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고통의 짝, 행운

목운 2024. 4. 7. 09:31

이승 삶에서 우리 결함 때문에 커다란 좌절이나 고통을 겪습니다. 대개는 그것을 견디고 깊은 성찰과 재기 노력으로 다시 보통의 삶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흔한 스토리입니다.

고통을 잘 겪는 일은 우리를 성장하게 합니다. 고통을 통해서 잘못된 생각과 습관을 고치고 새 삶을 위해 꾸준한 노력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이 60에 물에 빠진 자가 지푸라기라도 잡듯 난관을 헤쳐온 지난 10년 에고를 정화하고 의식을 향상시키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고통을 극복하고 다시는 좌절하지 않는 길은, 우주 의식이 내 존재를 독차지해서 우주 법칙 또는 그 의지대로 내 존재를 운용하시도록 나라고 하는 것, 즉 생멸심을 완전히 비우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겪게 되는 고통은 내가 겪는 게 아니라 진여심이 겪는 것, 다시 말하면 신 의식이 겪는 것이니 나 또는 생멸심이 겪고 말고 할 것이 없게 됩니다. 그냥 모든 것이 완벽하게 펼쳐질 뿐입니다.

그와 똑같은 원리가 행운이나 축복에도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신통(神通)을 겪더라도 그것은 신의 일입니다. 오직 연기법에 따라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을 일은 일어나지 않을 뿐입니다. 내 에고 또는 생멸심은 무루지 속에서 쉴 뿐입니다. 그러하니 누진통이라 할 것입니다.

일도 없고 작위적인 무엇도 없습니다(無事也 無爲也). 나라는 것이 없이 연기법에 따라 움직일 뿐입니다(應無所住 而生其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