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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불선과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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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에 해당되는 글 17

  1. 2016.04.24 에고와의 싸움
  2. 2016.04.17 4절-3
  3. 2016.02.22 깨달음 상태
  4. 2016.02.06 논설 1과 신비주의의 길
  5. 2016.01.19 복권과 깨달음
  6. 2016.01.14 함허스님의 참나
  7. 2015.12.12 형제애 또는 보시행의 전제
  8. 2015.12.10 지구의 미래와 대책
  9. 2015.11.20 천국 또는 하늘나라
  10. 2015.11.10 영성 수련의 공통점
2016.04.24 11:47 그리스도의 편지
'편지'가 거론하는, 우리가 없애야 하는 15가지 감정 내지 부정적 요인을 알고 계신가요? 이것들은 불교식으로 요약하자면 '탐 진 치' 삼독이 될 것입니다. 유교에서는 '희로애구애오욕(喜怒哀懼爱惡欲)'을 정(情)이라 해서 요즈음 용어로 에고입니다.

예수께서는 에고를 소아(self)라고 하시며 당신을 따르려면 소아를 잊으라(번역은 부인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의 실천은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서 바로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그때 비로소 구원이니 깨달음이니 해서 인간 문제의 궁극적 해결을 성취하는 것이라 봅니다. 그때의 존재 상태를 각 영성에서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군자, 성인, 대인, 진인, 달사, 보살 등이 유불선에서 사용하는 말들입니다. 

그럼 편지의 15가지 에고 특성을 거론하겠습니다. 비판하기(criticism), 비꼬기(sarcasm), 심판하기(judgementalism), 거부하기(rejection), 깎아내리기(denigration), 적대시하기(enmity), 불관용(intolerance), 미워하기(hatred), 시기하기(jealousy),  공격하기(aggression), 폭력 충동(violent impulses), 훔치기(thieving), 거짓말(falsehood), 양다리 걸치기와 의뭉한 거래(double & devious dealing), 모욕하기(slander)입니다.

내게서 이런 것들이 사라지도록 하는 것이 제가 아는 영성의 초기 단계로서 모두 공통됩니다. 다만 에고의 힘으로 이것들과 싸우는 것은 에고의 힘만 강하게 하므로 반드시 참나의 힘 또는 스승의 '오라'로부터 도움을 받아서 해야 한다는 것도 공통된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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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6.04.17 05:47 복성서

“사람의 참나가 모두 선한데 에고의 어긋남으로 어두워지는 것이라니 감히 묻습니다. 성인의 참나는 더 이상 에고의 욕심으로 흐려지지 않습니까?” “다시 흐려지지 않습니다. 에고는 본래 어긋나 있고 허망합니다. 어긋나고 허망한 것에 원래 근원이 있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보통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도리가 없으나 성인은 이미 참나를 찾았습니다. 에고의 행태가 어긋난 것임을 알고 그 어긋남을 깨달은 바가 뚜렷합니다. 깨달아 어긋남이 없으니 어디서 어긋남이 나오겠습니까? (問曰 人之性本皆善, 而邪情昏焉. 敢問. 聖人之性, 將復爲嗜欲所渾乎. 曰. 不復渾矣. 情本邪也, 妄也. 邪妄無因, 人不能復, 聖人旣復其性矣, 知情之爲邪, 邪旣爲明所覺矣. 覺則無邪, 邪何由生也.)


이윤이 말했습니다. ‘하늘의 진리란 먼저 깨달은 사람이 그 앎으로써 자신이 깨달은 후에 사람들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사람들 가운데 조금 먼저 깨달았으니 이 진리로써 사람들을 깨닫게 할 것입니다. 나 말고 누가 이 일을 하겠습니까?’ 만약 다시 에고의 어리석은 욕심에 빠진다면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니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깨닫게 하겠습니까?” (伊尹曰. 天之道, 以先知覺後知, 先覺覺後覺者也. 予天民之先覺者 予將以此道, 覺此民也, 非予覺之而誰也. 如將復爲嗜欲所渾, 是尙不自覺者也, 而況能覺後人乎.)


자습노트)

이윤(李尹)은 은거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탕왕이 삼고초려하여 등용한 후 걸왕을 토벌시켰다고 합니다. 요순과 더불어 할 수 있다고 하여 성인의 경지에 이른 것으로 보기 때문에 그의 말을 인용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전체적으로 깨달음이란 선각자이자 성인인 사람들을 통하여 전해지며 한번 깨달은 사람은 다시 후퇴하여 에고 상태로 살지 않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구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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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6.02.22 06:37 그리스도의 편지

신 의식이 가볍게 주입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 진화된 영혼은 그 체험이 너무나 아름답고 영광스러워 결코 잊을 수가 없지만 그것을 말로 온전히 형언할 수 없다고 보고한다. 그 체험은 마음의 진동주파수가 이미 높아져 있어서 의식 전체가 신 의식의 빛으로 채워질 때 가능해진다. 그것은 지능이나 뇌세포보다 '느낌'과 관계된 어떤 상태다. (300쪽)

= 신비가들의 체험에 대한 진술이죠. 호킨스 님도 증언하듯이 수행은 선택에 있어서는 양이지만 진행에 있어서는 수동적이란 의미에서 음입니다. 지속적인 선택과 결단으로 내어맡기며 깨어 기다리는, 어쩌면 길고 지루한 과정입니다. 

그것은 바이블에서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내면의 기쁨이 샘솟듯하기 때문에 끝까지 가게 되는 것이고 모든 스승들이 얘기하듯이 이번 생에 쌓은 만큼 다음 생에 높은 근기를 가지고 지속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페이스북 '그리스도의 편지 읽기' 그룹에서 매일 한 구절씩 묵상하고 있습니다. 함께하실 분은 페이스북 해당 그룹에 가입신청을 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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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6.02.06 15:11 그리스도의 편지

'편지'의 메시지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반복하여 학습하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 실제 편지에서도 같은 주제를 여러번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도 핵심 메시지를 요약 정리하는 방식으로 되풀이해 보겠습니다. 논설 1에서 제시되는 내용은 나머지 논설은 물론 책 전체를 통해 반복되면서 강조되는 사항입니다.


첫째는 편지가 기존의 신 개념, 특히 하늘 권좌 같은 곳에 앉아서 심판하고 벌주는 유아적 신 개념(역사적으로는 부족신 내지 통치 이데올로기로 작용한 신 개념이 모두 이와 같습니다.)에서 조속히 벗어나  모든 사람이 존재에 관한 초월적 지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가 사막에서 체험한 것이 바로 창조에 관한 비밀과 존재에 관한 심오한 진실이며 바로 그것에 기반한 길만이 앞으로 인류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동안 세계적인 상식이 된 양자물리학을 포함한 첨단 물리학의 성과 및 끌어당김의 법칙, 신념의 법칙 등의 내용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논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게 인상깊었던 것은 기존의 교회에 출석하는 것,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저도 수십년 경험했지만 기존 교회를 감싸는 원리 내지 분위기가 주로 에고 의식 또는 세속의 인간 의식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더 이상 초월적 인식의 실천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둘째는 편지가 제시하는 길은 그리스도의 길이라 부르고 그 길은 동시에 깨달음의 길이라고 합니다. 깨달음의 어원상 성서에 번개(lightning)처럼 이뤄지는 재림이 바로 세계적으로 인간 의식이 깨어나는 것(enlightening)과 비슷하여 책에서도 재림의 회화적 표현이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논설 1은 깨달음에 갑작스런 깨달음과 점진적인 깨달음이 있다고 하는데 마치 불가의 돈오와 점오를 설명하는 듯합니다. 즉 존재의 근원에 대한 갑작스런 체험으로 정신이 근본적으로 바뀔(mind-blowing) 수 있다고 하는 게 전자이고 보통의 참된 깨달음이란 신 의식이 인간 의식을 대체하는 과정으로서 후자의 경우입니다.

후자의 길은 바로 편지를 탐구하고 그리스도의 길을 감으로써 가능하다고 합니다. 꾸준히 명상하고 에고를 정화해 나갈 때 점진적으로 통찰력이 생기고 빛의 조명을 받아 세상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볼 뿐만 아니라 창조주와 삶에 대한 태도가 항구적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솔직히 거의 40년에 가까운 천주교회 출석을 통해서 느낀 것은 구원의 확신을 교회에 의존하게 하는 시스템이어서 오류라고 보았는데 편지는 결국 깨달음과 구원은 개인이 직접 신 체험을 하여 확신을 얻는 것이며 나중에는 그리스도에게도 의존하지 말라고 하여 제가 최근에 공부한 불교 선사(禪師)들의 가르침과 일치합니다. 모쪼록 편지를 접하게 되신 분들의 꾸준한 정진과 궁극의 깨달음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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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9 06:31 단상

아침 명상 때 엊그제부터 강한 인상을 받은 복권이 주제로 떠올랐습니다. 수조원대 복권 맞은 부부의 얼굴을 온라인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관련해서 내게 100억이 있다면 무슨 일을 할까 하고 적어보기까지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복권은 누구에게나 가능하지도 않고 확률이 지극히 낮지만 깨달음을 성취하면 복권보다 더 큰, 즉 무한한 가치가 있을 뿐 아니라 이것은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 있습니다. 게다가 복권에 맞지 않으면 투자한 돈을 날리지만 영성 공부는 한 만큼 쌓이면서 그 과정마다 커다란 보상이 있습니다.


실상 소화 데레사 같은 분은 평생 좁은 수도원을 벗어나지 않고 사소한 일상생활을 하며 자기 수양과 기도밖에 한 게 없지만 그쪽 종교에서는 전교의 성인으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호킨스 박사도 나 하나 영성이 향상하는 것이 바로 세상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유물적 사고를 하면 이해 못할 일이지만 우리를 포함한 우주는 홀로그램으로 되어 있고 우리가 오감으로 인식하는 세상은 보이지 않는 의식의 소산일 뿐 아니라 파동으로 된 오리지날 필름의 100억분의 1밖에 안 된다는 것 아닙니까? 모쪼록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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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4 07:15 단상
여말 선초를 사신 함허스님은 유불선이 하나임을 주장한 '현정론'을 지으셨습니다. 위키백과가 인용한 다음 말이 바로 제가 천착하는 복성서 및 호킨스 박사의 핵심 메시지와 같습니다. 제가 하던 대로 성을 참나로, 정을 에고로 바꿨습니다.

"불교인의 목표는 사람으로 하여금 에고를 버리고 참나를 빛나게 할 뿐이니 에고가 참나에서 나온 것은 마치 구름이 하늘(長空)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고 에고를 버리고 참나를 빛냄은 마치 구름이 걷혀 청명한 하늘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참나의 빛남은 다른 말로 깨달음이고 '그리스도의 편지'는 이 깨달음을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보고 있어서 재미있습니다. 참고로 함허스님은 성균관 출신으로 시대를 거슬러 불교로 입문하셨고 '금강경오가해'를 지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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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2 04:47 단상
그리스도가 사막에서 40일 동안 무엇을 깨치고 어떤 변모를 했는지 궁구하지 않고 추구하는 신앙의 최고치는 형제애의 실천입니다. 그나마 배타와 보복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면 다시 지구적 기득권 세력인 수구 유태인 수준이 될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붓다가 어떤 상태에 도달했기에 그런 행에 이르렀는지 모르는 보시행은 극락을 위한 포인트 쌓기 내지 왕즉불 이데올로기가 되어 거대 불상 짓기에 그칠 뿐입니다.

우주의 근원이 신 의식 또는 무극인데 그 본성은 전지전능, 무소부재이며 사(私) 없음이고 무조건적 사랑임을 뼈저리게 체험할 때 보살행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극렬한 저항으로 목숨을 잃을 줄 알면서 법보시를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형제애 실천이나 보시행을 하더라도 (혹여 명분을 그렇게 내세우더라도) 반드시 그리스도와 붓다께서 도달하신 영성 지능을 성취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할 것입니다.

우주의 근원(선가귀감이 말하는 한 물건<一物>)을 직접 알지 못하면 겨우 이성 내지 지성의 수준에 머물게 됩니다. 이것이 붓다와 예수께서 '나 한테도 의지하지 말고' 직접 깨닫기를 권하는 바입니다. 물론 최종 단계 전까지는 그분들 도움이 필요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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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0 23:51 그리스도의 편지

SF 영화 가운데 무엇을 보셨나요? 저는 아들 덕분에 인터스텔라를 보았고 집에서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오블리비언이라는 걸 보았습니다. 왜 이 얘기를 꺼내냐 하면 첨단과학과 (영화 만들 정도의) 대자본들이 지구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게 패배주의적이며 비관적인 데다 오감에 아첨하는 좁은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럴수밖에 없는 게 저들은 지구 전체의 공동선보다 몇몇 기득권 위주의 사고를 하기 때문입니다. '편지'의 처방을 옮겨옵니다.


"세계의식이 아버지 창조의식에 온전히 동조되면 인간의 완벽한 행복을 저해하는 모든 것이 사라져버릴 것임을 또한 깨달으라. 말라리아균을 지닌 모기도, 너희의 곡식을 쓸어가는 메뚜기도, 혹독한 기후도, 전염병과 바이러스와 생명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그밖의 모든 것들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너희는 우주적 보호막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83쪽)"


여기에 기여하기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로 같은 쪽에 책 전체의 답이나 다름없는 처방이 나오길래 옮깁니다.


"광야에서 겪은 깨달음 체험 덕분에 나는 지상에 있는 동안 <그리스도 의식>을 널리 실현할 수 있었다. 너희도 그렇게 하려는 뜻이 있어야만 나를 따라올 수 있다. 그러면 나는 반드시 너희 곁에서 너희를 도울 것이다. 예민한 감수성만 있으면 너희는 나의 임재를 느낄 것이다. 당분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도 실망하지 말라. 왜냐하면 너희가 자신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는 한 <그리스도 의식>에 동조되고 있음을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고 나는 너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아차릴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지상에 온 목적은 영적 의식 속으로 상승하여 지금 너희를 뒤에서 붙들고 있는 모든 인간성을 초월하여 마침내 너희도 나처럼 물질의 원소를 통제할 수 있는 달인이 되는 것임을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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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0 18:23 그리스도의 편지

제 소견으로는 '그리스도의 편지' 171쪽에 나오는 하느님 나라, 소위 천국이라는 것에 대한 설명이 이 책의 핵심 중의 핵심인데 그 가르침이 호킨스 체제나 여타 신비주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기에 제가 책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즉 "천국이란 우리 영혼을 낳은 '아버지'의 것이 된 마음의 상태로서 이 상태에서는 '아버지'가 우리의 머리가 된다"고 합니다. 사실상 신이 우리 개체만을 빌려 자신의 뜻을 펴는 상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조 (또는 개체화) 과정에서 작동했던 소아(self, 에고)를 완전히 비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마태오복음 16:24에 도식화되어 있습니다. 즉 "나와 같이 갈 사람은 자기를 잊고...나를 따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도 그렇고 교회에는 어떻게 자기를 잊는가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고 제대로 가르치는 사람도 없습니다. 물론 이해해주자면 모든 사람이 일상과 직업에 매여서 예수처럼 사막에서 40일을 보낼 수 없다는 한계가 있지요. 편지는 여기에 대해 단호합니다. 소아에 대해 죽어야(dying to ego) 한다(510쪽)고 합니다.


하지만 최소한 '홍익학당'처럼 매 순간 신 의식(또는 불성)에 깨어서 6바라밀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는 매뉴얼 같은 게 있었어야 했습니다. 천주교에 비슷한 게 있지만 고백제도를 위시해서 끝없이 죄책을 불러일으키는 데 그치고 있으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릅니다. '편지'에 있는 대로 그게 (모르고 하는지 몰라도) 신도들을 붙잡아두고 다스리기 좋기 때문일 듯합니다.


어쨌든 천국의 '의식 상태'에 이르면 어떻게 되는지 기술한 171쪽을 더 정리해봅니다. "그것은 너무나 아름답고 거룩하지요. 그것은 사랑이고 자비로움이며 자신을 아끼는 것과 같이 다른 이들을 아끼는 것이며 다른 이들을 정확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심판하지 않는 것이며 그들 또한 '아버지'의 보살핌 속에서 동등한 '하느님'의 자녀임을 아는 것입니다."


이 상태는 '무조건적 사랑'의 상태이며 호킨스 체제에서 깨달음의 시작이기도 한데 에고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며 반드시 신의 인도와 도움으로 가능합니다. 제 소견으로는 그것은 목표삼을 무엇이라기보다 의식 상승(깨달음)의 결과 따라오는 효과처럼 생각됩니다. 그래서 스승이 필요한 것이고 '편지'와 같은 책이 필요한 것입니다.


실상 나와 남의 구분이 없이 황금률을 실천하는 것,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과 심판하지 않는 것 -- 이것을 이루는 게 천국에 드는 것입니다. 참으로 단순한데 제 60년 삶을 볼 때 내 힘만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체득했기에 오직 기도와 명상으로 매어달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핵심에 멸정복성(또는 去非淨化, dissolving the ego)과 방하착(letting go)이 있습니다. 우리는 진기한 무엇을 찾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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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0 18:18 그리스도의 편지

거의 모든 수행 관련 가르침이 먼저 멸정(dissolving the ego) 후에 견성(enlightenment)이 가능하고 견성후 계속 보살도를 닦는 게 보시바라밀(무조건적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어휘와 세부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동서 영성이 공통으로 추구하는 게 같은 이유는 인간이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본성이 같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제가 사숙하는 호킨스 텍스트와 그리스도의 편지, 홍익학당이 모두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고 보는데 아닌 것을 발견하시면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아래는 최근 읽는 그리스도의 편지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에고는 초월 의식을 막는 장애물입니다. 에고의 생각과 행위를 의식에서 정화하고자 매일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열심히 노력할 때만이 신 의식이 당신의 인간 의식에 스며들어 새로운 통찰력과 인식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통찰과 인식의 조명을 받아 당신의 사언행위가 바뀌기 시작할 것입니다. 사물을 달리 보게 됨으로써 비로소 달리 행동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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