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시지프스 신화, 절망 또는 희망

목운 2024. 4. 22. 21:02

시지프스 신화는 부조리를 말한 까뮈 때문에 더 유명해진 줄 압니다. 까뮈의 이방인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했다가 1등을 한 적 있는 저는 까뮈의 생각이 틀렸다고 썼습니다,

까뮈는 어쩌면 대다수 인간이 어리석게 되풀이하는 역사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희망이 없어보이는 측면을 강조했을 뿐인지 모릅니다. 뻔히 굴러떨어질 바위를 굴려 올리는 인간의 모습은 오늘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을 직접 접견함으로써 모든 고통과 모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신비주의 전통은, 알고보면 산꼭대기로 바위를 굴려올리기를 계속 하다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신이 대신 바위를 굴려 결국 해방을 만끽할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이 블로그는 근본적으로 신비주의 전통을 답습하면서 언젠가는 반드시 신을 만나 해방(깨달음 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목표에 대한 믿음으로 채워지고 있으며 그것이 이뤄지는 소식을 전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은 불가의 무루지나, 유가의 종심소욕불유구, 그리고 기독교의 하늘 나라 모두 그 목표에 대한 다양한 표현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지프스 신화를, 어쩌면 불가능해 보이는 희망을 가지고 분투노력하는 상징으로 본다면, 그리고 신비주의가 가진 열망을 가볍게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굴의 의지와 희망의 표현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한 의지의 표현을 누군가는 어리석음의 소치로 볼 수도 있음을 말하기 때문에 이 신화가 그토록 오래 인구에 회자되는지도 모릅니다. 작가 까뮈의 진지한 삶을 보면 그런 깊은 뜻이 있었다는 것을 반 세기 지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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