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동서양의 딜레마, 이기심의 극복

목운 2024. 2. 13. 07:46

일상 쓰는 말에서도 이기심은 피해야 할 무엇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비난할 때 '저이는 이기적이야!'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때때로 경멸하는 유학, 정확히는 성리학 또는 송명이학은 먼저 이기심을 끊고 인(仁)을 수련해야 한다는 대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참고로 율곡 선생 지은 격몽요결에서 한 구절 가져옵니다.  

常以溫恭慈愛, 惠人濟物爲心이니 若其侵人害物之事는 則一毫不可留於心曲이니라 凡人이 欲利於己인댄 必至侵害人物이라 故로 學者先絶利心然後에 可以學仁矣리라.

논어가 첫머리에서 지향코자 하는 학이란 인을 학하는 것이고 그 학의 전제가 이기심을 버리는 데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의 삶이란 온공자애로써 사람에게 베풀고 사물을 구제하는 마음이라는 것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기심을 끊고 갓난아이처럼 되면 세상경영에서 뒤처지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실제로 송명이학으로 나라를 경영하던 중국과 한국은 패배의 길을 갔으나 재빨리 서구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은 잠시나마 패권을 누렸습니다.

제가 볼 때 기독교도 근본에선 이기심을 끊으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초기 공산사회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담 스미스 이후 서양은 이기심을 학의 중심에 두고 번영의 원천이 이기심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결과 세상은 풍요를 누리고 있으나 인종의 절멸도 가능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잘못 되었나요? 우리는 대승불교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먼저 이기심을 끊되 다시 시장으로 돌아가 시장원리대로 경영해야 합니다. 불교의 입전수수, 즉 시장에 들어가 관여하라는 표현도 우연이 아닌 듯합니다.

모든 일을 경영하되 이기심 없이 하려면 결국 모든 일처리가 낱낱히 공개되고 투명하여 누구나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민주정의 원리입니다. 완전히 민주정에 맞도록 일할 자들만 공직에 선출하려는 것 또한 민주정입니다.

민주정이 곳곳에 적용되려면 인구의 과반수가 이기심을 끊은 자로 이뤄져야 합니다. 당분간의 역사발전은 전적으로 여기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가급적 많은 이들이 수행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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