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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운
'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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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9 05:29 그리스도의 편지

사람이 태어날 때, 즉 <생명>이 씨앗 안에서 형체를 취할 때 <그것>은 세상의 다른 모든 개인으로부터 <그것>을 떼어놓는, 인간성을 취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독신으로 만들기 위해, 즉 다른 누구와도 함께하지 않고 홀로 서는 자신만의 인격을 지니게 하기 위해서 <그것>은 자신의 세속적 본성 속 두 가지 강력한 추동력에 복종하여 지배받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단단히 붙들고 원하지 않는 것은 거부하고 밀쳐내기 위해서 말입니다.

인간 내면의 이 두 가지 원초적 추동력이 그가 일생동안 행하는 모든 일의 바닥에 깔려 있어서 인간이 자초하는 문제의 전적인 원인이 됩니다. '아버지'는 인간의 내면에 살아 있지만 <그것>은 그 안에 인간성과 관련된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아무것도 붙잡지 않고 아무것도 거부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저주하지 않고 잘못을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인간이 죄라 부르고 행하는 모든 것은 오직 이 세상의 것일 뿐이며 이 세상 속에서만 벌해집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지상의 존재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아버지로부터 <생명>과 <마음>을 얻어오므로 인간도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통해 창조합니다. 그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고 믿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간이 지나면 유사한 형태를 띠고 그에게로 돌아옵니다. 아버지로부터 내리는 벌은 없습니다. 인류에게 오는 모든 불행은 전적으로 그들 자신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111~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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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8.06.08 06:23 그리스도의 편지

하느님의 방식은 인간 마음이 생각해내거나 꿈꿀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까마득히 초월해 있습니다. 나만이 '우리를 존재케 한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랍비들이 가르치는 그런 종류의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나는 <그것>이 '완벽한 사랑'임을 보았고 그래서 나는 그것을 차라리 '아버지'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마음이 뇌를 통해서 작용한다고 믿습니다. 그러지 않고야 어떻게 육에서 난 뇌가 생각과 느낌과 아이디어와 계획을 만들어낼 수 있겠습니까? 이젠 당신들도 이것이 '아버지'가 만물의 내부에 임재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겠지요. 살아 있는 모든 것의 내부에서 <그것>의 위대한 역사를 해내고 있는 것은 인간 마음 배후에 있는 지휘감독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새든 동물이든 인간이든 간에 그 새끼에 대한 어미 아비의 사랑을 목격합니다. 이 사랑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그것은 우리 안의 '아버지'의 '창조적 마음의 힘'(완벽한 사랑)으로부터 나옵니다. 모든 생명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그 안에서 '아버지'가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108~111쪽) 

-- '마음이 뇌를 통해서 작용한다'는 것은 뇌를 포함한 우리의 감각기관이 자성이 없다는 표현과 같다고 봅니다. 동양 영성은 하느님을 직접 말하지 않지만 이미 창조의 배후에 있는 완벽한 사랑을 알고 있었다고 봅니다. '편지'는 동서 영성은 물론 현대 과학의 성과를 모두 포괄하는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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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8.06.07 07:38 그리스도의 편지

나는 광야에서 겪은 경험을 이야기했다. 아기가 커서 성인이 되는 동안 전혀 부지불식간에 자신을 정신적인 가죽끈과 쇠사슬로 옭아매어 내면의 암흑 속에다 가두고 눈멀게 하여 신으로부터 자신을 차단하는 것을 보았음을 말해주었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스스로 정복자의 억압과 노예생활과 궁핍과 질병에 노출시킨 것임을 설명해주었다. 

나는 말했다. "하느님은 빛이기 때문이다. 또한 빛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의 질료다. 그리고 빛은 사랑이고 사랑은 인간이 즐길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 마음과 가슴과 영혼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오로지 하느님의 법에 따라 사는 이에게 풍요와 건강의 모든 축복이 거저 주어졌다." (101쪽)

-- 그리스도께서 회당에서 처음으로 설교를 한 내용입니다. 즉 이사야 61:1을 읽고 해설한 말씀이라고 합니다. 바이블은 누차 이야기합니다. 가장 먼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만 사는 것이 진정한 해방의 비결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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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8.06.07 06:19 공부의 요령과 요점
중용이 말하는 수도(修道) 라 함은 하늘의 뜻이 새겨진 참나를 따르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을 닦음에 있다는 것이 이기동 선생의 강의에 나옵니다. 이 닦음을 위해 홀로 있을 때 삼가고 명상을 하라는 것이 경(敬)입니다. 한편 대승기신론에서 수행신심분이란 '근본을 믿는 것이니 소위 진여법을 즐겨 생각하기 위한 여섯 가지 실천(6바라밀, 원효 지은 책, 359~412쪽)'을 말하며 이 가운데 두 가지인 지관문을 닦기 위해 고요함(定)에 머무는 일을 핵심으로 합니다.

기독교의 닦음도 제가 자주 인용하는바 마태복음 16장 24절은 '소아의 망실(forgetting)과 그리스도의 실천 이행'이 핵심이며 소아 망실 또는 부인 내지 단절(번역 취지에 따라 이 세 가지 표현이 가능함)을 위해 그리스도처럼 수시로 홀로 명상하고 기도하는 일이 필수입니다. 그렇게 해서 높은 경지에 간 것을 공자님은 종심소욕불유구라 하셨고 선가귀감은 세속을 벗어난 자유로운 사람(出世自由人)이라 합니다.

고금동서 불문하고 닦음에 대한 노하우는 밝혀지지 않은 게 없고 인간의 마음은 다 같다고 볼 때 그 비결이 일치하는 것도 우연이 아닐 겁니다. 기독교의 십자가와 불교의 불상은 닦는 행의 요체 중에 요체를 형상화한 것이므로 믿는 이 모두가 그것을 행한다면 상을 만들어 깨우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스승들이 이것 하나만은 실천하라고 강조한 전통에도 불구하고 하도 실천을 안 하기 때문에 상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보는 겁니다.

어리석은 중생이 경책용인 성상 또는 불상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예식을 만들다 못해 거기에 절하고 향을 피우며 복을 비는 것으로 수행 실천을 갈음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리석은 데다 게으르지만 복은 누리고 싶은 인간이 하는 일 가운데 많은 것이 가치의 경중과 일의 선후가 바뀐 예가 많습니다. 이것이 극단에 이르면 목적과 수단이 바뀌어버립니다. 진정한 해방은 완전히 홀로 고요히 있는 시간에 비례해서 얻어진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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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8.06.06 05:08 그리스도의 편지

내가 광야를 떠나 고향마을 나자렛으로 가는 길로 발을 옮겼을 때 나는 아직도 기운이 충천했고 광야에서 그토록 영광스럽게 계시된 지식으로 기쁨에 차 있었다. 내 생각을 오로지 내가 터득한 모든 것에만 집중했고 내 생각이 이전의 부정적인 행태로 빠져나가면 재빨리 아버지에게로 돌아서서 그것을 극복할 영감과 각오를 얻었다. 이렇게 나는 끊임없이 깨어 있는 의식과 이해의 빛으로 돌아왔다...

내가 배운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보복하는 하느님을 믿는 정통 유대교 신앙이 완전히 잘봇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런 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 같은 죄는 존재하지 않아요. 우리는 지금처럼 행동하도록 타고 났어요. 우리 인간적인 생각과 느낌을 극복할 방법을 찾아야 해요.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를 아버지의 보호로부터 떼어놓고 병과 불행을 가져오니까요. 소아를 극복할 방법을 배우고 나면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거에요." (89~99쪽)

-- 따옴표의 말은 어머니에게 한 말입니다. 요컨대 40일의 광야 체험에서 신 의식으로 가득차는 체험을 했고 그렇게 한번 깨달았다 하더라도 수시로 과거의 부정적 생각으로 빠져나가는 일은 자연스러우며 그때마다 바로 아버지(신 의식)에로 돌아가는 노력을 함으로써 끊임없이 깨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 진화에서 나온 우리는 생존에 몰입하다가 병과 불행을 부르게 되어 있다는 것,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소아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 소아를 극복하고 아버지의 보호대로 사는 것이 바로 천국에 들어가는 일이라는 것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16장 24절의 소아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he must forget self, carry his cross, and follow me)는 말의 해설이라고 봐도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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