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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불선과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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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에 해당되는 글 18

  1. 2016.05.31 그리스도의 편지가 주는 약속
  2. 2016.05.21 공부의 핵심과 방향
  3. 2016.04.24 에고와의 싸움
  4. 2016.04.14 4절-2
  5. 2016.03.02 에고에서 벗어난 경지
  6. 2016.02.29 창조 원리 이해하기
  7. 2016.02.26 복성서와 탄허록
  8. 2016.01.27 너희가 믿으면...
  9. 2016.01.19 사랑 안에서 걷기
  10. 2016.01.14 함허스님의 참나
2016.05.31 19:37 그리스도의 편지
에고에 대해 죽기(dying to self)는 성서에는 소아를 잊기(forget self)로 되어 있죠. 524쪽에는 '에고로부터의 해방'이란 말을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은 제가 열심히 소개하는 기적수업 번역본 제목과도 일치합니다. 동시에 유교의 극기복례의 극기, 수기치인의 수기와도 맥이 같다고 봅니다.

기독교 신비주의 삼단계에서 신인합일로 가는 첫걸음이 거비정화인데 '아닌 것을 떠나서 깨끗이 한다'는 뜻으로 결국 에고를 죽음에 이르도록 닦아낸다는 속뜻을 가집니다. 각설하고 어제에 이어 공부의 마무리에 관한 말씀을 인용해 봅니다.

"에고로부터 해방을 성취한 사람은 어떻게 행동할까? 결국 그런 사람은 두려움이 완전히 없어진다. 어디를 가든지 보호받으리라는 절대적인 확신이 있다. 위험 가능성 있는 일을 겪게 되더라도 아무 탈 없이 빠져나올 것이다... 그는 어디에 있든지 모든 부정적 결과로부터 보호받는다. (524~525쪽)"

호킨스 박사는 본인의 체험에서 이 상태를 '무한한 보호, 무한한 안전(안심)'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쪼록 저는 죽는 날까지 이 공부를 놓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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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1 19:58 그리스도의 편지
여덟 번째 아홉 번째 편지에는 일상생활에서 공부가 나아지는지, 즉 의식이 향상하고 있는지를 점검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 공부는 끊임없이 의식을 성찰하고 인간관계에서 그 메아리가 어떻게 울려 나오는지 점검하는 게 핵심입니다.

공부의 요체는 수없이 반복되지만 470~417쪽에 의하면 (1) 에고 욕구 제거, 인간적 신념(호킨스 교재에서는 positionality) 해체 (2) 신적 실재(궁극의 실체)와의 접속 유지 또는 참나 정체성의 확연한 인식, 두 가지인데 이 둘은 동전 앞뒤와 같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반복컨대 '편지'는 이승과 다음 생 이후 일관해서 추구할 목표에 대하여 지도와 나침반, 에너지가 곳곳에 적절히 준비돼 있는 완벽한 안내자(가이드)입니다. 골인점이 가까와졌는지는 자꾸 웃음이 나오는지로 점검하라고 아홉 번째 편지에 적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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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4 11:47 그리스도의 편지
'편지'가 거론하는, 우리가 없애야 하는 15가지 감정 내지 부정적 요인을 알고 계신가요? 이것들은 불교식으로 요약하자면 '탐 진 치' 삼독이 될 것입니다. 유교에서는 '희로애구애오욕(喜怒哀懼爱惡欲)'을 정(情)이라 해서 요즈음 용어로 에고입니다.

예수께서는 에고를 소아(self)라고 하시며 당신을 따르려면 소아를 잊으라(번역은 부인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의 실천은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서 바로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그때 비로소 구원이니 깨달음이니 해서 인간 문제의 궁극적 해결을 성취하는 것이라 봅니다. 그때의 존재 상태를 각 영성에서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군자, 성인, 대인, 진인, 달사, 보살 등이 유불선에서 사용하는 말들입니다. 

그럼 편지의 15가지 에고 특성을 거론하겠습니다. 비판하기(criticism), 비꼬기(sarcasm), 심판하기(judgementalism), 거부하기(rejection), 깎아내리기(denigration), 적대시하기(enmity), 불관용(intolerance), 미워하기(hatred), 시기하기(jealousy),  공격하기(aggression), 폭력 충동(violent impulses), 훔치기(thieving), 거짓말(falsehood), 양다리 걸치기와 의뭉한 거래(double & devious dealing), 모욕하기(slander)입니다.

내게서 이런 것들이 사라지도록 하는 것이 제가 아는 영성의 초기 단계로서 모두 공통됩니다. 다만 에고의 힘으로 이것들과 싸우는 것은 에고의 힘만 강하게 하므로 반드시 참나의 힘 또는 스승의 '오라'로부터 도움을 받아서 해야 한다는 것도 공통된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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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4 10:41 복성서

“사람의 참나가 성인의 참나와 같다면 보통 사람의 애욕과 분노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에고는 허망하고 빗나간 것입니다. 허망하고 빗나간 것은 원래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허망한 에고가 없어지면 참나가 회복되어 밝아집니다. 그것이 온통 꽉 차게 되면 참나가 회복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問曰. 人之性, 猶聖人之性, 嗜欲愛憎之心, 何因而生也. 曰. 情者, 妄也, 邪也, 邪與妄則無所因矣. 妄情滅息, 本性淸明, 周流六虛, 所以謂之能復其性也.) 


주역[乾卦 彖辭]에 이르기를 ‘도가 굳세게 운행되면 만물의 본성과 생명이 가장 바람직하게 됩니다.’ 논어에 가라사대 ‘아침에 궁극의 진리에 통하면 저녁에 죽어도 안심이다’ 하였으니 만물의 본성과 생명이 바람직하게 된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易曰. 乾道變化, 各正性命. 論語曰. 朝聞道, 夕死可矣. 能正性命故也.)


“에고가 어두우면 참나는 이미 없어진 터인데 어째서 성인의 참나와 같다고 합니까?” “물의 성질은 맑은 것이데 그 흐린 것은 모래와 진흙 탓입니다. 물이 흐려졌다고 물의 성질이 없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까? 흐려진지 오래면 움직이지 않아야 모래와 진흙이 절로 가라앉아 맑은 본성이 드러나 천지를 채울 것이니 그 맑음이 밖에서 더해진 것이 아닙니다. (問曰. 情之所昏, 性卽滅矣, 何以謂之, 猶聖人之性也. 曰. 水之性淸澈, 其渾之者, 沙泥也. 方其渾也, 性豈遂無有. 邪久而不動, 沙泥自沈, 淸明之性, 鑒於天地, 非自外來也.) 


그러니 물이 잠시 흐려졌다고 해서 그 본성이 없어진 것은 아니고 잠시 모습을 감춘 것입니다. 참나를 회복했다는 것은 참나가 없어졌다가 다시 나오는 게 아니니 사람의 참나도 물처럼 근본적으로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故其渾也. 性本不失, 及其復也, 性亦不生, 人之性亦猶水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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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에고, 참나
2016.03.02 09:05 그리스도의 편지

'편지'는 기존 기독교 신자로서 계속 침울하고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원인을 잘 분석하고, 기독교가 처음에는 좋은 의도로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무지한 지도자와 교리, 전통 등등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본 뜻을 가리고 왜곡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를 비롯해서 편지에 공감하시는 분들에게 시원한 답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심사관 같은 신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애쓰고 교회가 얘기하는 죄를 지었을 때 죄책감에 빠지는 대신, 죄란 에고의 성향임을 이해하고 에고의 성향에서 완전히 벗어남으로써 신과 하나가 될 수 있으며 신과 하나가 되었을 때 교회가 약속하는 세속적인 복락 이상의 굉장한 체험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고에서 해방되었을 때 어떤 경지가 되는지를 '논설 12'와 여덟 번째 편지를 참고해서 요약해 보았습니다.


먼저 신의 완전한 보호를 확신하게 됩니다. 당연히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며 환난과 질병을 당해도 앞날의 운명이 확실히 보장될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게 됩니다. 다음에 더 이상 사사롭게 바라는 게 없어지고 이미 받은 모든 것과 장차 받을 모든 것에 대해 찬미와 감사의 정이 가득하게 됩니다. 영적 깨달음에서 그때그때 필요한 모든 게 완벽히 충족될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에고에서 벗어나 아무런 사사로운 욕망이 없으면 무력하고 침체하게 되는 게 아닌가 우려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고 삶에 새로운 목적과 활기가 들어찬다고 합니다. 진리의 세계란 무한하고 탐사할 것도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일거리와 일에 대한 의욕, 에너지가 생긴다고 합니다.

세상에 아무런 애착 없이 초연한 관찰자로서 신의식을 구현하는 사도 내지 종복이 됩니다. 이때 우리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균형이 갖춰져 사랑과 지성의 화현이 되며 올바른 때에 올바른 행동만 하게 됩니다. 아울러 항상 기쁜 삶을 살며 과거의 험난한 순간과 시간을 제대로 평가하게 됩니다. 일마다 행동마다 사람들에게 무조건적 사랑을 베풀며 세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됩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미추에 대한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친절함으로써 일상생활에서 풍성한 열매가 저절로 열리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의식이 천국의 상태이며 그때 비로소 크건 작건 모든 일에 대해 웃으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로 이 모든 것은 이미 우리 안에 갖춰져 있으나 세상에서 습득한 것들이 그 발현을 막고 있는데, 기독교가 큰 역할을 하고 있으니 그 모두에서 벗어나자는 게 편지의 의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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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9 18:33 그리스도의 편지

반복되지만 중요하기 때문에 또 올립니다. 논설 8에서뿐 아니라 편지 전체를 통해 계속 반복해서 강조되는 바는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우리 존재의 질료는 바로 신 의식과 같은 의식이며 창조 에너지이며 사랑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주를 꽉 채우고 있는 신이면서 우리 존재의 질료(재료)입니다. 다만 그 창조 과정은 신 의식이 진화와 개체화를 통해서 표현되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개체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전자기 작용을 수반하는데 그것이 부정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두려움과 분노, 증오 등으로 표현되는 감정입니다. 그 총체를 에고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우리 존재의 질료이자 근본이 신의식이고 창조 에너지이며 사랑임을 인식하고 에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한 다음에 에고의 영향력을 지워내면 우리는 바로 신과 같은 존재로서 신 의식을 표현하고 살게 된다는 게 책의 요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에고를 이해하고 그 영향력을 지워내는 과정이 서양 신비주의에서는 거비정화(purification)로 정식화되었고 동양에서는 극기복례(克己復禮)로 정식화된 바 있어서 어쩌면 새로운 것도 아닙니다. 

신약에서도 마태복음에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forget self)..'라고 되어 있는데 기존 기독교에서 이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가르치기보다 세속 권력과 함께 지배력을 유지 확대하는 데만 힘을 기울인 결과 오늘날 껍데기만 남은 것입니다. 어쨌든 편지에 따르면 에고를 지워내면 바로 우리는 천국에 든다고 하며 이때 천국이란 의식의 상태이지 어떤 장소나 사후에 도달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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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6 14:54 단상

제가 복성서와 탄허록에 집중하는 이유는 복성서를 지은 이고는 불교로 깨달음을 얻고 유교를 재해석하여 유교와 불교가 다름이 없음을 말하였고 탄허스님은 유학에 먼저 입문하셨다가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어 유교와 불교가 같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탄허스님은 여말선초를 사신 함허스님과 같은 행로를 가셨는데 어쨌든 사실상 복성서와 탄허록은 똑같은 수행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일단 탄허스님을 인용하면 '성(性)이란 칠정이 일어나기 전의 면목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리로서 불교의 4덕, 즉 상락아정(常樂我淨)을 갖추고 있는데 이것은 유교의 인의예지와 같다(탄허록 181쪽)'고 하십니다. 또 그 자리는 선악이나 시비분별이 없어서 대학의 지선(至善)과 같다고 하십니다. 또 덧붙이시기를 불교에서는 허령불매한 자리라고 하시는데 지눌스님의 공적영지와 같다고 봅니다.

성의 자리를 유교에서는 중이라고도 하며 시간과 공간이 끊어진 자리이고 따라서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을 말하며 천하의 근본 또는 우주의 핵심체입니다(탄허록 187쪽). '서경'은 도심(道心, 人心에 대비하는 마음으로 참나에 해당)이 미약하므로 오직 도심에 집중(惟精惟一 允執厥中)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불교에서 언제나 참나를 의식하며 에고를 부려야 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보면 요컨대 두 종교에 공통하는 바는 명상을 통하여 생각이 끊어진 참나 자리에서 세상 일을 경영하고 향유하자는 것입니다. 즉 안회는 심재(心齋)를 통해 무아를 깨치고 좌망(坐忘)을 통해 이원성을 초극하여 무한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대목은 '장자'에 기록되어 있으니 결국 유교가 불교는 물론 도교와도 상통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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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가 말한다:


나는 너희 모든 골칫거리, 좌절, 한계가 이미 네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우치도록 하기 위해 정해진 시간마다 내 기록자를 통해서 너희들 식으로 말해주기 위해 내려온다.

 

그 원인은 너희에게 고착된 성격에서 너희 생각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희 삶에서 너희가 체험하는 모든 것은 너희의 습관적인 생각과 말이 드러난 것이다.

 

많은 이들이 권능에 대해 말하지만 너희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진리를 말해주려고 나는 노력하고 있다.

 

그것은 말 그대로 너희 삶, 건강, 소유, 인간관계와 행복을 조성하거나 망친다.

 

인간관계에서 더욱 건설적이고 행복하게 살도록 사람들이 그들의 인식, 태도, 생각, 언행을 바꾸는 일을 도와주려는 아주 인기 있는 토크 쇼가 있다. 사람들은 잘못된 사고 습관과 말을 없앨 만큼 충분한 에너지와 의지력을 끄집어내도록 요구받는다.

 

모든 생각이 선천적이고 태어날 때 환경에 수반하는 진동에서 생기기 때문에 그것은 매우 어렵고 그래서 그대로 해내는 사람이 거의 없다.

 

만일 지속적으로 충실히 따르기만 하면 생활과 정서적 상태를 성공과 기쁨에 찬 것으로 바꾸는 노력을 성공하도록 보장하는 다른 방법이 있다.

 

그것은 내가 내 기록자의 특별히 준비된 마음을 통하여 기술한 편지에서 설명한 그리스도의 길이다.

 

이 웹사이트는 생긴지 거의 4년이 되었으며 그 동안에 편지에 담겨 있는 진리에 따라 살고자 노력하여 그 결과 그들 자신과 삶과 환경에서 커다란 변화를 보고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면 단순히 다른 사람과 잘 지낼 수 있는 것보다 더욱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즉 비밀스럽고 긍정적이지만 계속되는 변화가 사람의 의식에 생겨나 얼마후에는 자기도 모르게 외부 자극에 대해 더욱 건설적인 방향으로 쉽고도 복스럽게 반응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들이 열심히 간구하던 것들을 드디어 체험하곤 한다. 그들은 더 쉽게 짐을 질 수 있게 되고 드디어는 성공적 결과가 있을 것임을 더욱 믿게 된다. 그들은 과거의 비판적인 생각 습관을 불쾌하게 밀어내는 자신의 모습을 저절로 발견한다. 그들은 전에 어떻게 타인에 대해 그런 파괴적인 생각을 했었는지 의아해 한다.

 

인간적 변화가 일상의 투쟁이 되는 대신 초능력, 생명력, 신 의식이 조용히 그리고 고요히 그들의 마음을 다루어 새로운 행복을 찾게 해준다는 것을 발견한다.

 

세상에 내놓는 내 편지는 굉장히 중요하며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에게 시급히 필요하다. 그것은 과학자들이 이미 아는 과학적 사실을 상세히 논하고 있으나 그것들을 넘어서 과학적 사실의 참된 인과관계를 다루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영적인 진리를 찾아가는 것을 저해하는 과거의 신화를 해체하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것은 소위 창조와 생명의 신비 자체를 탐구하고 있다.

 

매우 중요한 것은 그것이 에고의 기원과 참된 본성을 분명히 기술하며 그것이 소아의 가장 큰 이익을 해칠 때 올바르게 다루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편지는 또 창조의 기원과 모든 피조물이 형체와 존재를 취하는 바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내가 팔레스타인에서 예수로 존재했음을 믿는다면 바라건대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할 때 내 기록자의 준비된 마음을 통하여 너희에게 직접 말하기 위하여 참으로 다시 왔다는 것을 충분히 마음을 열어 받아줄 것이다.

 

불행하게도 너희가 전혀 믿지 않는다면 너희 뇌 세포에 내 영적 의식 진동을 보내 너희 생각을 바꾸거나 너희 지각을 열 수가 없다. 너희 의지에 반하거나 초대 없이 그렇게 하면 너희 뇌는 영원히 훼손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의 체험으로 너희 심적 장애가 잘라져 나갈 때까지 내 편지에 제시된 위대한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로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말을 기쁘게 경청하고 들어서 따르는 모든 다른 이들만큼 너희도 내 영적 사고의 비추임 안에 있다.

 

나는 언제나 여기에 너희를 위해 있지만 너희가 믿지 않으면 내가 방사하는 모든 영적 통찰에서 막혀 있을 것이다.

 

믿는 사람은 내가 기록자를 통해 너희에게 가급적 뚜렷하게 개진하는 진리가 바로 팔레스타인 사막에서 받은 진리이기 때문에 내 진리가 참되고 유효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사막에서 나와 설교하고 치유할 수 있게 한 것은 이 진리에서 나온 것이다.

 

간청하건대, 깨어나라! 평안과 영적 통찰과 정서적 강건함을 위해 나에게로 오라. 나는 천상 왕국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다.

 

너희는 명상하고 신 의식 앞에 가슴을 열어 그의 치유와 안내 그리고 영적 통찰을 받아라.

 

그러나 너희가 나와 그리고 무한자와 참으로 만날 수 있다고 참으로 믿는 만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너희가 믿으면 청하지 않을 수 없고 (결코 의심하지 말라)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 말에 너희가 귀 기울이는 게 내 간절한 열망이니 편지를 다운받아 진실하게 연구하고 가르치는 대로 실천하라.

 

나는 너희가 참된 행복, 참된 영적 안전과 너희 모든 필요의 참된 충족을 하자 없는 방법으로 체험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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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안에서 걷기> – <사랑이 되기>

 

지난번 논설에서 말한 대로 너희에게 이렇게 연달아 보내는 편지는 보다 이해하기 쉽도록 구어체를 사용하고 있어서 아주 실용적이고 현실적이다.

 

사랑에 대한 전갈을 듣자마자 어깨를 으쓱거리며 다음과 같이 반응할지 모른다는 것도 나는 안다:

 

맞아요다들 얘기하는 것이죠그리스도가 사랑에 관해 전갈을 보냈다고 말하기는 아주 쉽죠하지만 뭔가 새롭고 생생한 것을 말해보시죠!”

 

내가 말하려는 바로 첫 번째 것은 다음과 같다 :

 

두 종류의 사랑이 있다둘은 완전히 다르다둘은 서로 다른 존재의 차원에서 나온다.


하나는 영적이며 에고-정화라는 특정 단계를 먼저 거치지 않으면 인간 의식으로는 성취할 수 없다.

 

두 번째 사랑은 인간적인 것이며 영적 사랑과 관계가 없다한 사람의 영혼이 에고에서 벗어나기 시작할 때그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서 차단하는 벽을 없애고 다른 사람들과 영적으로 평화를 느껴야 하겠다는 긴박한 필요성을 자기 의식 속에 새겨 넣기 시작한다이 단계는 영혼이 이제 여러 단계의 에고 죽음을 거쳐 그를 인도해줄 개인적인 스승을 만나게 해주는 고차원의 단계이다.


인간적 사랑을 조사해보면 그것은 (새 옷이든색다른 음식이든새 집이든호화로운 차든새 짝꿍이든전적으로 쾌락을 주는 무언가에 대한 욕망에 기반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인간적 사랑이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이유다너희가 아주 아주 여러 해를 함께한 후 배우자의 행복에 관해 지속적으로 깊은 관심을 가지는 누군가를 우연히 만난다면 그 사람의 어떤 면이 영적 차원으로 올라가서 더 높은 세계에 기인한 무조건적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체득한 것이 분명하다.

 

너희가 나는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 다른 누군가를 원해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면그것은 소위 인간 에고가 지배하는 인간적 사랑이며 그 사람의 의식은 너희 세상에 속하는 사람들의 개인적 영적 인식 수준의 것과 다른 무엇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그러니 그들을 결코 심판해서는 안된다.

 

이제 네 의식의 한 측면이 이미 영적 차원에 있다면 짝꿍에게 알겠다당신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지금 환경에서 당신이 해야 한다고 느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평화롭게 가라짐 싸는 것을 도와주고 택시를 불러드릴까?”라고 조용히 그리고 참을성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만일 에고의 지배를 받는 <인간> 의식에게 그런 말을 했을 때 그쪽에서 다음과 같이 외칠 것이다:

 

나는 항상 당신이 개...이라고 알고 있었다...네 추한 모습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아..”라거나 그와 비슷한 분노한 거절의 메시지가 담긴 말을.

 

<아니면>

 

내가 그랬다고 당신이 나에게 보복하는 것인가?”라고 소리치거나 <아니면>

 

울면서 말할 것이다. ‘(상대가 더 이상 의심할 여지없이 분명히 말했건만그게 진심은 아니지요그리고 당신을 문 밖으로 끌어내는 동안 다리를 붙잡고 매달릴 것이다.

 

(나는 너희가 이해하기 좋도록 생활 용어로 말했다내 기록자는 놀랬고 내가 이 논설을 시작하기 전에는 내가 참으로 뜻하는 게 무엇인지 몰랐다.)

 

이제 너희가 에고의 언어를 이해하기 시작하리라 생각한다왜냐하면 ‘<나는 원해>’ 또는 ‘<나는 원하지 않아 – 그래서 거부해>라는 것을 너희는 알기 때문이다.

 

(우주의 법칙에 따르면너희가 누군가에게서 훔치거나 도망침으로써 다른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게 아니면 <두가지 감정은 모두 완벽히 합법적이며 정당하다>.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 편지를 읽으면 내가 에고의 사랑과 <영적 사랑>으로써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할 것이다너희는 에고 장벽을 거쳐 너희로 하여금 진실하고 영적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무조건적 사랑>이라는 영적 진동과 만나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이것은 핵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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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6.01.14 07:15 단상
여말 선초를 사신 함허스님은 유불선이 하나임을 주장한 '현정론'을 지으셨습니다. 위키백과가 인용한 다음 말이 바로 제가 천착하는 복성서 및 호킨스 박사의 핵심 메시지와 같습니다. 제가 하던 대로 성을 참나로, 정을 에고로 바꿨습니다.

"불교인의 목표는 사람으로 하여금 에고를 버리고 참나를 빛나게 할 뿐이니 에고가 참나에서 나온 것은 마치 구름이 하늘(長空)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고 에고를 버리고 참나를 빛냄은 마치 구름이 걷혀 청명한 하늘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참나의 빛남은 다른 말로 깨달음이고 '그리스도의 편지'는 이 깨달음을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보고 있어서 재미있습니다. 참고로 함허스님은 성균관 출신으로 시대를 거슬러 불교로 입문하셨고 '금강경오가해'를 지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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