 하면 온몸이 제 기능을 회복합니다. (133쪽)

-- 주지하시듯 두 번째 편지는 믿음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 삶을 바꾸기 위해 첫 번째 편지에서는 사고틀과 감정 습관을 바꾸는 방법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아버지라는 말에서 사람을 그리면 부족 신앙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완벽한 사랑' 혹은 '신 의식'과 동의어입니다. 우리 사고틀과 감정 습관, 그리고 믿음에서 아버지 뜻과 권능을 믿는 단계를 넘어 그 모든 것을 <알면> 우리에게도 치유력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 이상의 기적을 행한 사례가 쌓이고 넘칩니다. 다만 그러한 체험은 우리 의식 수준에 비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의식이 하루하루 높아지는 것만이 과제입니다. 이 일에 우리 삶을 바칠 가치가 없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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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2 05:44 그리스도의 편지

나는 내가 세상에 주는 '아버지'의 구원의 선물임을 알았다. 그들이 수백 년 동안 가정하고 가르쳐온 것, 즉 분노하는 하느님이 '죄인'에게 내리는 징벌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그릇된 사고(그들의 불행과 궁핍과 병과 비참한 삶을 창조해낸 그릇된 생각들)로써 똑같은 실수를 날마다 반복하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해내는 것 말이다.

나는 인간을 너무나 깊이 사랑했으므로 유대교 제사장들의 배척을 무릅쓰고 가르치고 치유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나는 내가 광야에서 진실로 '보았고' 온 가슴으로 내 능력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해서 나눠주고자 했던 것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이것이 내 십자가형 배후의 진실이며 너희가 들은 나머지 모든 것은 성전에서 올리는 유대교 번제 관습에 연루시켜 사람들이 지어낸 억측이다. 나는 인류가 존재의 법칙에 대한 무지에서 헤어나 환희와 풍요와 천국의 완벽함으로 가는 진정한 생명의 길을 찾는 것을 돕도록 '아버지'로부터 인류에게 주어진 선물이었다. (124~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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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1 12:12 그리스도의 편지
나는 단지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충족시켜주고 건강을 줄 것이라는 진실만을 약속할 수 있었다. 또 그들이 아버지를 향하고 가는 길의 발걸음마다 아버지를 신뢰하면 이전에는 행복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느껴질 만큼 행복해지리라는 것을 약속할 수 있었다. 그들은 소아의 요구를 제쳐놓고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려 들게 될 만큼 천국을 몸소 체험하게 될 것이었다. 그들은 치유를 목격할 것이고 그것이 그들의 믿음을 키워주어서 여행의 불편을 견뎌낼 용기를 줄 것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천국의 복음을 전하는 우리 과업에 착수하게 된 경위였다. (120쪽)

-- 제자들을 모으고 치유와 가르침을 시작하게 된 경위에 대한 설명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사람도 먼저 하늘 나라를 체험함으로써 제대로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이 가능할 것임을 암시합니다. 인간의 사업으로서 봉사를 시작하는 자들이 천국 체험에 게을리 하는 순간 선후가 바뀌고 부패로 들어갈 위험을 지적하는 말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천국의 체험은 소아의 필요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오직 아버지만을 바라보고 완전히 신뢰한 바탕에서 그야말로 열반을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러고나서 매사 신 의식께 청하고 구하고 두드려 얻은 답을 따라서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일은 매일 10분 이상 시간을 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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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0 07:38 그리스도의 편지

나는 내가 삶을 허비하고 있었음을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깨닫게 된 때가 내게 있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나 자신의 변화를 갈망하여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출발점으로서 세례 요한에게 가보아야겠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세례받는 동안 그리고 광야에서 보낸 6주일 동안 일어난 일을 설명해주었다. 이제는 내가 아버지라 부르는 '실재'를 보여준, 깊은 계시와 깨달음을 얻는 동안 내 이전 생각과 신념과 태도와 자만심과 반항심이 서서히 의식 속에서 깨끗이 지워져간 과정을 이야기했다.

나는 아버지의 본성에 대해 설명하고 이 '신성한 본성'에는 '신성한 뜻'도 포함되어 있음을 설명했다. 나는 그릇된 사고와 행동으로 자기 안에 있는 '아버지'로부터 자신을 차단한 것도 인간 자신이며 먼저 회개하고 그 다음에 정신적 감정적 찌꺼기를 청소함으로써 '아버지'를 온전히 만나게 해줄 자기만의 길을 찾을 수 있는 것 또한 인간 자신밖에 없음을 말해주었다. 그렇게 되면 아버지의 본성이 그 사람 마음과 가슴과 몸과 영혼과, 삶의 환경과 경험 속으로 온전히 스며들어갈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 그 사람은 아버지가 다스리는 천국에 들어갈 것이고 또한 그의 의식 속에도 천국이 세워질 것이다. 그러면 그는 자신의 존재 배후에 있는 목적을 이룬 것이다. (118~119쪽)

-- 그리스도가 날 때부터 완벽한 신으로 난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태어났음을 알게 하는 구절입니다. 뛰어난 역사학자 백승종 선생의 글을 읽으면 이순신 장군처럼 본인의 기록이 명료히 남지 않는 경우 영웅들은 쉽사리 민중의 입맛에 따라 신격화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격화도 똑같은 과정을 거쳤으며 어쩌면 다행인 것은 로마 제국이 세속적 필요에 따라 기독교를 강한 이데올로기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동양의 메시아로 여겨졌던 반란자들과 달랐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구절에는 기독교 신학의 정수가 담겨 있습니다. 즉 기독교의 성인이 되는 길로서 거비정화-진덕명화-신인합일이 명시되어 있으며 천국이란 아버지 즉 궁극의 실재로 꽉 찬 경지, 즉 아버지가 다스리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가톨릭 교리문답의 첫 번째에 나오는 삶의 목적에 대해서도 답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 안에 천국을 세워 그것을 누리는 것이 존재의 목적이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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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9 05:29 그리스도의 편지

사람이 태어날 때, 즉 <생명>이 씨앗 안에서 형체를 취할 때 <그것>은 세상의 다른 모든 개인으로부터 <그것>을 떼어놓는, 인간성을 취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독신으로 만들기 위해, 즉 다른 누구와도 함께하지 않고 홀로 서는 자신만의 인격을 지니게 하기 위해서 <그것>은 자신의 세속적 본성 속 두 가지 강력한 추동력에 복종하여 지배받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단단히 붙들고 원하지 않는 것은 거부하고 밀쳐내기 위해서 말입니다.

인간 내면의 이 두 가지 원초적 추동력이 그가 일생동안 행하는 모든 일의 바닥에 깔려 있어서 인간이 자초하는 문제의 전적인 원인이 됩니다. '아버지'는 인간의 내면에 살아 있지만 <그것>은 그 안에 인간성과 관련된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아무것도 붙잡지 않고 아무것도 거부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저주하지 않고 잘못을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인간이 죄라 부르고 행하는 모든 것은 오직 이 세상의 것일 뿐이며 이 세상 속에서만 벌해집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지상의 존재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아버지로부터 <생명>과 <마음>을 얻어오므로 인간도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통해 창조합니다. 그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고 믿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간이 지나면 유사한 형태를 띠고 그에게로 돌아옵니다. 아버지로부터 내리는 벌은 없습니다. 인류에게 오는 모든 불행은 전적으로 그들 자신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111~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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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8 06:23 그리스도의 편지

하느님의 방식은 인간 마음이 생각해내거나 꿈꿀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까마득히 초월해 있습니다. 나만이 '우리를 존재케 한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랍비들이 가르치는 그런 종류의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나는 <그것>이 '완벽한 사랑'임을 보았고 그래서 나는 그것을 차라리 '아버지'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마음이 뇌를 통해서 작용한다고 믿습니다. 그러지 않고야 어떻게 육에서 난 뇌가 생각과 느낌과 아이디어와 계획을 만들어낼 수 있겠습니까? 이젠 당신들도 이것이 '아버지'가 만물의 내부에 임재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겠지요. 살아 있는 모든 것의 내부에서 <그것>의 위대한 역사를 해내고 있는 것은 인간 마음 배후에 있는 지휘감독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새든 동물이든 인간이든 간에 그 새끼에 대한 어미 아비의 사랑을 목격합니다. 이 사랑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그것은 우리 안의 '아버지'의 '창조적 마음의 힘'(완벽한 사랑)으로부터 나옵니다. 모든 생명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그 안에서 '아버지'가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108~111쪽) 

-- '마음이 뇌를 통해서 작용한다'는 것은 뇌를 포함한 우리의 감각기관이 자성이 없다는 표현과 같다고 봅니다. 동양 영성은 하느님을 직접 말하지 않지만 이미 창조의 배후에 있는 완벽한 사랑을 알고 있었다고 봅니다. '편지'는 동서 영성은 물론 현대 과학의 성과를 모두 포괄하는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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