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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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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8 14:20 실체,영성,현대인

필자가 확인한 세상

일상 삶의 세계는 마음과 오감을 통해 다가오며 그 결과 영적 각성과 발전을 통해 재맥락화할 수 있는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뿐 아니라 끌리는 것과 비호감인 것이 생겨난다. 구도자가 분투노력할 일은 본질과 지각을 구분하고 주관적 체험으로 확인한 것과 단순한 마음작용을 구분하는 것이다. 보여지는 세상은 감정으로(마음으로) 처리한 산물이며 그 결과 추상적 의미가 발생한다. 이미 기술했듯이 사람들이 세상을 보고 체험하는 것은 그 사람의 지배적인 의식 수준을 반영한 것이다.


모든 이름짓기와 억측 그리고 투사를 제거하면 진실로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그저 '있는 그대로'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반조해보면 '있는 그대로'의 것이, 형용사와 서술적 개념화가 필요 없는 정확히 그 존재의 '의미'다. 데카르트의 '있는 그대로의 세계(레스 엑스테르나)'와 감지된 세계(레스 인테르나)'의 범주가, 모든 진술이 그저 묘사하려는 실체와 관련이 없다는 것이 이해되는 과정에 의해서 사라진다.


근원적으로 말하면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의 상태일 뿐이며 모든 제시된 의미나 묘사는 외재적이고 덧붙여진 투사물이며 지각된 것이며 마음의 작용인 것이다. 투사된 묘사, 가치 및 의미를 벗겨내면 세상은 진화(창조)의 본질인 신성의 분출이다. 만유의 완전성이 빛을 방사하고 모든 것은 오직 자기 존재 덕분에 그 핵심을 완전히 표현하고 성취한 상태다.


세상은 있는 그대로 근원적으로 '영적으로' 완전하며 따라서 그 자체로, 의지라는 영적 능력을 통해 선업을 쌓고 업장(악업)을 해소하기 위한 최적의 기회를 부여받기 때문에 인간 의식 향상에 최대한의 이로움을 준다. 이렇게 보면 일견 고통을 수반하는 부정적 체험에 대해 인내할 뿐 아니라 감사하게 된다.


기초적 실체를 이해하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근원적 현존과 실체(즉 그에 의존해서 모든 것이 주부나 술부 없이 오직 '그것'일 수 있는)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달려 있다. 이들 문장들이 전반적으로 췌언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 안에 해방을 가져오는 깨달음이 존재한다.


무언가가 '의미하는' 바는 '있는 그대로'와 동일하다. 왜냐하면 있는 그대로의 것이 바로 그것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깨달으면 세상의 본질이 신성의 계시로 방사됨과 더불어 비추며 모든 것이 똑같이 사랑스럽고 완전하며 장엄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보인다. 재론하자면 의지로써 영적인 선택을 하는 과정을 거쳐 선업을 쌓고 업장을 해소할 최대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세상은 있는 그대로 인간 의식의 향상을 위해 완전하다. 그렇게 본다면 일견 고통을 수반하는 부정적 체험을 인내할 뿐 아니라 감사하게 된다.


'영적'이란 것은 인간의 지향이 영적 목적, 의미 및 인생사와 체험을 영적으로 재맥락화 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자신의 생명은 물론 다른 중생의 생명을 선물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 영적 지향 자체가,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 모든 생명을 재맥락화하며 그로써 의미와 시사점이 뚜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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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7.04.07 08:26 실체,영성,현대인

세계관

다음은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다.

  1.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희귀하고 운좋은 일이며 선업(善業)의 결과다.
  2. 세상은 환상의 질곡이다. 따라서 세상의 선형적, 감정적 성질에 집착하지 않을 때 구원이 가능하다.
  3. 오감으로 파악한 세상은 인간 의식의 투사 결과이며 따라서 심리검사에 사용하는 로르샤흐 카드와 비슷하다.
  4. 세상의 참 실체는 인간 지능의 한계 때문에 알 수 없다.
  5. 세상은 희극이며 비극이고 정치적 게임판 등등이다.
  6. 이곳은 고생과 고통으로 된 연옥과 같은 세상이다. 따라서 천국을 찾아야 한다.
  7. 세상은 업장(또는 악업, bad karma)을 해소하고 영적 공덕을 쌓음으로써 최대한의 영적 성장 및 진화를 이룰 수 있는 희귀한 기회다.
  8. 세상은 감각으로 된 무의미한 만화경이며 무슨 의미든지 순전히 투사(投射)일 뿐이다.
  9. 세상은 어리석은 희극이 벌어지는 무대다.
  10. 세상과 인간 삶은 호기심의 유혹에 굴복하고 불순종한 때문에 아담과 이브가 타락한 결과다. 따라서 삶은 원죄에 대한 참회다.
  11. 세상과 인간은 신이 창조했으며 따라서 신적인 것이고 근원적으로 거룩하다.
  12. 세상은 그저 물질 우주의 물질적 산물일 뿐이다.
  13. 생명과 인간은 순전히 다윈의 생물 진화의 우연한 산물일 뿐이다(기계적 환원론). 생존은 적자생존에 의한 자연선택의 결과다.
  14. 세상과 우주는 에고가 신에게서 떨어지기 위해 만들어진 지나가는 환상일 뿐이다.
  15. 인간 생명은 신성이 무한한 잠재력을 구현해내는 신 의지의 표현이다.
  16. 인간은 별에서 기원하며 하늘에서 떨어졌다.
  17. 인간은 원숭이에 기원한다.
  18. 세상과 지상 삶은 인간의 모습을 한 의식이 그 동물적 기원에서 시작해서 영적 깨달음과 구원에 이르기까지의 진화를 위한 최적의 장소다. 따라서 인간은 동물과 천사를 잇는 가교다.
  19. 세상과 거기에서의 인간 삶은 많은 차원 가운데 단 하나의 차원일 뿐이다.
  20. 세상은 선형과 비선형이 융합된 것이며 실상 시간과 인과 차원 밖에 존재한다.
  21. 세상은, 생명이란 선물을 현존을 통해서 제공하며 그에 의해서 의식은 체험을 하며 존재 능력과 알아채는 능력이 나오는 궁극의 실체로 구체화한다.
  22. 인간 생명에서 야기된 영적 진화로써 궁극적으로 신성이 '근원'임을 인간이 깨닫는다. 그리하여 에고(소아)를 포기하면 신의 실체가 참나(내재하는 신)로 드러나고 주관적으로 체험되는 영적 각성이 일어난다.
  23. 세상에 대한 재맥락화 작업은 삶이 오직 주관적 체험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억측에 기반한 마음의 작용일 뿐이다.
  24. 인간은 사람과[課] 동물이 고도로 진화한 것일 뿐이며 따라서 그저 생물학적 종에 지나지 않으며 영성이란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25. 사람은 환경적 재앙이다. 조속히 자멸하여 세상을 자연에 되돌릴수록 더 좋다.
  26. 인류는 생물학적으로(사회적으로) 진화라는 학습 곡선 위에 존재한다.
  27. '의미'란 근원적 실체가 없는 의미론상(언어상) 구조물일 뿐이다.
  28. "나는 내가 보는 세계를 꾸며낸다."
  29. 세상을 구하려고 해봐야 소용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30. 세상은 구원을 위한 기회의 땅이다.
  31. 세상에 대한 사람의 지각은 관찰자의 의식수준의 결과다.
  32. 인간 세상은 영적 병원이자 재활치료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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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7.04.06 12:02 실체,영성,현대인

도입

높은 수준의 의식에 도달하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내면과 외면에서 나오기 때문에 매우 많다. 따라서 보통 사람의 의식 수준은 (통계상 평균으로) 일생에 걸쳐 대략 5 내지 7정도 오른다. 인류 전체의 의식 수준 진화는 똑같이 느리며 수세기 동안 정체하거나 심지어 요동을 칠 수 있으며 2006년에 그랬던 것처럼 하락하기도 한다(207에서 204로 됨).

영적 수행자의 진보는 지향과 영적 일치 덕분에 매우 빠를 수 있다. 이제 의식 조사 결과 이용할 수 있는 정보 덕에 깨달음에 이를 확률은 1000% 커졌다. 사실 의식 조사의 출현은 인류 의식 진화의 결과다.


자아의 내면에서부터, 에고의 타고난 바탕과 움직임 때문에 영적 '실체'를 찾으려는 노력은 강한 저항을 받는다. 게다가 마음의 바탕은 순진하고 어린애와 같아서, 정보의 진실성과 거짓됨을 분간할 수 있는 방벽이 없기에 잘못된 생각에 물들기 쉽다. 그리하여 에고는 그러한 과업을 할 수 '있다'는 환상으로 눈이 먼다. 마음은 역설적이게도 무능하고 과실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겸손이 없다면 소아의 태생적 교만함이 의미심장한 사건이나 카르마상 행운에 밀려날 때까지 영적 진화는 정체 상태에 놓인다.


인간 마음 자체가 가지는 근원적이고 태생적인 한계를 제외하고도 미디어를 비롯한 다양한 차원에서 지속적인 정보 유입이 있는 세상에서 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이 있다. 다양한 차원 가운데에는 생물학적(육체적), 감정적(심리적), 정신적(개념적) 및 영적(맥락적) 차원도 있다. 우리가 체험하는 세상은 끊임없이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제한된 시간틀이라는 압력이 있고 그 안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선택지와 대안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갈등의 장이기도 하다.


일부 수행자는 세상을 떠나 영적 공동체라는 안전한 도피처로 가지만 여전히 책임과 일로 가득한 일상의 세계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영적 진화에 몰입하는 어려운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대부분의 구도자는 그런 길을 택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일은 다음과 같은 특정한 태도와 지각 방식을 인식함으로써 크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세상이란?

세상이 '실재'인지 아니면 '환상'인지 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철학자들의 과제였지만 아무도 근원적 실체와 인간 의식 자체에 기반한 설명이 없기 때문에 실용적이고 만족스런 해답을 사실상 내놓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세상은 존재조차 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을 바꾸려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다."라는 말은 의식 수준 700으로 진실하지만 보통 사람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와 비슷하게 "세상을 가벼운 겉옷처럼 걸치고 있어라." (성 아시시의 프란시스코)는 것도 맞지만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


(예수 그리스도, 붓다, 크리슈나,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인간의 주된 과오가 '무지'라는 것인데 무지가 태생적인지 아니면 도덕, 고집, 생물학적 운명, 카르마적 한계 아니면 과오에 빠지는 근원적 성향 때문인지는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합당한 답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세상이라 할 때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즉 (1) 실체(본성)로서 있는 그대로의 세계(데카르트의 렉스 엑스테르나[엑스텐사]), (2) 인간 마음이 감지하고 관찰하고 바라보고 해석한 바의 세계(데카르트의 레스 코기탄스[인테르나]). 세계에 대한 경험적 해석에 더하여 뉴턴 물리학과 양자 역학적 해석이 있다.


형이상학, 존재론, 신학 등을 비롯해서 다양한 철학에서 수 세기에 걸쳐 세상에 대한 해석을 내어놓았다. 오늘날 미디어가 비춰주고 해석하는 세상도 있는데 그것은 감각이 처리한 것들이다. 소크라테스와 데카르트 등이 인간의 난관에 대해 분명히 밝히긴 했지만 그 갈등을 해결하는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 갈등은 세속주의 대 신앙을 비롯하여 세계관의 적합한 일치에 관한 정치적 토론과 논쟁적인 스콥스 재판에서 잘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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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7.04.05 17:38 실체,영성,현대인

융합

명상과 관상은 분리되어 있지도 않고 별개의 활동인 것도 아니다. 다만 마치 서로 다른 연구 주제인 듯 편의를 위해 나누어질 뿐이다. 실천상으로는 서로 섞여서 습관이 되는 의식 형태로 발전한다. 양자의 강조점은 비언어적, 주관적, 비선형적 맥락이며 거기에서부터 포괄적 의식의 장인, 궁극의 앎 자체에 대한 인식이 나온다. 마음이 인식하는 내용물에서부터, 본다는 것이 저절로 일어나는 자동적인 현상이라는 깨달음으로 바뀌는 것은 비교적 간단한 일이다.


의식 조사로 확인되었을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가르쳐진 바대로 영적 진보와 명상 및 관상의 실천에, 위대한 스승의 기운에서 나오는 고주파 에너지 장의 도움이 더해진다. 이것은 스승의 글을 읽는 것, 스승의 영상을 시각화하는 것, 그리고 아주 강력한 것으로는 스승의 기운 안에서 물리적으로 직접 함께함으로써 이뤄질 수 있다. 이어서 이 에너지 주파수는 당사자의 영이 존재하는 기운 안에 영원히 통합되어 아주 방대한 기간에 걸쳐 있었던 여러 번의 환생에서 지속된다. 그 목적은 계시가 고요히 펼쳐지는 것인데 이는 진화한 의식 상태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런 상태들은 비개념적이고 비선형적이다. 


의식이 매우 향상된 상태에서는 더 이상 기억이나 마음작용이 없다. 고요한 무(無)처럼 여겨지는 것에서 에고(소아)의 과거 유물을 포기할 수 있게 하는 앎이 생겨난다. 이어서 인격이나 분리된 정체성이 아니라 하나의 '상태'나 '조건'이 들어선다.


요약

명상과 관상을 실천하고 진리와 검증된 가르침에 따르면서, 신의 의지에 맞추고 신과 합일하기를 바라고 몸바치면 앞선 스승의 에너지 장이 도움을 주고 드디어는 의식이 예기치 않게 크게 도약할 수 있다. 그래서 미리 이런 지식을 갖출 필요가 있다. 오늘날 깨달음에 이를 확률은 과거보다 천배 이상 커졌다. 그래서 무조건적인 사랑(지수 540)에 도달하는 것은 매우 목표 삼을 만하고 실질적인 목표다. 이 수준부터는 가는 길이 환희에 차게 된다. 600 수준이 되면 무한하고 고요한 정적과 평화를 만나고 진보하는데 신의 의지와 카르마와 잠재하던 계시(Knowingness)가 영적 기운 속에서 드러난다.


고요한 세계

에고(마음)는 마음의 선형적 내용물과 영상, 생각, 기억, 느낌 등을 쉬지 않고 처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에고는 문제 해결과 미리미리 하는 준비를 통하여 걱정을 줄이는 일뿐 아니라 새로운 것에 이끌린다. 손실이나 죄의식에 대한 슬픔과 실수와 과오에 대한 후회 같은 부정적 감정이 지배할 수도 있다. 종종 의지력이 약한 듯하고 끝없는 고문의 희생자처럼 느낄 수도 있다. 마음의 끝없는 방황을 막기 위해서는 그 숨겨진 동기를 찾아내서 환상에 불과한 이득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저항보다 승복을 통해서 마음이 통제하는 듯한 환상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에고는 그 반대되는 것에 저항하더라도 자기만의 연이어진 마음 작용에 푹 빠지게 된다. 에고는 부정적 생각과 느낌을 처리하는 일에서 만족을 구한다. 에고는 증오를 사랑하고 즐긴다. 왜냐하면 텔레비전의 '비호감' 연예인에게서 보듯이 그것이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포기하고 그만두어야 할 것은 이러한 만족과 은밀한 이득이다. 모든 부정적 감정은 그 숨겨진 이익이 있기 때문에 지속되는 것이다. 이러한 '에고의 달콤함'을 거부하면 생각은 줄어들다가 사라진다. 이어서 마음은 '멍때리는' 경향이 있는데 그로 인해 권태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다. 


관찰해보면 마음은 미래를 내다보느라 바쁘거나(두려움), 과거에 매어달리거나(후회, 증오, 죄의식) 아니면 과거를 되살려 쾌락을 쥐어짠다. 그리하여 마음은 무언가 '하는 것'을 즐거움 삼는 진원지가 된다.


생각 '사이에' 접할 수 있는 고요가 있다고 일반적으로 믿어지는 반면 연습해보면 이것이 체험적으로 사실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생각은 1/10,000초 안에 일어나며 그것은 마음의 '지각' 기능보다 빠른 시간이다. 그리하여 마음이 생각의 시초를 인식할 때면 그것은 이미 처리중인 상태다. 지각(처리) 기능 이전에 관찰자(목격자) 기능이 있다. 그런데 이 기능은 의식 자체의 장이 가지는 비독자적 기능(측면)이며 태생적으로 자동적인 작용이다. 관찰자(목격자)도 생각하지 않고 의식 자체도 생각하는 게 아니다(오직 마음만이 '생각한다'.) 순수한 의식의 인식 기능은 언제나 존재하고 의지와 관계 없으며 말로 할 수 없는 고요한 원시 상태다. 


관상(명상)에서 고요하고 형상이 없는 상태를 만나는데 그것은 존재 대 비존재의 이원성을 뛰어넘는 원시 상태다. 그것은 일시적인 내용물들로 더럽혀지지 않은 허공과 같다. 그 순수하고 형체없는 고요함이 바로 '궁극적 맥락'이며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엇으로서, 역사적으로 종종 '불성'이라 불렸다. 비록 형체가 없지만 그 궁극적 상태는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것이 아니라 만유(萬有)로서 모든 것을 담고 있다(지수 850). 이상은 의식 수준을 넘어서와 신의 현존 발견(번역서명 - 내 안의 참나를 만나다)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제15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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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연구주제로서 명상에 관한 입수가능한 정보는 광범위하며 틀에 박히고 부차적인 장식적 요소를 포함하여 복잡다기해질 수 있다. 하지만 명상은 주관적이고 체험적인 계시를 통해 영적 진리에 접근할 수 있게 해 주는 유서깊은 수단이다. 그것을 통하여 의식이 매우 크게 도약하고 의식 수준이 급작스럽게 초월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주지하듯이 다양한 문화와 종교에서 수 세기에 걸쳐 수많은 명상 방법이 진화했다. 나아가 뇌파의 주파수에 관한 EEG 연구와 함께 변성된 뇌생리와 자기(磁氣) 영상에 관한 많은 과학적 연구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들 연구는 알파파는 물론 빠른 베타파를 대체하는 느린 세타파의 발생 및 주파수와 진폭이 느려지는 현상을 밝힌다.


명상기법에는 시각화기법, 호흡, 자세요소를 비롯한 선(禪)과 다양한 요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정식 훈련 기법과 형식(이들은 차크라를 따라 올라가는 쿤달리니 영적 에너지 흐름을 돕도록 짜여진 것임)이 포함된다. 그러나 이러한 훈련들로 인해 의식 측정 수준이 그만큼 상승하는 커다란 유익을 얻을 수 있다. 그리하여 삼매 체험이 일상생활의 재개로 사라지긴 하지만 일시적으로 절정에 이를 수도 있다.


의식 자체의 관점에서 보면 그 과정은 소아의 감각을, 선형적 마음 작용과 감각적 기능에서 벗어나게 하여 점차 좀더 광범위하고 맥락적이게 하며 생각, 이미지, 감정 등의 끌림을 초월하게 하는 과정의 하나다. 이때 추구되는 것은 주관적 깨달음이며 (그로부터 존재가 출현하는 의식의 빛이자 기층인) 의식의 비선형적 맥락의 장과 일치하는 것이다(참조, 나; 실체와 주관성, 번역서명 호모스피리투스 - 역주).


명상에서 얻는 혜택의 하나는, 마음의 에너지 장에는 기본적으로 생각, 감정 및 영상이 존재하지 않으며 이런 활동은 실제 마음의 장 전체에서 약 1%정도밖에 차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점이다. 파도 밑의 바다처럼 마음의 99%는 움직이지 않으며 고요하고 비어 있어서 이러한 사실을 구도자에게 알려주면 감지할 수 있다. 훈련되지 않은 사람은, 이러한 활동이 미묘하게 자기애적 보상이 있기 때문에 만화경처럼 전시되는 생각, 영상, 느낌 등의 마음의 살아 있는 내용물에 끌리고 매혹된다. 마음을 침묵케 하려면 그 미묘하고 계속되는 보상을 주목하고 이러한 환상에서 오는 이득을 기꺼이 포기하고 그 대신 마음을, 소아에 제한되지 않는 고요한 에너지 장과 동일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에고는 마음의 작용에 집착하며 거기에 부정적인 게 있어도 그것을 계속 즐기고 되풀이한다는 점을 주목하시라.


몸을 가진 '나'라는 것이 카메라처럼 영상과 객체를 등록하듯이 마음은 소아의 '나'로서 하나의 독특하고 분리된 개인적 정체성을 가지고 생각, 의도, 욕망 등의 원천이 되는 것이라는 환상을 지속하는 것이다. 이런 자기애적 환상을 포기함으로써 개인적 삶이라고 여겨지는 것의 모든 측면이 실은 저절로 발생하는 것임이 자명해진다.


상당한 진전이 이뤄지면 죽음의 두려움이나 '무'가 되어 사라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길 수 있다. 이것은 주권을 지키려는 에고의 자기애적 중핵이 저항하고 투쟁하는 상태다. 다른 두려움처럼 이 두려움은 환상에 기반하기 때문에 그것을 신에게 바치는 것이 안전하며 그렇게 하면 내재하는 신의 현존인 참나를 깨닫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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