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을 공부한다는 것은 수도의 삶을 산다는 것이고 중용 첫머리에서 도란 요샛말로 참나를 따른다(率性)는 뜻입니다. 참나란 대승기신론 용어로 진여심(眞如心)입니다. 기독교 삶도 자기를 버림으로써 신과 일치한 후에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조건없는 사랑이 가능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유교도 그러했고 오늘날 기독교도 그러한데 먼저 할 일을 미루고 에고 드라이브로 도를 이룬 듯이 살려 하기 때문에 쉽사리 부패한다고 봅니다. 어제 공부 모임에서 더 이상 새지 않는다는 뜻의 '누진(漏盡)'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는데 과거 써놓은 글이 있어 조금 수정해서 올립니다. "에크하르트 님은 영혼이 말씀을 받아들이려면 가장 순수하고 고귀하고 섬세해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 영혼은 오관을 통하여 다양한 피조물을 향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