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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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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07:00:57 격물치지와 회광반조
  2. 2018.08.15 상근기의 삶
  3. 2018.08.14 도(道)를 상실함
  4. 2018.08.14 부정적 감정 다루기
  5. 2018.08.13 에고 벗어나기
  6. 2018.08.13 에고 소멸
  7. 2018.08.12 우리의 정체성
  8. 2018.08.12 삶의 목적과 수단
  9. 2018.08.07 사(私)를 벗어난 경지, 치지(致知)(3)
  10. 2018.08.06 수행과 사회과학
2018.08.18 07:00 단상

삼강령 팔조목 중에 치지(致知)의 '지'자가 근본인데 이것은 망상을 가지고 아는 것이 아니라 망상이 일어나기 전 본래 아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탄허록, 80쪽)

-- 대학에서 이 부분에 대한 해석에 따라 학파 내지 당파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성으로 따져서 아는 것이냐, 고요히 침잠한 가운데 영감 또는 직감을 떠올려서 아는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고 선생과 탄허스님은 후자이고 주희는 전자에 가까와 보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주희가 명상, 즉 거경의 삶을 실천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성도 우리 존재 근본에 새겨진 로고스를 찾는 도구라고 보면 결국 같은 결론과 실천에 도달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다만 탄허스님이 우려하는 바, 바깥 세상의 이치에 치우친 망상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면 진정한 의미에서 앎에 이르지 못한다고 보는 게 타당합니다.

무엇보다 격물하여 앎에 이른다 하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일이 생겼을 때 판단을 위해 앎을 구한다고 보자는 게 이고 선생의 입장입니다. 격물이란 사물이 다가온다, 또는 일이 생긴다로 해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선조 가운데 최고 지성들은 일이 없을 때는 사마디(定)에 들어 있다가 일이 생기면 괘를 뽑아 결정을 하거나 몰입해서 일을 처리하신 것으로 압니다.

바깥으로만 달리는 의식을 안으로 돌려(회광반조) 거경하는 삶이 없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구두선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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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5 07:01 단상

상근기의 삶이란 대인군자, 즉 우주와 자신을 함께 잊고(物我兩忘) 예(禮)로써 사는 성인의 경지를 말한다(탄허록 78쪽).

-- 탄허스님에 따르면 예란 천리(天理)입니다. 기독교도 그렇지만 형식주의를 지탱하는 고급 영성을 모르면 바로 형식의 괴물에 농락당합니다. 조선의 유학도 영성을 빌어 가문의 재물 지키기로 사용한 도적질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영성을 빌어 비벨탑을 쌓는 일도 똑같은 맥락입니다. 그 극단에 명성교회가 있는 것이고요...

하여튼 천리에 따라 사는 삶의 전제 조건은 나와 세상을 잊으라는 것인데 어제 쓴 바의 거경의 삶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항상 깨어 '생각이 끊어진 자리(中)'와 하나가 되는 노력이 바로 '속을 지키는 것(守其中)'이며 그때 비로소 도와 명덕(明德)에 대하여 경외심을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도와 명덕의 자리가 요새 말로 하면 궁극의 실재 자리입니다.

중요한 것은 중근기와 하근기를 지도하는 사람이 성인이냐 소인이냐입니다(위 책, 같은 쪽). 우리는 살면서 대개 소인의 지도를 받았기 때문에 죄와 죄의식이라는 공포심의 인도를 받습니다. 학교나 사회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종교가 소인들로 채워져 있는 것이 비극입니다. 그렇다면 답은 우리 스스로 죽어라 노력해서 상근기의 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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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4 04:10 단상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도(道)가 없으면 부패하기 마련이다. 도는 시공이 끊어져 욕심이 없는 상태다. 이러한 이치를 알아 각 분야에서 도를 실천할 때 올바른 정치가 나오는 것이다(탄허록 67쪽)

-- 도에 대한 탄허스님의 간결한 정의가 돋보입니다. 시간과 공간이 끊어졌다는 것은 생멸문에서 벗어나 진여문에 들어간 경지입니다. 즉 명상으로 희로애락이 나오기 전인 중(中)의 상태를 체험하고 6바라밀 또는 4단을 자재하게 구현할 수 있는 경지입니다.

서경의 16구 가운데 나오는 미약한 도심(道心)으로 위태로운 인심(人心)을 극복하였기에 사(私)가 없이 공(公)에 따라 살 수 있는 경지입니다. 이 정도의 기본 교양은 삼국 시대 이래 이 땅을 거쳐간 최고 지성들이 이미 설파하였건만 도에 대한 교육이 끊긴 지 오랩니다. '신기독 수기중'이란 고요히 홀로 내면을 들여다보는 거경(居敬)의 실천을 말합니다.

이때 얻어지는 중이 천하지대본이라고 써 있건만 어설프게 서양 종교를 받아들이고 외면만 흉내내느라 무엇이 긴요한지 다 내버린 셈입니다. 기초과학 없이 응용과학 없듯이 도의교육 없는 학교교육은 무력합니다. 그동안 암기만 능한 사람들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만듦으로써 성적순으로 심하게 나라를 망치게 만든 것을, 사법부 부패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의 어지러움은 두 말할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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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4 03:43 공부의 요령과 요점

부정적인 감정이 떠오르면 위험 신호임을 깨닫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하려고 하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에고로부터의 자유, 40쪽)

-- 부정적 감정은 낮은 의식의 징표입니다. 의기소침, 슬픔, 공포, 욕망, 분노, 교만 등은 특별히 신속히 확인하고 내버려야 할 감정들입니다. 이 감정들은 순전히 진화과정에서 생존을 위해 작동하는 것들입니다.

부정적 감정을 내버림으로써 의식을 상승시키는 방법으로는 로버트 프로세스 또는 호킨스 레팅고가 있습니다. 요컨대 해당 감정을 최고조로 느껴본 다음 의도적으로 결별하는 것입니다. 이런 수준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벗어나는 데 시간도 걸리고 잘 안 된다는 느낌이 있지만 노트를 마련해서 기록해가며 꾸준히 시도하면 결국 벗어날 수 있습니다.

과거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선택밖에 없습니다. 빨리 감정적으로 결별하고 지금 이 순간부터 긍정적 선택, 즉 빛과 사랑, 기쁨 쪽의 의식을 작동하면 이 순간 이후 거둘 현실을 위한 씨앗을 심는 셈입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완전히 받아들이고 산 위로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듯 힘겹게 올라가면 과거라는 풍경은 서서히 멀어지면서 달리 보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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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3 05:31 공부의 요령과 요점

다른 이에게서 찾아내는 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을 우리 안에서 더욱 고집한다. 그래서 지혜에 따르면, 에고가 숨기는 것을 깨닫고 싶다면 내게는 없고 남에게 있다고 뚜렷이 확신하는 것을 더 잘 살펴보라고 합니다. (에고로부터의 자유, 35쪽)

-- 이 말씀은 칼 융의 처방에 맞닿아 있습니다. 융은 '남에게 무언가 내 화를 돋구는 게 있다면 그 점에 있어서 내게 문제가 있다는 표시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내게 절대로 문제가 없다고 믿지만 그것을 밖으로 투사한 때문에 나는 자신있게 화를 내는 것입니다.

에고를 다루고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일은 지난한 일입니다. 제 경험에 따르면 에고에서 벗어나는 만큼 우리 의식이 향상하는데 전심전력을 기울이더라도 그 속도는 아주 느립니다. 어려운 시험에 붙고 직장에서 승진하는 일에는 전심전력을 기울이지만 내 존재상태를 개선하는 일은, '내 삶이 세상에 통하는데 무슨 문제야!' 하는 생각으로 별로 신경쓰지 않았지요!

결국 노숙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에서 힘겹게 한 계단 한 계단 기어올라가는 기분으로 매일 노트를 적고 치유를 줄만한 책을 읽으면서 노력했더니 지금은 산 중턱의 시원한 공기와 먼 경치를 즐기면서 정상을 바라볼 만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몸을 버린 후의 의식까지 돌보지 않으면 안심하기는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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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3 05:30 공부의 요령과 요점

"에고가 소멸되고, 분리와 고통을 초래하던 환상이 '애초 그것이 나온 무(無)' 속으로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에고 소멸(undoing)은 거룩한 기억의 과정이다. 이 과정을 이끄는 것은 참나(Universal Inspiration or Holy Spirit)이며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당신의 정직성과 용기, 의지와 자발성, 그리고 헌신에 달려 있다. (에고로부터의 자유, 28쪽)"

-- 우리가 체험하는 고통의 원인은 우리 존재가 분리되어 있다는 환상에 있다는 점과 이 환상이 터하고 있는 '나'라는 생각이 사라지면 우리 존재의 근원을 알게 되는데 이것이 깨달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지와 결단, 그리고 참나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일입니다. 그 과정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철저히 진실에만 복무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은 참나이며 그 자리를 언제나 의식하며 에고(小我)를 잊어버리는 일은 마태복음 16장 24절에서 '자신을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으로, 장자에서는 좌망(坐忘)으로 정식화되어 있습니다. 위 인용문에서 강조되는 바 정직성이 바로 유교의 성(誠)이며 이 성이란 우주가 통으로 하나여서 그 안에 한번 새겨진 것으로서 영원히 숨겨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인식에 기반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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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2 06:41 공부의 요령과 요점

"그리스도 의식이라는 더 높은 단계로의 복귀를 많은 이들은 '재림(second coming)'으로 여기고 있다... 우리 모두는 영겁 전에 폭발한 우주 거울의 무한한 조각들이다. 우리는 우리가 진정 누구이며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를 잊어버렸다. 이제 우리 임무는 우리 본래 모습을 기억해내는 것이다(샨티출판사, 에고로부터의 자유, 21쪽)"

-- 만일 그리스도의 물리적 재림을 기다린다면 우리는 교회에 속았거나 유치한 의식에 머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많은 서구인들은 재림이란 우리의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아주 많은 이들이 진리를 제대로 깨달아 의식이 확연히 상승한다면 지구 표면은 바뀔 것입니다.

이 깨달음의 시작은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이 무엇인지 아는 데 있다고 봅니다. 제가 읽은 한도에서 답하자면 신 의식이 자신을 쪼개어 이 몸을 만들고 이 몸을 통해 자신의 장엄함을 기억해내고 체험하는 존재가 바로 우리입니다. 신학적으로는 만유가 신이고 우리는 신의 분유(分有), 혹은 분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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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2 06:23 공부의 요령과 요점

우리는 이 지구에 온 '유일한' 목적이 영적인 것임을 발견하고 깨닫게 될 것이다. 무한한 본성, 통합된 자아에게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인간으로 태어나 이생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가장 유익한 행위다(에고로부터의 자유, 164쪽)

-- 이 책은 약 5년 전 학우이신 분께 소개받았는데 영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위기에 빠진 저에게 울림이 커서 거의 씹어먹듯 읽고 또 읽었습니다. 기적수업 교사들이 가르침의 요점만 정리해서 소개한 책이기도 합니다. 원 제목은 'Take me to Truth - Undoing the Ego'입니다.

위 인용문에서 '통합된 자아'란 대승기신론의 '진여' 플로티누스의 일자(Oneness)와 같다고 보아서 '참나'로 써도 된다고 봅니다. 동서 최고의 철학서들이 추구한 바는 이원성을 극복한 자리, 즉 진여, 일자, 참나를 체험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그 이전에는 우리의 무한한 욕구가 만족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길의 입구는 고요히 앉아 생각을 끊는 훈련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도 수준 높은 영성이 이구동성 말하고 있습니다. 안으로 가지 않는 의식은 밖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밖의 것들이 의식의 반영이라는 것은 소크라테스의 동굴의 우화를 비롯해서 철학자와 영성가들이 누차 가르친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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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7 04:55 단상

성리학의 출발은 주렴계(주자)이고 주렴계는 그보다 약 250년 전의 이고와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 두 분은 먼저 불교에 통달하고 유교로 전향했다는 점에서 일치하기도 합니다.

개인의 수양이 인간 사회의 운영에 기여하지 못하고 잉여 생산물을 독점적으로 누리는 데 그치는 소승, 즉 종교로 타락한 불교를 지양하기 위해 유교를 재해석한 분들입니다. 특히 대학의 지극한 앎(致知)을 깨달음의 경지로 보고 그 바탕에서 수신제가와 평천하를 실천할 때 비로소 대승이 성취된다고 본 것입니다. 치지가 왜 깨달음인가 하는 것은 복성서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일이 닥칠 때 그 마음이 초탈하고 완전히 객관적이 되어 일에 사로잡히지 않는 경지(物至之時, 其心昭昭然明辨焉, 而不應於物者, 是致知也, 복성서 중편 2절-3)가 지극한 앎이어서 제가 볼 때 이때야말로 에고를 벗어난 것이며 가장 공(公)적인 상태가 됩니다.

이때는 전혀 숨김이 없어 완전히 투명하며 에고의 집착이 없기 때문에 그 어디에도 치우침이 없게 됩니다. 이고와 주렴계는 이때 유교의 가장 큰 이상 가운데 하나인 성(誠)이 구현된다고 보았습니다. 여기까지 이해하고 실천한 성리학자만이 진정한 성리학자라고 보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성인이 되려는 근본 결단과 명상을 통해 신인합일의 경지에 도달할 정도의 내면의 성취 없이 그저 암기만으로 고시에 붙고 법전을 사욕을 채우는 데 쓰는 관료가 조선에도 많았으리라는 것은 쉽게 추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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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6 08:04 단상

요새는 원효대사의 '대승기신론 소와 별기'를 몸에 붙이고 다닙니다. 대사 이후 약 9세기만에 이 땅에서 치열한 삶을 사신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은 전심법요와 원각경 등에서 핵심 구절을 체계적으로 뽑아놓은 소책자입니다. 

제가 모든 종교를 비판하는데 그것은 종교들이 목욕물로 더렵혀져 있기 때문입니다. 더렵혀진 종교지만 그 안에 있는 아이까지 버릴 수는 없고 오히려 아이를 알아보고 거기에서 실천요목을 찾아내는 일은 요긴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가귀감에서도 핵심을 뽑으라면 49편 "참마음을 지키는 것이 최선의 수행이다(守本眞心 第一精進)"과 51편 "예배란 경이요 복이니 참본성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라는 말이다(禮拜者敬也伏也 恭敬眞性 屈伏無明)"입니다.

여기서 참마음 또는 참본성이란 절대성 자리 또는 순수 의식이나 신 의식 등 무엇으로 부르든 궁극의 실재입니다. 우리의 평소 의식, 즉 에고가 이 자리를 공경하는 것 - 이 지점이 모든 종교에 공통하는 요소라고 봅니다. 

사회과학을 전공한 자로서 제가 궁구해보니 대승이나 성리학이 지향하는 바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 사회과학입니다. 즉 에고를 사(私)로 놓고 궁극의 실재 자리를 공(公)으로 놓으면 그렇게 됩니다.

영성과 수행은 결국 사를 버리는 일이고 공의 자리에서 평천하를 하려는 것이 대승이고 성리학이며 사회과학이란 점에서 같다고 보는 것입니다. 좀 더 들어가는 논의는 다음에 풀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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