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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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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요령과 요점'에 해당되는 글 25

  1. 2018.05.20 의식 진화의 길
  2. 2018.05.15 참된 해방과 지상천국
  3. 2018.05.14 자아초월과 극기복례
  4. 2018.05.12 명상의 필요성
  5. 2018.05.04 내려놓기와 명상
  6. 2018.05.03 마음을 침묵시키기
  7. 2018.05.02 극기복례와 명상
  8. 2018.04.29 평생 실천할 일
  9. 2018.04.28 천국에 이르는 길
  10. 2018.04.26 공부의 요체
2018.05.20 09:40 공부의 요령과 요점

'내가 교회를 등질 마음이 없는데 왜 이단이냐?'라고 항변했던 마이스터 에카르트는 오늘날까지 로마 교회로부터 완전히 복권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제대로 된 기독교도와 비기독교도에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신학자이자 영성가입니다. 그의 말 하나 인용합니다. "누구든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마태 16:24) 모든 것은 여기에 달려 있다.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돌려라. 그리고 그것을 발견한 그곳에서 자기 자신을 너로부터 놓아보내라. 이것이 가장 올바른 것이다. (영성지도 10쪽)"


여기서 '부인'은 원문에는 잊음(forget)으로 되어 있고 1968년 최익철 님 번역판엔 ‘자기를 끊고’로 되어 있어서 요즈음 서양 영성의 자아 소멸에, 동양 영성의 무아와 극기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또한 그 다음에 나오는 '놓아보냄'에 조응합니다. 결국 철학 내지 영성의 공통 요소는 내면의 탐구인데 '천국이 내면에 있다'고 하는 속뜻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자신을 너로부터 놓아보내라’고 했는데 이것은 에고와 참나 또는 복성서 노선에 따른 정(情)과 성(性), 대승기신론 노선에 따른 심생멸문과 심진여문이라는 자아의 두 측면을 전제하는 표현입니다. 즉 ‘자신’이 바로 에고이고 ‘너’가 참나에 해당합니다. 자아에 대한 이러한 대전제를 가르치지지 못하는 심리학은 실천적으로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게 제 체험입니다.


이러한 인식 위에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돌려라’고 하는 부분은 명상과 같은 성찰 방법을 취하여 참나의 자리에서 에고를 살펴보라는 말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에고는 부인하고 끊어버려서 궁극에는 잊어버리게 되는 경지까지 이어지는 의식 진화의 길을 평생 가는 것이 누구나 취할 노선입니다. 거기에 충분한 보상이 있을 뿐 아니라 몸을 버린 후의 안심입명까지 가능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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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8.05.15 05:58 공부의 요령과 요점

돌아보면 내심 깊은 곳에 있는 열망은 참된 해방과 지상천국을 누리고자 하는 데 있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제 경우 이를 위한 독서의 종착역이라 할 수 있는 책이 '그리스도의 편지'이고 그 앞 역이라 할 수 있는 책들이 '에고로부터의 자유'와 '내려놓기'입니다.


세권의 핵심은 극기복례이고 극기복례의 요체는 서양식으로는 거비정화(purification), 진덕명화(illumination), 신인합일(deification)이고 우리 식으로는 거경(居敬), 궁리(窮理), 역행(力行)인데 '종심소욕불유구'에 도달하여 '평천하'에 기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대학의 요체는 수신제가로 평천하하자는 것인데 평천하를 기독교식으로 해석해서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다시 말하면 수행을 해서 해탈을 추구하되 보살이 되어 세상을 구한다는 대승에 부합하는 것이 바로 유교입니다. 이 점은 기독교의 이상과 다름이 없습니다.


혹여 참고가 될까 해서 덧붙이면 '에고로부터의 자유'는 요즈음 서양인들이 몰두하는 기적수업 교사들이 그 요체만 잘 정리한 책인데 마음이 심히 혼란하고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 자주 불면증에 빠지는 분들이 읽으시면 사이다 같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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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8.05.14 06:10 공부의 요령과 요점
하버드에서 75년에 걸쳐 행복의 핵심 요소가 무엇인지 연구했다는 동영상을 우연히 봤습니다. 답은 '좋은 관계'라고 하는데 어떻게 좋은 관계를 유지할지에 대한 답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동서양이 공통으로 말하는 '내가 바라지 않는 일을 남에게 하지 말고'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는' 황금률이 답이겠지요!

그런데 살면서 가장 실천하기 힘든 일 가운데 하나가 황금률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실천하려면 역지사지가 돼야 하고 그럴려면 자신을 완전히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개의 교육과정은 진짜 어려운 일은 그냥 괄호 안에 두고 넘어가는 게 일상이죠.

자신을 객관화하기 위한 실천이 바로 극기복례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반드시 심성론을 가르쳐야 하는데 심성론의 핵심으로서 마음이란 에고(情)과 참나(性)로 되어 있다고 가르치는 게 바로 유교이고 불교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자기를 부인하라(forget self)는 가르침이 바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자아실현이라 할 때의 자아란 바로 참나를 말하고 심진여문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성의 도움과 치열한 성찰을 통해 소아를 잊고 참나로 살 때 비로소 황금률의 실천과 이웃사랑은 물론 원수 사랑까지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 이전의 좋은 관계란 부족 내지 씨족 내의 집단 이기주의 아니면 주고 받는(give and take) 상업적인 수준입니다.

물론 그것마저도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하지만 좀더 높은 이상을 실천하는 이들이 적어도 종교 지도자 가운데는 다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높은 이상을 함께 실천하고자 애쓰는 고교 동문 예닐곱과 수십명의 온라인 친구들이 있어서 기쁨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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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2 06:06 공부의 요령과 요점
진화의 필요상 우리 생각과 감정은 외부로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깥에 있는 위협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의식을 안으로 돌려 생각이 없는 경지에 도달하는 일은 익숙치 않아 습관들이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신약성서는 그리스도가 조용한 곳에 가서 홀로 기도하셨다는 기록을 여럿 남기고 있듯이 성현들은 회광반조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지 않고 내버려두면 우리 생각과 감정이란 놀이공원의 거울집 아니면 다람쥐 쳇바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끊어 '텅비고 고요하며 신령한 의식(또는 앎)'의 상태에 안착할 때 비로소 시스템 내 사고를 벗어나 초월적(out-of-the-box) 지혜 내지 직관과 접할 수 있다는 게 과학과 영성의 공통된 결론입니다. 이것이 습관화되어 영감이 의식을 완전히 지배하게 되면 소크라테스처럼 다이몬(신성)에게 인도를 받는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제가 우울과 권태를 완전히 극복하고 감정의 기복이 거의 없으며 중점적으로  버려야 할 심사가 하나둘 과제로 떠오르는 것은 명상에 습관을 들인 덕인 것 같습니다. 제 글을 접하시는 모든 분이 습관적으로 명상을 하셨으면 하고 희망합니다. 무조건 10분을 내서 생각을 끊는 노력을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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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4 05:28 공부의 요령과 요점

실상 저도 고교 졸업을 기준으로 해서 40년 이상 지났어도 좌고우면, 왔다갔다, 한 길로 가지 못했기에 의식이 분열되어 바닥의 경지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여기서 벗어나야 하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단단히 한 길로 기어 올라가는 중입니다.


2014~15년간은 주로 내려놓기 방편을 실천했습니다. 요약하면 (1) 부정적 감정 또는 불편한 사안에 대해 철저히 느껴보며 집중할 것, (2) 가장 극심한 파도에 몸을 맡길 것, 예를 들어 슬픔의 감정이라면 간장이 끊어질 정도로 슬퍼해보는 것입니다. (3) 하늘의 도움을 구하고 인도를 구할 것, (4) 고통의 과정을 참고 끝까지 견뎌낼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2016~17년간 좋은 안내서를 만나서 읽다보니 드디어 명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10분이 매우 어려웠지만 지금은 간단히 1시간을 합니다. 쏜 살 같이 지나갑니다. 요령은 (1) 가장 편한 곳에서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합니다. (2) 명상의 목적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내 의식이 나온 곳, 가장 고요한 곳으로 내 의식을 돌려 거기에 집중하는 게 목적입니다. (3) 거기에서만 궁극의 실체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실체는 무조건적 사랑이니 그것을 인식하고 무소부재한 의식에게 내가 완전히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의식합니다. (4) 그 신 의식을 받아들여 표현하는 것이 사명임을 인식합니다. 내 존재와 삶을 거기에 바치고자 결심합니다.


무엇보다 단단한 결심과 꾸준한 영적 독서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도 진보는 지극히 더딥니다. 그저 운명이려니 하면서 꾸준히 가면 아주 조금씩 나아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매일 마음의 움직임을 기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책자 안내와 기도문 등은 제 블로그에 있으니 참고하시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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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3 04:47 공부의 요령과 요점

명상의 보조 수단으로서 내려놓기(letting go)에 관한 호킨스 선생의 책은 평생의 반려로 삼아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해서 자주 소개하고 있습니다. '내려놓기'는 불가에서도 핵심 수행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방하착으로 번역해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6바라밀 가운데는 인욕바라밀에 가장 가깝습니다. 다만 현대 정신분석 및 치료에 세계적 권위가 있는 저자의 안내라서 더욱 유익합니다. 다음 구절이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거의 모든 명상법은 마음을 침묵시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것은 시편의 '침묵하고 내가 신임을 알라'는 말씀의 기반입니다. 대부분의 명상가들이 발견한 대로 마음의 침묵을 달성하는 것이 명상의 주된 과제입니다. 억압된 감정이 계속해서 생각을 만들어내고 생각은 명상의 주된 장애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억눌린 감정의 배후에 놓인 에너지를 인정하고 내려놓으면 명상의 목표를 달성하기 쉬워집니다. 꼬리를 무는 생각의 배후에 있는 감정을 찾아내어 놓아버리면 꼬리를 무는 생각은 바로 그쳐버립니다. 지속적으로 내려놓음으로써 마음이 지극히 고요해진 상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 수행은 매일의 과업을 하면서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면 명상할 수 있는 능력이 크게 확대됩니다. 대개의 명상법은 하루 중 몇 분이나 몇 시간씩 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지속적으로 내려놓기를 하면 높은 의식 상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내려놓기에 익숙해짐에 따라 부정적 감정이란 생존과 관련하여 바닥에 깔린 두려움에 연결된 감정이며 모든 감정은 마음에서 꼭 필요하다고 믿는 생존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려놓기 기법은 이 프로그램을 해체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감정의 배후에 놓인 동력이 점점 더 모습을 드러냅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어떤 사물에 대하여 강한 감정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그 일이 일어나도 좋고 일어나지 않아도 좋다.’는 마음상태입니다. 우리가 자유로울 때 거기에는 집착의 포기가 있습니다. 한 가지 사물을 즐길 수 있지만 행복해지는 데 그것을 꼭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외부에서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의존성이 점차 줄어드는 것입니다. 이 원칙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상에 속하지 말고 세상에 거하라’고 한 기초적인 가르침에는 물론 붓다의, 세상 현상에 집착하지 말라는 초보적 가르침에 따른 것입니다. 때때로 한 가지 감정을 내려놓았는데 그것이 되돌아오거나 지속되고 있는 것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것은 거기에 아직 덜 내려놓은 게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런 감정을 일생동안 쌓아 왔기에 그것을 모두 드러내 파악하는 데 엄청난 에너지를 끌어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내려놓기를 하면 즉각 가볍고 행복한 느낌이 들어서 거의 ‘절정’과 같은 것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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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2 07:49 공부의 요령과 요점

불교와 기독교도 그렇지만 높은 정신에서 나온 가르침이 세속권력의 존립 근거로 쓰이는 순간 그 깊은 맛을 잃어버리고 속물적인 것이 됩니다. 극기복례란 말도 저속화하고 상투적인 게 되어서 몸을 괴롭히는 일에까지 쓰이지만 그 본 뜻을 제대로 일러 주는 이가 드뭅니다.


제가 파악하는 한 극기복례는 성리학의 비조라 할 수 있는 이고 선생의 복성서가 압축 요약한 바 멸정복성과 대동소이한 말입니다. 즉 에고(情)를 소멸하여 참나(性)로 돌아갈 때 비로소 인간은 우리 존재의 근원을 올바로 공경하게 되고 당연히 고통이 그치고 참된 복락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가르침이 들어 있습니다.


예란 천리이고(탄허록 133쪽) 천리라 함은 바로 하늘의 명이 들어 있는 성(性)과 다르지 않습니다. 칠정 가운데도 부정적인 것들은 시기심, 앙심, 험담 등인데 이것을 더 압축해 놓은 말이 불교의 삼독입니다. 즉 성내는 마음과 탐내고 애갈하는 마음, 그리고 진리에 무지한 것, 다른 말로 탐진치입니다.


그런데 삼독을 멸하는 일은 소아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설이므로 신성의 도움을 얻으려는 방편이 명상과 기도입니다. 깊은 침묵과 고요 속에서 에고가 내는 생각을 끊어버릴 때 비로소 하늘의 도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침묵 속에서 신령한 직감의 안내를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산 위에서 답을 얻은 것도 바로 이 방편이고 그리스도 역시 수시로 산에서 홀로 명상하셨습니다.


현대 과학에서도 생각에 에너지가 있으며 억누르거나 숨긴 감정 속에 수많은 부정적 생각이 녹아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찾아서 내려놓지 않으면 병이나 갈등, 불화 등으로 언젠가는 반드시 밖으로 튀어나온다고 봅니다. 그러니 명상은 스트레스와 질병의 치유와 예방, 인간관계의 개선, 나아가 임종시 최적의 상태에서 확신을 가지고 죽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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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9 08:27 공부의 요령과 요점

이제 겨우 초심자로서 깨달음 또는 마음에 관한 학습내용을 되풀이하는 이유는 첫째는 인문적 유희가 제 유일한 취미이고 둘째는 그간 세상에서 통하는 삶이 결코 참된 행복에 이르게 하지 못한다는 자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통하는 삶이란 착한 사람이 되고 성공한 사람이 되고 한 가지 더 보탠다면 독실한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흔히 성공한 사람들이 인정받고 있는 지점이 이것일 겁니다.


하지만 오늘날 고위 공직을 거치고 유명한 종교단체에 등록된 자들로서 부패인사로 심판받고 감옥에 가는 이들이 여러 두름이 되고 남습니다. 진정한 행복의 길은 깨달은 사람이 되는 것, 보살이 되는 것 또는 지상천국에 들어가는 것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저는 뒤늦게 깨닫습니다. 그런데 실상 이 세 가지는 모두 한 가지입니다. 세상의 도덕은 언제나 피상적입니다. 말로는 공자의 수제자인 안회의 안빈낙도를 높이 찬양하지만 왜 그가 성인의 반열에 오르는지 알아보고 깊이 실천할 의사가 없습니다.


안회의 실천은 장자에 쓰여 있는바 심재와 좌망입니다. 그 요점은 에고를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 점은 바로 중용에서 중(中)이 천하지대본이라고 함으로써 다시 강조되고 있습니다. 중이란 시간과 공간이 끊어진 자리며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을 말합니다(탄허록, 187쪽). 하지만 세상 사람은 중이란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중간을 취하는 것이라고 대충 이해해버리고 맙니다. 중을 체득한 자는 높은 의식의 장에 올라타 있기 때문에 언제나 환희에 넘치고 먼저 주며, 용서하고 말고 할 일이 없으니 누구에게나 똑같이 자비롭습니다. 이 길이야말로 평생 가야 하고 간 만큼 이익이니 손을 놓을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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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8 06:11 공부의 요령과 요점

앞서 정리한 제 공부의 요점은 평생 배우고 읽은 것의 결론이라고 해도 됩니다. 결국 고금동서에 걸쳐 인간 마음이 똑같이 생겼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그 모든 가르침의 요체는 같다고 보는 게 맞을 것입니다. 다만 정상에 오르신 분들이 문화와 언어에 따라 표현을 달리 했기에 많은 길이 있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오늘날 이 길에 들어서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은, 무언가 쟁취하고 성공하여 이러저러한 요건이 성취되어야 행복할 것이라고 세뇌하는 온갖 프로그램과 깨달음처럼 어려운 일이 내게 가능하겠는가 하는 의심입니다. 그래서 마하리쉬 님은 '깨달음이란 내게는 먼 얘기다.', '쉬운 일이 아니다.', '참나를 알기 위해 극복할 게 너무 많다'와 같은 생각을 모두 버려야 한다고 합니다.


7세기에 이 길을 안내한 승찬스님도 '진리에 이르는 길은 어렵지 않다. 분별하는 마음을 없애면 된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신화는 이원적 세계로 들어서기 이전의 상태가 바로 천국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이르는 길은 바로 내면에 있으며 소아를 잊는 데 있다고 말씀하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고 소아를 잊는 방법은 명상을 통해서 생각과 감정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 내면에 존재하는 신성의 인도대로만 사는 것입니다.


갓난 아이에게서 볼 수 있는 '신적 환희의 표현'인 우리 존재가 지금 여기에서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것만이 우리가 사는 이유입니다. 진화와 몸의 생존을 위해 장착된 에고를 완전히 이해하고 그것을 다스리는 데 통달함으로써 언제 어디서 어떤 조건에서나 행복을 누리는 일은 '천국이 너희 안에 있다.'는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고 실천해내는 데 있습니다. 그것을 체험하기 시작하면 어제 죽은 것보다 오늘 죽는 것이 다행이고 언제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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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6 07:18 공부의 요령과 요점

제가 파악한 공부 목표로서의 깨달음이란 에고가 사라짐으로써 드러나는 비이원성의 상태를 말합니다. 공부의 방향과 지도를 가지고 있어서 평생 이 단순한 과정을 실천하기만 하면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마하리쉬 용어로 하면 바사나(習)를 다 버리면 마치 두레박 끈이 끊어져 물 속으로 들어가버린 상태인 '본연적 무상 삼매'의 삶을 살게 됩니다.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은 침묵과 고요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잊을 때 느껴지는 존재감 또는 의식(지눌스님이 말씀하신 공적영지와 같습니다)이 참나, 즉 우주의 유일한 실체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마하리쉬는 젖을 빠는 아기의 상태로 묘사합니다. 이 상태는 깨어 있는 상태, 잠든 상태, 꿈꾸는 상태의 바탕에서 이들이 서로 다른 상태임을 분간하게 해주는 스크린이기도 합니다. 이 상태에 이르면 나와 남의 구분도, 나와 사물의 구분도 없어지기 때문에 비이원성의 상태(non-duality)라고도 합니다.


명상에서 육체에 대한 의식이 없어진 느낌을 체험하는 것이 여기에 유사한 상태이어서 이 때를 '일시적 무상 삼매'라고 합니다. 마하리쉬 님은 이 상태를 끈이 안 끊어진 두레박에 비유합니다. 입문자로서 공부 요점을 반복하면 명상으로 삼매에 대한 체험을 늘리고 호킨스 레팅고 또는 불가의 6바라밀 실천으로 에고를 완전히 지워나가는 것이 핵심입니다.


모든 성취가 그렇듯이 단순한 일을 끝까지 반복하는 것이 비결이며 주의할 점은 공부과정에서 '싯디'라고 해서 온갖 신통력을 체험할 수 있지만 그것은 바라지도 말고 거기에 빠지지도 말고 굳세게 앞으로만 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프로그램이자 온갖 고정관념, 자기만의 관점(positionality) 등을 모두 버리기 위한 독서를 계속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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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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