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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불선과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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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2 07:53 실체,영성,현대인

도입

앞서 쓴 것과 강의한 모든 것의 의도는 깨달음과 영적 진리의 발견으로 가기 위한 의식 진화의 원칙을 실제로 적용하는 방법을 제공하는 데 있었다. 따라서 그 모든 저술은 신에게 바쳐진 것이며 궁극의 실체이자 생명과 존재의 근원인 신성을 발견하는 데 바친 것이었다.


이러한 지향을 확고히 하기 위해 책마다 "하늘 높은 곳에는 신께 영광!"이란 구절로 시작하고 끝맺었다.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 모든 책의 진리수준과 의식수준 측정치를 남겼다.


발간된 책들의 목적은 전반적인 조사와 연구 성과에 따른 것이며 주관성과 객관성의 통합을 촉진하는 새로운 연구 방식을 점진적으로 제시한 바에 따른 것이다. 새로운 발견을 접하고 그것을 적절히 재맥락화하는 일이 주관적으로 변형력이 있다는 게 확인되었다.

의식을 이해함으로써 영적 진화를 촉진시켜주는 노선이 드러나며 과거와 현재의 영적 진리를 즉각 확인할 수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학인과 수행자들은 오직 풍문, 평판이나 해당 문화에서 확인된 것에만 의존하던 과거 사람들을 훨씬 뛰어넘을 만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다.


나침반이 없이는 인간 의식 진화가 가진 한계 때문에 역사적을 과오를 면할 수 없었다. 이제 그 어떤 가르침, 스승 및 종교적 영적 전통이든 진실을 가리는 바로 이용할 도구가 있기 때문에 그런 과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의식 측정 조사의 핵심 가치는 그것으로 본질과 외양을 분별하고 나아가 진실과 거짓(환상)을 분별한다는 점에 있다.


역사적 검토: 개괄

영적-종교적 실체와 진실에 대한 연구 조사법의 출현은 그 자체로 실용적 가치를 갖는다. 조사방법에 의해서 전에는 결코 가능하지 않았던 정보 영역을 열어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임상적 조사법의 요점은 조사 대상의 외양보다는 그 본질의 진실성과 의식의 수준에 의해서 생리적 반응이 결정된다는 데에 있다(최근 조사에서는 자연적인 동공반응에 의해서도 확인된다고 함 [Davis, 2007]). 꽤 진보한 영적 구도자의 경우 부정적 자극(예, 형광등, 농약 및 인조 조미료)에는 반응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한 관찰 때문에 실험집단을 정식 영적 연구과정(기적수업 워크북) 시작 전에 측정해서 기록하고 나서 주기적으로 다시 측정했다. 그 결과 실험집단이 그 과정을 약 3개월 마친 후에 보니 부정적 자극에 반응하지 않게 된 것이 밝혀졌다(이 점은 다른 진실한 영적 수련 과정에도 적용됨).


생리적 실험에 대한 이러한 반응은 지배적인 의식수준 자체가 결정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 반응을 기록하기 위하여 1에서 1,000까지 의식 지수에 대하여 임의의 숫자를 사용하였으나 숫자가 가파르게 늘어나서 실용적이지 못한 것을 금방 알았다. 따라서 상향하는 의식 에너지의 상대적 힘을 표시하기 위해 로그 함수가 더 낫다는 것을 알았다. 1에서 1,000에 걸친 척도에는 모든 확률수준과 생명 형태가 포함되는데 거기에 모든 잠재성을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실용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설계했다.


세계적으로 위대한 화신, 즉 예수 그리스도, 붓다, 크리슈나 및 조로아스터를 측정한 결과 최고 수준의 의식을 1,000으로 정했다. 이어서 200 미만은 거짓이며 200 이상은 진실도가 점점 상승하는 것이라는 결정적 발견에 이르렀다. 이 구분은 또 (200 미만의) 완력과 (200 이상의) 권능을 표시하였다.


이어 30년간 진실도와 영적 실체의 수준을 식별하는 일에 중점을 두어 인간 삶의 모든 분야에 대해 지속적으로 조사했다. 그리하여 임상적 조사의 결과에서 나온 실체에 관한 스펙트럼과 범례를 추출했는데 이것들은 깨달은 현자들의 아주 고매한 영적 상태를 비롯해서 인간 역사에 드러난 체험은 물론 의식 수준에 관련된 것이었다.


의식 조사를 삶의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하는 일은 수십년 간 진행되었고 세계적으로 수많은 독립적 연구자와 스터디 그룹의 참여가 있었다. 거기에서 나온 결과 덕분에 방대한 시간과 심지어 시간이란 환상을 넘는 존재의 모든 국면에 대한 조사가 촉진되었다. 여기에서 진실에 관한 모든 진술은 특정한 맥락 안에서만 진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인간 역사에서 처음으로 확증할 수 있는 진실을 알아보는 방법론이 생긴 것이다.


궁극의 맥락은 개념화된 시간이나 장소를 초월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조사할 수 있는 영역은 무제한하다. 그 결과는 가장 시시한 듯한 것에서부터 가장 숭고한 영적 인식과 깨달음의 수준까지 펼쳐져 있다. 진실을 확인할 수 있고 그 진실성을 분별할 수 있다는 것은 인류에게 유용한 새로운 지식체가 출현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인류 의식은 1980년대 말에 겨우 200 수준을 넘어 204로 상승했다. 이러한 결과 자체가 인간 진화의 새로운 시대가 개막되었음(즉 호모 스피리투스의 출현[나: 실체와 주관성 - 번역서명 호모스피리투스] 참조)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리하여 진실 자체뿐 아니라 시공을 초월하여 어느 곳에 있는 어떤 사안이든지 진실성의 정도를 순식간에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조사방법을 개발한 동일한 시기에 우주에 관한 패러다임을 확장시켜준 양자역학과 양자 물리학의 진보가 있었다는 것은 뜻밖의 행운이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의 발견과 서술이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어 의식 자체가 선형과 비선형 간에 그리고 이성과 신앙 간에 가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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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7.04.21 07:50 실체,영성,현대인

도덕과 창조

모든 종(種)은 고통과 이익을 체험한 결과이기도 한 그 자신만의 태생적 '도덕'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옳음 대 그름'은 이제는 과학에서조차 뇌 신경계에 새겨진 생물학적 특성으로 전제하는 듯하다. 그러한 '도덕적' 행위는 늑대 떼, 돌고래 떼, 코끼리와 원숭이 집단에서 발견된다. 낮은 수준에서라도 옳고 그름은 공격, 집단에서의 추방, 지배와 종속 및 우두머리 수컷이나 암컷의 지배 등에서 드러난다.


파블로프의 조건반사라는 간단한 법칙에 의해서 유기체는 통하는 것과 통하지 않는 것을 배운다. 이러한 정보는 끌개 에너지 장 안에 모아져서 내면화되고 신경 시스템 안에 저장된다(Bird, 2006). 동물이라도 '속이는' 놈은 단호히 추방되고 징벌되거나 무리에서 쫓겨난다. 그리하여 감각이 있는 존재는 옳고 그름의 구분이 필수적이며 종국에는 지배적인 것이 되는 방식으로 창조된다고 추론할 수 있다.


뇌의 되비추는(mirroring) 능력을 발견한 것은 엄청 흥미있는 일이다(Medina, 2007). 포유류는 다른 동물의 행동을 관찰한 결과 상호간 감정과 의도를 직관한다. 이것이 사회화와 공감의 기초적 기제가 된다. 마카크 원숭이 실험에서의 매우 중요한 체험에서 보면 원숭이는 먹이를 취하는 과정에서 이웃 우리의 다른 원숭이에게 고통을 줄 경우 그것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이 실험은 다른 사람을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이기적 소득을 추구하는 매우 이기적인 인간 행동에 수치를 안기는 듯하다.


이러한 전반적 맥락 안에서 보면 개인의 욕망과 선택을 충족하는 데는 허용범위와 영역이 있으나 그마저도 확인가능한 한계와 조건이란 맥락 안에서만 합당하다. 그리하여 생물학적으로 도덕과 윤리는 의식과 인간의 인식이 깨달음에 이르려는 목표에로 진보해가는 것에는 물론이고 생존에도 도움이 된다.


신앙과 이성의 통합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엄청난 연구 끝에 계시종교뿐 아니라 이성과 신학 사이에 근원적 갈등은 없으며 오히려 상호 강화하며 서로 돕는다고 밝혔다. 영적 에너지를 받으면 영적 이해력을 통해서 이성과 신앙의 통합이 이뤄진다. 이것은 내용의 실체를 설명하는 맥락이 확장된 결과로서의 의식 수준에 따른 것이다.


의식의 에너지 장은 상호작용하는 유력한 장('끌개')과 같은데 이들은 점차 커지는 중력장 안에 있는 보다 작은 장들에 비유할 수 있다. 소규모 장들은 상호 영향에 의해서 공조하기 쉽다. 작은 것이 큰 것의 진동 유형에 맞추어 차례로 영향을 준다. 나아가 그 유형과 상호작용은 에너지 장의 조화에 의해서 더욱 화합하고 그 에너지 장은 다시 아주 높은 범위에서 복잡성을 확대한다. 이러한 유기체가 최근의 신경 생리학 연구에서 확인되었다(Medina, 2006).


이러한 설명은 자유의지의 작용 대 결정론 주장 간의 대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선택지를 취하거나 거부하게 하는 유형과 성향(이들은 카르마적으로 습득한 것임)과 상호작용하는 지향이 가지는 영향을 밝혀준다. 한가지 선택지를 자주 선택할수록 미래에 다시 그것을 택할 가능성은 커진다. 이것은 양자 역학('양자 제논 효과')과 확률론에서도 관찰되는데 일상생활에서는 '습관'이나 '성격형성'이라고 한다. 이러한 선택 효과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온전한 진리를 택함으로써 그보다 못한 선택지를 택할 가능성은 점차 줄어든다("불쏘시개 효과"; Medina, 2006).


의식 측정은 지배적인 에너지 장을 가리키는 숫자를 내어놓는데 이 에너지 장이 지각을 결정한다. 이해력이 진보함에 따라 모아진 정보는 지혜로 일컬어진다. 신앙과 이성이 통합되면 의식의 특정 에너지 장에 부합하게 된다. 의미와 시사점에서 나온 것의 본질은 그 본질에 부합하는 영적 직관으로 귀결되고 이때 그 본질은 고전적으로 영적 통찰로 불린다(에테르체의 차크라에서 '제3의 눈이 열림'[지수 600]).


도덕성은 복잡하고 다양한 요인이 통합되어 집합적으로 '인격'이라는 말로 포섭되는 바의 행동, 인식 및 의사결정에 있어 습관적 양식이 된다. 영적 지향은  체험을 다시 맥락화하며 이어서 가치와 목표뿐 아니라 생활양식과 선호를 조화시키는 데 있어 지배적 역할을 한다. 그때 우리는 삶의 희생자가 아니라 수혜자가 된다. [제18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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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7.04.19 07:12 실체,영성,현대인

이성과 신앙: 조화

이미 진술했듯이 이성은 논리의 합리적 추론과 확고한 정의에 따라 구체적 선형적 표상 및 사실을 다룬다. 이러한 과정에 따라 전제에서 나온 결과인 확인가능한 결론이 나온다. 수학법칙처럼 논리의 법칙은 유동적이거나 개인적 왜곡에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엄격하고 선형 법칙에 따른다. 따라서 '통계적 적합도'라는 요구조건이 추가로 필요한데 그 의미는 표상들이 동일한 추상 수준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가지 주제는 특정한 수준의 추상화나 범주, 분류, 종, 과에 제한되어 그에 따라 특정 사례로 한정된다. 예를 들어 이성에 따르면 새가 단 하나의 날개 달린 동물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추상화수준을 속여 기초적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은, 고전적으로 '수사학(修辭學)' (지수 180)이라고 부른 수준으로 이성을 타락시키고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수사학은 이기적 이익을 위해 기본 원칙을 파괴하는 특징이 있다. 이성의 한계와 규칙 안에서 명제는 반드시 입증가능해야 한다. 거짓은 저차원 의식을 가리키며 진실성이나 지성을 결한 것일 뿐 아니라 그것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이성은 그것만의 영역에서는 매우 실용적이고 유익하지만 주로 선형적 영역에 국한된다(지수 400). 따라서 논리에는 사실적이고 유익한 정보가 더해지지만 그 자체로 완전한 의미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선형성'이란 사실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확인해주는 특성을 가리키는 반면 '의미'란 본질과 맥락의 결과인 것이다. 본질과 적절한 맥락을 분별하는 이러한 능력은 세계 인구의 대략 85%(미국인의 55%)에게는 결여되거나 퇴화한 상태다. 따라서 똑같은 사안이 200 이상과 미만의 사람들 간에는 아주 다르게 보이고 해석된다. 예를 들어 200 미만에서는 '힘이 정의다'라는 개념이 수용되지만 200 이상에서는 '힘'이 제약이고 책임임을 의미한다.


맥락에 있어 중요한 것은 가치판단을 비롯해서 지향, 동기, 전제 및 추상화 등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지배적 조건, 환경, 타이밍 등이다. 그리하여 개인이 꽤 높은 의식 수준에 이르지 않는 한 진짜 '아는' 것은 사실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의식 수준의 측정은 특정 에너지 끌개장과 관련한 근원적 실체를 밝히는 것이기 때문에 지극히 큰 가치를 가진다.


영적 시야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주목했듯이 이성(선형 내용물)에는 신앙과 기도에서 나오는 영적 에너지에 비추어 보는 게 필요하며 그때 비로소 의미와 시사점이 드러난다(비선형 맥락의 도움에 의해서 그렇게 됨). 그리하여 마침내 주관적 체험과 영적 인식에 의해서 분별과 완전한 평가가 가능해진다.


영적 인식과 이해력을 얻었는지는 그 자체로는 '입증'할 수 없지만 의식 측정 기법으로는 검증할 수 있다. '세상은 있는 그대로 완전하다.'는 것은 높은 의식 수준에서는 자명하지만 가설적 이상에 매여 있는 낮은 수준에서는 거짓으로 들린다.


강의에서 많은 목격자와 참여자 앞에서 탐구했던 바와 같이 이 세상은, 의식 진화를 돕고 카르마상 최대의 혜택을 부여하는 수많은 선택지를 통해서, 최대한의 영적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을 거듭해서 확인하였다. 개인적 의견을 초월하면 각 순간은 완전한 것으로 목격하고 관찰할 수 있다(즉 겉보기에 좌절이나 비극인 것 안에 숨겨진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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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7.04.18 11:09 실체,영성,현대인

'주의'의 힘

의식조사에 의하면 무슨무슨 '주의'는 190으로 측정되며 그 주장자들이 도덕적 우위를 뽐내는 바의 지배적이며 정치색을 띤 감정적 신앙이 되면 그 지식 체계나 일단의 전제들은 타락한 것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하여 '근본주의'가 서로다른 색채와 의미를 가지는 반면 '근본적'이라는 것은 한 가지를 의미한다. 과학조차도 일단 '과학주의'가 되면 덜 온전해진다(예 환경보호주의나 유물론적 환원주의). 일단 신앙 체계가 '주의'가 되면 전교를 하고 개종자를 찾게 된다. 도덕적 우월성은 에고의 자기애적 중핵에게 '특별함'이라는 지위와 그에 맞는 과장된 언외의 힘을 부여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변성 의식 상태를 유도함으로써 소위 싯디의 과대포장된 면을 얻기 위해 '손님을 끄는' 소위 연수(지수 200)라는 유혹에 덧붙여진 특별한 '힘'을 얻는 것이 영적 에고에 매혹적이다. 또 '비법', 'UFO', '신비', '고대' 가르침 같은 모호한 명칭('비전' [지수 160]이란 말로 더욱 과대 포장된다.)뿐 아니라 밀교적이라는 미화되고 마술적인 유혹도 있다.


'밀교와 신비'는 엄청난 돈이 들고 변성 의식이나 특별한 '축복'을 얻는 연수는 수천이나 수만 달러 이상을 요구하는 반면 높은 지수로 측정되는 온전한 영적 가르침은 무료이고 다 드러나 있다.


물론 마법적 비밀 의식, 주문, 제사 등의 유혹은 어린이의 상상력 풍부한 순진함을 향한 것이다. 이것은 해리포터 책의 인기로 증명되는데 그 책들은 신비하고 마술적인 힘들을 매력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와 똑같은 특별함이 채널러, 심령학, 투시, 외계방문자 및 '다른 차원'에서 온 UFO, '미래에서 온 메신저', '사도의 환생' 등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도덕적 우월성으로서 이상주의

'이상적'이라는 것은 그 매력적인 표제에도 불구하고 가설적 의미를 가진다. 인간의 모든 참화는 몇몇 과장된 이념적 '이상'으로서 동력을 얻었다("만물 위의 독일', '노동자여 단결하라, 잃을 것은 속박뿐이다.". "해방전선에 뛰어들라.", '인민 정부를 지지하라.", "인민의 법정" 등등).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와 같은 정치적 표현에서 '주의'란, 구호로서 사용되는 매혹적인 도구여서 단지 반복에 의해서 희생이 기대되고 영웅적인 것(자살 폭탄, 가미가제, 자유의 전사 등)으로 권장되는 종교처럼 된다. 그러한 과시는 균형을 잃은 극단주의의 표지이며 TV 제작을 통해 거창하게 보여줌으로써 자신과 타인, 어린이와 영적 온전성을 희생하도록 권장하고 독려한다.


그러한 '주의' 운동의 뒤에는 대중동원식 과시와 공연식 보여주기의 최면적 도취로 자기애 넘치게 부푼 추종자는 물론 그 지도자의 과대망상이 놓여 있다. 또한 그러한 운동에 모두 공통되는 동력은 도덕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몰아침이다(레닌, 스탈린, 히틀러, 모택동, 폴포트, 아라파트, 빈라덴, 카스트로 및 북한, 남미, 중동[이란] 등의 지도자, 이들 모두 지수 180 이하로 측정됨).


진정한 도덕성

진정한 이성과 신앙처럼 온전한 도덕과 윤리는, 본질이 외양과 사회적 인식을 대체하는 실제적 겸손에 굳게 뿌리내리고 있다. 덕으로서의 도덕성은 기초적 영적 개념에 대한 충실은 물론 타인에 대한 배려, 정직성, 성실성, 책임 등과 같은 인격특성의 윤리성으로 드러난다. 온화하고 애정깊고 도움이 되며 예의바르고 친절하며 사려깊은 것은 목적이라는 깃발을 들거나 남보다 우월하고자 하지 않는다. 도덕성은 이득이나 에고 부풀리기보다는 그 자체의 목적을 위하여 세상에서 겸손하게 처신하는 삶의 방편일 뿐이다. 그에 따른 결과는 내면적이지만 또한 얼마나 행복한지 그리고 실제로 그 바탕에 자아존중감이 있는지 하는 것으로 입증된다.


이러한 성격 특성은 영적 진화와 진보에 필수적인데 후자에는 결단력뿐 아니라 자기수양, 겸손 및 불굴의 정신이 필요하다. 이러한 요소들은 모든 일에서 궁극적으로 삶이란 선물로써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 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인식에 수반되는 기도와 영적 원칙의 실천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것은 무한대의 진실로 측정됨. "머리에 있는 한올의 머리칼까지 셀 것이다."는 것은 진리로 확인된다.)


진정한 도덕성은 교만이 아니라 겸손과 감사, 자비심으로 이어지는데 이러한 요소들로써 결국에는 아름다움, 완전성 및 모든 피조물에 내재하는 거룩함이 계시로 드러난다. 그리하여 "길은 곧고 좁으니...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영적으로 성숙함에 따라 우리는 이번 생이 고귀하며 남보다 우월해지는 일이나 에고를 부풀리는 허영에 찬 환상에 빠지는 일로 낭비하기에는 너무 값지다는 것을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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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7.04.17 07:57 실체,영성,현대인

도덕적 권위: 커다란 갈등(2)

사법부가 인간의 행동이 상징적 언어이고 언론이 자유라고 선언한 만큼 무정부주의가 이 땅의 새로운 법이 되는 게 분명하다. 그리하여 촘스키의 저서(지수 180), 마르쿠제의 저서(지수 150), 푸코의 저서(지수 90) 등이 위대한 성인들(지수 1,000)의 자리를 차지한다. 만일 상대주의가 가르치는 대로 건강성과 정신이상이 근원적 실체가 없는, 그저 언어상 편리한 억압수단이라면 와트 폭동(1965년 LA에서 있었던 흑인 폭동 - 역주), 카트리나 직후의 재난, 바그다드 시내 및 축구장 폭동의 무정부상태에서 드러난 바대로 무정부적 혼란이 하나의 이상이 된다.


도덕적 상대주의가 우월하다고 믿어 그것을 이상화한 것은 '신도덕'이 그저 합리화된 비도덕이라는 게 드러남으로써 무너진다. 역설적으로 자유에 대한 새롭고 확장된 현대적 관점이란, 유명한 1984년(조지 오웰, 1949)에 나오는 바의 '신 언어'와 신사고'에 따라 정당화된 독재적 조치에 의하여 효력을 얻은 것이다. 이러한 예언은 오늘날 대학 캠퍼스의 '사상 경찰', '건강 경찰', '비만아 부모 경찰' 및 '사회적 민감성' 상의 언어 경찰(Ravitch, 2003)로 구현되었다. 그리하여 포스트모던 '도덕'의 자유라는 평판이 대학 합창단에 대한 학생들의 공격에서 드러나듯 자기부정(관용의 횡포, Dierker, 2006)에 의해서 무효화된다. 정치적 편향에 의해서 극좌 '자유주의'가 전제적 통제와 강압이 된다(오늘의 해방자는 내일의 독재자).


신앙과 이성을 부인하면 자유보다 부패와 타락에 이른다는 것은, 미국에서 감옥과 죄수가 넘쳐나는 것과 곳곳에 정신병자와 노숙자가 떼를 이루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도덕적 우월성은 또 모든 전쟁에 존재하는 상대주의이기도 한데 이것들은 이상주의적 합리화를 바탕으로 번창한다. 그리하여 '자유'가 동조자와 지지자에 의한 자기애적 과시뿐 아니라 다투기 좋아하고 퇴행적인 부패 행위에 대한 사이비 도덕적 핑게와 포장이 되고 있다.


샌디에고 대학에서의 24년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학생들의 자기애가 세대를 이어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한다. 대중 미디어의 관심을 갈구하는 것이 실로 거짓 고백, 범죄의 TV 방영, 의도적인 도발, 경찰 행동의 고의적 기획('돌팔매질') 및 '희생자' 시나리오 등과 같은 강박신경증적 극단으로 이끄는 중독의 한 형태다. 미국 정부가 불법이민자를 그 아이들과 가정에서 떼어놓음으로써 지속적으로 냉담한 것으로 보이도록 교묘한 계략에 의해서 고정관념으로 되어 있다. 또 하나 호평받는 구도는 공공연한 성적 행동이나 범죄행동을 '생방송 촬영'하는 등의 노출이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는 여성 선교사를 서서히 참수하거나 어린이가 가득 탄 버스를 폭발시키는 것을 게임처럼 한다. 호전적인 이슬람은 빈라덴이 개인적으로 그러는 것처럼 미디어의 관심을 활용한다.


과도한 찬사를 받는 언론 자유(현재 미국의 지수, 190)라는 도덕적 '우월성'은 그것을 고의적으로 악용함으로써 사회적 자살이라 할 수 있는 양날의 칼이 된다. 즉 언론자유 환경에서 오감의 인식이나 개념에 채색함으로써 본질을 흐리기 위해 모든 것에 정치색을 씌운 결과 학문적 구조는 물론 사회적 구조가 점차 붕괴하고 있다(Krauthammer, 2007). 그러는 동안 사회의 기본 구조가 사실상 경제, 산업, 기업 등의 실용주의(지수 350~380)에 의해 통합되고 나아가 책임, 법적 구조, 합리성 및 의무 등에 의해 강화되었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이제 정부 관료조직이 정치권력 투쟁을 통해 우왕좌왕하는 동안 재난지역에 생필품을 실제 공급하는 것은 월마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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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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