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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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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킨스 기타 텍스트'에 해당되는 글 18

  1. 2018.09.13 신의 사랑 체험과 애덕 실천
  2. 2018.09.12 깨달음의 길
  3. 2018.09.11 참된 정체성으로서의 의식(1)
  4. 2018.09.11 의식 공부가 긴요함
  5. 2018.09.09 참된 예배
  6. 2018.09.08 신의 정의와 인간의 선택
  7. 2018.09.07 의식이 우리 현실임
  8. 2018.09.05 진화와 창조
  9. 2018.09.05 바라봄(觀照)이란!
  10. 2018.09.05 영적인 길은 선택임
2018.09.13 07:37 호킨스 기타 텍스트
보통의 인간 체험에는 '신의 사랑'을 체험하는 기쁨에 비교할 만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의 현존을 깨닫는 일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혼신의 노력을 다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나의 눈, 375쪽)

-- 그야말로 혼돈과 연막이 가득한 우리 현실에서 위와 같은 주제의 책을 한 권 소개하는 게 아웃사이더 짓이지만 그럼에도 우리 내면에 '더 크고 더 강한 무엇'에 대한 열망이 있기에 댓글 달아주시거나 책을 구매하신 분도 계시네요.

과거에는 신 체험이 불가능한 것으로 치고 지상 천국이라 할 수 있는 체험을 사후의 일로 미루거나 포기하고 그저 제도 종교의 인정을 받는 것으로 퉁쳐온 것이 보통입니다. 실상 백 명 정도의 사람이 매일 저와 함께 읽고 있는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책에는 모세 말고는 신을 직접 체험한 이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동양에서 마하리쉬를 위시한 힌두교 계통의 비이원성 체험이라든지 황벽선사가 말하는 언어도단의 돈오 체험 등이 신체험과 같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제가 파악한 동양 영성의 가장 큰 장점은 분노하고 심판하는 신 개념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동서 영성과 잘 융합한 현대 영성인 '그리스도의 편지', '신과 나눈 이야기', 호킨스 박사의 '레팅고', 기적수업 등이 신의 현존 체험으로 잘 안내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 과정에서 사랑이란 감정이 아니라 존재 상태며 높은 의식의 장을 일컫는 말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도 중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먼저 의식이 높아져야 바이블이 말하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지 보통 우리가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자기연민의 투사이거나 잇속을 위한 인내 아니면 주고받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두 낮은 차원의 감정이거나 자기만족일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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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2 05:10 호킨스 기타 텍스트

깨달음 상태는 이미 우리에게 실재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 상태가 온전히 드러나도록 허용해 주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미 있는 것은 미래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나의 눈, 376쪽)

-- 가장 비근한 비유로는 구름이 걷히기만 하면 태양 빛을 바로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몸의 진화와 사회적 적응을 위한 학습 과정에서 빛을 가리는 구름이 덕지덕지 덮여서 도저히 걷혀지지 않을 것 같기 때문에 깨달음이 어렵게 보이는 것입니다.

한편 수많은 고정관념과 몸이 나라는 세뇌가 (이 두 가지가 바로 아집과 법집임) 구름 걷는 일을 어렵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는 물론 노자와 공자께서 모두 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 판단도 차별도 없이 그저 기쁨의 상태가 되는 데 깨달음의 비결이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끄는 힘이 장난이 아니기 때문에 매일 기도하고 명상하는 시간을 내지 않는 것은, 깨달음 상태에 대한 다른 표현인 열반이나 천국을 바란다면, 만용이자 교만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만 덧붙이자면 검증된 올바른 텍스트의 선택과 세속적이고 사기성 있는 스승을 피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종교가 걸림돌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도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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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1 09:28 호킨스 기타 텍스트

모든 두려움은 자아 정체성(identity)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곧 존재와 생존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 말입니다. 이 두려움은 생존의 근원 또는 자아를, 형상(생각, 느낌, 몸)과 동일시하는 것과 관련됩니다. (나의 눈, 369쪽)

-- 모두 같은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대승기신론이 진여문을 말하는 것도 마하리쉬 님이 '나는 누구인가'를 끝없이 물어보라는 것도, 금강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아공과 법공을 설하고 있는 것도 모두 같은 목적에서 나온 것입니다.

두려움과 고통의 근원은 같습니다. 몸을 나라고 여기는 한 고통은 멈추지 않습니다. 몸에서 나오는 생각이란 것을 끊기 위한 모든 수행법이 두려움과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입니다. 간단히 우리가 의식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뼈에 사무치게 체험할 때까지 세뇌된 것을 씻어내는 노력이 진정한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미리 죽어내면 전혀 새로운 전망이 열린다는 것이 스승들의 가르침입니다. 진정한 자아정체성, 즉 참나는 영원하며 계속 향상함으로써 가시 세계 모든 기쁨을 합친 것보다 월등한 기쁨을 준다는 것이 스승들의 체험이자 보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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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1 09:26 호킨스 기타 텍스트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훌륭하기는 하지만 거기에서 저절로 깨달음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깨달음에 이를 가능성은 의식의 본성에 대한 높은 이해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나의 눈, 354쪽)

의식의 본질을 이해하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의식의 본질을 이해하면 반드시 이원성과 비이원성의 차이를 통찰하게 되고 아울러 이원성의 영역을 초월하는 법도 알게 됩니다. (위 책, 357쪽)

-- 여기에 무슨 주석을 붙이는 게 주제 넘지만 한 가지만 거론한다면 세상 교육이나 종교는 그저 좋은 사람 또는 착한 사람을 만드는 데 주력하지만 의식이 바깥 세계만을 맴도는 한 폐쇄 체계를 뱅뱅 도는 모습이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철저히 세속적 인간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하여 결국 성공한 이들, 평생 한번도 일등을 놓치지 않은 이들이 상업시스템은 물론 가장 공평하고 정의로와야 할 사법시스템까지 망쳐놓고도 마치 무엇이 잘못인지 모르는 것처럼 멍청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우수하다고 자처할수록 의식을 공부하고 폐쇄체계의 초월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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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9 04:11 호킨스 기타 텍스트

행동하고 말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관찰하는 자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물어봅니다. 지속적인 명상은 모든 행위를 일종의 예배로 바침으로써 그 행위를 모두 성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나의 눈, 321쪽)

-- 이 대목에서 마하리쉬의 자아탐구를 만나며 대승기신론의 지관문을 만납니다. 이것들은 실천적으로 하나입니다. 선가귀감은 "예배란 참된 근원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禮拜者 恭敬眞性 屈伏無明)"이라 함으로써 이것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 실천방법으로는 기본적으로 홀로 고요히 있는 것인데 생각마다 끊어버리는 것일 수도 있고, 끝없이 무량광 무량수인 아미타불(이것은 아무 이름이어도 상관 없습니다)을 외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비운 자리에 신 의식이 들어와 무한하고 거룩한 뜻을 실현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한편 초중고등 교육 기관과 종교와 세속 프로그램, 그리고 티브이와 상업적 세뇌가 지배하는 우리 의식을 정화함으로써 세상에 저항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보통 사람은 무의식 중에 세뇌되어 이미 사로잡힌 의식의 장에 지배당한 채 평생을 보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위 책 322쪽 참조)

진정한 저항의 삶은 여기에 있습니다. 밖으로 나가 변혁 운동에 몰입하고 투쟁하는 삶에서 구원을 얻은 이가 진짜 있기나 한 것인지 참 의문이 있습니다. 오직 항구하고 참된 구원은 여기에 있으며 우리 삶을 기도와 예배로 만들어 이번 생과 다음 생을 모두 완전하게 만드는 길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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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8 07:39 호킨스 기타 텍스트

참나라는 무한한 바다 속에서 자아는 오로지 자기 자신의 본질에 의해 자신의 운명으로 끌려 갑니다. 이것이 바로 절대적인 공정함과 공평함을 보장해주는 <전능한 신>의 절대적인 정의입니다. (나의 눈, 307쪽)

-- 어제 올린 무한한 바다의 비유가 또 나옵니다. 바다의 비유는 대승기신론에서도 자주 나옵니다. 이 무한한 바다에서 몸을 벗은 각 에너지체는 자신의 본질, 즉 의식 수준에 따라 자리를 잡는다는 얘기입니다. 우리 모든 사언행위는 궤적을 남기며 하나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의 결과이기도 한 우리 의식의 수준에 따라 딱 맞는 자리에, 마치 자기 부력에 따라 물체가 바다에서 자리 잡듯이 자리를 잡는다는 것입니다.

시공(時空) 안에 들어와서 인간에게 간섭하고 사후에는 재판관처럼 심판하는 신을 생각하는 것은 가장 유치한 수준의 의식입니다. 마치 중력의 법칙처럼 의식에 관한 법칙에 따라 우리는 의식체로 존재하면서 계속 선택을 할 것입니다. 가시계에서 이런 저런 신분을 정해놓고 마치 그것이 최종적 모습인 줄 착각하는 것도 가장 유치한 수준이겠습니다. 다만 선택의 기회는 무한히 보장되어 있어서 언제나 다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은 희망의 근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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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7 06:20 호킨스 기타 텍스트

'나'라는 감각이 있는 자리인 에너지체(또는 영혼)는 몸에서 벗어난 체험을 한 사람들이 기억하듯 몸과는 별개로 존재합니다.. 의식의 장은 측정할 수 있는 다양한 레벨과 에너지 장이 상호 작용하는 무한한 바다입니다. 따라서 한 개별 영혼이기도 한 에너지체의 운명은 바다 속의 코르크와 유사합니다. (나의 눈, 306쪽)

-- 불교는 이미 우리 몸이 무정물이라서 체험을 하는 자리는 별개로 존재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영역에 있습니다. 생각과 오감은 그 스크린 위에 비치는 영상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몸을 버린다고 말할 때 사람들은 모두 무엇을 말하는지 압니다.

스승들은 몸을 버리는 순간의 의식이 사후에 고정되는 의식 수준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때의 의식 수준이 마치 바다 속 코르크와 같아서 자신의 부력에 따라 어느 깊이에 떠 있을지를 결정하듯 우리 운명은 우리 의식 수준에 달려 있습니다. 살아 있을 때도 우리는 자신의 의식 수준에 따라 비슷한 의식을 끌어모읍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의식 또는 영혼이 어떤 힘을 가지는 에너지체라고 보는 것이 호킨스 박사의 설명입니다. 즉 몸을 버린 후에도 선택을 하는 주체는 남습니다. 근본적으로 우리 존재가 의식체이며 의식이 우리 현실을 만들어 몸을 통해 많은 체험을 하고 그 체험을 통해 또 다른 선택을 계속하는 게 우리 운명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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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5 08:01 호킨스 기타 텍스트

진화와 창조는 같은 것의 다른 이름이다. 창조는 진화의 근원이자 본질이며 진화는 창조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물리적인 세계는 결과들의 세계요 그 안에 원인이 되어줄 만한 힘이 없는 세계다. (나의 눈, 162쪽)

-- 다시 말하면 신의 창조는 신 의식이 행하는 것이며 의식의 특징은 지성과 의도, 심미적 앎이라고 합니다. 신 의식을 나누어 받은 인간 의식을 포함한 모든 의식체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모습을 바꾸는 것이 진화라고 합니다. (같은 쪽)

이것은 매우 중요한 깨달음인데 관찰되는 환경을 바꾸려면 내 의식을 바꾸고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집단 의식을 바꾸는 것이 현명한 노선임을 알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내 운명을 바꾸는 것, 세상의 모습을 바꾸는 것, 모두가 의식 변화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과를 탓하고 거기에 몰입하기보다 내 의식을 관찰하고 내가 속한 집단의 의식을 관찰하여 바꾸는 것이 개혁이나 발전의 지름길입니다. 심층을 보고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어둠을 탓하기보다 촛불 하나를 켜라'는 말이 올바른 노선이 되며 치국평천하의 전제는 언제나 성의정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보다 강력한 빛이 되기 위해서는 끝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크게 빛나는 빛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집단 의식을 바꾸기 위해서 비슷한 의식을 가진 이들이 함께 노력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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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5 07:59 호킨스 기타 텍스트

관조란 어떤 관념이나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휘말려들지 않은 채 저절로 흘러가도록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생각의 이미지가 저절로 일어나고 그 생각은 우리의 독자적 결정에 따라 이루어진 선택이 아니며 생각의 흐름이란 독자적인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의 눈, 138쪽)

-- 흔히 우리가 생각을 하는 주체라고 착각할 수 있는데 실은 우리 의식이 어떤 장(場)에 올라타 있는가가 실상이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게 무한히 존재하는 의식의 장이 얽혀져 있는데 각각의 장에서 생각들이 밀려드는 것입니다. 기쁨과 평화가 주조를 이루며 존귀하고 우아하며 권능이 있는 생각이 저절로 흘러나온다면 우리는 높은 의식의 장에 자리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의식의 장은 끌개장의 성격을 가지므로 비슷한 생각들을 끌어들입니다. 명상에서 우리는, 이미 친밀해진 장에서 튀어나오는 생각들을 관조하게 되는데 그저 바라보면서 결별하는 선택을 하면 됩니다. 특히나 무기력, 슬픔, 공포, 욕망, 분노, 교만 등에는 부정적인 생각이 셀수없이 얽혀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감정을 상한까지 느껴본 후 결별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노력을 내려놓기(放下)라 하는데 호킨스 박사 책이 도움이 됩니다.

명상을 통해서 끝없이 상승하는 것을 체험하게 되면 어느 순간 어제 인용한 것처럼 부정적인 선택이 불가능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대승기신론은 이 단계를 불퇴위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상승해서 오직 조건없는 사랑과 기쁨, 그리고 평화에서 오는 에너지와 권능이 지배하는 존재상태가 되면 이 세상에 있는 것이나 피안으로 가는 것이나 무차별해지는 경지가 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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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5 07:57 호킨스 기타 텍스트

우리는 그저 긍정적인 것을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부정적인 요소를 넘어선다. 영적인 삶을 열심히 좇는 내적인 수행을 계속 해나가다 보면 부정적인 선택지는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의 눈, 98쪽)

-- 이 구절은 '죄와 싸우고' '의지의 힘'으로 결함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효과가 없음을 말하는 대목에서 나옵니다.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고 심판하는 일은 내 일이 아니라는 자세로 오직 치료와 해답을 구하는 결단이 현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명상이 필수적인데 명상의 핵심 요소는 '생각 끊기'이기 때문입니다. 대승기신론을 인용합니다.

"일체의 모든 상념을 생각생각마다 다 없애고 또한 없앤다는 생각마저도 없애야 한다... 마음이 만약 흩어져 나간다면 곧 거두어 와서 정념(正念)에 머물게 해야 할 것이다... 모든 때에 항상 방편을 생각하여 수순 관찰하여 오래 익혀 익숙하면 그 마음이 머물게 된다. 마음이 머물기 때문에 점점 예리해져서 진여삼매에 수순하여 들어가게 되어 번뇌를 깊이 조복하고 신심이 커져 속히 불퇴전의 경지를 이룬다. (지관문)"

이어서 대승기신론은 의심하고 불신하며 비방하며 중죄로 업장이 두터운 이들은 아예 이 길을 선택하지 않으며 선택하지 않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음을 암시합니다. (은정희 역주한 '대승기신론 소와 별기', 374~375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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