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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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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4 15:28 단상
우주 의식(신 의식)이 개별화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인간 의식을 취합니다. 인간 의식은 인간적 감정과 생각이 핵심입니다. 인간 의식이 언제나 신 의식을 인식(또는 선택)하며 그 지도를 받을 때는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인간 의식이 독자적이고 자족적인 것으로 잘못 알고 세상의 온갖 부정적인 찌꺼기로 오염된 채 삽니다. 그 결과 마치 바이러스에 감염된 피시가 제 기능을 못하거나 쓸모 없어지는 것처럼 삶이 엉망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거의 예외없이 정도는 다르지만 오염된 상태임을 인정하기에 잘못 심어진 인간적 감정과 생각을 씻어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모든 의식은 그 원료가 같고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나 하나의 의식이 정화되어 점점 더 신 의식이 드러나고 동시에 신 의식에 일치해가면 그만큼 세상도 밝은 쪽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 가장 좋은 예가 호오포노포노라고 생각합니다. 하와이의 가장 효험있는 정신과 의사가 환자에게서 발견하는 문제의 의식을 자신에게서 치유했더니 병원 전체가 개선되더라 하는 임상체험에서 나온 영성이 호오포노포노죠! 호킨스 박사도 한 사람의 의식 변화가 세상의 부정적 에너지를 상쇄하고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모쪼록 매일 의식 정화와 의식 향상에 매진하고 있다면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확신해도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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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6.10.04 04:36 단상
저는 기독(그리스도)교도로서 30여년 살았는데 신자 되기를 포기하고 무교회 영성 실천가로 자처합니다. 특히 기독교나 유불선의 핵심 영성은 같다고 보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도였던 때 배운 것들 가운데 좋은 것은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기독교가 권능(power)을 잃고 통속화(또는 세속화)하는 원인을 알 것 같습니다.

기독교가 힘을 회복하고 세상을 극복(또는 초월)하려면 기존의 교조를 버리고 현대인들에게 맞는 과학적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책으로 '그리스도의 편지'를 권합니다. 한편 제 경험상 기독교가 부족한 점은, 어떻게 매 순간 신을 느끼고 깨달으며(참으로 안다는 것은 신과 함께하는 것 또는 신이 되는 것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 힘으로 믿음을 실행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소아 또는 에고만의 추진력으로 자신을 몰아붙여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성취하려는 것은 더 크고 강한 에고에 빠져 쓰라린 실패만을 맛보게 된다는 게 제 경험입니다. 신적 동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신적 동력은 창조와 존재의 근본 원리를 이해하고 그 일을 하는 제1 원인인 신령한 앎(知, consciousness)이 우리가 홀로 침묵할 때 우리 안에 뚜렷이 존재한다는 것을 체험할 때 얻어집니다.

그런데 이 체험은 누구에게나 코를 만지는 것만큼 쉽다는 게 동양 영성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초월한 마음으로 세상사를 처리하려는 굳센 결심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습(習)이 되어버린 생각과 느낌을 알아차리고 내버리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그 실천을 위해서는 현대 심리학과 정신치료 분야의 책, 특히 호킨스 박사의 '레팅고'(번역도 나왔습니다)가 큰 도움이 됩니다. 찾기만 하면 제가 거론한 방편들이 아니라도 곳곳에 얼마든지 좋은 수단들이 있습니다. 모쪼록 성공하는 크리스찬이 많이 나오길 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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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6.05.03 06:13 단상
어제는 친구들 만날 시간이 멀어 서점에서 책을 보다가 이종톈(易中天)이란 사람이 공자님에 대해 쓴 걸 읽었습니다. 제자들은 물론 한참 후 맹자에 의해 성인으로 간주되셨는데 당신께선 '난 특별한 인간이 아니다. 범인과 같다'고 하셨답니다. 직전에 소개한 체르노빌의 영웅들도 자신들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고 거론했습니다.

주희 이전에 이미 대학과 중용에 집중하고 주역으로 보충해가며 유교의 핵심진리를 상술한 복성서를 보면 성(性)과 정(情)을 대승기신론의 진여문과 생멸문으로 보고 결국 진여문 또는 참나에 해당하는 성(性)을 최대한 발현한 사람이 성인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유교 텍스트의 성(誠)을 완벽히 구현함에 길이 있고 이 성의 요체는 신기독(慎其獨)인데 신기독이란 수기중(守其中)에 있다고 보는 겁니다.

수기중에서 중이란 탄허스님에 따르면 생각이 끊어진 자리입니다. 생각이 끊어진 자리란 공적영지 또는 상락아정을 말하며 성리학에서는 경(敬) 또는 주일무적(主一無適)의 몰입상태를 말합니다. 그 상태에서 얻어진 지혜와 실천방안을 강구하고 부단히 실천합니다. 9세기에 복성서를 지은 이고나 12세기에 성리학의 체계화와 종합을 이룬 주희나 모두 불교에서 개종한 사람임을 감안하면 이해가 빠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유교에서 불교로 개종하신, 멀리는 함허스님과 가까이는 탄허스님이 유명하지만 동아시아 지성인이라면 한문 텍스트에 심취할 수밖에 없고 결국 선불교와 도교, 유교의 통섭을 구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주마간산으로 읽은 이종톈은 최근 중국에서 스타강사(?)가 되어 거부를 얻었다고 하는데 제가 볼 때는 문화 패권을 추구하는 국가이익에 복무하는 듯합니다. 즉 이고, 주희는 물론 우리 선조들이 추구한 심학의 깊은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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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6 14:54 단상

제가 복성서와 탄허록에 집중하는 이유는 복성서를 지은 이고는 불교로 깨달음을 얻고 유교를 재해석하여 유교와 불교가 다름이 없음을 말하였고 탄허스님은 유학에 먼저 입문하셨다가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어 유교와 불교가 같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탄허스님은 여말선초를 사신 함허스님과 같은 행로를 가셨는데 어쨌든 사실상 복성서와 탄허록은 똑같은 수행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일단 탄허스님을 인용하면 '성(性)이란 칠정이 일어나기 전의 면목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리로서 불교의 4덕, 즉 상락아정(常樂我淨)을 갖추고 있는데 이것은 유교의 인의예지와 같다(탄허록 181쪽)'고 하십니다. 또 그 자리는 선악이나 시비분별이 없어서 대학의 지선(至善)과 같다고 하십니다. 또 덧붙이시기를 불교에서는 허령불매한 자리라고 하시는데 지눌스님의 공적영지와 같다고 봅니다.

성의 자리를 유교에서는 중이라고도 하며 시간과 공간이 끊어진 자리이고 따라서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을 말하며 천하의 근본 또는 우주의 핵심체입니다(탄허록 187쪽). '서경'은 도심(道心, 人心에 대비하는 마음으로 참나에 해당)이 미약하므로 오직 도심에 집중(惟精惟一 允執厥中)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불교에서 언제나 참나를 의식하며 에고를 부려야 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보면 요컨대 두 종교에 공통하는 바는 명상을 통하여 생각이 끊어진 참나 자리에서 세상 일을 경영하고 향유하자는 것입니다. 즉 안회는 심재(心齋)를 통해 무아를 깨치고 좌망(坐忘)을 통해 이원성을 초극하여 무한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대목은 '장자'에 기록되어 있으니 결국 유교가 불교는 물론 도교와도 상통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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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6.02.17 19:32 단상
그저 공유하고 싶어서 옮겨옵니다. 해결책은 어디에 있을까요?

"인간은 근심하고,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자책하고, 죄의식에 사로잡히고, 싸우고, 고통스러워하는 데 익숙한 나머지 여타의 부정적인 정서와 태도, 감정 등을 살아가는 과정에 으레 따르는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참으로 정상적인 의식 상태는 모든 부정적인 요소에서 벗어난, 기쁨과 사랑이 충만한 상태다. 그밖의 모든 것은 지각의 왜곡 현상과 망상에 기반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인류의 마음이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방식으로 통제되고 영향받고 세뇌되어온 그런 판단기준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나의 눈, 76~77)"

지각의 왜곡과 망상을 벗어나도록 돕기 위해 신의 소리를 천둥처럼 들으며 살던 소크라테스는 아테네를 헤매며 동굴의 우화를 비롯해 여러 얘기를 미친듯이 하고 다녔습니다. 붓다와 예수께서 하신 일도 대동소이하나 그 후예들이 체계를 세운 철학과 종교가 오히려 사람들을 미로에 가두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저는 삶의 위기를 기화로 그저 흉내만 내던 수십년을 뒤로 하고 지난 2년여를 철저히 노력해서 이제 겨우 길의 초입에 들어간 느낌이라서 피안을 건너가는 날까지는 기쁨과 사랑이 충만한 경지에 갈 수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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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6.02.11 07:04 단상
'내가 교회를 등질 마음이 없는데 왜 이단이냐?'라고 항변했던 마이스터 에카르트는 오늘날까지 로마 교회로부터 완전히 복권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제대로 된 기독교도와 비기독교도에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신학자이자 영성가입니다. 그의 말 하나 인용합니다.

"누구든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마태 16:24)". 모든 것은 여기에 달려 있다.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돌려라. 그리고 그것을 발견한 그곳에서 자기 자신을 너로부터 놓아보내라. 이것이 가장 올바른 것이다. (영성지도 10쪽)

여기서 '부인'은 원문에는 잊음(forget)으로 되어 있어서 요즈음 서양 영성의 자아 소멸에, 동양 영성의 무아와 극기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그 다음에 나오는 '놓아보냄'에 조응합니다. 결국 철학 내지 영성의 공통 요소는 내면의 탐구인데 '천국이 내면에 있다'고 하는 속뜻도 여기에 있다는 게 대세입니다.

특히 극기 이후에 이루는 복례에서 예란 천리(天理), 즉 우주의 법칙이어서 그 법칙의 근원을 우주 의식 또는 신 의식(동양의 태극)으로 보면 비유적 표현인 천국의 운영원리로 돌아감을 뜻하는 게 되어서 동서양 영성에 전혀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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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9 10:18 단상
따져보고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 따위가 없이 바로 나오는 것이 '무조건적 사랑'(불교의 무주상 보시)에 딱딱 맞을 때가 참나(性)에서 나오는 행동이며 맹자께서 물에 빠지는 아이를 구하는 예에서 거론하신 측은지심의 행이 여기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법률 기타 두려움, 책임감 등등에서 나오는 행은 모두 에고에서 나오는 행이라 봅니다. 그래서 인간 사회 대부분의 조직 기타 일들이, 명분은 고귀한 성(性)을 내세우더라도 인간 의식 내지 에고(情)에서 나오는 것이죠.

그래서 혜능을 위시한 선사들이 행을 검증하는 수단은 일말의 주저없이 나오는 행뿐이었습니다. 그러니 수행이란 오직 에고의 완전한 소멸이 골인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신 의식(참나, 신성, 性)으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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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30 05:13 단상

외래 사상이었던 불교는 동아시아 사상이었던 도교에 흡수되어 선불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도덕경을 통해서도 불교를 쉽게 이해합니다. 일전에 들은 도덕경 강의에 따르면 도덕경은 제왕학입니다. 당송을 풍미한 불교를 지양코자 전개된 신유학은 결국 제왕학으로서의 헤게모니 경쟁에서 나온 산물입니다. 어쨌든 주자가 집대성한 신유학도 제왕학입니다. 제왕학은 다른 말로 성학(聖學)입니다. 그래서 율곡은 선조를 위한 집필을 성학집요라 했고 퇴계 또한 성학십도를 썼습니다. 거론코자 하는 것은 적어도 동아시아에서 먹물좀 먹었다고 하는 사람으로서 성학을 모른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테크놀로지와 테크노크라트만을 위한 공부만 했다는 얘기지요. 성인이 되자고 하는 것을 공통, 일관된 목표로 하는 게 성학이고 성인이란 성(性, 참나)으로 사는 것을 요지로 하고 있습니다. 참나로 살기 위해서 언제나 영을 의식하고(敬) 한가지에 집중하여(主一無適) 생각이 끊어진 경지(中)에서 의식을 온전하게 하며(誠)[이상 수신의 요체] 그때 비로소 세상에도 긍정적 기여(제가치국평천하)를 할 수 있다는 게 요지입니다. 그것을 그대로 실천한 사람이 안회(安回)로서 공자님은 안회에게 상경하(上敬下)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보건대는 이 공부가 잘 되면 바로 우리가 천제의 상속자임을 알고, 아는 만큼 믿고 느끼기 때문에 천제(天帝)의 입장과 자세로 이승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에고의 짜잘한 꼼수와 에고가 구축하는 거대 궁궐이니 거대 불상이니 하는 것들이 우습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주의 근본 원리와 인간사를 통달하니 천안통 천이통 타심통 숙명통 신족통이 모두 가능하지만 쓰지 않고 쓸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누진통의 경지이기 때문이죠! 그렇게만 되면 구태여 환생을 탐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화엄 최고 보살인 법운지(관정지)에 이르러 오직 하화중생 이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 경지를 최근 서양 영성에서는 이구동성 '무조건적 사랑'의 에너지 장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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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5 07:11 단상

아침에 이상적인 직업에 대한 얘기를 읽고 공유하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이 말은 배우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여러가지 상념이 오갔습니다. 먼저 공유해 볼까요?

『사람들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라"고 언제나 말합니다. 하지만 이게 아주 이상적인 조언은 아니죠. 딱 맞는 직업이란 언젠가는 좋아하게 되고, 대개는 늘 견딜만하며, 생활비가 나오는 직업입니다. 매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People always say, "Make sure you get a job doing what you love!" But that isn't the best advice. The right job is the job you love some days, can tolerate most days, and still pays the bills. Almost nobody has a job they love every day.

원전을 찾으려 하니 요즈음 인터넷 컨텐츠들이 워낙 많아서 어디론가 밀려가 버렸습니다. 두어가지 생각이 가능하죠! 누구나 이상적인 배우자를 만날 때까지 기다리지만 이상적인 배우자를 만났나 했던 사람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없이 갈라서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니 위 인용문에서 직업을 배우자로 바꾸면 결혼에 관한 매우 현실적이고도 적절한 조언이 됩니다.

제 경우 연금 기타 소득으로 부족하여 네번째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처음에 정말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직업이었습니다. 만 2년이 지난 지금 위 인용문에 딱 맞는 직업이 되었습니다. 제가 만 61세가 되었고 미혼의 자녀가 둘 있는데 덧붙이건대 제 자녀들이 위 인용문을 직업이나 배우자 선택의 금과옥조로 삼았으면 하는 게 희망입니다.

여기에 한가지만 보태면 이승을 건너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지 싶습니다. 그것은 제 블로그에서 수없이 반복해드린 에고를 극복하고 참나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제 올린 동서 신비주의 영성의 핵심이자 이승에서나 이승을 건너가서나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길이자 화엄의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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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4 09:00 단상
종교에서 어느 종파에 속하냐 하는 것을 '디노미네이션'이라 하는데 쉽게 말해서 커밍아웃이죠. 제 경우 무종교, 무종파라 했는데 커밍아웃 하자면 학술용어론 신비주의입니다. 신비주의에는 마이스터 에카르트를 위시한 기독교 계열, 플로티누스를 위시한 철학적 노선, 카발라-조하르에 명시된 바의 유태교 계열, 도교와 천부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불선 계열이 있는데 이제까지 제가 공부한 깜냥으론 그 핵심이 모두 같습니다.

이들이 같은 이유는 인간성의 근원이 같은 데다 그 체험을 전한 분들의 체험이 같기 때문입니다. 그 체험을 지칭하는 용어로 신체험, 깨달음, 견성 등등으로 갈릴 뿐입니다 (물론 깨달음에서도 상승방향으로 여러 단계가 있으므로 진술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공통 요점을 적시해보면 (1) 인간성(인간 의식, 에고, 情)은 신성(신 의식, 참나, 性)에서 나왔고 신성을 질료로 이뤄짐, (2) 인간성이 신성으로 변모하여 신성으로 사는 것이 삶의 목적이자 소명임, (2)-1 변모의 비결은 인간성의 정화(또는 소멸, 망각)로써 주도권을 넘기는 것이며 그 과정은 점진적 상향운동으로서 각 근기에 따라 시간이 걸립니다.

적어놓고 보니 대략 직관과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는 바로 신비주의의 공통 영성 플러스 현대 물리학의 성과를 담고 있습니다. 진지한 첨단 물리학자들은 모두 사물의 본질, 궁극의 실재에 대한 신비가의 체험을 이해하고 있으며 호킨스 같은 분은 물리학이 깨달음으로 가는 두어가지 길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비주의 내지 영성과 과학 사이에 어떻게 다리를 놓을까 하는 게 이번 밀레니엄의 최대 과제이며 '편지'와 호킨스의 의식 지도가 여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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