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3

나비되기 2014. 11. 10. 08:17

 많은 영적 가르침에서 의식은 인간의 불멸하는 부분으로서의 영이나 혼과 비슷한 말이며, "진화상 높은 수준에 이른 인간의 의식을 가리키기 위해 상위 의식 - 초의식(요가), 객체 의식(구루디에프), 부다 의식(신지학), 신의식(수피즘과 힌두교), 그리스도 의식(뉴에이지), 우주 의식 등 -이란 말이 쓰입니다." [Answers,com]

 그러나 "양자물리학에서 무한성과 입자-파동 이중성 개념처럼 직감으로 금방 알 수 없는 성질의 것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중력, 질량, 전하처럼 더 이상 설명이 불가능하고 더 이상 환원될 수 없는 성질의 것입니다." [Answers,com] 

 나로서는 이 설명이 가장 의미 있어 보입니다.

 그 누구도 의식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거나 제대로 정의하지 못하는 건 분명합니다. 아마도 우리는 결코 알지 못할 겁니다. 우리는 그게 있어야 한다는 것밖에 모릅니다. 우리가 의식으로부터 '무한한 장'의 다른 측면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뇌는 최소한 프리브럼에 따르면 홀로그램 수신기 겸 번역기 구실을 하기 때문에 '무한한 장'의 다른 면에 있는 정보를 처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의식이 육체도 뇌도 마음도 지성이나 홀로그램 우주의 그 무엇도 아니라는 것은 압니다. 그것은 사물이 아니고 사물의 창조자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의식을 가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의식이란 말이 이 홀로그램 우주의 아주 많은 부분에 쓰여서 '무한한 장'의 다른 측면에 존재하는 것을 묘사하는 데는 혼란스럽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우리는 일종의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의식이죠. 우리는 자신을 인식하며 우리가 인식한다는 것을 압니다. 사전에 있는 대로 "아는 상태, 특히 우리 안에 있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한한 장'에서 파동 주파수를 택하는 의식과 같은 것은 아닙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하므로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데카르트도 다른 사람들처럼 극장 안에서 살았습니다. 전에 언급했듯이 양자물리학에서는 우리가 믿는 것의 반대가 더 진실에 가깝습니다. 즉 "나는 존재하기 때문에 생각합니다."

 우리가 논하는 의식은 바로 "나는 존재한다(또는 나는...이다.)"이고 우리의 자의식은 "나는 생각한다."입니다.


 나는 "상위 자아", "상위 권능", "상위 의식" 또는 "확장된 자아"란 말을 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들은 과용되었고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그 말들은 나비가 되려면 가야할 곳의 반대방향으로 이끕니다. 왜 그런지 간단히 봅시다.

 마찬가지로 나는 "혼"이나 "영" 그밖의 종교적인 용어를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다루는 것은 신지학이나 높은 수준의 도인이나, 영성에 관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택한 게 "무한한 나(Infinite I)"입니다. 

 여기에는 몇가지 가정이 있는데 '무한한 장'의 다른 측면에 존재하는 의식이 가지는 특성은 다음의 무한한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즉,

 ~ 무한한 기쁨

 ~ 무한한 풍요

 ~ 무한한 지혜

 ~ 무한한 권능

 ~ 무한하고 조건없는 사랑

 ~ 창조적으로 놀고 표현하려는 무한한 욕구 [로버트 샤인필드에게서 가져옴]

 이것이 "진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죽을 때나 알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이 가장 진리에 가깝다고 봅니다. 그리고 '무한한 장'처럼 우리가 나비가 되는 데 가장 잘 통하는 모델을 제공합니다.

 또한 '무한한 장'에 있는 '무한한 나'와 홀로그램 지구에 홀로그램 몸으로 사는 우리 사이를 분명히 구분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무한한 나'는 이 글을 쓰는 나와 읽는 당신이 아닙니다.

 내가 '무한한 나'라고 할 때 나는 의식 일반이나 "집단 의식"이나 "우주 의식"이나 "신"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의식을 말하는 것임을 강조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무한한 나'를 가지고 있습니다(가장 비슷한 개념으로는 제인 로버츠의 소설 'The Oversoul Trilogy'을 참조하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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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그램은 두단계로 되어있고 두번째 단계에서 기준광선은 사물을 포함하고 있는 홀로그램 필름을 향해 쏘아지는데 그것은 해당 사물을 "현실" 속으로 쏘아내기 위한 것임을 우리는 다루었습니다.[그림 참조]

 아직 논의하지 않은 것은 하나의 홀로그램 필름은 아주 많은 사물을 저장할 수 있고 실상 홀로그램은 그 정보저장 능력 때문에 머지않아 다른 레이저방식의 저장기술을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 저장방식의 이점은 기록매체의 표면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3차원 공간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기준광선을 필름으로 보낼 때 어떤 사물이 튀어나올지는 기준광선의 각도에 따라 다릅니다. 다시 말하면 기준광선의 각도를 달리함으로써 어떤 홀로그램 영상을 취할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홀로그램 우주에 적용해 봅시다...

 어떤 기준광선이 '무한한 장(the Field)'에 쏘아져 어떤 "현실"을 창출한다고 합시다. 이때 '무한한 장'은 무한한 수의 홀로그램에 필요한 모든 파동주파수를 가지고 있는 거대한 필름과 같습니다.

 이제 더 세부적인 질문을 해봅시다. 누구 또는 무엇이 우리의 홀로그램 현실을 창조하기 위해 '무한한 장'에서 특정한 파동주파수를 골라내는 기준광선일까요?

 이제까지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답이 의식입니다. 의식은 '무한한 장'에 있는 정확한 파동주파수를 선택해서 그것을 인간의 뇌에 다운로드해줍니다. 그러면 인간의 뇌는 그것을 시공상의 입자로 변환하여 "현실"로 내어놓습니다.

 물론 이 과정은 일이차원의 것이 아닙니다. 보다 실제적인 모습은 3차원 공간의 핵에 "현실"이 있고 '무한한 장'이 그것을 둘러싸고 또 의식은 '무한한 장'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될 겁니다. [그림 참조]

 과일을 생각해보면 됩니다. 씨앗부분이 현실이고 살부분이 '무한한 장'이고 껍질을 의식이라고 보면 됩니다. 


         -----------*------------


 "의식은 '무한한 장'에 있는 정확한 파동주파수를 선택해서 그것을 인간의 뇌에 다운로드해줍니다. 그러면 인간의 뇌는 그것을 시공상의 입자로 변환하여 "현실"로 내어놓습니다."

 여기서 양자물리학은 둘로 나뉘어집니다. 한 그룹("순수 과학자")은 비록 그것이 가장 논리적이고 간단하며 오캄의 면도날 법칙을 만족시키더라도 이 답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의식이란 측정할 수도 없고 보통의 과학적 방법으로 다룰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의식은 수학적 방정식이나 통계적 조사방법에도 잘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의식이 가장 좋은 답일 뿐 아니라 가장 잘 들어맞는 답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양자물리학자들의 수가 상당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고스와미 박사인데 내 추정으로는 이 시대 위대한 사상가 가운데 한분입니다. [경력 생략] 그는 말하길,

 "양자물리학은 우리가 의식을 바탕으로 세상을 이해할 때만 세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세상은 의식으로 이루어져 있고 세상이 바로 의식입니다...양자물리학은 이 점에 관하여 명약관화합니다...의식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과학이 '자유의지'를 다룹니다. 의식은 우리 과학에서 수학적 설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자유롭습니다. 사물만이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단지 확률로만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두드러지게 남는 질문은 누가 선택하는가 하는 겁니다. 그점을 살펴보면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자유로부터 우리의 실제 경험이 나옵니다." 

 예일대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는 제프리 새티노바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볼 수 있는 세상에 영향을 주는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양자물리학이 그런 소리를 한다면' 아주 힘들게나마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낼 수 있습니다. 즉 양자물리학은 물질세계에 영향을 주는 보이지 않는, 즉 영적인 세상이 있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러나 그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 것 자체가 물질적 실체의 바탕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합니다. 그것이 무엇이고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지만 그것이 물질의 가장 근본적인 특징입니다."

 이론물리학자인 프레드 앨런 울프는 이렇게 말합니다.

 "양자물리학은 의식이 우주에서 한가지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즉 양자물리학은 우리가 사는 현실에 영향을 주는 것 같은 은밀하고도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현실이 전혀 눈에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펜실나니아 대학의 앤드류 뉴버그는 묻습니다.

 "우리가 거대한 가상우주 공간에 사는지 여부는 꼭 좋은 답을 기대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그저 거대한 환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식과 물질 실재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물질세계가 실제로 의식현실에서 나오는지 아니면 (물리학자들이 찾던 '차갑고 어두운 물질'이나 물질의 다른 측면이 아니라) 의식 자체가 우주의 근본인지요? 아마도 의식은 그 이상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주가 의식의 상태 이상의 무엇, 즉 우리가 바라보는 물질 실재 이상의 그 무엇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수많은 존경할 만하고 생각이 깊은 양자물리학자들이 결론 내리길 의식은 우리의 홀로그램 체험을 창조하기 위해 사용하려는 정확한 파동주피수를 '무한한 장'에서 택하는 주체입니다.

 그러나 '무한한 장'과 똑같이 아무도 의식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역시 '무한한 장'의 경우처럼 고스와미 박사가 말하는 대로 "의식이 반드시 관련이 있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모델을 구축할 수 있고 그것을 매일 실제로 성공적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홀로그램 우주를 창조한다"는 진술은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생각하는 "당신"은 '무한한 장'의 "현실" 측면에서 현실을 창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의식이 당신의 홀로그램 우주를 창조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러나 의식이란 정확히 무엇입니까? 

 비디오를 보시면 알겠지만 [비디오 원문 참조] 의식을 정의하는 것은 전혀 쉽지 않습니다. 미리엄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의식이란 "특히 인간 내면의 것에 대하여 아는 자질이나 상태"라고 합니다.

 철학에서는 "가장 기초적인 차원에서 의식은 생각하는 사람이 존재의 어떤 측면에 대해 생각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인간에게 의식은 메타 의식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메타 의식이란 사람이 알고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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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벌레에게서 나비가 될 것 같은 무엇을

전혀 찾을 수 없습니다.


R. 벅민스터 풀러 


2부 서문


 고치 속으로 오신 걸 환영합니다.

 방금 들으신 소리는 당신 뒤에서 문이 닫히고 자물쇠가 잠기는 소리입니다. 그러니 시간을 허비하지 맙시다...

 (그런데 고치 속으로 들어올 때 종종 일어나는 일은 자기실현의 첫걸음을 밟은 데 대해 조그만 선물을 "우주"에게서 받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기에 마음을 열고 주의깊게 살펴보셔야 합니다. 그러니 선물이 도착하면 꼭 누구에게라 할 것 없이 감사를 표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


 시작하기 전에 "믿음체계"와 "모델"을 분명히 구분해야 합니다.

 "모델은 사물을 더 연구하기 위하여 시스템이나 이론 또는 현상에 대하여 이루어지는 체계적인 설명이며, 과학적 모델은 물질적이거나 가시적이거나 수학적이거나 또는 계산할 수 있는 것으로서 종종 과학 이론을 구축하는 데 사용됩니다."

 앤서즈닷컴에 더 간단한 정의가 있는데 "과학적 모델이란 사물이나 시스템의 표현입니다. 과학적 모델의 예는 세포나 지도의 다이어그램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모델은 그 증거가 이미 존재합니다. 우리의 경우 양자물리학과 뇌실험에 대한 과학적 결과가 있습니다. 

 모델은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 테스트할 수 있도록 짜여져 있습니다.

 한편 "믿음 체계"는 종종 현존하는 증거에 반하여 만들어지기에 검증을 견딜 수 없습니다. 실상 믿음 체계는 어떻게 해서라도 검증을 회피하려고 합니다.

 이 책은 믿음 체계가 아니라 모델에 관해 다루려 합니다. 즉 시험된 것들입니다.

 무엇을 믿으라고 하는 대신 제시되는 모델을 스스로 실험해 보시라고 할 겁니다.

 내가 정찰대로서 말씀드리는 것은 내가 제시하는 모델이 내게 통했고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매우 행복한, 참으로 놀라운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9장 의식 모델


 라마나 마하리쉬는 그저 "나는 누구인가 하고 자신에게 묻고 또  물으면" 나비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물으면 다른 모든 생각이 사라진다. 그리고 타오르는 불을 젓는데 쓰는 막대기처럼 그것은 사라질 것이다. 그때 참나를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말하기는 쉬워도 실행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극장 뒤편의 다른 가르침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먹혔다면 지금쯤은 지구상에 수많은 나비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실제 통용될 조금 다른 방법을 취할 것입니다. 고치 속에서 대략 2년 동안 "내가 아닌 것은 무엇인가?"와 "무엇이 진실인가?" 하는 질문에 집중할 것입니다. 최소한 나와 다른 몇사람의 정찰대한테는 그것이 통했고 그덕에 우리는 지금 상태에 도달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참된 답을 찾기 전에 일생동안 모아들인 (특히 극장 뒤편의 여러 단체에서 배웠던) 거짓 나에 대한 것을 벗겨내야 합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려면 우선 더 이상 애벌레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곤충의 유충 구조가 사라지는 동안 성충에 해당하는 구조가 생겨나는 것은 바로 번데기 기간 동안입니다." [위키피디아] 

 그러니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통상 가지는 믿음과 그것이 맞는지 여부를 자세히 살펴볼 것입니다. 그 가운데 뉴에이지 단체에 가장 인기있고 공통적인 게 "우리가 자신의 현실을 창조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게 맞습니까?

 무엇보다 뉴에이지는, "현실"이란 것이 홀로그램 영상이고 따라서 전혀 현실이 아님을 모르는 듯하기 때문에 그 말은 볼 것도 없이 오류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작은 과오이며 내가 양자물리학에 맞게 수정하자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홀로그램 우주를 창조"한다는 것이며 그렇게 하면 더 중요한 점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홀로그램 우주를 창조하는 게 맞다면 그 홀로그램 우주를 창조하는 "우리"는 정확히 누굴까요?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언제나 우리 삶이며 우리 현실이라고 생각한 것은, 양자물리학에 따르면 현실이 아니라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홀로그램 3D 영화입니다. 그때 파동주파수가 '무한한 장'에서 우리 뇌에 다운로드되어 시공상에 자리하는 입자로 변환되며 그것을 우리의 감각기관이 감지할 수 있도록 밖으로 투사해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질문했던 것은 "내가 나의 현실로 체험하는 홀로그램 영화를 창조하는 것은 누구 또는 무엇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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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4 [1부 끝]

나비되기 2014. 11. 5. 07:25

 문 밖으로 나가 고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가장 방해하는 것은 확실히 예정된 죽음입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려면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당신도 죽어야 합니다. 즉 당신이 "나"라고 생각하는 그 "나"가 죽어야 합니다. 당신이 진짜 누군지 알려면 바로 이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고치 속에서는 얼마나 있어야 할까요?

 "번데기 기간은 짧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주왕나비는 2주면 됩니다. 아니면 성충이 되기에 적당한 계절까지 동면이나 휴면을 하기도 합니다...그 기간은 몇주나 몇달 심지어 몇년이 되기도 합니다." [위키피디아]

 다른 두명의 정찰대와 내 경험에 따르면 그 기간은 대략 2~3년이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기간이 전부 "영혼의 어두운 밤"인 것은 아닙니다. 끝이 다가올수록 쉬워집니다. 하지만 다음 주나 다음 해처럼 단기간에 나비가 안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모든 얘기가 엄청 재미있을 것 같습니까? 실상 재미있습니다. 일단 익숙해지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 사항을 감안해야 합니다...에베레스트 산을 오르기로 했다면 정상에 가기 위해 엄청난 훈련과 어려운 조건에 대비해야 합니다. 올림픽 수영경기에 도전한다면 수년간 "정상적인" 생활을 희생해서 하루에 몇시간씩 풀에 있어야 하고 걸맞는 몸을 만들기 위해 체력단련을 할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메달을 딴다는 보장은 없지요.

 그런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당신이 해내야 할 그런 모든 사항에 대해 적당히 사탕발림하는 코치는 없으리라고 봅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편 에베레스트나 올림픽 메달 같은 것에 도전하는 사람 치고 최종 목표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그걸 모르고 그렇게 한다면 진짜 미친 것이죠. 이 경우 즉 나비로서 당신이 얻을 것은 항구한 기쁨, 풍요, 능력과 사랑입니다. 아마 내가 아직 고치단계를 완성하지 못하였기에 아무것도 보증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 상태에서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내가 극장 안에서 '인간 어른'일 때 바라고 믿던 모든 것들을 체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진정한 만족, 마음의 평화, 생각할 수 있었던 것 이상의 풍요, 근심과 스트레스에서 완전히 벗어남, 꿈꾸던 이상의 즐거움과 가슴뜀이 있습니다. 게다가 실제 드라마와 갈등도 없고 아픔과 괴로움도 없습니다. 그리고 나와 타인들과 우주 전체에 대해 훨씬 더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또 궁금했던 것들에 대한 답을 얻었고 더 중요한 것은 더 이상의 의혹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로서는 그것만으로도 이 여정이 가치가 있고 골인점까지는 아직 더 갈 길이 있습니다.

  

------------------*--------------


 제드 맥케나는 그의 '깨달음 3부작'의 첫권을 할애하여 "영적으로 깨어나는" 것에 대해 썼는데 나는 그것은 아주 굉장한 것이고 정확하고도 매력적인 것임을 확인하고 기뻤습니다. 둘째 권에서는 영적 자기분해와 모비딕의 선장 사례를 들면서 거기에 이르는 길이 얼마나 어렵고 큰 노력이 필요한지 분명히하고 있습니다. 셋째권에서 그는 마치 그 길을 가지 말고 극장 안에서 '인간 어른'으로 있으라고 설득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누가 해변없는 바다에 영원히 떠돌고 싶을까? 누가 여생을 무한한 우주 공간을 떠돌고 싶을까? 물론 아무도 바라지 않습니다. 무의미함을 어디에 쓸까요? 어찌 무(無)가 될 수 있습니까?" [제드 맥케나]

 그렇습니다. 소위 "영적 깨달음"을 사람들은 전혀 원하지 않습니다. 비록 어떤 스승들과 구루들이 그에 대해 말했을지라도 하룻밤에 눈깜짝할 사이에 일어나거나 특별한 명상 세미나의 결과로 갑자기 신을 체험하는 것과 같은 그런 게 아닙니다. 거기에 도달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고 수고로운 것이어서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당신은 베이스 캠프까지 와서 경치를 즐기며 상당히 그럴 듯한 삶을 누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혹은 정상까지 갈 수 있겠죠.

 사람들은 어째서 그걸 추구할까요? 물론 그것이 거기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저 아니할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 내면에 문을 박차고 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뭔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선택이 명쾌하고 쉽습니다. 극장 안에 있는 것이 실체가 아니고 당신이 찾는 답이 거기 없다는 것을 안다면 그 안에 머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다른 이들의 경우 그 선택이 진짜 어려울 수 있습니다. 특히 앞으로 살 시간이 많이 남은 젊은 '인간 어른'의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삶의 다른 대안을 생각하기까지 극장 안에서 보내야 하는 정해진 시간이 있는지 아닌지 의아합니다. 결국 '인간 어른'으로서 (그것이 비록 한계가 있음에도) 그 이삼십대에 놓칠까봐 노심초사하는 그런 재미와 기쁨과 쾌락이 아주 많습니다. 우리의 동굴이 제공하는 모든 것을 체험하기 전에 당신이 속한 단체를 떠나서 완전히 혼자가 된다는 것은 그다지 끌리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물론 젊은 사람들은 그들이 찾는 답을 극장 안에서는 찾을 수 없다고 하는 내 주장을 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 그들은 나를 믿고 싶어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항구하고 참되며 언제나 경험할 수 있는 기쁨과 풍요와 능력과 사랑을 약속하는 단체에 막 가입했기에 한번 시도해보고 싶은 것입니다. 나는 대찬성입니다. 모두 해보는 것에 동감입니다. 당신이 해보는 것에 아무것도 "잘못된" 것은 없습니다. 극장 뒷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쓰는 동안 극장 뒤편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내며 그 한계를 충분히 경험했기에 극장 문으로 나가도 잃어버릴 게 없는, 전에 히피였던 5~6십대 베이비부머들에게는 특별히 권하고 싶은 생각이 간혹 듭니다. 우리 만납시다.

 

------*----------*--------


 그래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결정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전부입니다.

 문은 당신 앞에 열려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일단 나가면 문은 잠기고 당신은 다시 뒤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처음에 얘기한 대로 이제 당신이 선택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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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3

나비되기 2014. 11. 3. 07:58

 나는 독자께서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 결정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제 아주 평범하지만 새로운 비유를 들려고 합니다. 즉

 "나비의 완전한 탈바꿈은 '땅에 묶인' 애벌레가 '천상의 나비'로 바뀜에 따라 영생에 대한 비유로 사용되어 왔다" 뉴월드 백과사전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주는 우리가 준비된 때 쉽게 알아보도록 많은 힌트와 단서를 제공한다고 나는 말했습니다. 나비의 탈바꿈은 그 가운데 하나로서 많은 작가들이 수시로 그것을 사용한 것도 놀랍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시 보면 여기에도 잘못된 전제가 있습니다.

 탈바꿈의 비유는 "영생"과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 나비가 되는 것과 전적으로 관계가 있습니다.

 먼저 "탈바꿈"이 진짜 곤충이 알에서 성충으로 되는 데 겪는 모든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탈바꿈은 보통 네 단계로 되어있는데 이것은 영화관 비유와 잘 맞습니다.

 1단계 : 알, '인간 아이"

 2단계 : 애벌레, '인간 어른'

 3단계 : 번데기, 문 통과 직후

 4단계 : 성충, 소위 "영적 깨달음"

 지금 논의할 것은 2단계에서 3단계로 들어가는 순간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이 극장 뒷문을 통과하면 겪는 일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곤충 비유에서 번데기 단계는 애벌레가 성충으로 변하는 중간 과정입니다.

 "애벌레의 몸체가 사라지는 동안 성충의 몸체가 생기는 것은 바로 번데기 기간입니다. 번데기는 활동하지 않으며 보통 고착되어 있습니다. 단단하게 보호해주는 껍데기는 천적에게 먹히지 않도록 보호색을 하고 있습니다." [위키피디아]

 이 "단단한 껍데기"는 곤충마다 다르지만 통상 "고치"라 합니다.

 기술적으로는 대부분의 나비가 고치를 가지지는 않습니다. 그저 나무에 매달릴 수 있는 외피에 그치지요. 하지만 편의상 고치로 통일하고자 합니다.

 어쨌든 극장 뒷문을 통과하기로 했다면 우리는 2단계를 거쳐 3단계인 고치로 들어간 것입니다. 제가 이 비유를 좋아하는 것은, 고치와 문밖으로 나오는 것 사이에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고치는 작고 고립되어 있으며 어둡습니다. 그것은 애벌레의 죽음을 의미하는데 바로 당신의 상태와 같습니다. 지금 당장 눈부신 영원한 지복 상태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그대신 처음 며칠동안 이제까지 익숙했던 것과 별다른 게 없습니다. 당신이 소위 일컬어지는 "영혼의 어두운 밤"이란 것을 시작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가만을 아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립니다.  

 "'영혼의 어두운 밤'은 영적 생활의 한 국면을 묘사하는 데 쓰는데 고독감과 황량함이 특징이다...세계적인 영적 전통마다 거론하고 있다...'어두운 밤'은 기독교에서는 신과의 합일로 가는 여정에서 만나는 영적 위기를 말한다. 특히 영혼의 어두운 밤을 만난 신자는 기도나 신께 대한 지속적 봉헌과 같은 영적 수련이 갑자기 모든 가치를 잃어버리는 경험을 하는 듯하다. 상당 기간 동안 기존의 기도는 하기가 지극히 어려워지고 응답받지 못한다..마치 신이 갑자기 그들을 내버렸거나 기도생활이 파탄난 것으로 느끼기도 한다...그러나 신비가들은 어두운 밤이 아주 파괴적인 게 아니라 위장된 축복으로 여긴다. 그로써 덕행에 따라오는 영적 환희를 빼앗기게 된다. 비록 수행자가 덕행의 실천에 있어서 한동안 겉으로는 퇴보하는 듯하지만 (영적 보상은 적어지고 신에 대한 사랑은 더욱 커짐으로써) 실제는 더욱 덕스러워지는 것이다." [위키피디아]

 고치 속에서는 이제까지 신성하게 생각했던 모든 믿음과 이론, 의견과 판단, 그리고 태도가 도전받는 상황을 경함할 것이며 이제까지 했던 영적 수련이나 자기계발 기법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경험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명상과 호흡법, 꿈 분석 등을 하고 싶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온 마음이 완전히 깨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일은 지금 여기에 완전히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저 가설적으로 말해서 당신이 말하는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 이제까지 배운 모든 가르침을 버려야 한다면 어쩔 것인가? 이제까지 습득한 모든 지식을 버릴 수 있는가?"  [제드 맥케나]

 그 "어두운" 밤이 얼마나 어두울 것인가? 그것은 당신에게 달렸습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전부는 그 "어두움"의 정도는 당신이 방하착하고 죽는 일에 얼마나 저항하는가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마치 애벌레가 고치 속에서 저항한다면 탈바꿈 과정은 산 지옥이 되는 것과 똑같은 원리인 것입니다.

 극장 문을 걸어나왔다면 다른 무엇을 기대한다는 말입니까? 완전히 혼자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애벌레가 자신만의 고치를 가지듯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몇몇은 그리하지만) 그렇다고 가족이나 친구 관계를 끊고 산으로 가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가족이나 친구도 당신을 돕거나 당신이 무엇을 하려는지,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보다 먼저 같은 길을 간 정찰대 같은 사람만이 당신을 이해할 것이고 고치 속에 있는 동안 가끔 그들과 접촉할 수 있을 뿐입니다. 즉 극장 뒤편에서처럼 당신을 돕고 위로해줄 단체는 없다는 뜻입니다. 

 당신이 극장에서 보던 영화는 변할까요? 처음엔 그다지 변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그 목적에서만큼은 확실히 변할 겁니다. 즉 나비가 되기 위해 궁극적으로 고치를 부수고 나오도록 당신은 더 큰 한계를 겪을 것입니다. 이것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 계속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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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2

나비되기 2014. 11. 1. 15:45

 천정의 구체는 나에게 할 말이 없는 것 같았고 결국 나는 거기에서 시선을 거두어 극장 뒤 문을 바라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들어가지 말 것 - 아주 위험함!"이라는 문구가 써 있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극장 안, 혹은 어떤 단체에나 심지어 도서관에도 내가 바라는 해답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 삶이 바닥을 쳐서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알콜중독자나 마약중독자처럼 전환점을 맞이하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더 이상 이 단체 저 단체를 찾아가서 뭔가 이뤄지기를 바라며 분투노력하는 일이 마지막에 이르렀음을 알았습니다. 

 더 이상 대안이 없는 듯하여 말 그대로 내 안에 무언가가 문쪽으로 밀어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극장 안에는 나를 위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가보지 않은 곳도 없지만 더 이상 머물러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나는 두려움과 가슴설렘을 동시에 느끼며 문쪽으로 가서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


 이 책의 나머지 부분은 내가 문 밖으로 나와 발견한 사실에 대한, "정찰대"로서의 보고서가 될 것입니다.

 이제 도입부분에서 거론했던 것을 되풀이하며 더 전개해보려고 합니다. 나는 이 책을 써서 당신을 무언가에로 이끈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내 여정에서 발견한 정보를 전달할 뿐입니다. 그 정보를 여러분이 믿을지 말지는 관심이 없으며 내가 옳다고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에도 흥미가 없습니다. 어디에서라도 당신이 믿어주도록 주장하는 일은 내 일이 아닙니다. 내 유일한 관심은 가능한 대로 정보를 명료하고 완전하게 전달하는 것뿐인데 그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당신이 믿든 안 믿든 내가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때론 장황하게 기술하곤 합니다.

 도입부분에서 당신이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도달할 곳이 어딘지를 알려드린다고 약속했습니다.

 여기가 거깁니다.

 물론 단순한 호기심에서 거리를 두고 책이 당신 삶과 정신 진화에 관한 것으로는 생각지 않으면서 나머지 부분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위험에 빠지는 것도 아닙니다. 좋을 대로 하십시오. 그래도 "잘못"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경고해야 할 게 있습니다. 계속 읽으신다면 그 정보 때문에 당신은 영원히 변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극장 안의 삶으로 돌아가려면 많이 노력해야 할 겁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하지만 제안컨대 어쨌든 이 책의 영향을 받고 싶지 않다면 지금 읽기를 그만두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극장안 도서관에 언제나 있을 것이고 언제든 다시 꺼내볼 수 있을 겁니다.  

 몇몇 '인간 어른'들은 남은 삶을 극장 뒤 단체에 가입한 채로 살다가 죽을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대안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지만 아무도 그들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들어가지 말 것"이라 적은 경고에 이어 "아주 위험함"이란 말 때문에 권위라면 꼼짝 못하는 대부분의 '인간 어른'은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대안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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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1 ; 탈출

나비되기 2014. 11. 1. 07:16

 도서관에서 나와 극장 뒤편을 다시 보니 천정 가운데 검은 구체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빙 둘러쳐진 아이맥스 화면으로 빛을 비춰주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나는 그 구체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것이 3D 영화의 이미지를 화면에 쏴주고 있었습니다. 그 화면은 우리가 그 일부이기도 한 홀로그램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우리 삶과 현실로 알고 완전히 몰입하는 것입니다.

 사실 프리브럼은 그 검은 구체가 우리의 뇌이고 그것이 창출하는 영화는 전혀 실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양자 물리학에 의하면 우리가 이해하는 바와 같은 "실체"는 없으며, 플라톤의 동굴 벽 그림자뿐 아니라 그 그림자를 생기게 하는 불이나 사람, 나아가 동굴까지도 그렇습니다. 모두가 홀로그램이어서 우리가 보는 바대로 존재했다가 사라지곤 하는 것이며 홀로그램은 정의상 실체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서 다음과 같은 수많은 의문이 생깁니다. 

 ~ 내가 경험하는 홀로그램 영화는 누가 또는 무엇이 창조하는가?

 ~ 내가 보고 내 삶이라고 생각하는 영화가 영화관과 함께 실체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실체인가?

 ~ 영화들은 도대체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왜 그 많은 드라마와 분쟁과 아픔과 괴로움을 담고 있는가?

 ~ 그 모든 것이 결국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양자 물리학에 비추어보면 아마 훨씬 더 중요한 다음 질문에 대해 기존의 답들을 다시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즉

 ~ 나는 진짜 누구인가?

 ~ 나는 어디서 왔을까?

 ~ 여기로 어떻게 왔을까?

 ~ 내가 여기서 하고 있는 일들은 무엇인지?

 거기 서서 마치 갑자기 그리고 마술처럼 내가 필요한 답을 줄 것처럼 천정에 매달린 검은 구체를 바라보았습니다.


            -----*-----


 나는 곧 62살이 되는데 어느날 아파트에 앉아서 다음 사항을 깨달았습니다...

 ~ 직업도 없었습니다. 꼭 나를 위한 것 같은 두셋의 구인 광고에 지원했지만 아무도 나를 고용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

 ~ 돈도 없었고 다음달 방세를 어떻게 지불할지 몰랐습니다.

 ~ 친척도 여자친구도 배우자가 되고자 하는 여자도 없었습니다.

 ~ 두번 결혼했었지만 모두 내탓으로 15년 살고 헤어졌습니다.

 ~ 두셋의 친한 친구가 있었지만 아무도 천 마일 이내에 살지 않았습니다.

 ~ 세명의 손자를 포함해 괜찮은 가족이 있었지만 딸과 사위 외에는 좀처럼 만날 수 없었습니다.

 ~ AIDS와 HIV에 관해 두권의 책을 썼지만 아무도 사려 하지 않았고 분명 읽고 싶어하지도 않았습니다.

 ~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상황을 바꿀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하기를 "내 삶은 좋아질 가망이 없구나..." 정확히 기억하는데 내 입에서는 욕만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날 아파트에서 삶의 현황을 조사하고 얼마나 막장인지 깨달았을 때 나는 아무런 스트레스도 후회도 슬픔도 외로움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냉담이나 체념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했던 욕은 그저 아무런 감정 없는 습관적인 것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그 대신 그 순간은 내 현실에 대한 그 어떤 판단도 저항도 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마치 시간은 정지되어 있고 멀리 떨어져서 나를 바라다 보는 것 같았습니다. 변화에 대한 아무런 욕심도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완전히 굴복한 것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아무런 반발심도 없었는데 그것은 "아, 이것이 바로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야."하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많이 드는 느낌은 아직 집이 있고 먹을 게 충분한 상황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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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4

나비되기 2014. 10. 30. 11:07

 한편 현대 컴퓨터에서 큰 힌트를 얻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컴퓨터는 소위 "2진법 코드"를 사용하는데 이는 다름 아닌 01로 된 것입니다. 그 코드를 들여다본다면 마치 3D 그림처럼 혼란스럽기만 할 겁니다.

 하지만 컴퓨터 안에는 중앙처리장치(CPU)가 있어서 컴퓨터의 뇌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CPU가 이진법 코드를 받아 컴퓨터 화면에 우리가 볼 수 있도록 바꾸어 비추어 주는 것입니다.

 컴퓨터도 감각적 수신장치가 있는데 마우스, 터치 스크린, 마이크로폰, 비디오 카메라 같은 것이 그것입니다. 우리가 이들 감각 장치 가운데 하나로 컴퓨터와 교신하면(, 마우스 클릭) 그 메시지는 CPU로 가서 추가적인 정보처리를 하게 됩니다.

따라서 컴퓨터의 CPU가 이진법 코드를 받아서 번역하고 그 결과를 화면에 쏘아주고 마우스 같은 감각장치를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하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우리 뇌는 무한한 장에서 파동 주파수를 받아 파동함수를 붕괴시킴으로써 입자로 바꾸고 그 결과를 바깥 세계에 쏘아주고 우리 감각 장치를 통해 돌아오는 입력정보를 처리합니다.

 한번 직접 실험해 보십시오. 밖에 나가거나 당신이 있는 곳을 돌아보고 잠시 상상해 보십시오. 즉 당신이 외부의 독립된 실체를 보는 게 아니라 마치 프로젝터가 영화관 화면에 영상을 쏘는 것과 똑같이 당신이 그것을 투사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홀로그램 뇌 모델을 논리적 귀결로 받아들인다면 객관 실체(커피잔, 산의 경치, 느릅나무, 테이블 램프 등)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외부에 있는 것들이 정말로 파동형태로 거대하게 울려퍼지는 교향악, 즉 오직 그것이 우리 뇌에 입력된 후에만 우리가 아는 바의 세계로 되는 하나의 주파수 영역으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마이클 탤보트)

 데이비드 봄은 우리 일상 삶에서 볼 수 있는 세계는 홀로그램 이미지처럼 일종의 환상이다. 그 저변에는 존재의 더 깊은 차원이 존재한다. 그것은 거대하고도 기초적인 존재차원으로서 홀로그램 필름이 홀로그램을 내놓는 것처럼 우리 물질 세계에 존재하는 사물과 그 외양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의 구체적 모습은 그저 이차적 실체다. 외부세계라는 것은 실상 주파수가 홀로그램으로 번진 것이고 뇌도 홀로그램이고 이렇게 번진 것으로부터 어떤 주파수를 처리할 뿐이라면 어떻겠는가? 아주 간단히 말하면 외부 세계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우리가 물질 세계 속에서 움직이는 물질 존재라고 생각하더라도 이것은 환상이다. 우리는 정말로 주파수의 만화경 같은 바다에서 떠다니는 수신자에 불과한 것이다.”(마이클 탤보트)

 다른 말로 하면 프레드 앨런 울프와 린 맥태거트 두 사람이 말하듯이 우리 내면에서작동하는 것과 별도로 존재하는 바깥 세상이란 것은 없다.”[What the Bleep!? - Down the Rabbit Hole 비디오를 보실 것]

 마이클 탤보트는 밖에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파동과 주파수의 거대한 바다이며 실체라는 것은 우리 뇌가 이 홀로그램 번짐을 받아들여 막대기나 돌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실체처럼 보이는 것이다.”고 합니다.

 “무엇이 실체인가? 실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당신이 오감으로 아는 것에 관해 말하자면 실체라는 것은 그저 당신 뇌가 바꾸어준 전기 신호에 불과한 것이다.”[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의 말]

 다시 한번 요약하면 우리가 늘 우리 삶과 실상이라고 생각해오던 것들은 (양자 물리학에 의하면) 실체가 아니라 우리가 실제 참여하는 홀로그래픽 3D 영화이며 무한한 장으로부터 해당 파동주파수가 우리 뇌에 다운로드되면 그것은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는 입자로 바뀌어 우리가 오감으로 알 수 있도록 바깥 세상에 쏘아주는 것입니다.

 즉 외부 세계에 독립적인 실체라는 것은 없으며 우리 내부에 있는 것에 따라서 전적으로 주관적인 실체가 창조될 뿐입니다.

아인슈타인조차 그것이 아무리 집요하더라도 실체라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취해야 할 단 하나의 근본적인 사고다. 그것이 워낙 뿌리에 닿는 것이라서 그리고 우리가 바깥에 실체가 존재한다는 생각에 워낙 깊이 물들어서 취하기에 매우 어렵지만 외부에 실체라는 건 없다. 양자 물리학은 여기에 대해서만큼은 분명한 입장이다.”(아미트 고스와미)

 

이와 관련하여 관람을 권유하는 영화 : Craig Bierko(1999)13(The Thirteenth Flo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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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3

나비되기 2014. 10. 28. 12:51

 이 모든 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답하기 전에 "오캄의 면도날"이라 하는 과학 개념을 소개합니다. 이 원칙은 거의 7백년 된 개념으로 기술적으로 정확한 해석은 아니지만 바꾸어 말하면 "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면 가장 간단한 답이 최선의 답이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소위 "과학에서의 경제법칙"으로서 하나의 관측에 대해 가장 간결한 설명을 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가장 좋은 답은 가장 적은 수의 가정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위 뇌 실험의 결과에 대해 과학자의 수만큼 많은 설명들이 시도되었지만 오캄의 원리에 맞는 가장 간단하고 논리적인 설명은 뇌가 물질 세계 밖에서 일어날 일에 대해 먼저 안다는 것입니다. 즉 발생순서는 일견 뇌가 홀로그램 파동 정보를 받아 그것을 밖으로 보내면 우리가 수신해서 체험할 수 있는 물질 우주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리벳 실험에서 뇌는 새끼 손가락에 실제 자극을 가하기 전에 미리 그것을 알며 따라서 사람이 그것을 알아채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뇌를 직접 자극하면 (마치 새로운 홀로그램이 다운로드되는 것처럼) 뇌가 그 자극을 손가락에 보냈다가 다시 그 정보를 뇌로 보내 인식하도록 하는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라딘 실험의 유일한 의미는, 뇌가 어떤 그림이 나타날지를 미리 알며 그 이유는 뇌가 사건 발생 후에 그저 반응을 하는 게 아니라 발생할 사건을 창조하기 때문이라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홀로그램 우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반복하자면...뇌가 어떤 그림이 나타날지를 아는 것은 뇌가 그저 사건 발생후에 거기에 반응하기 때문이 아니라 일어날 일을 창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사실과 프리브럼의 홀로그램 뇌 모델을 합쳐봅시다.

 프리브럼은 인간의 뇌 자체가 홀로그램이며 뇌는 "주파수 영역 내의 정보에 따라서 견고한 '실체'를 수학적으로 합성"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무한한 장(The Field)'을 기억하십니까? 이 '무한한 장'이 프리브럼의 주파수 영역(주파수를 가진 파동으로 존재하는 무한수의 가능성)입니다.

 그래서 프리브럼은 뇌가 '무한한 장'에서 파동 주파수를 받고 그것을 "'견고한' 실체"(우리가 물질 우주라 부르는 것)로 바꾼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실상 이 모든 실험이 말하는 것은, 우리 뇌가 '무한한 장'에서 파동 주파수로 된 홀로그램을 받아 파동함수를 붕괴시켜 그것을 입자로 만듦으로써 물질 "실체"를 창조하고 나서 그 "실체"를 우리가 체험할 수 있도록 외부 세계로 내보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경과학과 자유의지'에 관한 BBC 다큐의 CT 실험으로 입증됩니다. 이 비디오를 보면 뇌의 어떤 부분이 다운받은 파동함수를 홀로그램으로 바꾸어 주는지(그 결과 6초 후에 그것을 밖으로 내보내 우리가 그것을 알아보고 체험할 수 있도록)까지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의 뇌가 "파동함수를 붕괴하는 관찰자"라는 것입니다. 전자를 파동에서 입자로 바꾸어주는 것이 바로 관찰자임을 양자물리학을 통해서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더 간단히 말하면 파동처럼 보이는 3D 그림을 뇌가 가지고 있다가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줍니다. [매직아이 그림 참조]

 이것이 또 의미하는 것은 우리의 오감은 외부의 독립된 "실체"를 실제로 감지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외부에 드러나도록 투사한다는 것입니다. "수신자"가 될 뿐 아니라 우리 눈이 "투사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뇌는 우리가 감각으로 인식하기 전에 무엇을 체험할지 미리 알기 때문입니다.

 일단 우리 뇌가 '무한한 장'에 있는 파동의 주파수를 바꾸어 외부로 투사함으로써 마치 우리가 실제 영화에 둘러싸인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로 그런 때에만 우리 감각은 외부에 투사된 것들을 읽고 그 정보를 뇌로 보내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봄은 우리가 망원경에 맞는 렌즈 없이 우주를 본다면 우주는 홀로그램처럼 보일 거라고 합니다. 프리브럼은 이 통찰을 확대하여 우리 눈의 렌즈 내지 그와 비슷한 수신 기능을 없앤다면 우리는 홀로그램 체험 속으로 빠져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그 작동과정을 아무도 모르지만 양자물리학 연구가 진척됨에 따라 누군가가 그것을 밝힐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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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2

나비되기 2014. 10. 23. 14:56

 리벳은 시간 역류설을 주장했으나 증명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현상에 대한 설명으로서 시간이 역류한다는 증거를 뇌에서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이 주장을 잠시 제쳐두고 다른 실험을 보기로 합시다.

 이 실험은 1990년대에 딘 라딘 박사가 한 것입니다. 주류 과학계에선 널리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는 대단한 경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과학자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이유를 보기로 합시다.

 라딘은 심장박동, 심전도기, 피부전도기, 혈압기, 호흡측정기 등 여러 신체반응을 측정할 도구를 의자에 고정시킨 사람에게 부착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손에 버튼을 잡고 컴퓨터 화면 앞에 앉습니다. 그리고 준비될 때마다 버튼을 누르라고 합니다. 그리고 5초 후 컴퓨터는 무작위로 그림을 골라 화면 위에 보여줍니다.

 컴퓨터가 고를 수 있는 두 가지 형태의 그림이 있습니다. 하나는 보통의 사람이라면 감정 반응을 일으킬 만한 폭력, 전쟁, 강간, 추악한 것이나 911 쌍동이 빌딩 같은 그림입니다. 다른 하나는 임의의 도시 길거리처럼 아무 정서적 감응이 없는 그림입니다.

 전자의 그림을 본 사람들의 반응을 이미 어떨지 알 만합니다. 이들은 크게 자극을 받았고 후자의 그림을 본 사람들은 조용했습니다.

 사람들이 버튼을 누를 때 컴퓨터는 두 그림 가운데 어떤 것을 보여줄지 미리 고르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결과입니다. 컴퓨터가 화면에 올릴 그림을 선택하기 전에 실험 대상인 사람의 몸에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모든 신체반응 측정기가 자극적인 화면일 때는 그림이 올라오기 전에 반응을 보였습니다(물론 그림이 중립적인 것일 때 몸의 반응은 잠잠하였습니다).

 반복하자면 사람 몸의 반응이나 무반응은 컴퓨터가 그림을 택하기 전에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이 실험의 의미는 우리가 인식하기 전에 뇌는 어떤 그림이 올라올지를 알며 몸은 그것을 따라가는 반응을 할 뿐이라는 것입니다.(딘 라딘)[비디오도 참고할 것]

 비슷한 실험을 BBC 방송에서 했는데 여기서는 6초의 간격이 있었습니다.[비디오 참조]

 이 실험은 라딘의 실험을 뒷받침하는 것이며 앤드류 뉴버그 박사가 말하는 것을 뒷받침합니다. 사람들이 손을 움직이거나 말을 하기 시작할 때, 무엇을 하려는지 의식하기 전에 뇌 신경세포의 어떤 부분이 실제로 움직인다는 연구가 있었다.”(앤드류 뉴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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