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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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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요령과 요점'에 해당되는 글 48

  1. 2018.10.02 명상은 음적인 동시에 양적임
  2. 2018.09.28 왜 보살이 되어야 하는지
  3. 2018.09.27 복을 구하는 공부
  4. 2018.09.15 명상, 침묵
  5. 2018.08.22 어떻게 살 것인가?
  6. 2018.08.21 중(中)과 화(和)의 실천
  7. 2018.08.14 부정적 감정 다루기
  8. 2018.08.13 에고 벗어나기
  9. 2018.08.13 에고 소멸
  10. 2018.08.12 우리의 정체성
2018.10.02 07:41 공부의 요령과 요점

'신기독 수기중'은 홀로 고요히 있는다는 점에서는 음(陰)적이지만 오직 궁극의 실재를 지향하기 위해 전심전력한다는 점에서는 양(陽)적입니다. 다음에 인용하는 마이스터 에카르트를 보면 그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인용처는 바오로딸에서 나온 '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2002)'입니다.

"우리는 집착 없이 행하기를 배워야 한다. 그러나 훈련되지 않은 사람이 어떤 행위나 육신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상태에 이르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것은 엄청난 노력이 요구된다. 신은 훈련된 사람에게 언제나 현존하며 명백히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데 이를 위해서 특히 두 가지가 요구된다.

첫째, 자신 안에 집중하여 마음이 외부 사물의 표상에서 벗어나 있고 외부 사물은 그에게 외계의 것으로 여겨져서 그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관련맺거나 그 안에 들어가는 일이 전혀 없어야 한다. 둘째, 정신 자체가 만들어내는 것과 관념, 그리고 외부 사물에 대하여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개념이나 표상 또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것에 마음을 내어줌으로써 다수성으로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모든 능력이 내면을 향하여 자신의 내적 자아를 마주하도록 훈련해야 한다."

"유일하고 무한한 불멸의 진리를 깨닫고 아는 데 능력을 집중하기 위하여 우리는 사물을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하여 우리 온 정신과 기억을 집중해야 한다. 보물이 감추어져 있는 근저로 정신을 기울여라.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우리 모든 활동을 그만두어야 한다. 진리를 발견하기 위하여 무지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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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8.09.28 05:45 공부의 요령과 요점

복을 구한다고 했더니 구할 게 없는데 무엇을 구하냐고 할 수 있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가르침에 의하면 중(中)이나 공(空), 또는 성(性)의 자리는 원만구족하여 이미 모든 것이 있는 것으로 믿어집니다. 기독교나 힌두교 영성에서 말하는 신의 자리로 봐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선불교에서도 말이 끊어진 그 자리를 찾으면 더 이상 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일체를 부정했고 신 의식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에서 더 이상 찾을 게 없습니다. 바로 지복 상태임을 알게 됩니다. 호킨스 박사가 얘기하는 의식지수 600 이상의 상태인데 그때 깨달은 자는 이승과 저승에 대한 차별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이승에 있는 이유는 주변에서 도움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애덕의 요구에 따라 세상이 요청하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론상으로 그렇지 실제로는 그 과정까지 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개별 영혼에게 유익한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세상에도 유익을 주는 것 - 이것을 대승에서는 자리이타(自利利他)라 보는 것입니다. 한편으론 깨달았지만 세상 일에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입전수수(入廛垂手)라고 합니다.

제 생각엔 이때 세상에 도움을 주는 것은 신의 뜻에 일치하며 신의 일을 하기 때문에 여타 필요는 저절로 구족되며 '신에게 녹봉을 받는' 셈입니다. 그 녹봉은 의식주는 당연히 충족되지만 무엇보다 세상의 물질적 만족을 모두 합친 것을 초월한 만족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런 과정을 가장 잘 설명한 것이 '향상일로' 로 요약되는 대승 보살 사상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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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7 10:30 공부의 요령과 요점
결국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모두가 복을 구하는데 왜 잘 안되는 것이며 명료하고 간단한 길은 무엇인가 하는 겁니다. 모든 철학과 종교가 나름대로 답을 제시하지만 왜 잘 안될까요? 저 자신도 많이 엇나가고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는 것을 환갑이 될 무렵 크게 넘어지고 깨달았습니다.

그 답은 홀로 있을 때 근신하고 진실하지 못했고 참마음(中)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참마음을 지켜 거기서 지시하는 대로만 살면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공부하고 그것을 몸에 익혀야 합니다. 그 가운데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생각을 끊고 침묵 속에 머무는 시간을 내는 것입니다.

이 일이 몸에 밸 때 신 의식(또는 존재의 근원 또는 부동의 동자)에 일치하게 되며 빈 상태에서 무엇이든 복된 것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즉 아라비아 우화 속의 '지니'를 얻어 만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신적 지혜와 사랑만으로 살게 되어 그르침 없이, 고통 없이 '바라는 대로 해도 걸림이 없는(從心所欲不踰矩)' 삶을 살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모든 문제의 치유와 해결을 성취하며 모든 필요가 충족됩니다. 공부를 이것 하나로 꿴다면(一以貫之) 길을 제대로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일은 운동선수나 악기연주가가 언제나 꾸준히 한 가지를 연습하듯 평생 몸에 붙일 일이라고 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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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5 17:53 공부의 요령과 요점

지관문(또는 명상)을 통해 신인합일로 가는 길은 험난한 길입니다. 지루하고 답은 없이 사막을 가는 심정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바이블은 그 길이 '곧고 좁은'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스승들 말씀을 읽고 그냥 홀로 있는 시간을 자주 내면서 보시-지계-인욕 등 오행에 몰입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더 보탠다면 쉬지 않고 자신만이 부를 수 있는 이름(예, 미륵존여래불, 아미타불, 그리스도 예수 등)을 계속 부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당신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아지경과 같은 것을 바랍니다. 무아지경은 필연적으로 오고 갑니다. 인간 뇌가 그런 압력을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지극히 순수하고 가벼운 것이 아니고 길게 늘인 무아지경이라면 우리 뇌는 타버릴 것입니다. 자연에서 정지해 있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깜빡거리고 나타났다 사라집니다. 맥박, 호흡, 소화, 잠과 깸, 탄생과 죽음 등 모든 것이 파도처럼 왔다가 갑니다. 리듬, 주기, 양극의 조화로운 교대가 법칙입니다. 생명의 이러한 패턴에 저항하는 것은 소용없는 짓입니다.

불변하는 것을 찾는다면 체험을 넘어 가십시오. 내가 '나다(I AM)!' 하는 것을 언제나 상기하라고 할 때는 그 상태로 되풀이해서 돌아가라는 것을 뜻합니다. 어떤 특정한 생각을 하는 것은 마음의 자연스런 상태가 아닙니다. 오직 침묵만이 자연스런 상태입니다. 침묵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침묵 자체 말입니다. 마음이 자연스런 상태에 있을 때 마음은 모든 체험이 지나간 후 고요한 상태로 되돌아 갑니다. 아니 그보다는 침묵을 배경으로 해서 모든 체험이 생겨난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스리 니사르가닷타 마하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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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2 07:14 공부의 요령과 요점
동아시아의 사상 또는 학문이란 결국 이곳에 살던 이들이 이승의 고통을 벗어나면서도 세상의 경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해법을 추구한 과정이라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이곳에서 발흥한 것으로 추정되는 도교와 유교에 불교가 더해지면서 통합적인 답을 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 답을 쉽게 풀면 '규칙적으로 정좌하여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지고 거기서 자명하게 얻어지는 매 순간의 실천방안을 세상에 펼치자'쯤 되는데 이렇게 말하면 다 안다고 생각하는 반면 어제 쓴 것처럼 쓰면 어려워서 모르겠다고 하는 분이 계십니다.

제가 짧은 공부지만 나름대로 근거를 밝혀가며 쓰는 이유는 동아시아 지성인이 수천년간 실천한 것이 같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그 과정에서 단 한 분이라도 학우를 얻으면 그것이 우리 사회에 큰 기여가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오늘도 비슷한 결론을 조금 바꾸어 써보겠습니다.

우리 삶에서 성공의 토대는 신인합일을 이루는 데 있으며 그러기 위해 실천적으로는 모든 일에서 최우선적으로 존재의 근원(또는 제1원인, 신 의식, 불성)을 만나야 합니다. 이 경지는 반드시 규칙적인 명상과 자명한 선택을 꾸준히 함(대승의 지관문)으로써 실천되고 성취될 수 있습니다.

한편 지관문을 포함한 오행(6바라밀)의 실천 동력 내지 인센티브는 외력이나 에고의 분발 기타 세상의 인센티브가 아니라 신 의식 쪽에서 오는 기쁨과 평화입니다. 어떤 얼벗이 이것을 무한 반복하냐고 묻는데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내면에 있는 천국을 이곳에서부터 누리면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비결이라고 봅니다.

저는 유불선뿐 아니라 기독교 텍스트가 이 점에서 일치하는 것으로 읽었습니다. 물론 세부 사항과 표현방법은 무수히 다양하다고 봅니다. 특히 역경(주역)의 실천은 매 순간 변화하는 사물을 만날 때마다 신 의식께 묻고 청하며 자명한 선택을 하기 위한 노력에 다름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의식을 변화시키고 내 의식에서부터 새로운 창조를 꾀하는 노력이 바깥 현상을 바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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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1 07:25 공부의 요령과 요점

아시는 분도 계시지만 엊그제 거론한 서경 16자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죠! 저는 한 됫박 구슬밖에 모으지 못했지만 무엇으로 어떻게 꿰어야 하는지(一以貫之) 감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은 순전히 탄허스님을 비롯한 여러 스승을 사숙한 덕입니다.

서경 16자구란 '사람 마음은 위태하고 참마음은 미력하다. 갈고 닦으면 하나일 뿐이니 집중하여 그 속을 꽉 잡아야 한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또 실천력이 약해집니다. 우리말에서도 심중, 궁중 할 때 중은 깊은 속을 말합니다.

사람 마음에서 깊은 속이란, 평소 잘 드러나지 않는 도심(참마음으로 해도 좋을 것입니다)으로 보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중용은 희로애락이 나오기 전의 상태를 중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또 중용이 중을 천하의 근본이라고 보는 것은 여기에 삶의 성패가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깊은 속에 있는 참마음은 반드시 홀로 고요히 있을 때만 겨우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기독은 이 중을 지키는 데 있으며 우리 깊은 속에 자리하는 도심(참마음)을 꽉 잡고 있을 때 모든 행운과 불운에서 초탈하여 고통을 면할 수 있다는 교훈이 바로 새옹지마 이야기입니다. 새옹지마는 순전히 세속적으로 해석해도 잘 통하지만 중을 잡은 자는 세상사를 그저 몽환포영으로 보기 때문에 세상사에 결코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보면 더 좋습니다.

중을 꽉 잡았으면 언제나 그 상태에서 세상사를 처리하는 것이 화(和)입니다. 이러한 정신은 동아시아 최고의 처세서인 채근담을 꿰고 있으며 동학에서도 그렇게 가르친다는 것을 어제 박길수 님 담벼락에서 알았습니다. 인용하자면 '일이 있으면 이치로써 처리하고 일이 없으면 고요히 앉아 참마음을 지킨다(有事則以理應事 無事則靜坐存心, 해월 최시형)'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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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4 03:43 공부의 요령과 요점

부정적인 감정이 떠오르면 위험 신호임을 깨닫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하려고 하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에고로부터의 자유, 40쪽)

-- 부정적 감정은 낮은 의식의 징표입니다. 의기소침, 슬픔, 공포, 욕망, 분노, 교만 등은 특별히 신속히 확인하고 내버려야 할 감정들입니다. 이 감정들은 순전히 진화과정에서 생존을 위해 작동하는 것들입니다.

부정적 감정을 내버림으로써 의식을 상승시키는 방법으로는 로버트 프로세스 또는 호킨스 레팅고가 있습니다. 요컨대 해당 감정을 최고조로 느껴본 다음 의도적으로 결별하는 것입니다. 이런 수준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벗어나는 데 시간도 걸리고 잘 안 된다는 느낌이 있지만 노트를 마련해서 기록해가며 꾸준히 시도하면 결국 벗어날 수 있습니다.

과거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선택밖에 없습니다. 빨리 감정적으로 결별하고 지금 이 순간부터 긍정적 선택, 즉 빛과 사랑, 기쁨 쪽의 의식을 작동하면 이 순간 이후 거둘 현실을 위한 씨앗을 심는 셈입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완전히 받아들이고 산 위로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듯 힘겹게 올라가면 과거라는 풍경은 서서히 멀어지면서 달리 보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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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3 05:31 공부의 요령과 요점

다른 이에게서 찾아내는 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을 우리 안에서 더욱 고집한다. 그래서 지혜에 따르면, 에고가 숨기는 것을 깨닫고 싶다면 내게는 없고 남에게 있다고 뚜렷이 확신하는 것을 더 잘 살펴보라고 합니다. (에고로부터의 자유, 35쪽)

-- 이 말씀은 칼 융의 처방에 맞닿아 있습니다. 융은 '남에게 무언가 내 화를 돋구는 게 있다면 그 점에 있어서 내게 문제가 있다는 표시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내게 절대로 문제가 없다고 믿지만 그것을 밖으로 투사한 때문에 나는 자신있게 화를 내는 것입니다.

에고를 다루고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일은 지난한 일입니다. 제 경험에 따르면 에고에서 벗어나는 만큼 우리 의식이 향상하는데 전심전력을 기울이더라도 그 속도는 아주 느립니다. 어려운 시험에 붙고 직장에서 승진하는 일에는 전심전력을 기울이지만 내 존재상태를 개선하는 일은, '내 삶이 세상에 통하는데 무슨 문제야!' 하는 생각으로 별로 신경쓰지 않았지요!

결국 노숙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에서 힘겹게 한 계단 한 계단 기어올라가는 기분으로 매일 노트를 적고 치유를 줄만한 책을 읽으면서 노력했더니 지금은 산 중턱의 시원한 공기와 먼 경치를 즐기면서 정상을 바라볼 만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몸을 버린 후의 의식까지 돌보지 않으면 안심하기는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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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3 05:30 공부의 요령과 요점

"에고가 소멸되고, 분리와 고통을 초래하던 환상이 '애초 그것이 나온 무(無)' 속으로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에고 소멸(undoing)은 거룩한 기억의 과정이다. 이 과정을 이끄는 것은 참나(Universal Inspiration or Holy Spirit)이며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당신의 정직성과 용기, 의지와 자발성, 그리고 헌신에 달려 있다. (에고로부터의 자유, 28쪽)"

-- 우리가 체험하는 고통의 원인은 우리 존재가 분리되어 있다는 환상에 있다는 점과 이 환상이 터하고 있는 '나'라는 생각이 사라지면 우리 존재의 근원을 알게 되는데 이것이 깨달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지와 결단, 그리고 참나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일입니다. 그 과정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철저히 진실에만 복무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은 참나이며 그 자리를 언제나 의식하며 에고(小我)를 잊어버리는 일은 마태복음 16장 24절에서 '자신을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으로, 장자에서는 좌망(坐忘)으로 정식화되어 있습니다. 위 인용문에서 강조되는 바 정직성이 바로 유교의 성(誠)이며 이 성이란 우주가 통으로 하나여서 그 안에 한번 새겨진 것으로서 영원히 숨겨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인식에 기반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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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2 06:41 공부의 요령과 요점

"그리스도 의식이라는 더 높은 단계로의 복귀를 많은 이들은 '재림(second coming)'으로 여기고 있다... 우리 모두는 영겁 전에 폭발한 우주 거울의 무한한 조각들이다. 우리는 우리가 진정 누구이며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를 잊어버렸다. 이제 우리 임무는 우리 본래 모습을 기억해내는 것이다(샨티출판사, 에고로부터의 자유, 21쪽)"

-- 만일 그리스도의 물리적 재림을 기다린다면 우리는 교회에 속았거나 유치한 의식에 머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많은 서구인들은 재림이란 우리의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아주 많은 이들이 진리를 제대로 깨달아 의식이 확연히 상승한다면 지구 표면은 바뀔 것입니다.

이 깨달음의 시작은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이 무엇인지 아는 데 있다고 봅니다. 제가 읽은 한도에서 답하자면 신 의식이 자신을 쪼개어 이 몸을 만들고 이 몸을 통해 자신의 장엄함을 기억해내고 체험하는 존재가 바로 우리입니다. 신학적으로는 만유가 신이고 우리는 신의 분유(分有), 혹은 분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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