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 11

이승 삶과 천작

지금 죽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다음의 요가난다 말씀이 한 주일 가량 제 머리를 맴돕니다. "당신이 불완전성에서 벗어나고자 죽음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은 뒤에도 당신은 전과 다름이 없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저 몸만 벗었을 뿐이다... 그저 죽음으로써 천사가 되지 않는다... 이제까지 무엇이 되었든 이 다음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환생한다 하여도 똑같은 상태로 날 것이다. 이것을 바꾸려면 노력해야 한다. 세상은 그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 다른 말로 ‘되는’ 일이 최우선입니다. 그런데 맹자에 따르면 되는 일에는 인작(人爵)과 천작(天爵)이 있습니다. 위 말씀은 분명 천작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작이 인작의 수단인 양 생각한다면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삶이기에 함께 논할 수..

초능력과 인공지능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세상사에서 습득한(또는 프로그램된) 인간 의식을 넘는 숭고한 영감으로 (또는 신적 의식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명상에서 구하는 것은 오감과 생각(또는 인간 의식)이 끊어진 경지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감과 인간 의식, 즉 불가의 육근이 끊어진 경지를 누진통이라 하는데 그때 우리는 참나를 실현하여 (또는 깨달음을 얻어) 뜻하는 바를 자유자재로 창조하는 능력을 얻는다고 합니다. 당연히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난 경지입니다. 제가 주장하는 바는, 로봇은 아무리 정교하게 발전시켜도 여기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저희 학습공동체도 이 일을 목표로 하는데 그 과정에서 싯디(초능력), 즉 불가에서 말하는 신통을 ..

단상 2020.08.29

쉬지 않고 기도하기

오늘은 제가 되도록 24시간 바치려 노력하는 기도를 공개합니다. 하나는 전심법요를 비롯한 선불교 가르침을 요약한 기도입니다. 요컨대 황벽 선사와 이고 선생의 저술에서 공통된 것은 과거를 기억치 말고 미래를 생각하지도 말라는 것(弗慮弗思)입니다. 그것을 한 방에 실천할 수 있는 기도가 과거에 대해 "몰라", 미래에 대해 "괜찮아"입니다. 다음 마하리쉬 님은 '나는 누구인가'를 탐구하여 깨달음에 이르기 힘든 사람은 자신과 그 삶을 완전히 신께 맡기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 자신과 제 삶을 당신의 돌보심에 맡기나이다"라고 기도합니다. 줄여서 "모두 맡기나이다"라고 해도 되겠지요! 실상 이 기도는 나무아미타불과 같은 취지의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나무란 맡긴다는 뜻이고 아미타불이란 무한한 빛과 생명을 뜻하는 말이..

전심법요 입문 2020.08.25

해월 말씀과 중용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를 통틀어 성리학 기본 원리를 터득한 위에 기독교를 받아들이신 분들은 시종여일하게 민족 사랑 또는 이웃 사랑을 위해 헌신적인, 그리고 강인한 삶을 사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그 당시 기독교 내지 서학이 기술 문명에서 우월했기에 그분들은 방법론적으로 기독교도가 되신 것으로 추정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핵심을 유교의 근본 가르침으로 비추어 보면 모순되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그런 분들 가운데 김구 선생, 안중근 의사, 도산 안창호 선생이 있습니다. 게다가 동학이 나온 사상적 기반도 유학이란 것을 다음 해월 선생 말씀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일이 있으면 이치로써 처리하고, 일이 없으면 고요히 앉아 참마음을 지킨다. (有事則以理應事, 無事則靜坐存心)"이 말씀은 정확히 중..

단상 2020.08.21

수행의 요점과 세상의 변혁

1. 다음은 임사체험을 했던 아니타 무르자니라는 분 말씀인데 공부의 요점이자 핵심을 아주 잘 말했다고 생각합니다. 즉 "우리 에너지 장이 사랑으로 채워질 때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향상되고 치유된다. (When your energy field is filled with love, people that enter into it feel uplifted and healed. 🌸)"는 것입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신적 사랑(仁)이자 조건 없는 사랑이어서 꾸준한 수행으로써만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학습 공동체를 이루어 꾸준히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 노력의 요체를 살펴보면 유학은 수신제가와 극기복례를, 불교는 보살도와 6바라밀을, 기독교 신비주의는 정화, 명화 및 합일 수행..

엎어지고 자빠지는 순간(造次顚沛)

오늘도 이은선 선생 지은 '논어 읽기'에 대해 써야 하겠습니다. 책 43쪽에 보면 논어에 인(仁)에 관해 신기하게도 108번 거론된다고 합니다. 앞에서 썼듯이 '애'가 인간 사이의 사랑이라 하면 '인'은 신적 사랑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거기에 이르기 위해 서경은 온갖 힘을 하나로 모아(惟精惟一) 참나에 몰입하라(允執厥中)고 했으니 그 방편이 정좌라고 하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그렇게 해서 초월적 도움으로 에고를 제거할 때 천리에 이르고 신적 사랑의 화신이 된다는 것이 극기복례의 뜻이라고 봅니다. 그러면 신적 사랑, 즉 '인'에 어떻게 머물러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이인(里仁) 편에 있으니 '밥 먹는 때나 발이 걸려 넘어지는 찰나에도' 그러해야 한다고 하니 소위 천인합일에 이르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는 게 ..

인(仁)과 애(爱)

2~3십대의 독서는 깨우침을 얻거나 소위 구원에 화끈한 도움을 받자는 깊은 동기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계시종교로서 기독교의 우월성에 기반한 독서였습니다. 그러니 불교나 유교에 관한 또는 거기로부터 나온 책자는 교양서정도로 여겼다는 것이 정확합니다. 59세 이후의 독서는 그런 편견 없이 간절함에서 나온 독서인지라 불가나 유가 책들이 심금을 자극하는 바가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기독교 색채의 가르침과 대동소이하게 느껴질 뿐 아니라 수행에 실용적 이익이 있습니다. 이은선 선생의 논어 읽기 책을 접하자마자 제 학습 공동체 교재인 그리스도의 편지 핵심에 바로 연결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니 공자님이 왜 사랑(爱)이란 말을 안 쓰시고 구태여 씨앗이란 뜻을 잠재한 어짊(仁)을 쓰셨는지 깨달았다는 것입니..

단상 2020.08.11

학습공동체와 영적 독서

현재 제가 큰 의미를 두고 하는 일은 사람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학습공동체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학습공동체라 하면 오늘날 종교는 세상 문제의 해결주체가 아니라 걸림돌이라고 보아 스터디 그룹에 가까운 개념입니다. 디지털과 비대면 시대, 그리고 민주정 시대에는 각자 생활 속에서 온라인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루어 교학상장(敎學相長) 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해 보입니다. 현재 그런 식으로 카톡 모임과 월 2회 오프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든 함께 하실 수 있으며 단 하나 요구하는 것은 영적 독서 교재로서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책을 읽으시는 것입니다. 덧붙여 영적 독서(Lectio Divina)의 의미를 제가 번역해 배포한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에서 가져옵니다. "영적 독서의 수행이라는 게 명상보다 유명하지 않..

블로그 소개 2020.08.08

군자와 성인

신유학이라 하면 주희를 비판적으로 지양코자 한 왕양명을 포함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신수의 공부법으로 혜능을 보완할 때 선불교가 풍부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즉 주희나 혜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학인의 근기에 고저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러번 언급했지만 제가 논하는 것은 공부에 실제로 참고 삼기 위해 얕고 넓게 독서한 결론이니 그저 참고만 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주희와 양명의 학습법을 비교 분석하며 성인과 군자의 차이를 전하는 정은해 님 유교명상론의 핵심을 거론하려고 서론이 길었습니다. 정은해 님 논의가 특별한 것은 불교 명상론과 비교해서 신유학을 살펴보았고 또 주희와 양명을 서양의 현상학으로 조명한 점입니다. 어쨌든 제가 볼 때 유교명상법도 의식의 끝없는 진화를 전제하는 화..

단상 2020.08.07

요순시대와 지상 천국

세계 이념으로서 기독교의 효능은 끝났고 고양(업그레이드)된 유학의 시대가 와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구태여 이름 붙이자면 신-신유학 또는 신주자학이 될 것입니다. 제 학령기를 지배한 것은 기독교였지만 이제 기독교를 유학의 눈으로 이해하니 더욱 풍요한 실천이성이 살아나듯이 동아시아 문화의 저변에 살아 있는 유학의 핵심적 가르침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 심층에 대한 이해가 없이 외견상 드러난 폐해를 들어 아이와 함께 목욕물을 버리는 우를 범해선 안 됩니다. 앞 글 '제사장과 성인'에서 감지하셨는지 모르지만 동아시아는 통치행위로써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려는 이상과 실천방안을 유학에서 찾았습니다. 우리가 요순시대를 거론하는 것은 바로 지상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지 과거로 돌아가겠다는 게 아닙니다. 그리..

단상 2020.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