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벽 선사는 개념적 사고의 범위를 초월하는 형언할 수 없는 궁극의 실체를 가리키기 위해 '마음'이란 말을 썼지만 거기에 온전히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한 번 이상 '한 마음'이란 것이 진짜 '마음'은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다른 용어들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으며 '마음'은 이미 그의 전임자들이 종종 사용했던 말이었다. '마음'이 불가해한 것을 가리키기 때문에 그것은 틀림없이 좋은 선택인 것 같았다. 특히 이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통상 인간 몸에 거주하는 개별적 실체로 간주되는 인간의 그 부분이 실상 그의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모든 사람 그리고 다른 모든 것에 공통된 것이라는 것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중국어에서 마음[心]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뿐 아니라 '심장' 그리고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