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력, 곧 끌어당기는 힘과 척력, 곧 밀어내는 힘의 작용은 본질적으로 같다. 우리는 싫은 것을 밀어내고 좋은 것을 끌어들인다(好利避害).
1-1 싫은 것을 포용하여 호불호가 없어지면 해가 없는데 그러지 않고 그것이 없는 체하면, (그것은 없어진 게 아니기 때문에) 현실에서 체험하게 된다. 궁핍을 싫어하면 궁핍한 현실을 체험한다.
1-2 횡재를 바라면서 횡재가 옳지 않다거나 횡재한 자들은 다 망했다거나 하는 식으로 횡재를 싫어하기 때문에 횡재를 못한다. 반복하건대 척력은 인력과 같다.
1-3 궁핍에 대해 두렵거나 겁나지 않아 궁핍에 대해 무심하면(indifferent) 궁핍한 현실을 창조하지 않게 된다. 다시 말하면 궁핍을 싫어해서 억누르지 않을 때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궁핍에 빠지는 일을 예방한다. 즉 아무것에도 생각이 매어 있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2. 대부분의 사람은 어릴 때 입력된 '해야 한다'와 '하지 말아야 한다'에 매어 있다. 그것은 생각일 뿐이지만 우리가 버리지 않는 한 우리에게 붙어서 우리를 옭아맨다. 해법은 무엇인가? 아무 생각에도 매어 있지 않으면 된다(indifferent, 赤子之心).
2-1 유아는 아무데나 배설하여도 열등하지 않고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지각이 생길 때 (세상의 입력 때문에) 그것은 수치가 된다.
2-2 여성성을 열등한 듯, 수치스러운 듯 받아들인 오랜 업습 때문에 그것을 무의식중에 받아들인 사람이나 격렬하게 저항한 사람이나 모두 수치와 열등감을 느끼는 현실을 체험한다. (여성성에 다른 것을 대입해도 좋음)
2-3 가정 폭력 때문에 비참한 약자로 살아온 사람의 경우 불행히도 그의 의식에 새겨진 열등하고 수치를 당하는 상처를 지우지 못하여 세상에 나가서도 열등하고 수치를 당하는 현실을 계속 체험한다.
3. 우리는 뜻하지 않게 (혹은 나기 전의 바르도에서 계획한 대로) 부정적인 가정 환경에서 태어나 부정적인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나찌 협력자, 일제(日帝) 난징 학살자, 흑인 노예 등등. 그러니 우리 삶은 지상에서 복락을 누리는 게 목적이 아니라 지상 체험을 통해 진일보하는 영혼이 되는 데 있다고 보는 게 낫다.
3-1 더구나 악역 체험이나 피해자 체험도 홀로그램 또는 영화 필름의 한 장면으로 보는 게 유익한 것 같다. 지상(地上) 체험이든 현상이든 모든 것은 환영(幻影)이라고 금강경은 말한다(凡所有相 皆是虛妄).
3-2 그 모든 것을 환영으로 볼(觀) 때 대자유가 있다(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3-3 수많은 영성의 결론은 보는 자(觀察者)가 되라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할 것이고 아무것에도 걸리지 않을 것이며 마음껏 창조할 수 있게 된다(從心所欲不踰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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