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심법요 입문

선불교의 기원, 성장 및 전파

목운 2020. 10. 5. 12:09

기원

고타마 붓다는 여러 제자와 청중의 근기에 맞게 가르침을 조절했다고 전해진다. 한번은 설법의 끝에 꽃을 따서 모여 있는 수도자들이 보도록 들었는데 그 행동의 심오한 뜻을 유일하게 알아챈 마하가섭이 미소로 응답했다고 한다. 나중에 붓다는 이 제자를 개인적으로 불러 말 없는 가르침, 즉 '마음으로 전하는 가르침'을 신비롭게 전했다. 다음에 마하가섭은 이것을 아난다에게 전했고 아난다는 28명의 인도 조사(祖師) 가운데 2대를 기록하게 되었다. 인도 조사의 마지막이 보리달마로 그는 6세기에 중국으로 갔다. 그는 중국에서 1대 조사가 되었고 그 가르침은 6대 혜능에게 전수되었다. 거기에서 종단이 분화되었고 더 이상 조사는 나오지 않았다.

종단의 기원과 발전에 관한 이론

불교가 공식적으로 중국에 소개된 것은 AD 61년인데 1~2세기 경 산동성 해안으로 들어온 듯하다. 소승불교는 거기에서 오래 가지 못했지만 대승불교는 크게 번창했다. 인도에서 다양한 분파가 전개되었고 새로운 분파도 만들어졌다. 가장 늦게 나타난 분파 가운데 하나가 선불교였는데 급속히 영향력을 키웠다. 그 기원이 인도라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의문을 가졌다. 일부에서는 보리달마의 존재까지도 의심하였다. 내가 선호하는 생각에 따르면 실제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남인도에서 광동성을 거쳐 중국에 왔을 것이며 중국 두 나라 왕을 만났을 것이다(당시 중국은 남북으로 나뉘어 있었음).

스즈키 교수는 보리달마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그 가르침은 능가경에서 나왔다고 시사한다. 능가경은 바로 말 없는 가르침(교외법)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후스(호적) 박사는 보리달마의 역사적 실재도 부인하며 초기 선불교 경전, 즉 유명한 육조단경조차도 후대의 위작으로 본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선사들의 작품으로 받아들여진 것들과 명칭과 내용 모두 다른) 돈황 석굴에서 최근 발견된 여러 8세기 문서를 제시한다. 후스 박사는 선불교가 인도에서 들어온 외래사상으로 여겨졌던 불교에 대한 저항으로 생긴 것이라고 한다.

나는 선불교가, 그 기원을 인도에 둔 게 아주 분명한 종파를 포함해서 여타 종파에 대항해서 세워졌다고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종파가 명상을 깨달음을 위한 수단, 즉 마음을 깨달음을 향해 돌리고 실재를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감각적 지각과 개념적 사고라는 장막을 뚫으려고 노력하는 수행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불교는 다른 것들을 배제하거나 거의 배제하는 데까지 위 사항을 강조하며 또한 깨달음을 눈 깜짝할 시간보다 짧은 시간에 마침내 발생하는 과정으로 본다는 점에서 다른 종파와 다르다. 그렇게 해서 선불교는 경전의 연구나 선행의 실천보다는 내적 관조를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잘 맞는 불교의 한 형태가 되었다. 하지만 선불교는 전체 교리 가운데 특정한 한 분야만 강조하는 독불장군은 아니다. 만약 아무도 따르지 않았다면 종파로 성립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아가 정정(正定)은 8정도의 마지막 단계로서 대승이나 소승 모두 불교의 기초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명상은 정확히 거기에 이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리하여 선불교가 인도에서 기원했다는 것을 증명하거나 반박할 증거가 매우 희박하지만 보리달마가 그의 스승들에게서 물려받은 고대의 위대한 가르침, 즉 8정도의 마지막 단계를 위한 준비로 여겨지는 일곱 개의 전 단계를 시사하는 교리를 가지고 실제 중국에 왔다는 것이 특별히 어불성설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여덟 번째가 다른 일곱 가지의 결과가 아니라고 한다면 왜 '정도(正道)'와 단계라는 말을 쓰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불자로서 걸맞는 대자대비의 모범을 보인 태허대사가 한 번은 다양한 종파를 하나의 염주에 달린 많은 구슬로 묘사한 적이 있다. 대승의 불자들에게는 스스로 생각해서 어떤 노선이든 개인적 필요에 맞는 종파를 선택하도록 권장되며 중국에서는 서구와 같은, 종파에 대한 반감이 없다. 중국인들은 좀처럼 청교도적이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절제하는 사람들이며 소승 불교처럼 도덕적 가르침을 엄격히 준수할 것을 주로 강조하는 종파는 좀처럼 인기가 없는데 그 점은 남방 불교가 중국에서 항구한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인 것 같다. 게다가 중국의 지식인들은 고대 이래 온건한 회의주의자들이어서 선불교의 꾸밈 없는 '단순성'과 사실상 예식이 없는 점에 크게 매료됐던 게 틀림 없다. 달리 말하면 중국의 토양이 선불교에 아주 잘 어울렸던 것이다. 한편 수 세기에 걸친 유학으로 인하여 학자들은 인도 불자들이 매우 큰 열정으로 탐닉했던 꾀까다로운 형이상학적 사고에 반대했으며 다른 한편 노자와 장자의 가르침이 매우 크게 선불교의 정적주의를 예견한 셈이 되어 많은 점에서 놀랄 정도로 그와 비슷한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중국인들 마음을 준비시킨 바나 다름 없었다(다소 비슷한 이유로 서구에서 회의적인 현대 전통과, 그들의 실존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심오한 사상을 찾는 요구 사이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소구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제한된 소수의 학자들을 빼면 선불교 전승의 진실 여부는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게 된 듯하다. 그것은 선사들 가르침에서 궁극의 진리를 내적으로 유효하게 구현한 일들을 밝게 비춰준 것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게 분명할 것이다. 선불교는 중국 등지에서 오랫동안 번성했고 현재는 서구에서 발달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그 가르침을 오랫동안 실제로 시험해 본 사람들이 거기에서 어떤 심오한 영적 욕구를 채워주는 게  있다는 것을 발견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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