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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불선과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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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4 06:43 단상

제가 기독교(천주교) 안에 있을 때 가장 착각한 것이 그 체계가 가르치는 대로 성사를 잘 이행해서 에고(소위 자아)를 잘 닦으면 구원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에고는 닦아지는 게 아니라 극복(유교) 내지 부정(마태 16:24)의 대상입니다. 에고가 극복될 때 채워지는 신 의식 또는 참나의 권능으로 경영할 도구일 뿐입니다.


에고에게는, 개별 존재의 생존과 만족 추구가 급선무이며 그것은 진화상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물려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초부터 진실과 거짓을 분간할 수 없기에 모든 고통과 재앙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에고 극복의 비결은 바로 에고를 이해하는 데 있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과 타인에 대한 용서와 연민 그리고 겸손을 터득하게 됩니다.


그 노하우를 잘 정리한 교재로서 이 블로그의 '멸정복성'과 '그리스도의 편지'에 더하여 '에고로부터의 자유(샨티출판사)'를 추천합니다. 이 책의 원 제목은 '에고를 해체하여 궁극의 진리로 간다(Take me to Truth, Undoing the ego)'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기적수업 교사용 책이지만 누구에게나 잘 맞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 강조해야 할 것은 에고에 대해 해체니 극복이니 심지어 죽음이라는 말을 쓰지만 호킨스 박사에 따르면 에고의 기원과 성질, 기능 등을 정확히 이해하는 게 요체입니다. 에고가 창조 과정, 즉 신 의식이 개별화되고 가시화되는 과정에서 진화상 어쩔 수 없이 그리 된 측면을 제대로 이해하면 바로 극복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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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5.12.07 04:25 단상
교회를 통해서 영성의 길이 있다는 것과 거기에 참된 해방이 있다는 것을 배운 것은 큰 덕이었습니다. 그런데 확신 없이 타성적으로 교회출석을 했고 그 다음엔 반쯤 몸바치다가 마지막에는 하는 척만 했기에 성과가 없었습니다. 즉 제 개인은 물론 교회도 무능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제 주변, 즉 가족 일가 친척들 모두 생계를 둘러싼 위협에 소심해져 있고 주눅들어 있는 모습을 봅니다. 모두 이 한계에서부터 벗어나 환희를 누리고 평화 속에 살고 싶은 깊은 열망이 있음에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있습니다.

이집트 탈출의 비유는 그 모든 것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그 노하우는 동서에 걸쳐 이미 밝혀져 있지만 제대로 체득한 사람도 볼 수 없고 또 힘겹다고 느끼거나 믿음이 없어 발을 들여놓기 힘듭니다. 그런데 유교에서는 누대에 걸쳐 멸정복성(滅情復性)을 가르쳐 도식화했고 그리스도에 따르면 소아를 잊는 것(마태 16:24)이 답입니다.

부연하면 우리 존재는 부모에게서 받은 몸과 신 의식에게서 받은 의식(영혼)으로 되어 있는데 몸의 유지 존속에 기여했던 소아의 운영원리와 충동에서 완전히 벗어나 신 의식이 이끄는 대로 살 때 이 땅에서부터 해방과 천국이 있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신 의식이 전지전능, 무소부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고 받아들인다면 에고를 이기고 신 의식에 접속하는 방법을 꾸준히 실천하게 되고 약속된 바의 해방을 얻습니다. 그 과정을 믿고 따르는 게 힘들어서 그냥 기계적으로 출석하고 회비 잘 내면 학교 졸업장 받듯 천국 티켓 받으려니 하고 사는 게 실패의 원인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천국을 누리는 것입니다.

잘 보면 부처님과 예수님은 당신들께도 의지하지 말라고 합니다. 다만 그분들이 가르치는 손가락 방향으로 내 두 발만 의지해서 전력을 다해 가는 것입니다.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가다보면 그분들의 도우심을 적재적소에서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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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5.11.20 18:23 그리스도의 편지

제 소견으로는 '그리스도의 편지' 171쪽에 나오는 하느님 나라, 소위 천국이라는 것에 대한 설명이 이 책의 핵심 중의 핵심인데 그 가르침이 호킨스 체제나 여타 신비주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기에 제가 책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즉 "천국이란 우리 영혼을 낳은 '아버지'의 것이 된 마음의 상태로서 이 상태에서는 '아버지'가 우리의 머리가 된다"고 합니다. 사실상 신이 우리 개체만을 빌려 자신의 뜻을 펴는 상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조 (또는 개체화) 과정에서 작동했던 소아(self, 에고)를 완전히 비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마태오복음 16:24에 도식화되어 있습니다. 즉 "나와 같이 갈 사람은 자기를 잊고...나를 따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도 그렇고 교회에는 어떻게 자기를 잊는가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고 제대로 가르치는 사람도 없습니다. 물론 이해해주자면 모든 사람이 일상과 직업에 매여서 예수처럼 사막에서 40일을 보낼 수 없다는 한계가 있지요. 편지는 여기에 대해 단호합니다. 소아에 대해 죽어야(dying to ego) 한다(510쪽)고 합니다.


하지만 최소한 '홍익학당'처럼 매 순간 신 의식(또는 불성)에 깨어서 6바라밀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는 매뉴얼 같은 게 있었어야 했습니다. 천주교에 비슷한 게 있지만 고백제도를 위시해서 끝없이 죄책을 불러일으키는 데 그치고 있으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릅니다. '편지'에 있는 대로 그게 (모르고 하는지 몰라도) 신도들을 붙잡아두고 다스리기 좋기 때문일 듯합니다.


어쨌든 천국의 '의식 상태'에 이르면 어떻게 되는지 기술한 171쪽을 더 정리해봅니다. "그것은 너무나 아름답고 거룩하지요. 그것은 사랑이고 자비로움이며 자신을 아끼는 것과 같이 다른 이들을 아끼는 것이며 다른 이들을 정확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심판하지 않는 것이며 그들 또한 '아버지'의 보살핌 속에서 동등한 '하느님'의 자녀임을 아는 것입니다."


이 상태는 '무조건적 사랑'의 상태이며 호킨스 체제에서 깨달음의 시작이기도 한데 에고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며 반드시 신의 인도와 도움으로 가능합니다. 제 소견으로는 그것은 목표삼을 무엇이라기보다 의식 상승(깨달음)의 결과 따라오는 효과처럼 생각됩니다. 그래서 스승이 필요한 것이고 '편지'와 같은 책이 필요한 것입니다.


실상 나와 남의 구분이 없이 황금률을 실천하는 것,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과 심판하지 않는 것 -- 이것을 이루는 게 천국에 드는 것입니다. 참으로 단순한데 제 60년 삶을 볼 때 내 힘만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체득했기에 오직 기도와 명상으로 매어달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핵심에 멸정복성(또는 去非淨化, dissolving the ego)과 방하착(letting go)이 있습니다. 우리는 진기한 무엇을 찾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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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5.11.12 13:47 단상

= 세피로트(sefirot)의 어원은 숫자(numbers)이며 신성의 단계 내지 측면을 가리킵니다. 신이 각 세피로트로 분출하기 전에는 숨겨진 존재(unmanifest)이며 무한성을 가리키는 에인 소프(Ein Sof)라고 불립니다. 요컨대 열가지는 이름뿐이고 실체는 하나이며 무한합니다.


= 그림으로는 위에 뿌리가 있고 아래로 자라는 나무로 그려지는데 당연히 인간의 이해를 넘는 것을 상징하려는 노력일 뿐입니다. 그래서 장인의 손으로 새기지도 만들지도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편지'에도 거듭 언급되지만 초월성과 깊은 소통을 위해서 모든 개념과 이미지를 초월해야 합니다.


= 다만 '편지'와 관련해서 취할 부분은 신성(Keter)이 본래 '무' 내지 '공'이며 무한성이며 지극한 단순성이며, 개별성이나 차별이 없으나 거기에서 남성인 지혜(Hokhmah ; Keter가 시작도 끝도 없기 때문에 시작으로 불림)와 여성인 이해력(Binah ; 성모[Divine Mother] 또는 자궁으로 불림)이 분출하여 '비나'가 '호크마'의 씨를 받아 나머지 일곱 세피로트를 낳는다고 설명합니다. 그 결과 비로소 창조의 개별성과 차별이 생겨난다고 합니다.


= 마지막으로 '편지'와 관련하여 핵심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신적 본성을 인류가 잃어버렸기 때문에 자신을 정화함으로써 세피로트에 다시 연결되어 세피로트의 도구(vessel이란 말을 쓰기 때문에 도덕경의 '器'가 연상됩니다)가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신비주의가 이구동성 얘기하는 바는 에고 소멸로 근원에 연결된다(滅情復性, 克己復禮, 'dissolving the ego, realizing the Self')는 가르침이며 '편지'는 이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변주로 거듭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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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5.11.02 14:03 단상
공부할수록 확실해지는 게 그리스도께서 가르친 길은 불교의 보살이 되는 길과 같습니다. 불경도 편집자나 교단의 필요에 의해 이것저것 끼워넣고 왜곡시킨 게 있지만(유통분이라 함) 신약 성서에도 유태인으로서 기독교를 받아들인 자들이 전통 관념과 감성에 부합하기 위해 저지른 발췌, 편집, 왜곡이 있습니다. 이어서 왕권 국가의 필요에 의한 교리 획일화로 인해 재차 왜곡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두 종교가 같은 운명이었습니다.

각설하고 제 경우 60평생 살아온 생각대로 살면 그야말로 뻔한 결말이 예상됩니다. 그래서 화엄경의 보살도, 유교의 핵심 정신, 그리고 그동안 사숙한 호킨스 방하착에 더하여 '그리스도의 편지'가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멸정복성(dissolving the ego and realizing the Self)'의 길을 가야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이 길은 바로 그리스도의 길이자 보살의 길이며 많은 성현들이 갔던 길이기에 외로운 길이거나 신규 개척의 길도 아닙니다.

호킨스 박사에 따르면 골인 지점은 깨달음이며 그 가능성이 과거보다 1천배로 커졌다고 합니다. 위 가르침들의 공통 요소를 잘 추려내서 무술수련자들 내지 스포츠 선수들처럼 쉬지 않고 반복 훈련하면 결국 달인의 경지에 갈 수 있을 겁니다. 이승에서 성취해야 환생을 면할 수 있다니 더욱 열심히 해야 할 것입니다. 스승들은 길이 곧고 좁으니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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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5.10.27 18:13 그리스도의 편지

다음 인용문을 보세요. 


"너희의 의식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너희 삶에 영구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다. 그러니 사람은 조건없는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 시시때때로 기도하고 노력해야만 한다.(그리스도의 편지 21쪽)"


호킨스 의식 지도상 조건없는 사랑은 540입니다. 기도와 그밖의 노력을 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의 에고 의식이 장애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고를 이해하고 놓아버리기(letting go)로써 그 장애물을 제거할 때 점점 신성 쪽에서 은총의 형태로 유입하여 효과적으로 의식이 상승하는 것입니다.


신의 본성은 조건없는 사랑이기 때문에 540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신성과 일치하는 것이고 신 의식이 우리의 머리가 되어 모든 행동과 그밖의 삶의 모든 요소를 지휘합니다(위 171쪽). 그때 우리 존재는 나와 남의 구분을 넘게 되고 지극한 행복, 환희, 에너지 속에 있으니 모든 희망과 필요가 충족되기에 꼭 이름 붙여야 한다면 천국에 드는 것입니다.


에고 이해는 이 블로그의 '멸정복성'에, 놓아버리기는 '호킨스 방하착'에 정리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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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5.09.13 17:11 단상
아무리 고상한 가르침도 에고가 신이 되려는 데 복무하면 모르느니만 못하죠! 6조의 가르침을 금과옥조로 하는 선불교의 경우도 악용되어 가미가제 자살폭탄의 도구가 된 바 있습니다. 유교 가르침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효'도 땅과 혈육을 우상화하고 제로섬의 권력투쟁에 복무함으로써 조선을 패망에 이르게 했습니다.

효경의 '입신행도'에서, '행도'란 기독교식으로 얘기하면 혼과 심장, 즉 존재 전부를 바쳐 신을 섬기라는 1계명을 준수하는 것이며, '입신'이란 펑요우란(馮友蘭)에 따르면 사(私)를 버리고 예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입신행도이며 이것만 제대로 되면 충과 효는 물론 하늘 섬기는 일도 해결된다고 봅니다.

하나만 덧붙이면 효경에서도 부모가 잘못되면 간쟁하라고 했지 부모라고 해서 무조건 따르라고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500년 이상 물려받은 유교의 핵심마저도 제대로 배우고 숙고해본 적이 없습니다. 반복하면 아무리 좋은 가르침도 팽창의 욕망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언제나 에고를 버리고 본성을 따르라는 가르침(즉, 멸정복성)은 입신행도의 실천을 위해서도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입신행도의 결과 얻어지는 덕과 재화만이 오래 갈 것입니다. 그 결실에 대해서는 반드시 하늘에 영광을 돌리고 우리가 누리는 기쁨에 대해서는 언제나 끊임없이 감사하는 것이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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