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4

나비되기 2014. 11. 27. 15:06

 이상의 얘기가 믿어지지 않을 것이고 당신은 아마 웃거나 내가 완전히 빗나갔다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세계 다른 종교들 속의 창조론들이라고 더 낫습니까? "빅 뱅'이론이라고 누가 더 이론적이랍니까? 12번째 행성의 외계인이 자기들 유전자와 유인원 유전자를 조작해서 수메르인의 조상을 만들었다는 설(說)인들 황당하긴 마찬가지 아닙니까?

 '무한한 나'가 무한성을 제약해서 불완전성이란 걸 체험하고 싶어한다는 게 전적으로 가능성의 영역에 속하는 거라고 얘기하는 건 아닙니다. 결국 아시다시피 정의상 '무한한 나'의 유희 욕구가 무한하고 창의력이 무한하다고 했습니다. 그저 게임을 상상했는데 그 게임에서 '무한한 나'가 무한성의 반대되는 체험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죠. 그게 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요. 무한한 능력을 어떻게 제한할 수 있습니까? 무한한 지혜를 어떻게 구속할 수 있습니까? 무한한 풍요 속에서 어떻게 희소성을 창조하겠습니까? 

 대화는 계속됩니다.


  

 "준비 됐어?"

 "무슨 준비?"

 "네 연기자를 만드는 거."

 "그래. 보여줘."

 "우선 시작하기 전에 몇가지 규칙이 있어. 첫째, 대장이 아주 똑똑하잖아. 그래서 모든 창조에서 자유 의지가 있어야 해. 일단 연기자를 만들면 언제 어떤 이유로든 그들의 결정과 선택에 관여할 수 없어."

 "연기자를 그저 창조해서 네 '지구'에 풀어놓기만 한다는 거지?"

 "아니지.네가 네 연기자의 모든 체험을 줄곧 창조해야 돼, 세세한 부분까지. 그들은 아무것도 창조하지 못해. 그들은 홀로그램의 일부야. 그들은 '무한한 장'의 다른 쪽에 있고 자신을 위해선 아무 경험도 창조하지 못해. 그러나 일단 네가 그들을 위한 체험을 창조하면  그 체험에 어떻게 대응하고 반응할지 선택하는 건 그들의 자유야."

 "접수."

 "좋아. 두번째 규칙, 네 연기자가 너를 위해 연기한다는 걸 알 수 없어. 그는 자기 의식과 주체성을 가진다고 생각해야만 해, 그저 게임을 위해 창조된 임시 대리인인 게 아니라고 생각해야 해."

 "좋아."

 '세번째 규칙, 네 연기자는 이게 게임이라는 것도 알 수 없어. 그는 이게 진짜라고 믿어야 해. 실제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통하지가 않아."

 "이 모든 게 홀로그램이라는 걸 아담이 모른다는 거지?"

 "물론! 아담은 홀로그램의 일부야. 홀로그램은 그 안에 있는 누구에게든 진짜로 보이고 느껴지지. 아담은 내가 만든 낙원이 진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예를 들면 홀로그램 사과를 먹을 수도 있어!"

 "그래, 그게 진짜가 아니라고 가르쳐 주지 않을께."

 "맞아, 내가 동의하지 않으면 네가 알려줄 수 없다는 건 네번째 규칙이야. 너는 네 연기자를 창조할 거지만 나는 다른 연기자들의 홀로그램이 상호 작용하는지 알고 있지.."

 "잠깐...내가 네 홀로그램을 사용할 수 없다는 거지?"

 "맞아. 너는 내가 만든 홀로그램 '지구환경'을 사용할 수 있어. 그리고 만약 내 연기자와 네 연기자가 상호작용을 한다면 그들이 홀로그램에서 인식을 같이하는 게 훨씬 쉬울테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예를 들어 푸른 색이 무엇인지, 해는 하난지 둘인지 등을 놓고 다투느라 시간을 보낼 테니까."

 "우리도 그걸 바라지는 않잖아?"

 "맞아, 그건 재미없는 일이야."

 "하지만 내 연기자의 홀로그램은 아담의 홀로그램과 완전히 분리된 것이어야지?"

 "당근. 각 연기자는 분리되고 독자적인 현실을 가져야 하지. 너는 네 연기자의 현실을 창조하고 난 내 연기자의 현실을 창조하는 거야. 연기자들의 홀로그램이 상호작용하도록 하는 방식 때문에 그들은 서로 연결되었고 모두가 하나라고 생각하거나 같은 홀로그램 우주를 공유한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지 않아. "

 "그건 왜 그렇지?"

 "자, 우리가 얘기한 데로 돌아가서, 규칙 4에 따르면 내가 사전에 동의하지 않으면 네 연기자는 내 연기자의 홀로그램에 존재하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렇지 않으면 네가 내 연기자를 위한 체험을, 나는 네 연기자를 위한 체험을 창조하게 돼."

 "그리고 그게 안 좋은 일이 되겠지, 왜냐하면..."

 "왜냐하면 대장이 아무도 언제라도 다른 무엇의 희생자가 되어선 안된다고 하니까. 만약 내가 모르는 일을 네가 내 연기자를 위해 창조하면 내 연기자는 네 창조의 희생물이 되지. 짐작컨대 연기자는 때때로 희생자가 된다고 느낄 수도 있어(그건 더 쉽게 한계에 도달하게 되는 거니까 우리한테는 좋지). 하지만 실제로 그럴 수는 없어. 나는 내 연기자의 홀로그램에서 일어날 일에 앞서 100% 결재를 받아야 해. 너도 마찬가지고."

 "알았어."

 "이제 준비됐어?"

 "그려. 하지만 난 아담과 아주 다른 연기자를 원해."

 "음, 넌 사람 연기자를 원해? 돌고래 같은 동물 연기자를 원해?"

 "돌고래는 아주 재미있을 거야. 그런데 아담은 뭐야?"

 "인간이고 '인간 게임'이라고 불러."

 "그럼 나도 인간으로 할 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으로 할 거야.."

 '좋아, 두 발에 두 팔, 두 눈에 두 귀를 가지기만 하면 어떤 인간이라도 창조할 수 있어..."  



 "와! 재미있네. 뭐라 이름지었어?'

 "이브"



 새 '인간 게임'에 관한 소문이 '인피메일(InfiMail)'을 통해서 '무한랜드(InfiniteLand)'에 재빨리 퍼져나갑니다. 머지 않아 게임을 하려는 다른 많은 '무한한 나'들이 생겨났고 지구의 인구는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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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3

나비되기 2014. 11. 27. 08:07

"와, 멋진 게임 세곈데 - 엄청 파란 하늘에 우거진 푸른 숲에 청록 바다..정말 멋져. 홀로그램으로 이걸 다 만들었다고?"

 "그래. 내가 말했잖아. 이걸 지구라 할 거야."

 "아무렴..마음대로.."

 "어려운 게 있다면 어떻게 홀로그램을 시간과 공간에 드러내서 아담이 완벽한 영화 속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하는가 하는 거지."

 "그래서?"

 "그래서 '뇌'를 만들었지."

 "우리가 끝내기 전에 사전이 필요할 거 같아. '뇌'라니?"

 "뇌란 홀로그램 처리기 같은 거야. 내가 하는 거라고는 양자 파동주파수를 '지구를 위한 무한한 장'에서 골라서 아담이 자는 동안 아담의 뇌의 한쪽에 다운시키는 거야..."

 "그러면 아담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네?"

 "맞아, 그가 깨어나면 밤에 일어난 일에 대한 기억 같은 걸 가지게 되겠지. 하지만 모든 그림이 뒤죽박죽이 되어 아담은 아무것도 모르게 돼 - 마치 짚 파일(zip file)을 읽는 것처럼 되지."

 "그래 계속해봐.."

 "그 다음엔 짚 파일을 풀어서 아담 뇌의 다른 쪽으로 옮기는 거야. 그 과정에서 뇌는 파동주파수를 입자로 바꾸어 홀로그램 그림을 내놓게 되지. 그 다음엔 뇌가 감각을 통해서 그 그림을 시공상으로 내보내고 아담은 그걸 체험하게 되는 거야."

 "아주 간단해 보이네..."

 "그래, 기본적으로 이진법 코드로 된 컴퓨터 중앙처리 장치와 같지. 그러나 아담은 그게 마치 객관적 실체인 것처럼, 외부 세계에서 뇌와 상관없이 일어난다고 생각하지."

 "그게 바로 지금 아담들이 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고?"

 "토끼를 좇는 거지."

 "뭐?"

 "나는 그 흰 털을 가진 조그만 놈을 '토끼'라 부르지."

 "하여튼 그는 토끼를 잡을 수 없군, 너무 빠르니까."

 "맞아. 그게 핵심이야. 아담은 몸을 가진 한계를 체험하고 그 느낌을 나에게 보내는 거야."

 "뭐?"

 "그는 좀 혼란스럽겠지. 하지만 완전해. 느껴보기엔 끝내주지! 만약 내가 여기서 토끼를 좇는다면 풍선 터뜨리기처럼 매번 잡을 거잖아. 그게 내가 느껴보려는 거지."

 "나는 아무것도 못 느끼겠다."

 "물론이지. 아담은 내 연기자니까."

 "그러면 나도 비슷한 체험을 하려면..."

 "네 연기자를 창조해야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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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2

나비되기 2014. 11. 25. 09:45

 "공원에 있는 '사랑의 터널' 알지? 거기서 아름다운 우주의 굉장한 영상들을 모두 봤잖아?"

 "맞아. 그거 내가 아주 좋아하는 거야. 거기서 나오는 음악이 정말 끝내주지. 나랑 노래해보자...정말 귀여운 세상이야..."

 "지금 노래할 수는 없어. 너랑 새로운 게임을 만들자는 거야. 한번도 빼지 않고 잔인하도록 무한하고 완전한 것 대신 한계를 체험할 수 있는 걸로 말야"

 "좀 진지하게 얘기하자는 거지? 그건 내가 말했잖아. 불가능해. 우리는 무한하잖아. 그러니 그런 게임은 불가능해."

 "맞아. 우리가 스스로를 제한하는 것은 안 되지. 그래서 내가 무슨 짓을 하든 풍선을 다 터뜨리는 거고. 그래서 새로운 멋진 게임을 만들자는 거지. 거기에 우리가 직접 들어가서 참여할 필요가 없는 걸로. 거기서 우리 대신 게임을 해줄 연기자를 만드는 거야. 그들이 우리를 대신하는 거지."

 "우리는 밖에 있고 연기자는 안에 있다면 그거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지만 연기자가 그 재미를 모두 차지하잖아? 그리고 연기자가 게임을 한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걸 경험하지?"

 "연기자와 연결하면..."

 "아 우리가 인피넷(InfiNet)에 연결된 것처럼 말이지?"

 "맞아, 거의 같지. 연기자는 그 느낌을 연결을 통해서 전해주는 거지. 그러면 우리는 간접적으로 그 느낌을 아는 거지."

 "내가 말해볼께 맞나 봐. 비디오 게임과 같은 걸 만든다는 거지? 거기서 연기자가 무한하지 않은 체험이 어떤건지 체험하면서 우리한테 그것을 보내준다는 거지?"

 "빙고!"

 "분명 재미있을 것 같아. 하지만 어떻게 그 한계가 있는 체험을 연기자가 체험하게 할건데?"

 "그건 쉬워. 그저 '무한한 장'으로 가서 양자 파동함수를 붕괴해서 홀로그램을 만드는 거야."

 "'무한한 장'? 대장이, 확장이 아니라 제한이 목표인 게임을 허락할까?"

 "그럼. 대장은 한 체험이 다른 체험보다 낫거나 못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잖아. 모든 체험이 같아. 그리고 대장이 '무한한 장'을 만들었지. 알다시피 '무한한 장'의 원래 이름은 '무한한 가능성의 장'이잖아. 따라서 확장뿐 아니라 한계를 체험할 가능성도 거기에 있는 것이지."

 "그러네. 하지만 연기자가 한계를 가졌다고 믿어서 그들이 느끼는 느낌을 네가 느끼도록 하는 그런 홀로그램 게임을 만들 수 있을까?"

 "내가 세부사항을 알고 있지. 하지만 폭풍소리 같을 걸."

 "폭풍소리? 빅뱅과 같은 건가? 왠지 창의적인 것처럼 느껴지네...나는 아직 무한한 힘과 지혜를 제한한다는 게 이해 안가. 그러니 어떻게 가능한지 말해봐."

 


 "시제품이다"

 "뭐라구?"

 "우리가 한 말을 잊어버렸어? 아니면 나를 곤란하게 하는 거야?"

 "다시 말해줘.."

 "내가 게임을 만들었는데 거기서 무한하지 않은 게 무엇인지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거야."

 "그래서?"

 "나를 위해 게임을 할 연기자를 만든 거야."

 "정말?"

 "그래. 수많은 시행착오를 했지만 드디어 해냈어. 아담이야."

 "뭐라구?"

 "그를 아담이라 부를 거야"

 "재미있네. 계속해봐."

 "그리고 아담이 한계를 체험할 수 있도록 모든 가능성 있는 홀로그램 시나리오를 만들었지...그리고 아담은 그 체험에서 느끼는 자기의 느낌을 보내고 있지. 멋지잖아. 게다가 잘 돌아가! 보여줄까?"

 "물론이지. 어디 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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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되기 2014. 11. 20. 13:54

"당신이 왜 여기 왔는지 말해볼까? 무언가를 알기 때문에 여기에 왔지. 당신은 아는 것을 설명하진 못하지만 그걸 느끼고 있지. 당신 인생을 통해서 그것을 느꼈는데 그것은 이 세상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이지.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지만 마음 속에 마치 가시처럼 박혀서 미칠 지경으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매트릭스에서 모르피어스)"

                    


 이 홀로그램 우주에서 '무한한 나'가 왜 자신을 창조했는지 확실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따라서 내가 말하려는 것이 '진리'라고도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대신 '무한한 장' 이론이나 마찬가지로 다른 어떤 모델보다 더 '진리'에 가까운 모델이며 아주 잘 통용되며 나비가 되는 데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새로운 모델을 적용하기 딱 좋은 시점입니다. 우리가 극장 안에서 사용하던 우주 작동모델은 더 이상 맞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보는 영화가 실체라고 하는 잘못된 가정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최근에 이뤄진 양자물리학 실험과 다른 과학 실험에 의해서 밝혀진 홀로그램 우주라는 인식에 맞는 새로운 모델을 생각해낼 필요가 있습니다. 

 로버트 샤인필드는 내 정찰대 초년 시기에 이 모델을 소개했습니다. (그가 동의하든 말든) 내가 몇가지 수정을 가했지만 나는 그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바로 '게임 모델'입니다.

 이제 몇몇 '무한한 나'의 대화를 엿들어 봅시다.



 "있지, 내 생각에..."

 "걱정 말고 털어놓아봐. '대장'이 마지막으로 말한 게 뭔지 알지..."

 "걱정 말라? 이건 좀 달라."

 "맞아."

 "나는 오늘 저녁 GAP에 가고 싶어졌어."

 "뭐라고?"

 "대형 오락 공원(Great Amusement Park)"

 "그게 다야? 그럼 해봐? 완전히 다른 게임이면서 매력이 있는 것으로..."

 "맞아, 그런데 오늘 저녁엔 한 손을 뒤로 묶은 채 다트게임을 하고 싶어."

 "뭐라구?"

 "못 알아들었어? 한 손을 묶어놓고 다트게임을 하고 싶다고."

 "알아들었지만 그게 무슨 말이야? 왜 그러고 싶은데?"

 "말이야, 내가 게임을 할 때마다 풍선을 모두 터뜨려서 인형을 가져가잖아. 옷장이 인형으로 가득해."

 "네가 무한한 능력과 무한한 지혜와 무한한 풍요를 지녔는데 무얼 더 바래..?

 "하지만 변화를 위해 좀 다른 걸 체험하고 싶은거지, 좀더 도전적인 것으로. 진담인데 언제나 이기는 게임이 이젠 싫증나."

 "그래서 손을 뒤로 묶은 다음에 다트게임을 하겠다고?"

 "그래, 한번 해보는 거지.." 

 "알았어..."



 "있지, 생각중인 게 있어..."

 "또 뭐야?"

 "한손을 뒤로 묶고 한 다트게임도 별게 아니야. 또 풍선을 다 터뜨려서 두번째 옷장도 가득 찼어."

 "알아. 두번째 옷장이 내건지는 알지?"

 "그래서 오늘 저녁은 두 손을 뒤로 묶을 거야."

 "뭐라구? 두 손을 뒤로 묶고 다트를 던지겠다고?"

 "글쎄, 하지만 네가 말한 대로 나는 무한한 능력과 지혜를 가졌잖아, 한번 테스트해보는 거지."



 "이번엔 내 생각을 들어봐..."

 "뭔데?"

 "네 인형을 둘 옷장을 만들어야 하겠는데 아마 오늘 저녁 두 눈을 가리고 다트를 하는 게 어떨까?

 "와! 멋지다!"


 "그런데 안 되겠다, 그치. 우리는 무한한 수의 옷장을 만들 무한한 공간이 있으니."

 "맞아. 그런데 방법이 있지..."

 "뭔데?"

 "그렇게 되지 않는 게 어떤건지 체험해보는 방법인데, 즉 무한하지 않은...언제나 완전하지는 않은...방법."

 "무슨 말인지 도통..."

 "내 말은 우리가 무한한 기쁨, 무한한 능력, 무한한 지혜, 무한한 풍요, 무한하고 무조건인 사랑을 가지고 있으니...그렇게 완전하니...나는 때때로 한두개의 풍선을 놓치는 게 어떤 것인지 느껴보고 싶은 거야..그저 재미를 위해서 무한하지 않은 게 어떤건지 경험해보고 싶은 거야. 누가 알아? 내가 무한한 본성의 반대되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알 때 거기에 대해 더 감사하게 될지?"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

 "뭐가 불가능하지?"

 "무한하지 않게 되는 것 말이야. 무한한 존재가 우리 숙명이니 그렇지 않게 되는 건 불가능해."

 "안될지도 모르지. 최소한 우리가 직접 그러는 건. 하지만 우리가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 우리를 위해 연기해줄 연기자를 만드는 건 어떨까?"

 "도대체 뭔 말인지 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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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5

나비되기 2014. 11. 20. 07:26

 나는 론 허바드가 천재이면서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이언톨로지의 몇몇 기법은 극장 안의 '인간 어른'이 과거를 내려놓는 데 꽤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추종자에게 "영혼의 궁극적 시험은 일이 잘 돌아가도록 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함으로써 결국 과오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허바드가 자랑하는 존 트래볼타와 톰 크루즈가 가정사나 직업적 과실을 감안할 때 언제나 "일이 잘 돌아가도록" 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저러한 자의적인 영적 기준을 못맞춰 기준에 미달할 때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영화관 안에서는 모든 것이 잘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게 짜여져 있지 않습니다. 몇몇 분야에서 대단한 성취를 이룬 존 트래볼타와 톰 크루즈라 하더라도 극장 뒤편의 단체에 속하는 동안 모든 것을 다 원만하게 성취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일이 잘 돌아간다는 것이 극장 안에 '인간 어른'을 묶어두는 판단일 뿐 아니라 '연기자'는 우리가 알다시피 무언가를 창조할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연기자의 역할은 '무한한 나'가 창조한 홀로그램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응하고 반응하는 일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삶을 통제하려고 너무 열심히 노력하는 것과 일이 잘 돌아가도록 노력하는 것과 당신의 현실과 삶을 구성하는 홀로그램 영상들을 창조하고 관리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그만둘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며 시간낭비인 데다 당신을 녹초로 만들고 스스로 루저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극장 안의 '인간 어른'으로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을 책임지고 우리가 하는 일을 거부하거나 무시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12 단계 프로그램이 다음과 같이 기도할 때 그들은 거의 진리에 가까이 있습니다.

 "신이여 제가 바꿀 수 없는 일을 고요히 받아들이게 하시고 바꿀 수 있는 일을 용감하게 바꾸게 하시고 그 차이를 분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우리는 홀로그램 체험을 창조하지 않았기에 그것을 바꿀 수 없습니다.

 우리는 거기에 대해 대응하고 반응할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그 차이를 분별하는 데 필요한 지혜를 얻는 과정에 들어섰습니다.

 이제 긴장을 풀고 여행을 즐길 수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나 다른 누구를 위해서나 당신의 현실을 창조하고 삶을 잘 돌아가게 할 책임이 없습니다. 당신은 오로지 당신의 '무한한 나'가 당신을 위해 창조한 삶에 대해서 한번에 한번씩 대응하고 반응할 책임만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태어난 이래 연기자로서 당신이 수행한 모든 대응과 반응은 그것이 나쁘거나 좋거나 간에 당신의 '무한한 나'에게는 소중한 것으로 간직될 것입니다.

 이것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반복해보겠습니다. '무한한 나'가 당신을 위해 창조한 홀로그램 영화이기도 한 당신 삶의 모든 순간에서 당신이 취한 모든 대응과 반응은 "올바른" 것이고 완전합니다. 당신은 결코 "잘못"이나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무한한 나'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당신이 그에게 보낸 모든 감정만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전부이며 당신은 아마 당장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혹은 아닐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앞으로 2년간 세포 수준과 정서 수준에서 당신 것으로 할 때까지, 즉 알 뿐만 아니라 느낄 때까지 고치 속에서 해야 할 작업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면 이 모든 게 더 잘 이해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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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4

나비되기 2014. 11. 18. 18:11

  또 다른 비유가 생각났습니다. 당신은 조그만 배에 앉아 수많은 경치를 체험합니다. 그 모든 체험이 당신의 내적 체험을 위한 것인데 그것은 기쁨과 가슴뜀에서부터 두려움과 긴장에 걸쳐 있습니다. 당신이 보는 여행길과 경치를 기획한 사람이 있어서 당신은 어디로 갈지 어떤 일을 만날지 택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하는 유일한 일은 배에 앉아서 여행을 즐기며 당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반응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물론 어떤 대응이나 반응도 "잘못"일 수는 없습니다.

 기획자가 관심을 가지는 것과 바라는 모든 것은 그가 마련한 체험에 대한 당신의 느낌입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누구도 카리비안의 해적을 만든 사람의 꼭두각시나 노예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두려움을 느끼고 '무한한 나'의 연기자라는 생각에 저항하는 것은 당신의 에고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삶에 대한 통제를 놓지 않으려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제까지 별로 잘 해오지 못했음에도 우리 삶을 계속 통제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극장 안에 있는 동안 삶은 꼭 그렇게 되도록 짜여진 것입니다. 모든 종교와 정신 철학이 그렇게 이끌어왔듯이 우리는 우리가 버스 운전자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당신은 영화관을 떠났고 나비가 되려고 합니다. 그 절차의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부분은 통제하려는 욕구를 버리는 것, 즉 버스 운전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좋소, 좋아. 내가 '무한한 나'의 꼭두각시가 아니라고 합시다. 그래도 최소한 내가 체험하는 바의 공동창조자는 되고 싶어."라고 내 친구는 주장합니다.

 나는 이점에 대해 아주 조심스럽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공동창조자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체험에 대한 반응이 다음의 체험에 대해 영향을 줄 수는 있습니다.

 만일 내 '무한한 나'가 버스 운전을 하고 나는 지나가는 경치에 반응만 하고 앉아 있다면 내 '무한한 나'가 특히 재미있고 탐구해보길 원하는 반응을 내가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버스를 되돌려 그 경치를 다시 지나가며 같은 체험을 하게 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내가 같은 반응을 보일 수 있는 비슷한 경치를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내 첫번째 반응이 다음번 비슷한 체험을 하도록 "공동창조"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 홀로그램애서 무언가에 대해 두려움을 보였다면 내 '무한한 나'는 아주 비슷한 홀로그램을 보내 다음번에는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고자 할 수 있습니다. 두려워할 게 없는데 왜 그렇게 겁먹었는지 궁금해 할 수도 있고, 내 스스로 두려워할 게 없음을 깨달았으면 할 수도 있고 혹은 그저 내가 다시 같은 두려움을 느끼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다음 장에서 재론함).

 카리비안의 해적으로 돌아가서 기획자가 성공적인 여행을 만들고자 했다면 그가 만든 환경에 대한 참가자들의 반응에 대해 아주 관심을 가지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참가자의 피드백은 그가 더 나은 게임을 만드는 데 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모든 종류의 가능성이 있지요. 요점은 어떤 체험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미래에 주어질 체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반응으로써 무한한 나와 미래 체험에 대해 "공동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하려고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당신의 '무한한 나'는 당신의 반응에 상관없이 당신의 미래 체험을 마음껏 창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어떤 식으로든 그 과정의 일부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제 친구는 이런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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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3

나비되기 2014. 11. 16. 17:13

 이제 나와 같은 말을 한 사례들을 볼까 합니다.

 대릴 앙카라는 사람이 '바샤'라는 사람의 채널러로서 한 말을 보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물질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익숙합니다만 '상위 자아'라는 것은 비물질적입니다. 물질 실체를 초월한 진동 주파수가 있는데 거기에 육체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상위 자아'는 낳고 물질 뇌가 수신해서 마음이 감지하는 것입니다. 어떤 생각, 어떤 영감, 어떤 상상이든 마음에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상위 자아'가 낳은 것을 당신 뇌라는 수신기가 번역해서 마음이 실체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배를 이끄는 게 아니고 그저 길을 보며 체험할 뿐입니다.

 마음은 상위 자아가 창조한 것을 감지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보면 당신의 짐은 가벼워집니다. 상위 자아의 일을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나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당신이 버스를 운전하는 게 아니다. 당신의 '무한한 나'가 당신을 "고용해서" -즉 창조해서- 당신을 버스 뒤에 앉혀서 지나가는 경치를 보고 반응하도록 했다는 게 전부입니다. 

 당신이 경치(홀로그램 체험)를 만든 게 아닙니다. 볼 경치를 택한 것도 아닙니다. 갈 곳을 정한 것도 아닙니다. 그 모든 일은 버스 운전자, 즉 당신의 '무한한 나'의 일입니다. 


 내가 아닌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운전자가 아닙니다. 당신의 현실을 창조한 자가 아닙니다. 당연히 당신은 아무것도 창조할 능력이 없습니다. 

 마침내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아주 편안해질 겁니다. 결국 우리가 극장 안에 있을 때는 우리가 버스를 운전하고 갈 방향을 정하고 볼 경치도 정했다고 생각하며 현실을 창조하려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리고 물론 그게 잘 통하지 않았죠. 결국 우리는 우리가 원하던 현실을 창조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뒤로 처져서 쉬면서 '무한한 나'가 운전하도록 하면서 즐길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 일은 경치에 반응하는 일뿐입니다. 


 몇사람은 처음에 이 말을 듣고 내 말이 결국 '무한한 나'의 꼭두각시나 노예를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화를 냈습니다. 이 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무한한 나'가 당신으로 하여금 연기하도록 한 게임의 목적을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무한한 나'를 위한 게임이 작동하도록 하기 위하여 당신은 어떤 홀로그램 체험을 할지 택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어떻게 반응할까 하는 자유만을 누립니다. 실상 이것이 당신이 연기자로서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즉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지와 그 반응과 관련한 감정을 택할 자유만 있습니다. '무한한 나'가 원하는 것은 감정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감정을 선택할 자유가 없다면 이 게임의 전체는 논의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꼭두각시나 노예가 결코 아닙니다. 당신은 게임에서 중요한 연기자이며 '무한한 나'를 위하여 값지고 독자적인 서비스를 하는 것입니다. '무한한 나'는 버스 운전만 하기 때문에 자신의 일부로서 강한 연결을 가지고 버스에 앉아서 경치를 보기만 하고 그 느낌을 전해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달에 있는 우주인이 우주 본부의 꼭두각시나 노예로 생각할까요? 트럼펫 주자가 지휘자의 꼭두각시나 노예입니까?

 분명히 아닙니다. 그들은 자기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기꺼이 행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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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2

나비되기 2014. 11. 16. 07:39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우리가 '무한한 나'이고 '무한한 나'가 홀로그램 체험을 만들어낸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나요?

 달에 있는 우주인이 자기가 컨트롤 타워라고 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나요?

 교향악단의 트럼펫 주자가 스스로 지휘자라고 생각한다면 그 연주가 어떠리라고 생각합니까?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당신이 '무한한 나'가 되기 위해 보내는 모든 순간은 당신의 진짜 역할에서 이탈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당신이 고치 속에 있기 때문에 당신이 '무한한 나'라고 생각하는 걸 빨리 그만둘수록 당신이 참으로 누구인지 발견하는 시간이 많아질 것입니다. 

 이 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다른 비유를 써보겠습니다. '무한한 나'가 대서양을 수영하고 싶다면 먼저 수온이 얼마나 될까 궁금해 할 것이며 다음에 물에 뛰어들기 전에 테스트를 위해 엄지 발가락을 만들 것입니다. 엄지 발가락의 역할은 바다물에 잠기는 체험이고 그 다음에 그 느낌을 '무한한 나'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감이 잡힐 것입니다. 당신은 엄지 발가락이지 몸 전체가 아닙니다. 뇌나 의식이 아닙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당신이 실제 '무한한 나'라고 주장할 겁니까? 당신이 왜 창조되었고 '무한한 나'와의 관계에서 당신의 역할을 이해한다면 당신만의 역할에 만족하고 그것을 잘 하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당신이 계속 참으로 '무한한 나'라고 한다면 엄지 발가락보다 엉덩이가 더 아프다고 할 수 있습니까?

 당신의 '무한한 나'는 당신이 온 생애 동안 당신의 진짜 역할을 무시하고 거부하면서 '무한한 나'의 역할을 하려 하는 것을 무한히 참으며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잘못된" 것은 없으며 극장 안에 있는 동안 당신 체험에 완벽하게 통했습니다. 그러나 고치 속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일부는 에고 탓이지만 일부는 모든 종교와 영성의 가르침에서 우리가 있는 그대로만큼 선하지 않다고 듣고 또 우리는 단지 엄지 발가락 이상이라고 들은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군지에 대해 그런 식으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있는 그대로보다 더 나은 무엇을 기대할 필요가 없습니다. 고치 속에서 저런 과정을 끝낸다면 우리가 참으로 누구인지 알고 거기에 완전히 만족하게 되고 다른 무엇이 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멸진정(serenity of being)이라 부릅니다.



 아마 당신은 당신 체험을 창조하는 게 당신의 마음 말고 "상위의" 무엇이나 영 또는 혼 같은 무엇은 없다고 믿을 겁니다. 영화관 안에 있는 동안에는 당신 삶에서 상위 권능이라 할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무한한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당신이 '무한한 나'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오류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양자물리학과 인간 뇌에 대한 연구와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애벌레에게는 잘 맞을지 몰라도 더 이상은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을 비난하거나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한한 장'의 다른 측면에 (내가 '무한한 나'라고 부르는) 무언가가 있어서 그것이 당신과 당신의 홀로그램 체험을 창조한다는 건 의심할 수 없습니다. '무한한 장' 이쪽에서 무엇이든 창조할 수 있는 게 당신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것은 당신의 에고입니다. 



 당신이 '무한한 나'가 아니라면 당신은 무엇일까요? 정확히는 '무한한 나'와 당신의 관계는 무엇일까요?

 가장 좋은 답은 당신이 "연기자"라는 것입니다. '무한한 나'가 게임을 위해 창조한 연기자입니다. (다음 장에서 게임 모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세익스피어는 4백년도 더 오래전에 말했습니다. "세계는 모두가 무대이며 모든 사람은 그저 연기자다. ('좋으실 대로'에서)" 

 우리 주위를 단순한 눈으로 보면 이 홀로그램 우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힌트"와 "암시"가 어디든지 있다고 말했고 앞으로도 제시할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인기 만점인 컴퓨터 비디오 게임입니다.

 디즈니의 '카리비안 해적'은 내가 말하려는 아주 좋은 사례입니다.

 이 게임처럼 아주 세련된 게임들은 당신을 대신하는 '연기자'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카리비안의 해적에서는 새 연기자를 만드는데 성, 몸체, 키, 피부색에서부터 입을 옷의 조합까지 선택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름을 짓게 되죠.

 요점은 당신은 당신의 '무한한 나'가 원하는 대로 만들고 이름까지 지어줬다는 것입니다.



 그럼 당신은 '무한한 나'와 완전히 분리된 것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엄지 발가락이 몸에서 분리되지 않은 것처럼 당신은 무한한 나와 하나이되 독자적 역할을 할 뿐입니다.

 엄지 발가락은 몸에 연결되어 있으며 뇌로부터 기꺼이 그리고 즐거이 명령을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은 무한한 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다른 무엇이 되려고 하지 않으면 즉시 무한한 나와의 연결은 더욱 분명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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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무엇이 아닌가?"

 당신은 '무한한 나'가 아닙니다. '무한한 장'에서 파동주파수를 선택해서 당신의 체험을 만들어내는 존재가 아닙니다.

 당신은 무한하지도 않습니다. 당신의 몸, 마음, 지성,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 당신의 홀로그램 우주의 일부입니다. 그것들은 실체가 아니며 더더구나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무한한 나'는 "나는 존재한다"는 그것이며, 당신은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고치 삶의 초기에 이것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당신의 탈바꿈은 아주 재미있고 쉽고 즐거운 것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오랜동안 구축해온 거짓 당신인 에고는 이 모든 게 웃기는 일이고 더 이상 읽지 말라고 외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에고는 당신이 훨씬 더한 존재고 불멸하는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으로 당신이 죽지 않는 한 에고는 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고치 속에서 에고는 죽어야 합니다. 애벌레처럼 죽어야 합니다.

 극장 안에 있을 때 뉴에이지를 포함한 모든 종교적, 영적 가르침들이 우리가 몸으로 물질적 체험을 하는 영적 존재(영혼)라고 가르칩니다. 내가 멘토 삼고 동료 정찰대로 여기는 로버트 샤인필드조차 '무한한 나'(그는 '확장된 자아'라 합니다.)는 참나의 태양이라 합니다. 그러니 모두가 그렇게 얘기하는데 왜 안 믿습니까?

 왜냐면 진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극장 안에 존재하는 가장 큰 과오입니다. 왜냐하면 '인간 아이'와 '인간 어른'이 나비가 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기 때문입니다.

 달에 있는 우주인으로서 당신은 당신이 우주본부의 책임을 맡은 컨트롤 타워라 하겠습니까?

 당신이 교향악단의 트럼펫 연주자인데 지휘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틀림없이 당신의 의식이며 따라서 "나는...이다"인 존재라고 생각하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이 당신의 의식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는 것이 바로 당신이 실제 방정식의 어느쪽에 존재하는지에 대한 증거입니다.

 결국 알 수 있는 모든 것은, 당신의 '무한한 나'는 '무한한 장'의 다른 쪽에 있으며 당신의 모든 홀로그램 체험을 창조하고 있다는 게 진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무한한 나'인 건 아닙니다. 참으로 이것을 꼭 알아두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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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4

나비되기 2014. 11. 14. 07:32

 그러면 이제부터 '무한한 나'란 '무한한 장'에서 파동 주파수를 골라 인간 뇌에 다운시키는(뇌는 그것을 다시 시공 상의 입자로 바꾸어 "현실"로 내어놓습니다.) 주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 '무한한 나'를 아주 명확히 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영화관 안에서 사용하던 다른 개념과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무한한 나'는 "상위 자아"나 "확장된 자아"가 아닙니다. 상위 자아에는 두가지 잘못이 있습니다. 하나는 상위이고 하나는 자아입니다.

 먼저 "상위"란 판단이 담긴 말입니다. 판단은 영화관 안의 환상들을 합쳐주는 접착제입니다. "자아"란 말을 쓰면 우리의 자아가 상위 버전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게 됩니다. 실은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무아(no-self)"입니다. "무한한 나"는 결코 우리가 확장되어 이루는 그런 게 아닙니다.

 '무한한 나'는 우리가  "진보하거나" "영적으로 되거나" "고양되거나" "정화되거나" "더 나아진" 그런 게 아닙니다. 또 "깨달았거나" "진화했거나" "거룩하게 된" 그런 것도 아닙니다. 무엇가를 해서나, 많은 명상을 해서나, 유기농 음식을 먹거나, 기도를 하거나 무슨 예식을 통해서 될 수 있는 무엇이 아닙니다.

 신도 아니고 만유도 아니고 알라나 여호와나 "근원"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초의식이나 객관 의식, 붓다 의식, 신의식, 그리스도 의식, 우주 의식 같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모두 영화관 안에서의 개념이기 때문에 조금씩 왜곡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그냥 당신의 의식입니다. 그러나 하나의 인간으로서 경험하는 의식, 즉 자의식(self-consciousness)은 아닙니다. 

 비록 당신이 당신의 '무한한 나'와 지속적으로 소통하고(그것을 깨닫든 못 깨닫든) 있더라도 둘은 '무한한 장'의 다른 면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비유가 달에 있는 우주인입니다. 즉 우주인이 당신이고 휴스톤 본부가 '무한한 나'입니다. 이때 우주 공간은 바로 '무한한 장'이고요. 내가 이 비유를 좋아하는 이유는 당신의 '무한한 나'가 당신을 달에 보냈을 뿐 아니라 그가 당신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파트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한한 나'는 무엇이냐고 물을 것입니다.

 모릅니다. 내 경험으로 아는 것은 그것이 존재하며 나를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닌 것은 말할 수 있으나 그것이 무엇인지 똑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무한한 장'의 이쪽에 있는 한 누구도 답할 수 없습니다. 내가 '무한한 나'와 소통한 바에서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나를 고향으로 데려다 줄 그런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의식 모델"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당신의 '무한한 나'가 '무한한 장'에 있는 무한한 수의 가능성으로부터 파동 주파수로 된 체험을 골라 당신의 뇌에 다운시킵니다. 당신의 뇌는 그 파동주파수를 받아 물질적 "실재"로 바꾸어 당신의 감각이 감지하도록 밖으로 내보냅니다. 당신은 그 홀로그램 우주가 "실체"인 것으로 인식하도록 합니다.

 이것은 당신의 '무한한 나'가, 당신이 체험하도록 당신의 뇌에 보내주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보고 듣고 맛보고 느끼고 냄새맡지, 즉 체험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이 과거 현재 미래에 체험한 모든 순간은 모두 당신의 '무한한 나'가 세세한 부분까지 조심스럽게 고른 것들입니다.

 외부 세계라는 것은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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