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이승 삶과 천작

목운 2020. 8. 31. 09:28

지금 죽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다음의 요가난다 말씀이 한 주일 가량 제 머리를 맴돕니다. "당신이 불완전성에서 벗어나고자 죽음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은 뒤에도 당신은 전과 다름이 없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저 몸만 벗었을 뿐이다...

그저 죽음으로써 천사가 되지 않는다... 이제까지 무엇이 되었든 이 다음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환생한다 하여도 똑같은 상태로 날 것이다. 이것을 바꾸려면 노력해야 한다. 세상은 그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

다른 말로 ‘되는’ 일이 최우선입니다. 그런데 맹자에 따르면 되는 일에는 인작(人爵)과 천작(天爵)이 있습니다. 위 말씀은 분명 천작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작이 인작의 수단인 양 생각한다면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삶이기에 함께 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제가 그런 생활을 했었습니다. 좋은 직장을 구하고 승진에 목을 매고 여유가 있을 때는 오락과 파적을 일삼다가 퇴직 후 낭패를 당했습니다. 그러니 회두(metanoia)라는 것은 확실히 인작을 천작의 하위 수단으로 판단, 결단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떠오르는 몇 가지 질문을 적어보았습니다. 지금 천작에서 향상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자문해보면 어떨까 하는 것입니다. 제 경우 아주 미흡하거나 막 걸음을 떼어놓은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1)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하는가? (2)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친절한가? (3) 지나친 정의감에서 벗어나 아량과 포용을 보이는가? (4) 완전히 성의정심(誠意正心, integrity)한가? (5)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웃을 수 있는가? 

높은 수준의 천작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보살 또는 깨달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위와 같은 것을 분별하고 따져서(즉 반성의식을 발휘하여) 실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우리 에고가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완전히 에고가 죽고 신과 같은 품성을 얻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길입니다(마태 16:24).

유가의 수신제가, 극기복례도 거기에 이르는 길이고 불가의 보살도도 거기에 이르는 길입니다. 정은해 님이 지은 유교 명상론에 따르면 명상의 목표는 반성의식이 사라져 자동적으로 성인과 같은 실천을 하는 데 있다고 합니다.

요가난다 말씀대로 이 일은 이승에 있는 동안 매진해야 할 일이고 에크하르트 님에 따르면 목  마른 자가 물을 찾듯 해야 하고 악기나 글쓰기 훈련 하듯 매일 해야 합니다. 다행히 그 커리큘럼은 조금만 찾으면 다 알려져 있으며 명상(또는 정좌)과 영적 독서가 핵심입니다. 

오늘날 여기에 전념하고 규칙적으로 모여 논의하는 곳은 희귀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미 대부분의 종교 단체도 인작을 위해 봉사하거나 이익 집단으로 전락하였습니다. 저희 학습 공동체(그리스도의 편지 읽기 모임)는 오직 이 일에 전념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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