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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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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5.26 존재의 진실을 깨달음
  2. 2018.05.25 고통의 원인과 명상
  3. 2018.05.24 우주심의 창조하는 힘
  4. 2018.05.23 광야에서 깨달은 것
  5. 2018.05.22 초기 삶과 광야 체험(2)
  6. 2018.05.21 역사 속의 예수
  7. 2018.05.20 의식 진화의 길
  8. 2018.05.20 사람의 아들이란?
  9. 2018.05.19 더 높은 이상
  10. 2018.05.18 삶의 영구적 변화
2018.05.26 07:34 그리스도의 편지

쇠사슬과 가죽끈은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고 낱낱의 가죽끈과 쇠사슬을 깊이 참회하고 자신이 해를 입힌 사람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기 전에는 해가 갈수록 그를 더욱 더 꽁꽁 동여맬 것이다. 나는 이 계시에서 존재의 가장 중요한 측면 하나를 배웠다. 인간은 자신을 위해 아름다운 삶을 지어낼 모든 잠재력을 지니고 태어나지만 스스로 자신의 이기적 욕망과 미워하는 마음에 빠져듦으로써 불행의 감옥을 만들어 자신을 가두고 있는 것이다. 그 감옥은 그가 마침내 <존재의 진실>을 깨닫는 순간이 올 때까지 빠져나갈 수 없다. 이토록 혹독한 존재의 모든 문제는 다름 아닌 인간 자신의 사고방식 속에 놓여 있다. (59~60쪽)

-- 쇠사슬과 가죽끈이란 강렬한 비유가 중요한 과제를 상기시킵니다. 58쪽에 처음 나오는 이 비유는 빛으로 태어나 기쁨을 표현하고 있는 갓난아기에게서 빛을 가리는 세상의 프로그램과 거기에 부응하여 밖을 향하여 완전히 몰입함으로써 우리를 노예로 만드는 모든 것을 상징합니다. 거의 모든 인간의 숙명이기도 한 이 이치를 분명히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편지'는 이 메시지를 다양한 형태로 반복합니다. 그런데 이 가르침은 제가 공부해본즉, 유불선에도 공통하는 것입니다. 특히 대승기신론은 '불각(不覺) 즉 생멸분이 제멸되면 바로 그 자리가 불생불멸분 즉 자성청정심이 되어 각의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고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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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5 05:50 그리스도의 편지

창조성에 관한 놀랍고도 영광스러운 전망이 마음에 떠올랐다. 우리가 진정으로 '지성을 가진 창조력'에 합치하여 그 순수한 통로이자 도구가 된다면 우리는 의식이 점차 상승하여 '우주적 창조력'의 본성, 그 자체가 우리 마음과 가슴을 통해 진정으로 표현될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면 땅 위의 생명은 실로 언제나 천국 상태에 있게 되고 우리는 영원한 생명 상태에 진입할 것이다. (55쪽)

나는 엄청난 흥분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토록 사랑 넘치는 신성한 '창조력'이 어떻게 그 피조물에게 그와 같은 불행을 견뎌내도록 내버려둘 수 있었는지 마침내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창조의 순간에 개체성을 보장하는 두 가지의 <근본적 추동력>이 존재하게 되었으니 인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57쪽)

나는 간난아기가 '빛', 곧 '창조력'의 살아 있는 형체인 것을 보았다... 그가 더욱 성장하여 세상 일에 더 능숙해질수록 그의 쇠사슬과 가죽끈은 그를 '결합-배척'의 쌍둥이 추동력의 손아귀 속에서 더욱 꼼짝달짝 못하도록 옭아맨다. (58~59쪽)

-- 만유의 재료가 빛이라는 것, 따라서 인간도 빛으로 되어 있는데 빛은 한편 전자기력이기도 합니다. 개체성의 근본 추동력은 바로 전자기력이고 전자기력은 결합-배척의 힘으로 되어 있습니다. 개체의 진화과정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데 이 원리에 따라 생존하는 데 몰입하다 보면 우리는 존재의 근원인 신 의식을 잊어버림과 동시에 빛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 책의 설명입니다. 

빛을 회복하는 길은 오직 '지성을 가진 창조력'에 합치하여 그 통로와 도구가 됨으로써 의식이 상승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길이 바로 영원한 생명상태, 즉 지상 천국에 진입하는 길입니다. 지성을 가진 창조력, 즉 신 의식이 내 존재를 독차지하도록 열렬히 간구하며 내 인간 의식을 비우는 행위가 바로 명상입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동안 인간 의식이 작용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도 수시로 홀로 기도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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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4 05:33 그리스도의 편지

나는 우주 만물은 우주심의 창조력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자신의 존재를 띠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우주심의 창조하는 권능은 무한하고 영원하며, 형상을 띠고 개체로 드러나는 모든 것의 배후에 있는 진정하고 유일한 실체였다. 세상 만물이 이 가장 높은 신성한 마음의 창조하는 권능에서 나왔으며 또한 그 안에 있음에, 내 마음은 찬양으로 충만해졌다...

나는 '창조하는 권능(창조력)'이야말로 우주의 모든 '지성적 작용'의 근원임을 더욱 더 분명히 깨달았다. 인류가 지성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만물의 우주적 근원'에서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신성한 창조적 권능은 언제나 어떤 근본적이고 정확한 건축 원리에 따라 역사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보았다 : 인간이 세상에 내보이는 뚜렷한 성격과 특정 '본성'을 지녔듯이 <창조하는 힘>도 특정한 '본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모든 생명체들, 나무, 동물, 새, 인간들이 조직되고 유지되는 방식 속에서 분명히 감지될 수 있었다... 이 원리와 성격들이 모든 존재를 지배하는 고정 불변의 법칙임을 보았다. (47~48쪽) 

-- 이어서 그러한 고정 불변의 법칙에 관하여 48~55쪽에 서술되어 있습니다. 요컨대 성장시키는 일, 영양을 공급하고 양육하는 일, 치유하는 일, 보호하는 일, 모든 요구를 충족시키는 일(즉 사랑), 피조물을 통해서 일하는데 그 동력은 사랑이라는 것, 생존시키는 일, 리듬을 부여하는 일, 법칙과 질서를 부여하는 일 등이 바로 창조하는 힘의 법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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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3 08:29 그리스도의 편지

나는 (1) 우주에 견고한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2)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다양한 '의식 상태'를 현상화시켜 보여주는 것임을, 그리고 (3) 그 의식 상태가 '티끌의 아물거림'의 조직과 형상을 결정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모든 외적 형체는 내적 의식의 표현물이었다. 생명과 의식은 하나이고 같은 것임을 나는 깨달았다... 그리고 이 둘을 만들어낸 '창조적 힘'은 우주 배후와 그 속과 그 너머에 있는 '신적 우주 마음'이었다. (44쪽)

-- 어제 마지막 부분이 매우 중요한 것 같아서 다시 반복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6주간 광야 생활 후에 '과거의 태도, 믿음, 선입견이 모두 해체되어 버렸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태도 믿음 선입견은 바로 세상에 의해 프로그램된 것들입니다. 그래서 명상을 통해서 이것들을 지워버리지 않는 한 우리는 세상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일을 잘 하기 위해서 우리는 방편적으로 '편지'에 몰입하는 것입니다.

44쪽 (1)번 사실은 오늘날과 같은 물리학의 성과가 없던 때에는 아무리 말해도 통하지 않는 말입니다. (1)번이 사실임을 아는 우리는 (2)와 (3)이 진실하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3)번을 현실로 구현한 사례는 세계 곳곳에 존재합니다. 다만 우리 의식이 아주 드높여지면 우리에게도 당연히 가능할 것입니다. 소위 물질화 기적이 여기에 해당하며 이와 비슷한 경우가 기적적 치유 사례입니다. 다만 흔들림 없는 믿음이 무엇이든 가능케 한다는 것은 이미 바이블에 기록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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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2 07:18 그리스도의 편지
나는 세례 요한에 대한 소문을 통해 그의 말을 들으려고 멀리 예루살렘에서까지 찾아든 유대인들에게 그가 무엇을 해주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가서 세례를 받기로 마음먹었다... 요한이 내게 세례를 주었을 때 실제로 일어난 일은 내가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그 무엇과도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나는 내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엄청난 에너지 파도를 느꼈다... 나는 비틀거리면서 강물에서 나와서는 하염없이 걸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앞도 보지 않고 광야로 계속 걸어갔다. 주목하라! 광야에서의 6주간은 내 인간 의식의 총체적인 내적 정화 기간이었다. 구태의연한 태도와 믿음과 선입견은 모두 해체되어버렸다. (38~41쪽)

-- 어린 시절 그리스도는 다른 이들의 고통에 민감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청년이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편모 슬하인 듯한 모친의 잔소리를 싫어하고 완고한 유대전통에 저항하는 청년으로 살다가 창조에 대한 호기심과 지적 열망으로 요한을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줄탁동기 하듯 신 체험을 하였다는 것인데 책에는 엄청난 에너지 파도를 체험하고 "문자 그대로 경악했으며... 의식이 고양되는 것을 느꼈으며... 찬란한 행복감과 황홀경을 느끼고... 거대한 빛을 의식했다."고 합니다. (40쪽) 그리고 나서 광야의 시간을 보낸 것입니다. 거기에서 체험을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어서 지적하고 있는 것은 성경과 사람들이 쓰는 하나님 또는 하느님이란 말이 옳지 않고 구태의연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에 대신할 만한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제 생각엔 이 점으로 인해 불교와 유교가 친근해진 듯합니다. 불교와 유교의 창시자들도 궁극의 실재에 대한 체험을 했으나 그것을 특정 용어로 고정시켜놓음으로써 초래되는 오류를 피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특히 불교는 힌두교의 신 개념을 철저히 버린 개혁된 힌두교로 보면 됩니다. 오늘날도 교회들이 사용하는 하느님이란 말에서 저는 성황당이나 칠성각과 같은 통속성과 상투성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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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1 05:41 그리스도의 편지

나는 기존 유대 전통에 맞섰던 반항아였다. 그리고 광야에서 6주 동안 머물다 나왔을 때 나는 생각하는 더 나은 방법, 살아가는 더 나은 방법을 깨닫고 유대 동족에게 내가 아는 바를 전해주고자 했지만 거의 성공하지 못했다... 옛 율법상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전하기 위해 그들은 내가 어떤 인간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묘사하기를 한사코 삼갔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써먹을 수 있는 것만을 걸러내고 내가 '하느님 나라의 비밀'이라 일컬었던 대부분을 '흘려보내' 버렸다... 성전에 희생제물을 바치면 '죄의 징벌에서 구원받는다'는 유대교 믿음을 보전하기 위해 예수라는 인간은 십자가형으로 인간의 죄를 대속한 '궁극의 제물'로 채택된 것인데 당시에는 이 믿음이 여러모로 유용했던 것이다. (33~34쪽)


-- 어제 글의 보완이면서 기독교 오류의 근원에 대한 설명입니다. 소위 유통분이라는 것은 어떤 종교를 불문하고 교단을 유지하려는 목적에서 이러저러하게 끼워진 것들, 특히 기존 문화와 융합을 위해 변형된 것들을 말합니다. 동아시아에 퍼져 있던 도교와 융합하기 위해 불교가 선불교로 변화한 과정도 비슷합니다. 


어쨌든 유대인들에게 사후 삶이란 오직 육신의 부활로만 가능했기에 부활 설화를 만들어낸 것이고 로마교회 수천 년간 육신의 부활을 철석같이 믿었지만 그것은 오류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이 오늘날까지 살아 남은 덕분에 현대 과학의 성과와 현대적 영성의 성과를 이용한 이 책의 설명이 가능해진 것이라는 점을 '편지'는 시사하고 있습니다. (35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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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0 09:40 공부의 요령과 요점

'내가 교회를 등질 마음이 없는데 왜 이단이냐?'라고 항변했던 마이스터 에카르트는 오늘날까지 로마 교회로부터 완전히 복권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제대로 된 기독교도와 비기독교도에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신학자이자 영성가입니다. 그의 말 하나 인용합니다. "누구든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마태 16:24) 모든 것은 여기에 달려 있다.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돌려라. 그리고 그것을 발견한 그곳에서 자기 자신을 너로부터 놓아보내라. 이것이 가장 올바른 것이다. (영성지도 10쪽)"


여기서 '부인'은 원문에는 잊음(forget)으로 되어 있고 1968년 최익철 님 번역판엔 ‘자기를 끊고’로 되어 있어서 요즈음 서양 영성의 자아 소멸에, 동양 영성의 무아와 극기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또한 그 다음에 나오는 '놓아보냄'에 조응합니다. 결국 철학 내지 영성의 공통 요소는 내면의 탐구인데 '천국이 내면에 있다'고 하는 속뜻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자신을 너로부터 놓아보내라’고 했는데 이것은 에고와 참나 또는 복성서 노선에 따른 정(情)과 성(性), 대승기신론 노선에 따른 심생멸문과 심진여문이라는 자아의 두 측면을 전제하는 표현입니다. 즉 ‘자신’이 바로 에고이고 ‘너’가 참나에 해당합니다. 자아에 대한 이러한 대전제를 가르치지지 못하는 심리학은 실천적으로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게 제 체험입니다.


이러한 인식 위에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돌려라’고 하는 부분은 명상과 같은 성찰 방법을 취하여 참나의 자리에서 에고를 살펴보라는 말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에고는 부인하고 끊어버려서 궁극에는 잊어버리게 되는 경지까지 이어지는 의식 진화의 길을 평생 가는 것이 누구나 취할 노선입니다. 거기에 충분한 보상이 있을 뿐 아니라 몸을 버린 후의 안심입명까지 가능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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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0 07:25 그리스도의 편지

복음서에 의하면 나는 하느님의 독생자로 일컬어졌다. 그렇다면 나는 왜 종종 나 자신을 일러 사람의 아들이라고 했을까? 나는 나의 신성에 대한 만연한 믿음에 반하여, 그리고 내가 그들과 똑같이 육신으로부터 나온 존재라는 사실을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시켜주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나는 그들이 오직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알고 내가 가르치는 대로 올바로 사고하고 올바로 행동하기만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그들도 또한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만들려고 애썼다. 

나의 인격과 내 영적 의식을 중심으로 너무나 많은 신화가 생겨서 이제는 그것을 가능한 한 완전히 없애버려야 할 때가 됐다. 바로 그것이 사람들을 영적으로 진화해가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31쪽)

-- 복음서를 쓰는 이들은 개인적 기억에만 의존해서 또 서로 다른 개인적 의도를 가지고 그리스도에 관해 묘사했기 때문에 전체 맥락은 물론 그리스도 자신의 내면에 있던 일에 대해서는 무지할 뿐입니다. 게다가 전교의 목적상 유대 신앙의 많은 것을 포함시켰습니다. 제 경우도 40년 정도 크리스찬이었지만 사람의 아들이란 말에 대해 한번도 명료하게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일은 불교에도 마찬가지 사정입니다. 교단의 목적상 그리스도나 붓다의 진정한 의도가 왜곡된 곳이 여럿 있습니다. 그래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스콧 펙은 의식이 향상함에 따라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종교를 버리는 사람도 있다고 쓰고 있습니다. 제 경우는 종교를 초월하여 그리스도와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과 실천이 무엇인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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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9 17:12 그리스도의 편지
너희 나날의 삶 속에서 실현되도록 애써야만 할 더 높은 이상이 있다는 사실이 널리 받아들여져야 한다. 육신의 세계가 절멸로부터 구출될 길은 오로지 더 높은 이상을 실현하는 길밖에 없다. 너희 자신을 위해서나 세계를 위해서나 이 이상이 없이는 영적 진화도, 열망하는 것의 성취도 있을 수 없다.
 
현재로서 삶에 대한 너희 인식이란 고통과 궁핍뿐이다. 그런 믿음은 너희 TV를 통해서 경악스럽게 묘사되고 강화되고 있다. 그 믿음들이 훗날 너희가 결단코 바라지 않는 불행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니 대중매체와 TV를 통해 표현되는 너희 자신의 어리석음으로부터 너희를 구하려면 인간 의식이, 내가 광야에서 보았던 것, 즉 모든 존재의 내면과 배후에 있는 사랑의 실상을 볼 수 있도록 신속히 고양되어야 한다. (28쪽)

존재의 진정한 본성이 온전히 이해될 때 인류는 영적 진화의 다음 단계로 옮아갈 것이다. 그리고 새롭고 축복에 찬 형태의 인간적 노력과 개인적 경험을 개시할 것이다. 이 목표를 성취하려면 인류는 먼저 '자신이 무엇이고 누구인지에 대한 통찰'을 얻어야만 한다. 이 편지는 바로 '나는 참으로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에 답해주고 있다. 내가 깨달은 모든 것을 너희가 나날의 삶의 지침으로 받아들인다면 내가 참되고 온전해졌던 것처럼 너희도 마침내 참되고 온전해질 것이다. (29쪽)

-- 위 말씀 전에 미디어를 통해 전파되는 파괴적이고 도착적인 심적 정신적 전염병이 심각하다고 지적되고 있습니다. 즉 인간을 이익의 수단으로 삼는 대자본의 폐해가 심각합니다. 그것은 생명의 기원을 우연에 돌리는 과학과 십자가형에 대해 잘못된 가르침을 펴는 교회의 실패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추세를 반전시키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진짜 가르치신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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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8 05:45 그리스도의 편지

- 너희 의식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너희 삶에 영구적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다. 그러니 사람은 조건없는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 시시때때로 기도하고 노력해야만 한다. (21쪽)


그리스도는 이 편지를 통해 풍요와 기쁨, 환희와 모든 필요가 충족될 것은 물론 신 의식에게서 넘치는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약속하십니다. 또 여기서 말하는 '존재의 진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실천하면 고통과 스트레스를 벗어난다고 하십니다. 또 지구상의 진화와 인류의 조화와 행복이 모두 인간 의식의 진화에 달려 있다고 하십니다. (이상 17쪽 참조)


오늘날의 성장과 발전은 기독교의 형제애 실천, 주일 지키기 등에 힘입은 바 크지만 이제 그 가르침의 오류로 인해 한계에 다다랐다고 합니다. 개인이 체험하는 모든 것은 개인의 의식에 달려 있으며 나아가 여러 전생에서 각인된 트라우마의 영향도 받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간혹 열렬한 기도로 신 의식과 접촉을 이루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의식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모르기 때문에 이 편지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18~20쪽 참조)


제 개인적으로는 호킨스 의식 지도에서 무조건적 사랑이 의식지수 540으로 측정되는 깨달음의 상태이기 때문에 어쩌면 호킨스 박사의 연구 업적이 '편지'와 긴밀히 연결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편지'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로 깨달음(enlightenment)과 같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어법으로도 모순이 없는바 우리가 그리스도 의식으로 채워진다면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재림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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