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3

나비되기 2014. 12. 9. 17:49

5. 그 상황에 부여한 힘을 회수하십시오. "회수"라는 말은 로버트가 사용한 말입니다. 나는 그게 조금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연기자는 힘이 없습니다. 우리는 홀로그램을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홀로그램에 힘을 줌으로써 그것을 리얼하게 만들지만 우리가 가한 힘은 상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힘을 회수한다는 것"은 그 절차를 끝냈을 때 홀로그램에 부여했던 힘을 가져옴으로써 당신이 전보다 더 힘있어진다는 것인데 이게 말이 안됩니다.

 내가 선호하는 것은 연결을 끊고 마치 전기 스위치의 플러그를 빼듯 전원을 끈다는 말입니다. 처음에 힘을 부여한 것은 당신의 판단, 믿음, 의견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세요...

 '인간 게임'의 전반에 당신은 홀로그램 체험을 시작하고 그것을 리얼하게 만드는 스위치를 켰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후반에 재방문할 때도 여전히 켜져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거짓 자아, 즉 에고의 일부가 된 판단 믿음 의견을 분명히 밝히는 데 도움이 됩니다. 

 당신이 그 홀로그램에 대한 로버트 프로세스를 마쳤을 때 당신은 그저 전원을 끄는 겁니다. 처음에 그게 나에겐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홀로그램 체험과 관련하여 여전히 당신의 판단 믿음 의견이 있다면 전기는 나가지 않고 당신의 '무한한 나'는 비슷한 상황을 또 보내서 로버트 프로세스를 하게 할 것입니다.)

 6. 감사를 표하십시오. 감사를 표하는 것은 아마 가장 중요한 단계입니다. 당신이 하는 체험을 좋아하지 않을지라도 그 체험에 대하여 '무한한 나'에게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특히 당신을 스트레스에 빠지게 한 사람 장소 사물에 대해 특별히 감사하십시오. 결국 당신의 '무한한 나'는 당신이 과거에 어디에 힘을 부여했는지 깨우치는 선물을 준 것입니다. 그 상황, 등장인물 등이 당신의 탈바꿈을 위해 완벽하게 자기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을 계속 해나가면 당신은 드디어 과거 모든 경험, 사람, 장소, 사물에 대해 진심으로 완전히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을 스트레스에 빠지게 한 바깥 사물은 하나의 완전한 영화입니다. 당신이 어느날 눈물을 짜는 영화를 봤다고 해서 그 작가와 감독을 비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이 영화라는 외적 체험에서 간접적으로 내적 체험을 하러 간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우연히 영화에 출연한 배우를 만났다고 해서 당신이 받은 스트레스를 이유로 그를 비난하진 않을 겁니다. 오히려 완벽한 연기로 당신을 감동시킨 것에 대해 칭찬할 겁니다.

 이것이 로버트 프로세스에 관한 전부입니다. 거기에서 우리가 느낀 스트레스는 전적으로 우리의 반응과 대응, 그리고 우리가 거기에 부여한 힘에 기인한 것이고 그러니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그 반응과 대응뿐입니다. 


 나는 로버트 프로세스가 고치 생활 초기에 누구에게나 쉽고 효과적이며 당신의 판단 믿음 의견을 보내버리는 데 유익한 성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대표적인 사례가 될 만한 제 체험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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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2

나비되기 2014. 12. 9. 08:31

고치 속에서 게임 전반(前半)에서의 체험과 비슷한 체험을 할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때때로 스트레스를 부르는 사람, 장소, 사물로 되어 있는 영화에 빠져들게 될 겁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처음에(또는 두번째나 몇번째에) 만날 때와 똑같이 당신을 짜증나게 할지도 모릅니다. 

 이번엔 당신을 더 한계에 빠지게 하려고 '무한한 나'가 만든 홀로그램이 아니니 안심하십시오. 이번의 홀로그램은 과거에 당신이 "바깥" 어디에 힘을 부여했는지(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힘이 어디에 아직 남아있는지)를 정확히 보여주려고 '무한한 나'가 보내는 선물입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달리 반응할 기회입니다. 즉 당신이 부여했던 힘을 "회수하여" 같은 스토리를 끝낼 기회입니다.

 같은 스트레스를 느낄 때마다(즉 당신의 현 체험의 "바깥"에서 무언가가 변했으면 하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 때마다) 로버트는 다음 절차를 돌리라고 합니다. 그러니 좀더 자세히 들여다 봅시다. (로버트가 다음과 같은 내 방식을 동의하거나 말거나 간에.)   

 1. 그 상황이 리얼한 게 아님을 명심하십시오. 당신은 홀로그램에 빠져 있고 정의상 홀로그램은 현실이 아닙니다. 당신이 거기에 힘을 부여해서 리얼하게 만들고 당신에게 통제력을 행사하게 함으로써 리얼해질 뿐입니다.

 2. 그 상황 속으로 파고 들어가십시오. 이것은 '인간 게임'의 전반에서 우리가 보통 행하던 것과 반대입니다. 우리는 "바깥"에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무엇을 만날 때마다 거기에서 벗어나거나 저항하거나 억누르거나 바꾸거나 무시하거나 약을 쓰거나 부인하거나 숨거나 아니면 떠나보냈습니다. 하지만 로버트는 그것을 완전히 끌어안고 무성해지도록 하고 더 가까이 불러서 가능한 한 완전히 그 가운데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3. "스트레스를 주는 에너지"를 느끼십시오. 아주 작은 스트레스를 느끼자마자 로버트 프로세스를 하기보다 가능한 한 키우십시오.

 여기에는 아주 간단한 이유가 있습니다. 로버트에 따르면 우리가 다음에 하려는 것은 홀로그램에서 "바깥"에 부여했던 "힘을 회수"하려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스트레스를 가져온 사람, 장소, 사물에 아주 큰 힘을 부여했습니다. 그래서 그 힘을 모두 보내버리려면 한번 이상 같은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한번에 더 많은 힘을 보내버릴수록 그 힘을 회수하는 일이 빠르고 쉬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부여된 힘을 완전히 끊어버릴 때까지 나중에 또다시 할 각오를 하십시오.

 4. 최고조에 이르면 그것이 무엇인지 이름을 붙이고 솔직히 대면하십시오. 스트레스가 견딜 수 있는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가, 상황을 솔직히 평가하고 당신의 판단 믿음 의견을 찾을 수 있는 때입니다. 예를 들어 "잘못되었거나" "나쁜" 사람이나 사물이 있어서 그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누구 또는 무엇인지 특정하십시오. 정확히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게 맞습니까?

 이 체험에서 스트레스를 주는 의견이 있습니까? 무엇이며 그게 맞습니까?

 (이 과정을 할 때 최소한 처음에는 실제로 써보는 게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묻지 말아야 할 것은 이게 "왜" 나에게 일어났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정작 중요한 것에 집중하지 못하게 합니다. "왜"를 묻는 것은 영화관에서 누구나 하는 것이며 그것은 더욱 한계로 몰아갑니다. 그러나 고치 속에서는 쓸모없는 개념입니다. 어쩌다가 당신은 "왜"를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고치 속 경험이 계속됨에 따라 당신 삶에서 어떤 판단과 믿음 그리고 의견을 둘러싸고 일정한 패턴을 발견하게 될 수 있습니다. 즉 비슷한 홀로그램이 나타나서 당신이 그런 패턴을 따르게 될 기회가 생기는 것, 아마도 그런 판단을 하거나 저런 믿음과 의견을 가지게 된 처음으로 돌려 보내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붙이는 것"은 당신의 스트레스가 그런 판단 믿음 의견으로 인한 것임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솔직한 상황"은 "바깥"의 누구 혹은 무엇으로 인해 당신이 행복해지는 게 아닙니다. 당신 체험에 대한 반응과 대응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당신입니다. 스트레스 상황에 억지로 떠밀리거나 말려들어간 게 아니라 뛰어들어간 것은 바로 당신입니다.

 "솔직한 상황"은 언제 어디서나 그 누구도 다른 누구 또는 다른 무엇의 희생자가 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본의 아니게 가해자가 되는 사람도 없습니다. 당신이 희생자라고 느끼는 한 당신은 리얼하지 않은 "바깥" 사물에 힘을 부여한 것입니다.

 "솔직한 상황"은 '바깥" 체험이나 사람 혹은 무엇을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연기자로서 당신이 가진 유일한 힘은 '무한한 나'가 당신을 위해 창조한 홀로그램 체험에 대해 반응하고 대응하는 방식을 바꿀 자유의지를 사용하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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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장 말미에 나는 "당신은 과거에 했던 주요 체험을 다수 '다시 살거나' '다시 겪게' 될 것입니다, 즉 고치 속에서 잠시 더 겪게 될 일들이 영화관 안에서 겪던 일들과 거의 같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화관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약간 변형시킨 듯하지만 기본적인 주제는 같거나 아주 비슷할 것입니다. 이번에는 당신의 홀로그램 우주가 리얼한 것으로 생각하고 '바깥 사물'에 부여했던 에너지를 관찰하고 그 결과 가졌던 판단, 신념, 의견들을 버림으로써 그런 체험들에 대한 당신의 반응과 대응을 바꿀 기회를 접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정찰대는 '무한한 나'가 창조한 홀로그램 체험을 처리하는 다른 방법을 제시하겠지만 "올바른" 방법이라든지, "잘못된" 방법이라든지 아니면 딱 이 방법이 아니면 안된다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도달하는 지점이 단 하나, 나비라는 점에 의문은 없습니다. 로키 산맥을 지나 태평양에 이르는 길만큼 고치에서 나비로 되는 길은 많다고 봅니다.

 다른 정찰대가 제시하는 두세가지 방법을 살펴보는 것이 당신한테 맞는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로버트 샤인필드는 내가 멘토로 삼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절차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1. 만나는 현실이 실제가 아님을 기억할 것

 2. 그 속으로 파고 들어갈 것

 3. "스트레스 에너지"를 느낄 것

 4. 최고조에 이르면 그것이 무엇인지 이름을 붙이고 솔직히 대면할 것

 5. 그 상황에 부여한 힘을 회수할 것

 6. 감사할 것

 다른 말로 하면 삶을 계속하면서, 고치 속에서 영화에 빠지면 온전한 기쁨에 미치지 못하는 체험을 할 때가 옵니다. 온전한 기쁨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로버트는 "스트레스(discomfort)"라고 하는데 거기에는 육체적이고 감정적인 스트레스뿐 아니라 심리적인 게 포함됩니다. 그것은 아주 작은 감정적 반응에서부터 극심한 고통과 괴로움에까지 걸쳐 있습니다. 그것을 짚어내는 가장 쉬운 방법은 현재 홀로그램 가운데 어떤 부분(또는 전부)이 매우 싫기 때문에 바뀌었으면 하는 것을 찾는 것입니다.

 이제 "스트레스"가 어떤 의미인지 분명히 해보고자 합니다. 육체적 스트레스는 "아픈 상처"에서부터 극심한 고통에 이르기까지 아주 분명합니다. 한편 감정적이거나 심리적인 스트레스는 조금 미묘합니다.

 론 허바드는 "감정 톤의 크기"라는 개념을 만들었는데 그 안에는 우리가 때때로 느끼는 수많은 "불편한" 감정이 들어 있습니다. 즉, 화, 적대감, 불안, 무감각, 비난, 은밀한 적의, 실망, 죽을 것 같음, 두려움, 슬픔, 증오, 낙심, 적개심, 무정함, 측은함, 속죄심, 후회, 원한, 자기비하, 수치심, 동정심, 공포, 완패감, 표현하지 않은 원한, 쓸모없는 느낌, 희생자 느낌 등등.

 나는 역시 "스트레스"로 생각되는 다른 느낌들을 생각합니다. 즉 쓰라림, 심한 비난, 생색내는 것, 우울, 당황, 부러움, 격노, 짜증, 굴욕, 조급, 주저함, 분개, 옹졸, 시샘, 불신, 망신, 복수심, 슬픔, 비꼼, 모욕, 걱정 등등.

 하지만 "스트레스"를 온전한 가슴뜀, 기쁨과 열정보다 못한 모든 느낌으로 정의함으로써 이상을 아주 간단히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들 감정 가운데 하나를 느끼거나 몸이 아플 때마다 우리가 먼저 하는 일은 그것을 "잘못"이거나 "나쁜 것"이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것"(즉 바라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저항합니다. 그 다음엔 우리를 그렇게 만든, "바깥에" 있는 사람이나 장소나 사물에 힘을 부여합니다. 그것이 감정적인 것이든 육체적인 것이든 그렇게 만든 사람이나 사물을 탓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를 그렇게 만든, 밖에 있는 것을 "비난"합니다. 그 다음엔 어떻게든 그 상황을 바꾸거나 고치거나 개선하려고 애씁니다.

 우리 가운데 "우리 현실을 우리가 창조한다"고 수년동안 믿었던 사람조차도 그렇게 합니다. 정도 차이만 있을 뿐 우리는 모두 그렇게 합니다. 그것은 당연하기도 한데 왜냐하면 '인간 게임' 전반(前半)의 본질적인 부분이고 그렇게 해서 우리는 한계에 직면하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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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5

나비되기 2014. 12. 5. 07:24

'인간 게임' 전후반에 대해 이해했다면 "이 모든 것의 요점은 무엇이죠?"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요점은 고치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입니다. 후반을 맞이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전반에서는 두려움에 기반을 둔 나쁘고 잘못되고 악한 것으로 판단한 홀로그램 체험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런 것들을 바꾸고 고치고 개선하려고 무던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당신은 "바깥 것"들에 힘을 부여했고 홀로그램이 실제인듯 여겼습니다. 

 시간이 감에 따라 당신은 그 체험들과 주변 세상에 대해 신념과 의견을 형성했습니다. 그런 판단과 신념과 의견들은 실상 당신이 생각하는 당신의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즉 그것들은 당신 자신의 일부가 되었고 에고라 부르는 가짜 정체성의 꺼풀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그 과정을 반대로 되돌리는 게 당신이 할 일입니다.

 영화관 안에서 했던 모든 판단은 유효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가졌던 모든 신념과 의견은 당신이 본 영화가 실제라고 하는 거짓된 전제에 기반하는 것이었기에 옳지 않습니다.

 이런 판단, 신념, 의견에 대해 가졌던 애착은 당신이 누구인지 믿는 바의 정체성에 새롭고도 잘못된 꺼풀을 덧붙였습니다.

 그러니 이제 당신의 '무한한 나'는 그 모든 판단과 신념, 그리고 의견을 다시 점검하고 이번에는 그에 대한 반응과 대응을 바꿀 기회를 줄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당신은 당신의 에고를 이루는 거짓 정체성의 꺼풀과 그 밑에 있는 두려움을 버릴 수 있게 되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올바른 답을 향해 갈 것입니다.

 이게 어떻게 이뤄지는지는 꽤 간단합니다.

 사실 당신이 할 일은 없습니다. 무슨 일인가를 꾀하지 않는 게 훨씬 더 좋습니다. 당신의 '무한한 나'는 여태까지 그랬듯이 당신을 위한 모든 것을 창조할 것입니다. 당신이 해야 할 전부는 매순간 당신 체험에 대한 반응과 대응을 온전히 알아차리고 의식하는 것입니다. 또 그것들을 합리화하지 않고 솔직히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명상에서 오는 졸음이나 변형된 의식 상태에서가 아니라 두눈을 뜨고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누워서 떡먹기는 아닙니다.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높은 수준의 민첩성이 요구됩니다.

 기본적으로 당신은 과거에 했던 주요 체험을 다수 "다시 살거나" "다시 겪게" 될 것입니다. 즉 고치 속에서 잠시 더 겪게 될 일들이 영화관 안에서 겪던 일들과 거의 같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화관에서 만나던 사람들을 약간 변형시킨 듯할 것이지만 기본적인 주제는 같거나 아주 비슷할 것입니다.

 이번에는 당신의 홀로그램 우주가 리얼한 것처럼 만들고자 "바깥 사물"에 부여했던 에너지를 관찰하고 그 결과 가졌던 판단, 신념, 의견들을 버림으로써 그런 체험들에 대한 당신의 반응과 대응을 바꿀 기회를 접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시작을 잘 한 것이고 이어지는 다음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과거 체험을 샅샅히 뒤지는 게 아님을 분명히 해두고 싶습니다. 당신의 '무한한 나'는 당신이 지금 여기서 다룰 수 있도록 그에 해당하는 체험을 다시 창조할 것입니다. 이 과정이 흔한 정신분석과 다르다는 것을 밝혀둡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에 관한 일입니다.

 그것은 현재 당신 생각을 지배하는 두려움을 보내버리는 일이고 당신 "자신"에 가졌던 애착과 거짓 정체성의 꺼풀과 당신이 생각하는 에고를 이루는 것들을 보내버리는 일입니다.

 그것은 제드 맥케나의 용어를 빌면 '마야'('환상의 여신')와 벌이는 전쟁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진짜 누구인지를 찾아내는 일입니다.

 그것은 무엇이 진리인지 찾아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멸진정(serenity of being) 속의 "무아"를 완전히 인식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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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4

나비되기 2014. 12. 3. 19:17

비약의 위험을 무릅쓰고 내 생각을 더 잘 전하기 위해 두가지 은유를 더 제시하려 합니다. 

 실은 하나는 이미 언급했지만 좀더 확장시켜 보려고 합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상상해 보세요. 운전은 '무한한 나'가 합니다. '무한한 나'는 버스를 운전하면서 동시에 길따라 경치를 온전히 즐기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며 그래서 연기자를 창조해서 의자에 앉아 경치를 즐기도록 합니다. 사실 '무한한 나'는 원하면 승객 모두를 창조해서 40가지의 관점을 가질 수도 있지요. (이게 놀랍다면 3부에 있는 26장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운전석의 '무한한 나'와 객석의 연기자는 선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선을 통해서 '무한한 나'는 각 연기자/여행객에게 홀로그램 영화를 다운로드하고 그것은 다시 승객의 창으로 비춰집니다. 그러나 승객은 3D 영화를 그저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경치와 영화의 일부로서 실제 참여하는 것입니다.

 각 승객은 자신의 창으로만 내다볼 수 있으며 따라서 각 승객은 완전히 독자적인 경험을 합니다. 보는 경치에 반응하고 대응행동을 할 때 승객은 선을 통해서 '무한한 나'에게 느낌을 보내며 '무한한 나'는 간접적으로 승객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승객의 일은 버스를 운전하거나 어떤 체험을 할지 결정하는 게 아니라 그저 체험을 하고 느끼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승객은 운전자와 "분리"되는 것일까요?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습니다. 버스를 운전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분리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한편 '무한한 나'가 자신을 확장시켜 창조했고 언제나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한한 나'에게서 분리되었다고 느끼는 게 "잘못"입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게임이 그렇게 작동하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승객으로서 우리의 문제는 버스를 운전하려 했다는 것이고 어떤 경험을 할지 결정하려 했다는 것인데 그것은 주로 우리가 과거에 "잘못되고" "불편하다"고 판단한 체험을 했기 때문이며 앞으로는 그런 체험을 피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버스 운전자의 일을 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과거에 우리가 아주 좋아하고 되풀이하고 싶은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승객으로서 자기 역할을 잘 받아들여 자기가 체험하는 경치에 대해 판단이나 믿음을 버린 사람은 자리에 앉아서 편히 쉬면서 탑승을 완전히 즐길 수 있습니다. 승객으로서 자기가 했던 반응과 대응이 "잘못"일 수 없음을 깨달으면 엄청난 안도감을 느낍니다. 버스의 승객으로서 겪은 모든 대응과 반응은 가치있고 바람직한 것이며 '무한한 나'가 원했던 것들입니다.



 두번째 비유는 내가 좋아하는 게임인 보물찾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위대한 보물찾기'로 하고 그것을 주된 비유로 쓸까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 게임'의 진수가 보물찾기이기 때문입니다.

 잘 짜인 보물찾기에서는 누군가 무언가를 숨기고 참가자가 알아낼 수 있는 힌트를 줍니다. 나는 그 게임에 홀딱 빠지는데 그것은 민감한 정신과 넘어야 할 장애를 잘 조합하고 어떤 경우는 보물을 찾는 데 육체적으로도 필요한 조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 게임'에서는 그게 훨씬 어렵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우리가 보물을 찾는 것이고 그 보물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우리가 했던 경험 모두가 게임을 위해 완전하다는 것을 모릅니다. 수시로 힌트가 주어진다는 것과 그것의 의미를 모릅니다. 보물찾기 하는 동안 한곳에 머물러 다른 보물에 결코 다가가지 않기도 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들 대부분은 그 많은 재미를 누리지 못합니다.

 사실 많은 이들이 '무한한 나'에 대해서 화를 냅니다. '인간 게임'의 전반에 드라마와 갈등, 아픔과 괴로움에 빠지게 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사람들이 잘 짜인 보물찾기, 즉 보물을 찾기 전에 힌트와 넘어야 할 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즐기는 듯합니다. 아무도 우수한 보물찾기 디자이너에게는 화내지 않지요, 안 그런가요?

 내가 알기에 방어책 없고 도움도 없고 전적으로 의존적인 아이로서 자신을 세상에 데려온 부모에 대해 화를 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자기의 '무한한 나'에 대해서는 '인간 게임'을 창조했다는 것과 같은 이유로 화를 냅니다.

 "다 좋다, 하지만 나는 '무한한 나'를 위한 연기자가 되는 데에는 동의 못해"라고 할지 모릅니다. 또 "내 '무한한 나'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골치아픈 게임을 하느라고 내가 수년 동안 아픔과 괴로움을 겪는다는 데 동의 못해"라고 할지 모릅니다.

 아마도 그렇겠지요. 그러니 표면적으로 그럴듯 해보이는 이러한 분노는 판단과 비난으로 가득한 것입니다. 또 진리도 아닙니다. 당신의 '무한한 나'는 당신의 아픔과 괴로움을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당신 체험에 대해 당신이 저항하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이점은 나중에 더 얘기하지요.

 중요한 것은 이제 다 끝났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보물 봉지를 찾았고 열었습니다. 거기엔 쪽지가 있는데 "이건 실제가 아님. 그냥 게임임"이라고 써 있습니다. 이제 당신은 출발점으로 돌아가서 상을 달라고 해야 합니다.

 다만 한가지 문제가 있지요.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일은 날아가는 것입니다. 보물까지 가는 길에서 당신은 수많은 보물 가방을 차지할 것입니다. 나비가 날기에는 너무 많고 무거운 것이 될지도 모르죠. 그러나 이제 그 모든 가방을 내버려야 합니다. 이 경우 그것은 이제까지 구축해온 성격, 즉 "자아(당신의 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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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3

나비되기 2014. 12. 3. 12:30

기본적으로 '인간 게임'의 후반은 전반의 반대입니다. 

 1. 연기자는 "실체"라 부르는 것이 전혀 실제가 아니라 '무한한 나'가 만드는 홀로그램이라는 것을 압니다. 이 게임은 의식에 의해서, 의식 안에서, 의식을 위해서 이뤄지며 '바깥'이란 것은 없으며 독립된 객관 실체라는 것도 없습니다.

 2. 연기자는 일단 후반으로 들어가면 자신이 체험하는 모든 홀로그램이 한계와 제약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비로의 탈바꿈을 돕기 위한 것임을 압니다.

 3. 연기자는 '무한한 나'가 만들지 않고 원하지 않는 체험을 결코 할 수 없다는 것과 '무한한 나'가 연기자의 홀로그램에 등장하는 다른 사람이 사용할 대사를 쓰고 승인했다는 것을 압니다. 연기자의 홀로그램에서 그의 '무한한 나'가 요청하지 않은 것을 행하거나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4. 연기자는 삶의 핵심이 생각하기에서 느끼기로 바뀐다는 것을 압니다. 후반에서는 분석하고 이해할 일이 없습니다. 즉 왜냐고 물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이제 생각과 학습은 세상을 이해하거나 "더 나아지는"(또는 "더 깨닫는") 데 필요하기보다 지식을 늘리기 위한 내적 호기심의 결과입니다. 

 5. 연기자는 홀로그램을 리얼하게 만들기 위해 "힘을 부여하는" 대신 "힘을 회수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홀로그램이 어떤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듯하면 전반에서는 연기자가 그것을 리얼하게 만들기 위해 힘을 부여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것은 그 상황이 실제가 아니며 거기서 힘을 회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기회입니다.

 6. 연기자는 언제나 사람과 사물에 대한 좋다/나쁘다, 옳다/그르다와 같은 모든 판단을 버립니다. 루디야드 키플링은 그의 시 '만약'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승리'와 '재앙'을 만난다면 그 둘을 똑같이 대하라..."

 7. 연기자는 자기 체험에서 고치거나 변화시키거나 개선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압니다.

 8. 연기자의 태도는 "능동적인 것"에서 "수동적인 것"으로 바뀝니다. 연기자가 무언가를 생겨나게 할 필요가 있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수동적인 것"의 의미는 "외부에" 나타나는 홀로그램 환상이 결단이나 반응이나 행동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보일 때 연기자는 (그것이 스트레스를 포함하지 않는 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는 연기자가 내적으로 행동 동기나 충동을 느낄 때는 그렇게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연기자는 그 행동이 재미있거나 온전한 기쁨을 가져오는 한 내면의 자극에 따릅니다.

 9. 연기자는 한번에 하루, 순간 순간을 삽니다. 목표도 없고 계획도 없으며 목적이나 의제도 없습니다. 과거나 미래도 없습니다. 단지 "지금"뿐입니다.

 10. 연기자는 '무한한 나'에 대해서, 그리고 연기자로서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이 비록 기쁘지 않은 것이라 하여도) 홀로그램 창조의 전반에서 겪은 모든 것에 대해서 깊은 사랑과 감사를 키워갑니다. 연기자는 전반에서 그것이 리얼한 것임을 확신하기 위해 행한 멋지고 완전하고 기적적인 일들에 크게 놀랍니다.

 11. 연기자는 자기의 '무한한 나'가 돈을 포함해서 모든 필요한 것을 보살필 것이고 따라서 걱정할 게 전혀 없음을 "알고" 온전히 믿습니다. '무한한 나'는 필요한 모든 것을 주지 않으면서 연기자가 어떤 체험을 하도록 창조하지 않습니다. 

 12. 연기자는 그의 '무한한 나'가 창조할 경험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매일 잠에서 깹니다. 그리고 벨트를 매고 긴장을 풀며 놀이공원의 승차를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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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2

나비되기 2014. 12. 3. 07:47

'인간 게임'의 전반부가 '무한한 나'의 본래 상태의 반대가 되도록 짜여졌기 때문에 놀이 동산의 롤러코스터처럼 그 현실을 창조하고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힘이 들어갑니다. 

 롤러코스터를 탔을 때 가장 먼저 겪는 일은 고바위를 올라가는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에게 있어 높이 올라갈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고바위를 올라가는 데는 중력의 법칙과 같은 모든 자연법칙에 도전하는 게 필요합니다. 정상으로 가는 일은 엄청난 힘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모든 종류의 "내면 체험"을 합니다. 많은 경우 공포가 될 것이고 사람마다 광범한 반응을 보입니다. 흥분이나 당황, 심지어 구토를 느끼죠.

 내 경우 내가 경험한 모든 것에 저항했습니다. 좋아하지도 않았고 느낌도 나빴으며 자연스럽지 않았습니다. 나는 필사적으로 거기서 빠져나오길 바랬죠. 그러나 다음번에 무엇이 오고 봉우리 바로 뒤에 올 환희에 대해서도 알았죠.

 마찬가지로 제약과 한계 속으로 가능한 한 깊이 들어가는 일도 롤러코스터처럼 저항을 일으킵니다. 우리는 그것을 싫어하고 기분 나빠하고 자연스럽지 않다고 생각해서 어떻게든 빠져나오고 싶어하죠. 그래서 우리는 전반부에 대해 저항하고 왜 그런 체험을 해야 하는가 하고 의아해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설계된 '게임'이기 때문에 그렇죠.

 내가 롤러코스터 비유를 좋아하는 다른 이유는 상승 체험이 없이는 그 다음에 올 것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 게임'처럼 롤러코스터에도 "전후반"이 있습니다. 전반엔 올라가고 후반엔 내려가죠. 객관적으로 보면 전반이 후반보다 "더 좋거나" "더 나쁘지" 않습니다. 실상 후반은 전반이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한쪽이 다른쪽보다 좋다는 "판단"은 있을 수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롤러코스터의 후반에 있는 사람이 전반에 있는 사람보다 더 "깨달았거나" "더 낫거나" "더 진보했거나" "더 올라갔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다른 지점에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나와 같은 누군가가 고치 삶의 막바지에 있다고 해서 영화관에 있는 사람보다 "더 깨달았거나" "더 낫거나" "더 진보했거나" "더 올라갔다"고 할 수 없습니다. 나는 탈바꿈의 다른 지점에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이고 롤러코스터의 정상을 지나 많은 체험을 했다는 것뿐입니다.

 내가 이 비유를 좋아하는 마지막 이유는 우리가 통상 한계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뒤집어준다는 것입니다. 한계 속으로 "내려" 간다거나 깊이 "내려" 간다기보다 롤러코스터의 전반부는 "올라" 간다는 것이죠. 그래서 인생의 "바닥"을 친다고 말하는 대신 정상에 도달했다라든지 한계의 극점에 이르렀다든지 하는 말을 쓰는 것이 낫지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가 바로 '게임'의 후반을 시작하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나로서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판단을 하지 않는 데 도움이 됩니다.

 내가 아파트에서 직업도 돈도 이런저런 것도 없음을 깨달았다고 말한 날이 나에게는 롤러코스터의 꼭대기에 해당합니다. 그 순간은 마치 무중력 상태 같아서 하강을 시작하기 직전에 모든 저항을 내려놓은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그 순간은 모든 판단이 사라진 순간이고, 명료하고도 완전히 객관적인 순간입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정상에 온 것에 대해, 심지어는 그동안의 등정에 대해 감사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다음 코스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뿐 아니라 시간과 공간에 그저 매어달려 있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극장 뒷문을 걸어나가 '인간 게임'의 후반을 시작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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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게임'의 전반(한계와 제약이 깊어짐, 즉 모든 드라마와 갈등, 아픔과 괴로움이 커짐)은 나비의 1~2단계(즉 알과 애벌레) 즉, 극장 안의 '인간 아이'와 '인간 어른'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후반은 3~4단계(즉 고치와 나비)로서 극장 뒷문을 나와 고치 속으로 들어간 때 생기는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 게임'의 전후반에 적용되는 규칙들을 보면 더 분명하게 이해된다고 봅니다.

 전반에 해당하는 규칙은, 

 1. 연기자는 자신이 참으로 누군지 몰라야 하고 다른 무엇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극단적으로는 육체거나 '무한한 나'라고 생각합니다.

 2. 연기자는 홀로그램 체험이 진짜라고 믿고 오감으로 감지하는 것이 실제 "밖에서" 객관적이고 독립된 실체로서 발생한다고 믿어야 합니다.

 3. 연기자는 "밖에서" 만나는 것들이 자기와 자기 인생에 영향력이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4. 연기자는 "좋은 것과 나쁜 것", "옳고 그름", "더 낫고 못하고", "선과 악"의 판단이 존재함을 믿어야 합니다.

 5. 연기자는 그들이 "밖에서" 보는 것에 뭔가 "문제"가 있으며 변화되거나 고치거나 개선되어야 한다고 믿어야 합니다.

 6. 연기자는 그들이 실패했을 때의 경험, 즉 결함이 있다고 느끼는 것과는 다른 현실을 창조할 능력이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7. 연기자는 마음을 이용해서 '인간 게임'을 빠져나올 수 있거나 사랑으로 빠져나올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8. 연기자는 자신이 "뭔가 생겨나게" 할 수 있으며 실패했을 때는 더 멋지게 하거나 더 잘 하거나 더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자신을 비난합니다.

 9. 연기자는 도달해야 할 목표나 만족시켜야 할 조건 또는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10. 연기자는 자신만이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킬 책임이 있고 그것을 위해 분투노력해야 한다고 믿어야 합니다.

 11. 두려움과 저항은 '인간 게임' 전반부의 바탕이 되며 판단과 믿음이 그 환상을 지속시키는 접착제가 됩니다.

 12. 그 환상들은 무너지지 않아야 하며 연기자들이 게임을 꿰뚫어보지 못해야 합니다.

 이상의 것들이 익숙하게 들리지 않습니까?

 이 모델에 따르면 '인간 게임'의 전반은 한계와 제약을 겪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상의 규칙들이 그렇게 이끌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 규칙들을 따라왔다면 삶의 한계와 제약을 엄청 경험했을 것입니다. 왜 여태 그것을 몰랐을까요? 그것은 그렇게 되도록 짜여졌기 때문입니다.

 아마 느낌이 안 좋고, 옳지 않고, 무언가를 잘못했다고 생각해서 당신은 그런 제약과 한계를 싫어했겠지요. 하지만 당신은 "잘못" 한 게 없습니다. 나도 그렇고요. 우리는 '무한한 나'가 우리에게 바라는 딱 그대로 연기했습니다. 우리의 저항과 판단이 잘못이 아니었더라도 '무한한 나'가 나로 하여금 그렇게 느끼도록 이끌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창조된 바의 연기자로서 멋지게 역할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몰랐을 뿐이고 우리 입장에서 감사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여기 감사 거리가 있습니다. '무한한 나'가 이 일을 얼마나 멋지게 해냈는가 보세요. 자신의 무한한 능력과 무한한 기쁨과 무한한 지혜와 사랑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제한했는가 보세요! 대단한 창조고 멋진 게임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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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6

나비되기 2014. 12. 1. 07:13

 이 모델은 앞으로 더 많은 정보를 얻거나 양자물리학 연구가 더 이뤄지거나 더 많은 정찰대가 발견한 보고서를 보내 온다면 바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델이 고치 속에서 탈바꿈을 하는 데 아주 실용적이고 쓸모있고 효과적인 길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화관에 있는 동안 진실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그 반대라면 어쩔건가요? 즉,

 ~ 삶이 학교나 훈련소, 또는 시험 같은 게 아니라 놀이공원에 있는 탈것이라 한다면 어쩔건가요?

 ~ 이 땅 위에서 삶의 목적이 무언가를 배우는(생각하는) 게 아니라 경험하는(느끼는) 것이라고 한다면 어쩔건가요?

 ~ 우리가 '연기자'로서 '무한한 나'와 "분리되어 있음"을 탄식하거나 "재차 연결하려고" 하는 대신 느껴보기로 되어 있다고 해서 어쨌다는 것인가요?

 ~ 우리의 '무한한 나'와의 연결이 끊긴 적이 없고 그 연결이 '게임'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어쨌다는 것인가요?

 ~ 우리가 과거나 미래에 하는 경험이란 바로 우리의 '무한한 나'가 바라는 바와 정확히 같으며 거기에 바뀌거나 고치거나 개선될 게 없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 우리가 저항하는 모든 것이 실로 우리의 '무한한 나'가 우리에게 바라는 바이고 아픔과 괴로움을 초래한 원인이 바로 우리가 판단하고 저항한 때문이라고 한다면 어쩔 것인가요?

 ~ 우리는 결코 "잘못한 게" 없으며, 그저 우리가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며 우리가 구원받아야 할 죄인이라고 남들이 말할 때 단지 그 사람들을 믿었던 것일 뿐이라고 해서 어쨌다는 것일까요?

 ~ 세상도 구원받을 필요가 없으며 그저 '무한한 나'가 체험하고 싶은 정확한 체험을 창조했을 뿐이라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나요?

 ~ 우리가 창조할 능력이 있고 우리 현실을 변화시킬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의 에고일 뿐이며 모든 권능은 '무한한 장'의 다른 쪽에 있는 '무한한 나'에게 있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 우리에게 그 어떤 "자조 수단", 즉 마술과 같은 공식이나, "시크릿"이나 "영적 법칙"이나 구루나 현실을 바꿀 특별한 기법이 필요없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 '인간 게임'의 전반부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든(명상이나 기도, 유기농 음식 먹기 등등) 우리가 겪게 되어 있는 모든 한계를 다 겪기 전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이라 해서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한계를 다 겪는 시점이 바로 후반부의 시작인 바에 말입니다.

 ~ 우리가 할 일이란 그것이 무엇이든 '무한한 나'가 우리를 위해 창조한 경험들을 편안하게 즐기고 경험하는 것이며 이분법적 판단(좋다 나쁘다, 더 낫다 못하다, 옳다 그르다 등)을 그만 두는 것이라 해서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의 경험을 설명하는 많은 "스토리들"(종교, 철학, 신념 등)을 만들었는데 거기에 많은 진실이 있긴 하지만 그것들이 항상 변하며 결국엔 더 한계에 도달하게 만든다고 말한대서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 '인간 게임'에서 지금이 바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고치 속으로 들어가 게임의 후반부를 연기하고 롤러코스터의 첫번째 피크를 넘어 '무한랜드'의 탈것을 즐겨야 할 때라 한다면 어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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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5

나비되기 2014. 11. 29. 23:11

 "잠깐. 또 생각이 있어."

 "이번엔 뭔데?"

 "'인간 게임'을 둘로 나누어서 전반은 연기자들이 어디까지 한계에 부딪치는지를 보고 후반은 거기에서 건져내는 거야."

 


 다시 말하지만 내가 말하는 게 진리라고 주장하려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결코 모를 겁니다. 그러나 인간이란 엄청난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비록 왜 '무한한 나'가 '인간 게임'을 만들었는지를 생각하는 게 쓸데 없을지라도 해보는 겁니다. 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다음은 내가 수년 동안 생각해오던 것들입니다.

 나브라틸로바 같은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들이라면 테니스에 대해 시큰둥해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이 그저 시험삼아 평소 안 치던 손으로 테니스를 해보려 하지 않겠습니까?

 누구라도 그저 재미를 위해서 눈을 감고 다트를 해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내가 서너살 때 살던 집 문앞에서 세발자욱이면 길가로 이어진 벽돌 보도가 있었습니다. 나는 세발자전거를 타곤 했는데 길까지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부딪치기 직전 브레이크를 얼마나 잘 잡나 실험하곤 했지요(결국 마지막엔 넘어져서 갈비뼈를 부러뜨리고 말았죠.). 그래서 나는 게임을 한다는 생각을 한계까지 가져가서 어떻게 되나 보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롤러코스터에서 즐기려는 것도 비슷하다고 봅니다.

 아니면 '무한한 나'는 그저 순수하게 물질 우주를 느껴보기 위해 '인간 게임'을 만들 수도 있다고 봅니다. 1996년에 존 트라볼타가 출연한 '미카엘'이란 재미있는 영화가 있었는데 거기서 트라볼타는 몸을 가지는 게 어떤건지 체험하려 내려온 대천사 역을 맡았죠. 거기서 그는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원하는 만큼 설탕과 고기를 먹는 등 적극적으로 리비도를 경험함으로써 모든 순간을 즐겼죠. 물론 대부분의 뉴에이지 신봉자들은 미카엘이 했던 거의 모든 것들이 "깨달은 자"가 취할 바가 아니라고 해서 그 영화를 싫어했지요. 하지만 다시 한번 이 영화는 '무한한 나'의 동기에 대하여 한가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고 봅니다.

 물론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라는 말을 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제 그 반대도 옳습니다. 즉 "땅에서와 같이 하늘에서도"죠. 우리는 모두 "바깥의 체험"에서 "내면의 체험"을 하기 위해 영화를 보고 스포츠를 관람하고 음악을 듣습니다. 전문가에 따르면 골프마저도 내면의 체험을 위해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인간 게임'은 '무한한 나'가 "내면의 체험"을 위해 연기자로 하여금 "바깥의 체험"을 하게 하는 거라고 보지 말라는 법이 없겠죠. 물론 그 느낌을 연기자와의 연결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하지만요.

 다른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직접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 이유가 중요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연기자인 한 완전한 답을 얻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다행인 것은 그 이유를 모른다고 해서 우리가 여기서 지금 '인간 게임'을 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모델로서 '인간 게임'은 수많은 의문에 대해 다른 어떠한 모델보다 잘 설명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왜 우리 삶이 드라마와 갈등, 아픔과 괴로움으로 가득하며 우리가 여기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등에 대해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일관성있게 답해준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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