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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불선과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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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정복성'에 해당되는 글 109

  1. 2015.06.25 번역 후기(1)
  2. 2015.06.23 저자와 편집자에 대해서
  3. 2015.06.23 용어 해설 2
  4. 2015.06.23 용어 해설 1
  5. 2015.04.12 11장 13
  6. 2015.04.09 11장 12
  7. 2015.04.08 11장 11
  8. 2015.04.08 11장 10
  9. 2015.04.08 11장 9
  10. 2015.04.08 11장 8
2015.06.25 16:31 멸정복성

이 책은 스캇 제프리가 호킨스 박사의 가르침 가운데 깨달음을 위하여 핵심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체계적으로 발췌하여 편집한 '에고 소멸, 참나 실현(Dissolving the Ego, Realizing the Self)'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책은 동서양 위대한 스승들의 가르침에서 공통되는 부분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우리 삶에 구현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 답한다고 생각합니다. 9장에서 호킨스 박사가 지적한 대로 깨달음은 역사에 걸쳐서 동일한 체험입니다. 그래서 번역자는 우리나라 불교, 기독교와 유교 및 서양 철학과 신학 등에서 이미 사용하는 친숙한 말을 최대한 살려 옮겼습니다. 예를 들면 무주상 보시(a selfless service), 돈오(sudden enlightenment), 대자대비(mercy and compassion), 태극(the Supreme, the Ultimate), 만유(Allness, All That Is), 일자(Oneness), 숨은 분(Unmanifest), 초신성(Godhead) 입니다. 한가지 더 거론하자면 성(誠, integrity)의 경우 루이스(C.S. Lewis) 같은 분은 "누가 보지 않아도 올바름을 실천하는 것"이라 합니다. 성은 유교 영성의 중심 사상 가운데 하나이며 "홀로 있을 때 삼가는 것()"이라 풀고 있습니다. 성이 의식 지도 200의 분기점이 되는 것을 우연의 일치로 넘겨버리기 어려운 대목이라 생각합니다.

 그 밖에도 호킨스 텍스트에서 기본개념이라 할 수 있는 몇가지를 제 나름으로 번역하였는데 그것은 권능(power), 완력(force), 소아(self), 고정관념(positionality) 등입니다. 소아에 대해서는 박사님의 최후 저서인 '놓아버리기(Letting go : the Pathway of Surrender)'에 똑같은 설명이 있고 고정관념의 경우 용어해설에도 있지만 이원성 안에서 자의적으로 한가지 입장(position)을 취함으로써 굳어진 사고구조를 가리키기 때문에 별 무리가 없지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신과 신성에 관한 모든 것은 대문자로 되어 있는데 번역에서는 < >로 표시하였습니다. 다만 신(God), 참나(Self), 예수, 붓다의 경우 예외입니다. 아울러 원문의 이탤릭체는 작은 따옴표로 표기했습니다.

 모쪼록 역자 자신이 삶의 위기를 맞아 샘물을 파는 심정으로 호킨스 박사를 복습하다가 만난 이 책이 박사님 세계를 이해하는 일은 물론 독자의 삶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기를 빌며 후기로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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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5.06.23 11:14 멸정복성

의학박사 겸 철학박사 데이비드 호킨스 경 : 박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신과 의사이며 의식 연구가, 영성 강사, 신비가입니다. 베스트 셀러인 '권능 대 완력(번역서명 '의식혁명')'을 포함해서 8권 이상의 책을 썼으며 저서는 17개 이상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1970년대에 노벨상 수상자인 라이너스 폴링과 '분자농도 조절을 통한 치료'를 공동 저술하여 정신의학상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박사는 '맥닐/레러 뉴스아워, 바바라 월터 쇼, 투데이 쇼에 출연하였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수도원, 옥스포드 포럼, 아르헨티나 대학, 노트르담 대학, 스탠포드 대학, 하바드 대학에서 강의하였고 가톨릭, 프로테스탄트 및 불교 수도원에서 상담가로 활동하였습니다.

 헉슬리 상을 받았으며 예루살렘의 성 요한 봉사자 수도회로부터 기사직을 수여받았고 템플턴 상 수상자로 추천되었으며 동아시아에서 '태령선각도사'라는 호를 받는 등 박사의 저작은 지속적으로 인류에 심원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웹페이지는 veritaspub.com입니다.


스캇 제프리 : '창조력의 발견 : 영감의 원천을 찾아서'를 포함, 다수의 저술이 있음.


역자 주) 태령선각도사(太靈先覺道師)는 한국인 최초 방문자들이 호로 붙여 드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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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5.06.23 10:56 멸정복성

선형(Linear) : 뉴턴 물리학의 방법론에 따르며 미분 방정식을 사용하는 전통 수학으로 풀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비이원성(Nonduality) : 고정된 인식점의 한계를 초월하면 더 이상 분리의 환상도 없고 우리가 아는 바의 시간과 공간의 환상도 없습니다. 비이원성의 차원에서는 관찰은 있되 관찰자는 없으며 주객은 하나입니다. <너와 나>는 모든 것을 <신성>으로 체험하는 <하나>의 참나가 됩니다. 비이원성에서 의식은 드러난 것과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자신을 체험하지만 체험자는 없습니다. 이러한 실체 안에서 시작과 끝이 있는 유일한 것은 지각 행위 자체입니다. 


고정관념(Positionality) : 고정관념은 전체 사고 방식을 움직이는 구조를 말합니다. 고정관념은 참나가 아니라 프로그램입니다. 세상은, 임의로 취한 추정이면서 전적으로 오류인 수많은 입장(positions)을 고집합니다. 오래된 고정관념의 예로서 (1) 생각에는 시사점과 중요성이 있다, (2) 상반되는 것 사이에 구분선이 있다, (3) "내" 생각이기 때문에 생각이 가치있고 원작자 의식이 있다, (4) 통제를 위해 생각이 필요하고 통제로써 생존이 확보된다는 것 등이 있습니다. 모든 고정관념은 자의적인 것입니다.  


참나(Self) : 참나란 모든 형상을 초월하지만 형상에 본질적인 것으로 시간을 초월하며 시작도 끝도 없으며 변하지 않고 영원하며 불멸합니다. 참나에서 의식이 생겨나며 "고향에 온 것 같이" 무한히 평안한 조건입니다. 참나는 궁극의 주관성인데 거기에서 모든 사람의 "나" 감각이 나옵니다. <무한한 실체>는 자신을 "나"로 알지 못하지만 그런 진술을 할 수 있는 바탕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무소부재합니다. 참나는 실체 중의 <실체>이며 <일자>이며 <만유>입니다. 그것은 드러나지 않은 것의 드러남이기도 하며 의식의 최종적인 <나의식>입니다. 근본적으로 묘사할 수 없는 것이어서 이런 식으로밖에 묘사할 수 없습니다.


주관성(Subjectivity) : 생명은 오직 체험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체험은 주관적이고 비선형적입니다. 따라서 "실체"에 대한 선형적이고 지각할 수 있고 순차적인 설명마저도 주관적으로밖에 체험할 수 없습니다. 모든 "진리"는 주관적 결론입니다. 모든 생명은 본질적으로 비선형적이고 측정할 수 없고 정의할 수 없습니다. 순전히 주관적입니다.


진리(Truth) : 진리는 상대적이고 주어진 맥락에서만 "진실"합니다. 모든 진리는 특정 의식 수준에서만 진실합니다. 예를 들어 용서는 추천할 일이지만 더 나아가면 실로 용서할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용서할 "타인"이라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에고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의 에고는 허구입니다. 지각으로 아는 것은 실체가 아닙니다. 진리는 주관성에서 비롯하며 자명하고 저절로 드러납니다. 진리는 철저한 주관성입니다. 분리된 "소아"라고 하는 우리가 생각하는 "실체"를 포함해서 이원성의 환상이 사라지면 <무한한 "나">의 상태만 남는데 <무한한 "나">라 함은 <숨은 것>이 참나로 드러난 것입니다. 진리는 허위와 같은 반대짝이 없습니다.

 의식의 장에서 숨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궁극의 진리는 존재상태나 그 어떤 자동사도 넘어 있습니다. 참나를 정의하려는 어떤 시도도 쓸데없습니다. 궁극의 실체는 이름지을 수 없습니다. "나"란 <참나실현> 상태의 철저한 주관성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실체>에 대한 완전한 진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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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5.06.23 08:05 멸정복성

※ 다음 용어 해설은 호킨스 박사 저술에서 발췌하여 편집한 것입니다.


의식(Consciousness) : 의식이란 무한하고 무소부재한 우주의 에너지 장이고 반송파이며 우주에 있는 모든 정보의 저장고입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것이 인식 또는 경험능력, 인지 또는 관찰능력의 핵심이자 기층이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의식은 모든 존재에게 더 이상 환원할 수 없는 일차적 자질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포괄하고 언제나 존재하면서 시간, 공간이나 위치와 상관없이 그 차원과 잠재력이 무한한, 형체없고 보이지 않는 에너지 장입니다.

 의식은 비독자적인 <신성>이 앎이라는 것으로 드러난 것이며 비이원적이고 비선형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인식력이 있는 무한한 공간과 비슷하며 <신의 핵(the Divine Essence)>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맥락(Context) : 하나의 관점에서 서술된 전체 실상입니다. 어떤 진술이나 사건의 의미에 부합하는 중요한 사실들을 포함합니다. 맥락이 정의되지 않으면 데이타의 의미는 없습니다. "맥락을 벗어난다"는 말은 의미 추론에 부합하는 부대 조건을 확인하지 못함으로써 진술의 의미를 왜곡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원성(Duality) : "이것/저것", "여기/저기", "그때/지금", "네것/내것" 등에서처럼 개념적 이분법에 반영된 객체의 외견상 분리가 특징인 형상의 세계입니다. 이러한 개념상 한계는 고정된 관점에 숨겨진 한계로 인하여 오감이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에고 또는 소아(Ego or self) : 생각과 행동 뒤에 있다고 상상하는 행위자입니다. 생존을 위하여 꼭 존재해야 하는 것으로 굳게 믿고들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에고의 주된 특성이 오감이며 그 자체로 인과법칙이란 패러다임의 제약을 받기 때문입니다. 


깨달음(Enlightenment) : 일상적 의식을 대체하는 비범한 의식 상태입니다. 이때 소아는 참나로 대체됩니다. 시공을 초월하고 고요하며 계시의 형태로 드러납니다. 이 상태는 에고가 사라질 때 따라오며 모든 것이 인과관계가 아니라 자동적인 것으로 인식됩니다.


카르마(Karma) : 기본적으로 개인의 카르마는 의식의 비물질적 영역 안에 존재하는 정보 꾸러미(컴퓨터 칩과 비슷함)입니다. 거기에는 영체(spiritual body) 또는 혼의 일부를 이루면서 영체에게 본질적인, 축적된 정보의 코드가 들어 있습니다. 그 핵심에는 모든 과거 체험이, 그와 연관된 생각과 감정의 뉴앙스와 함께 압축되어 있습니다. 영체는 선택의 자유가 있지만 선택 범위는 이미 정형화되어 있습니다.

 카르마는 선형적이며, 혼을 통하여 계승되고, 의지로 선택한 행동의 결과들인데 그것들은 전승됩니다. 카르마는 참으로 책임을 의미하며 모든 존재는 우주에 답을 해야 합니다. 요컨대, 주지하는 대로 카르마(즉 영적 운명)는 의지 있는 결정의 귀결이며 육신의 죽음 뒤 영적 운명(천국, 지옥, 연옥 또는 소위 내면적 아스트랄 차원[바르도])을 결정합니다. 인간 세계로의 환생이라는 선택지도 있는데 그것은 개인이 동의할 때만 그렇습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자기 의지로 그 길을 택합니다. 나아가 의식 조사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외양이 어떠하든 영적 진화에 가장 적합한 조건에서 태어납니다. 아무도 자기가 동의하지 않은 채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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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2 07:14 멸정복성

깨달음에 이르는 마지막 관문에는 에고의 마지막 도전이 기다리는데 그것은 자신이 정체성의 근원이자 소재지일 뿐 아니라 생명 자체의 근원이자 소재지라고 하는 중추적이고 핵심이 되는 믿음입니다. 그 지점에서 우리는 완전히 홀로 되며, 그 어떤 보호나 위안이 되는 버팀목, 믿음 체계나 기억조차도 빼앗깁니다. 우리의 둘레에 오직 <깨달은 스승>의 암호처럼 된 <앎>과 함께 고주파 진동만을 접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되돌아가는 게 불가능하고 따라서 절대적 마감이라는 섬뜩함이 있는 그런 단계로 직감됩니다.

 이어서 모든 두려움이 환상이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이든 앞으로 곧장 나아가야 한다는 깨달음이 일어납니다. <영적 의지>가 이 마지막 단계를 취함에 따라 죽음을 체험하지만 맹렬한 고뇌는 잠깐 동안 이어집니다. 에고의 죽음은 그전에 몸을 떠나는 죽음이 비교적 사소한 것임에 비하면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실질적 죽음입니다. 죽음의 체험은 <궁극의 실체>가 드러남에 대해 크게 놀람으로써 끝납니다. 이어서 그 놀람마저 사라지고 참나가 <존재> 대 <비존재>, <만유> 대 <무>, <무소부재> 대 <공>이란 이원성을 넘어섭니다.

---*---

마침내 진실한 수행자는 영적 실상에 대한 추구의 결과 다른 모든 고려사항이 불필요하게 됩니다. 깨닫고자 하는 결단에는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결단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

열심한 수행자는 바로 마지막 관문(<마지막 관문>은 의식지수 999로 측정됨)에서 생명 자체(혹은 적어도 진화가 시작된 이래 생명 자체의 핵이라고 믿어진 것)를 기꺼이 포기할 것인가 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을 아주 일찌기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마지막 관문을 통과한 예가 극히 드문데 그 한가지 이유는 준비가 부족한 것과 확신이 없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 남는 매우 큰 의심 때문입니다.

---*---

최종 순간에는 의심의 마지막 잔재와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속 깊은 데서부터 표면화될 것입니다. 그 지점에서 "어떻게 되든 곧장 앞으로 가라"고 하신 스승들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이 생겨나고 그것이 맞다는 것이 입증됩니다. 즉 신의 영광이 마지막 커다란 벽 넘어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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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9 04:42 멸정복성

모든 탐구 방법이 궁극엔 같은 답을 얻습니다. 아무것도 숨겨진 게 없고 <진리>는 어디에나 드러나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가장 간단한 실무에서부터 인간의 운명에 이르기까지 깨달음의 열쇠입니다. 우리 일상생활을 살펴보면 모든 두려움이 잘못된 생각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류를 참된 것으로 바꿔 놓는 것이 가시적이고 비가시적인 모든 것을 치유하는 핵심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결국 모든 탐구자에게 마지막 질문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는 누구인가?" 하는 가장 큰 질문입니다.

---*---

당신이 누구인지 안다는 환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신적> 상태에서는 무엇무엇에 관하여 "알"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바로 알고자 하는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힘겨운 도약이지만 갑자기 저절로 일어나며 그때 비로소 우리는 영원히 자유롭습니다. 끝없는 기쁨이 불확실성을 몰아냅니다. 인생이란 끝없는 희극입니다! 당신은 "누구"가 아니고 "무엇"입니다.

---*---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 끝없이 늦어지는 것 같은 원인은 의심입니다. 의심은 저항이기 때문에 내려 놓아야 합니다. 인간이 열심히 깨달음을 구할 정도로 <영적 진실>에 헌신하는 일은 실로 지극히 희귀하며, 그렇게 하기로 결심한 사람은 실로 깨달을 '운명이기' 때문에 깨닫고 만다는 것을 아는 게 중요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질문하는 자가 누구인가?' 묻는 자가 누구인지 알아내면 질문 전체에 대한 답을 얻을 것입니다. "누구"가 아니고 "무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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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8 20:45 멸정복성

의식은 분리를 알지 못합니다. 분리란 오감상 한계이기 때문입니다. 깨달은 상태는 부분으로 나뉨이 없는 "<일자>"입니다. 그러한 분리는 국지적일 수밖에 없는 오감에게만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그저 하나의 관점으로 인한 우연일 뿐입니다.

---*---

<무한하고 궁극적인 잠재성>이 바로 <존재의 실현>입니다. 따라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신적>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전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신성>의 절대적 표현이 <주관성>입니다. 내가 존재하면 그에 따라 신이 존재합니다. 깨달음이란 모든 존재가 <창조>의 결과일 뿐 아니라 존재 자체가 <창조주>와 다르지 않다는 것에 대한 입증입니다. 피조물과 <창조주>는 하나이고 같습니다.

---*---

(명상, 묵상, 증명된 가르침 및 <진리>의 도움과 선구적인 스승의 에너지 장의 도움을 받아) 영적 일치, 지향과 봉헌을 실천하면 의식의 커다란 도약이 예기치 않게 이뤄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도약에 대해 (의식 연구로 확인된 대로) 아주 미리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 깨닫게 될 가능성은 과거 어느 때보다 일천배 이상 커졌는데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의식 지수 540의) <무조건적 사랑>의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고 실용적인 목표라는 것입니다. <무조건적 사랑>에서부터 도정은 점증적으로 환희에 찬 것이 됩니다. 600 수준에서는 무한하고 침묵하는 고요와 평화 상태가 되고 그로부터 <신의 의지>와 카르마를 거쳐 영적 후광 속에서 발생하는 잠재적 <앎>의 수준으로 상승합니다.

---*---

<진리>는 인식됩니다. 그 드러남이 저절로 표현되도록 준비된 의식의 장에 스스로 드러납니다. 진리와 깨달음은 획득하거나 달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조건이 적합하고 장애물이 제거될 때 스스로 드러나는 상태나 조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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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8 16:59 멸정복성

알아차림 자체는 의식마저도 초월해 있습니다. 따라서 <절대>란 앎을 초월하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가 없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즉 그것은 의식 자체가 도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있습니다. 그러한 알아차림의 상태에 도달한 사람들은, 그것에 관하여 묘사할 수도 없고 그 맥락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에게 아무 의미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이 상태가 우주적으로 영원하도록 <실체>의 참된 상태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뿐입니다. 그러한 인식이 깨달음의 요체이자 참나 초월의 지점에 이르는 의식 진화의 최종 답안입니다. 참나가 소아를 대체합니다.

---*---

사회의 목표는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인 반면 깨달음의 목표는 그것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

<진리>나 깨달음은 발견하거나 구하거나 습득하거나 얻어내거나 소유할 무엇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게 좋습니다. <무한한 현존>은 언제나 있는 것이고 그것을 실현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을 치우면 저절로 드러납니다. 따라서 진리를 공부할 필요는 없고 단지 오류인 것을 치워버리는 것만이 필요합니다. 구름을 치웠기 때문에 해가 빛나는 게 아니라 그 동안 숨겨졌던 것이 드러나는 것일 뿐입니다.

 따라서 영적 작업은 주로 안다고 추측하는 것들을 치우고 미지의 것으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이 때 그 <무한한 현존>을 체현한 다른 이들에게서 그 노력에 대한 보상을 뛰어넘는 격려를 받습니다.

---*---

세상에 잘 봉사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환상에 기여하기보다 그것들을 초월하여 깨달음을 구하십시오.

---*---

의식의 본성을 탐구해보면 빛 비추임의 근원으로 바로 도달합니다. 왜냐하면 <의식의 빛>이 깨달음의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이 <빛>에 의해서 아는 자와 알려지는 대상이, <내재하는 신>으로서의 참나가 실현됨으로써 하나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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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8 15:16 멸정복성

에고의 고정관념을 포기하면 그 영향력이 줄어들고 개념이 아닌 것과 비선형적인 것에 대한 이해와 앎이 시작됩니다. 그리하여 참나의 "<앎>"이 드러나고 그 앎에 의해서 갈등은 저절로 사라집니다. 이 내적 변형에는 내적 자유와 안전 및 평화에 대한 더 큰 감각은 물론 고요한 기쁨과 안도가 따라옵니다. 참나의 <사랑>에서 나오는 권능이 점차 지배적이 되고 결국 모든 부정적 느낌, 의심과 장애물을 덮어버립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변형은 소아의 상실로 체험되는 게 아니라 참나의 발생과 전개로 체험되는데 그것은 훨씬 커다란 차원에서 비롯하는 것입니다. 실제 일어나는 일은 낡은 것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식으로 상태나 조건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 결과 작은 것이 큰 것으로 바뀌는데 그로써 영적 진화는 내재하는 신의 현존이란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이러한 전개는 역사적으로 "<깨달음>"이나 "<신-의식>"으로 불린 의식 상태의 변화를 가리킵니다.

---*---

참나는 인식 능력이 솟아나오는 형상 없는 주관적 근원입니다. 그것은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같아서 때묻지 않고, 항구하며, 변하지 않고, 한계가 없으며 시간을 초월합니다. 한편 에고는 형상의 세계에서 모든 자료를 기록하고 처리하는 "소프트웨어"에 해당합니다. 보통 사람은 에고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나"로 동일시합니다. 깨달음의 조건은 소아의 정체성이 의식 자체의 근원인 참나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신은 알려질 수 있으며 (이곳에) 내재하는 존재로 알려집니다. 반면 에고에게 신은 오직 (바깥 세계에) 초월하는 존재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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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5.04.08 13:49 멸정복성

깨달음 상태는 에고의 오감에서 나오는 고정관념이기도 한 환상을 대체하는 잠재적 <실체>입니다. 영적인 의도, 노력, 그리고 결단으로 인하여 한계가 있는 선형 세계에서 <실상의 총체>인 비선형 세계로 의식의 진화가 이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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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내용물과 정체성이 크게 이동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체험자 기능의 초점은 <실상>을 감추는 화면과 같아서 버팀목이 제거되면 조화를 잃고 떨어져 나갑니다. 이것은 의지를 신께 내어맡긴 귀결입니다. 소아의 실체감은 오직 실제 그 바탕을 이루는 참나의 <현존> 덕분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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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게 깨달음을 구한다는 것은 매우 엄격한 수행이어서 실상 본질적으로 정치적이고 계파적인 영적 운동으로 간주되는 움직임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것을 피합니다. (물론 더 나은 것으로 추측되는) "세상의 변화"에 대한 끌림이 내면에 있는 영적 청년의 유아기 이상주의에 호소하지만 그것은 성숙함에 따라 초월됩니다. 인간 삶이 어떠냐 하는 것은 인간 의식 자체의 전반적 수준에 따르는 자동적 귀결입니다. 따라서 세상에 이익을 주려면 세상이 아니라 자신을 바꾸는 게 필요합니다. 우리가 되어 있는 상태는 그 행동(제한적이고 선형적임)이 아니라 그 본질(비선형적임)로 인하여 영향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

길은 곧고 좁습니다. 왜냐하면 내면의 수련이 없으면 영적 에너지는 잡다한 것들에 끌려 흩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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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에너지는 의식의 장에서 솟아나온 것인데, 물질 세계에 <창조>로 드러나는 <신성>의 <현존> 방식이기도 합니다. 깨달음의 능력은 의식이 그 근원으로 돌아간 결과일 뿐인데 그 근원이란 참나이기도 한 <내면의 신성>입니다. 

 에고(소아)는 그 다양한 기능 및 성질과 동일시를 하며 그것들에 "나"라고 꼬리표를 붙여 그것이 "나다"라고 말합니다. 그 결과 주권이란 허영을 취하는데 그것은 진화의 과정에서 감각 체험과 동일시해온 결과 생겨난 과오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몸이" 가렵다고 하는 대신 "내가" 가렵다 하는 식의 결론이 도출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관찰자가 체험자의 주체성 및 내용물과 동일시하니까 느낌과 생각에 대한 저작권(소유권)을 주장하는 과오가 생깁니다.

 체험자 기능은 선형 자료를 모으는 정보 탐사이고 따라서 "나"가 아니라 "그것"입니다. 그것은 후각이나 촉각에 근사한 기능적 처리단위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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