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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불선과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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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3 06:13 단상
어제는 친구들 만날 시간이 멀어 서점에서 책을 보다가 이종톈(易中天)이란 사람이 공자님에 대해 쓴 걸 읽었습니다. 제자들은 물론 한참 후 맹자에 의해 성인으로 간주되셨는데 당신께선 '난 특별한 인간이 아니다. 범인과 같다'고 하셨답니다. 직전에 소개한 체르노빌의 영웅들도 자신들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고 거론했습니다.

주희 이전에 이미 대학과 중용에 집중하고 주역으로 보충해가며 유교의 핵심진리를 상술한 복성서를 보면 성(性)과 정(情)을 대승기신론의 진여문과 생멸문으로 보고 결국 진여문 또는 참나에 해당하는 성(性)을 최대한 발현한 사람이 성인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유교 텍스트의 성(誠)을 완벽히 구현함에 길이 있고 이 성의 요체는 신기독(慎其獨)인데 신기독이란 수기중(守其中)에 있다고 보는 겁니다.

수기중에서 중이란 탄허스님에 따르면 생각이 끊어진 자리입니다. 생각이 끊어진 자리란 공적영지 또는 상락아정을 말하며 성리학에서는 경(敬) 또는 주일무적(主一無適)의 몰입상태를 말합니다. 그 상태에서 얻어진 지혜와 실천방안을 강구하고 부단히 실천합니다. 9세기에 복성서를 지은 이고나 12세기에 성리학의 체계화와 종합을 이룬 주희나 모두 불교에서 개종한 사람임을 감안하면 이해가 빠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유교에서 불교로 개종하신, 멀리는 함허스님과 가까이는 탄허스님이 유명하지만 동아시아 지성인이라면 한문 텍스트에 심취할 수밖에 없고 결국 선불교와 도교, 유교의 통섭을 구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주마간산으로 읽은 이종톈은 최근 중국에서 스타강사(?)가 되어 거부를 얻었다고 하는데 제가 볼 때는 문화 패권을 추구하는 국가이익에 복무하는 듯합니다. 즉 이고, 주희는 물론 우리 선조들이 추구한 심학의 깊은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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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6.04.06 09:41 단상

20~21세기를 미국에서 살다 가신 호킨스 박사 텍스트와  8~9세기에 당나라에서 살았던 '이고' 님의 텍스트가 너무 똑같아서 번역을 했습니다. 제가 복성서를 공부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랑은 햇빛과 같고 부정적인 생각은 구름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참나는 해와 같고 우리가 가진 모든 부정적인 생각, 의심, 두려움, 분노와 원한 등은 햇빛을 가리고 결국에는 빛이 가냘프게만 뚫고 옵니다. 


We might picture love to be like the sunlight and negative thoughts like the clouds. Whereas our higher, greater Self is like the sun, all the negative thoughts, doubts, fears, anger, and resentments that we hold dim the light of the sun and, finally, the light comes through only weakly. David R.  Hawkins, Letting Go: The Pathway of Surrender (p. 94). Veritas Publishing. Kindle Edition." 


"기쁨, 분노, 슬픔, 두려움, 좋음, 싫음, 욕망의 일곱가지가 모두 에고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에고는 이미 어두운 것이기에 참나를 가리는 것은 참나의 탓이 아닙니다. 저 일곱가지가 돌아가며 차례로 돌아오니 참나가 충만하지 못합니다. 


喜怒哀懼愛惡欲七者, 皆情之所爲也. 情旣昏, 性斯匿矣, 非性之過也. 七者循環而交來, 故性不能充也."


※제가 이 블로그에 복성서를 번역하고 있습니다. 참고하시고 도움 말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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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4 07:39 단상
복성서는 공자님 제자 가운데 최고로 꼽는 안회의 심학을 상세히 기술한 책이라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맹자와 대학, 중용을 계속 거론하는데 안회의 요절로 심학의 방법은 사실상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이고가 마침 불교의 방법으로 깨쳤기 때문에 방법론을 불교에서 차용했습니다.

그 가운데 제가 붙든 핵심어가 성(誠)인데 계속 검색하다 보니 역경에 이미 풀이가 상세히 되어 있다는 것을 오늘 발견했습니다. 한양대 명예교수이신 '들말'이란 분의 블로그를 얻어만났는데 역경의 풀이가 있습니다. 매우 값진 글이라 판단해서 퍼다가 공유코자 합니다.

"세상을 속일 수는 있지만 자신이 자신을 속일 수 없는 것이 인간이므로 성인(聖人)이 베풀어준(設) 괘(卦)는 인간을 ‘무자기(無自欺)’의 순간으로 이끌어간다. 여기서 ‘진정위(盡情僞)’는 곧 ‘성기의자(誠其意者)’로 이어짐을 알아챌 수 있다. 자신의(其) 속내를(意) 거짓 없게 하는(誠) 사람(者)이라야 ‘무자기(毋自欺)한 자기’를 마주한다는 말이다. 성기의자(誠其意者)는 곧 자신을(自) 속임이(欺) 없는(毋) 사람이다. (들말 님 블로그 2010년 12월 26일)"

통속적으로 사용하는 '성의(誠意)가 있다', '성실하다'는 말의 깊은 뜻을 비로소 알 수 있으며 요즈음 서양 영성에서는 모든 의식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모든 것은 우주에 영원히 기록되기 때문에 아무것도 숨길 수 없다는 의미에서 '성의(integrity)'를 의식의 온전성으로 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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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6.03.22 09:18 복성서

누군가 묻습니다. “사람들이 어두운 상태가 오래되었는데 참나로 돌아가 밝아지는 일은 점진적인 것인지요, 그 방법은 무엇입니까?” 나는 답합니다. “생각도 근심도 없으면 에고가 생기지 않는다. 에고가 없으면 바로 올바른 마음이라고 한다. 올바른 마음이란 근심도 없고 생각도 없음을 말한다. 주역(系辭下傳)에 가라사대 하늘 아래 무슨 생각이나 근심이 있더냐?’ (文言傳) 가라사대 ‘빗나감을 막고 온전함을 지킨다.’ 하였고 시경에는 생각에 치우침이 없구나!’고 하였다.” (或問曰. 人之昏也久矣. 將復其性者, 必有漸也, 敢問其方. 曰. 弗慮弗思, 情則不生, 情旣不生, 乃爲正思, 正思者, 無慮無思者也. 易曰. 天下何思何慮. 又曰. 閑邪存其誠. 詩曰. 思無邪.)

 

또 묻기를 그러면 됩니까?” 하니 답합니다. “그렇지 않다. 그것은 단지 근신하여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이며 아직 번뇌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시끄러움을 벗어난다는 것은 아직 시끄러움이 있는 것이고 시끄러움과 시끄럽지 않음이 모두 없어지지 않으면 여전히 에고 상태인 것이다. 주역(系辭下傳)은 말하길 밖으로 길흉화복과 안으로 후회와 주저함이 있는 것은 모두 시끄러움에서 오는 것이니 어찌 참나를 찾았다 할 수 있는가?’ 하였다” (曰. 已矣乎. 曰. 未也. 此齋戒其心者也, 猶未離於靜焉. 有靜必有動, 有動必有靜, 動靜不息, 是乃情也. 易曰. 吉凶悔吝, 生乎動者也. 焉能復其性也.)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니 답합니다. “고요할 때 마음에 생각과 근심이 없음을 알아야 하니 이것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시끄러움과 시끄럽지 않음을 모두 떠나 고요하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 지극히 온전하고 진실한 상태다. 중용은 온전하고 진실하면 스스로 분명하다고 하며 주역(系辭下傳)천하의 모든 것은 오로지 진실됨을 지키는 데 있다고 하였다.” (曰. 如之下. 曰. 方靜之時, 知心無思者, 是齋戒也, 知本無有思, 動靜皆離, 寂然不動者, 是至誠也. 中庸曰. 誠則明矣. 易曰. 天下之動. 貞夫一者也.)


자습노트)

여기에서는 대립쌍이 발생하기 전의 고요하고 분별없이 침묵하는 마음의 상태가 바로 지극히 온전하고 진실한 상태(至誠)로서 바로 참나(性)로 깨어 있는 상태임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세상의 프로그램에 물들어 살기 시작하면서 어린이 마음(赤子之心)을 잃어버리고 이원적 세계에 빠져듭니다. 여기에서 길흉화복과 후회, 주저함 등 불행을 짓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참나로 돌아가는 것(復性)을 거듭 이야기하는 저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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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TAG 복성서
2016.03.16 06:38 단상
주마간산 유교(유학)에 대해 공부하는데 참으로 깊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부분의 서양인들이 기독교의 껍데기만 붙들고 살아서 세상이 시끄럽듯이 조선 말기와 왜정을 거치면서 유교의 근본정신은 끊어지고 제사행위등 껍데기만으로 살아왔기에 더 그렇게 느끼는지 모릅니다.

어쨌든 유교는 맹자 이전과 이후로 크게 갈립니다. 즉 맹자 이후 적자지심(赤子之心)으로 사는 이를 성인으로 보며 성인은 범인과 구분이 없고, 거기에 이르는 비결은 정(情)을 제압하여 성(性)으로 사는 데 있습니다. '유교넷'에 따르면 이 비결을 집대성한 이가 이고(復性書), 주돈이(太極圖說), 주희(性理大全)입니다.

그런데 노자와 예수께서도 적자지심을 중요하게 보셨습니다. 생각해보면 갓난아이에게는 '나'라는 게 없으며 5~6세 아이치고 신동이 아닌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다만 세상이 그들을 견디기 힘들어 적응이란 이름으로 훈련시킬 때 적자지심을 잃어버리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성으로 정을 다스리고 세상의 언어로 말하며 세상 일을 완벽히 경영하는 게 수기치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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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5.12.28 15:04 복성서

불 기운이 산에도 잠재하지만 돌과 나무가 어울어지지 않아 불을 못 일으키고, 강과 냇물이 산에 잠재하지만 흐르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돌과 나무를 마찰시키지 않으면 나무를 태워 만물을 비추지 못하며 샘이 흐르지 않으면 강을 이뤄 동쪽으로 힘차게 흘러 깊디 깊은 바다가 되지 못합니다. 에고의 움직임이 그치지 않으면 참나를 회복하여 세상을 밝힐 수 있는 무궁한 빛을 내지 못하게 됩니다. (火之潛于山石林木之中, 非不火也. 江河淮濟之未流而潛于山, 非不泉也. 石不敲木不磨, 則不能燒其山林而燥. 萬物泉之源弗疏, 則不能爲江爲河爲淮爲濟. 東滙大壑, 浩浩蕩蕩爲弗測之深. 情之動弗息, 則不能復其性而燭天地爲不極之明.)


자습노트)

거의 5개월 되도록 진도를 못 나가다 드디어 해독이 되었습니다. 앞의 구절에 대한 반복 강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나가 드러나는 것을 방해하는 에고의 작용을 치울 때만이 참나가 발현한다는 것을, 불이 밝아지는 이치와 심해가 형성되는 이치를 빌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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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5.08.03 17:45 복성서

사람이 성인이 되는 것은 참나 때문입니다. 사람의 참나가 흐려지는 것은 에고 때문입니다. 기쁨, 분노, 슬픔, 두려움, 좋아함, 싫어함, 욕망의 일곱 감정은 모두 에고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에고가 혼미하여 참나가 드러나지 못하는 것이니, 일곱가지 감정이 돌아가며 찾아오기 때문에 참나가 충만하지 못한 것입니다. (人之所以爲聖人也者, 性也. 人之所以惑其性者, 情也. 喜怒哀懼愛惡欲七者, 皆情之所爲也. 情旣昏, 性斯匿矣, 非性之過也. 七者循環而交來, 故性不能充也.)


그것은 마치 흐르는 물이 맑지 못하고 연기에 찬 불꽃이 빛을 내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물이나 불꽃이 본래 성질에 결함이 있는 게 아닙니다. 진흙이 없으면 물이 맑고 연기가 나지 않으면 불꽃이 자연히 밝은 것입니다. 같은 이치로 사람의 에고가 작동하지 않으면 참나는 저절로 충만할 것입니다. (水之渾也, 其流不淸. 火之煙也, 其光不明. 非水火淸明之過. 沙不渾, 流斯淸矣, 煙不鬱, 光斯明矣. 情不作, 性斯充矣.)



자습노트)

이고(李翺 ; 774~836) 당나라 때 유학자로 한유와 더불어 불교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신유학을 창설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제가 복성서에 주목하는 이유는 호킨스 방하착의 근거가 되는 생각과 같기 때문입니다. 즉, 부정적 감정이 참나의 완전한 실현인 깨달음에 장애가 되고 여러가지 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 호킨스 박사의 생각입니다. 


마침 중국 사람이 주석을 붙인 게 있어서 자습 겸 번역을 하는 것입니다. 1절에 책 전체의 주제가 거의 드러나 있고 情을 에고, 性을 참나로 번역하면 호킨스 박사의 '에고 소멸, 참나 실현'과 같은 통찰이라고 봅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곱가지 감정 가운데 즐거움 대신 두려움이 오기 때문에 훨씬 에고의 부정적 구실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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