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얘기와 관음 설화

2018.11.29 04:10 | Posted by 목운

지난 밤 꿈에서 전 직장에 있었는데 사무실 두어 곳이 먼지가 풀석이고 폐기 기간 지난 서류가 가득한 모습과 치워지지 않은 오물이 덕지덕지한 화장실을 봤습니다. 누군가에게 우리 이거 다 태워버립시다고 말했습니다.

이곳에 몇 번 소개했지만 관음경 설화를 보면 경전을 읽는 동기는 누구에게나 같다고 생각됩니다. 예쁜 처녀와 결혼하기 위해 관음경 읽기에 도전하는 20명의 청년은 삶에서 치유와 문제해결을 바라서 절이나 교회에 가는 우리 모습입니다.

하지만 설화가 제시하는 답은 경전의 가르침을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처녀와 결혼을 허락받은 청년에게는 빈 풍경만이 제시됩니다. 가르침을 체험한 자가 결혼하러 가는 설정이 모순되긴 하지만 결론은 그렇습니다. 아마 호기심 가득한 독자를 위한 설정이지 싶습니다.

동아시아 영성에서 마치 소크라테스처럼 압도적 영향력이 있는 혜능에 관한 이야기에서 유추하면 경전의 가르침에서 우리가 체험해야 할 일, 즉 실천할 일은 금강경의 '아무것에도 마음을 붙이지 말고 마음을 내는' 데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것이 허공 또는 공(空)의 체험이 아닌가 합니다. 

혼자 대충 지난 꿈을 해석컨대 내 속에 비워내야 할 것들을 보여준 게 아닌가 합니다. 명상을 마치고 이 글을 쓰면서 어렴풋이 그러하게 느껴집니다. 이승을 떠날 때까지 비워내고 청소해낼 일이 가득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루 속히 '세상에 있지만 세상 것이 아닌' 삶을 살아야 하겠다고 결심하고 빌 뿐입니다.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복에 이르는 길  (0) 2018.12.23
진정한 신분 상승  (0) 2018.12.16
꿈 얘기와 관음 설화  (0) 2018.11.29
개인 구원과 세상 구제  (0) 2018.11.26
영혼의 유일한 목적  (0) 2018.11.18
도덕경과 '대학'  (0) 2018.11.17

Comment

개인 구원과 세상 구제

2018.11.26 07:53 | Posted by 목운
인간 에고의 충동이 사라지고 신 의식이 충만한 상태가 되는 것이 동서 영성의 공통과제로 파악됩니다. 이것이 성취될 때를 부처의 집안에 태어난다, 또는 천국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달리 표현하면 신 의식이 주인되어 다스릴 때 천국이 성취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때 에고는 신 의식의 충직한 신하 또는 종으로서 그 권능을 집행하게 될 것입니다. 실존적으로는 일관된 지향으로 신 의식을 따르는 결단을 꾸준히 항구하게 내리는 일입니다. 신의 뜻을 내면에서 명상 기타의 방법(저는 주역의 목적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으로 확인하며 가는 것이 영성의 길인 반면 가시적 권위에 의제하여 지배구조로 만든 것이 왕정과 종교 교단이라고 봅니다.

이론상 모든 이가 영성의 길을 가서 신 의식을 따를 때 집단 의식으로서 지구의 지배 의식이 신의 의지와 같아지고 그때 천국과 같은 상태, 즉 태평성대가 이뤄질 것입니다. 이 길은 우회로지만 이 길밖에 없다는 것이 스승들 생각입니다. 인간 탄생까지 진화에 걸린 시간을 생각할 때 우리의 꾸준한 노력이 있다면 거기에 근사한 세상이 다가오리라 생각합니다!

이 일은 최소한 내 구원과 내 주변의 진화 발전에 기여하는 일이라 지금 여기서 시급히 실천해야 하고 나아간 만큼 충분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정한 신분 상승  (0) 2018.12.16
꿈 얘기와 관음 설화  (0) 2018.11.29
개인 구원과 세상 구제  (0) 2018.11.26
영혼의 유일한 목적  (0) 2018.11.18
도덕경과 '대학'  (0) 2018.11.17
죽는 순간의 의식이 중요하다  (0) 2018.11.05

Comment

신인합일의 길

2018.11.23 07:57 | Posted by 목운
저는 동아시아에서 도라 함은 시공을 초월하면서 무소부재한 부동의 동자, 즉 서양 철학의 신과 같다고 봅니다. 그렇게 텍스트를 읽으면 신을 인격으로 보아 초래한 기독교의 과오를 초월하는 훌륭한 영성적 실천 지침을 얻습니다.

동서 불문하고 이 영성을 제대로 체험하고 실천하면 초기 기독교나 동학처럼 계급차별 없는 변혁의 동력을 낳습니다. 하지만 이 가르침은 소수를 위한 지배이데올로기로 전락하여 비판과 극복의 대상이 되곤 하는데 오늘날에는 기독교가 전지구적으로 극복의 대상이 되었으며 대안으로 동양 영성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각설하고 신에게 가는 것 또는 신과 일치하는 것은 내가 신의 일부라는 것과 일부이긴 하지만 홀로그램 원리상 신과 동일해진다는 것을 깨닫고 체험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 길은 소위 에고라는 것을 극복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 동서 모두의 가르침입니다. 혹 도움이 될 듯하여 번역해 봤습니다.

"신에게 이르는 시간표나 교과서는 없다. 각자 가는 길이 다르지만 모두가 거치는 꽤 유사한 구역이 있다. 인간성이라는 구조 안에 내장된 인간으로서 공통된 결함을 극복하고 초월하는 것이 과제다. 사람들은 인간이 각각 독자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에고란 실은 독자적인 게 아니다. 그것은 진화 과정에서 인간으로 되어 가면서 공통으로 물려받는 것이다. 단지 지난 업(karma)에 따라 세목만 다를 뿐이다. (David Hawkins)"


'공부의 요령과 요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트라와 화살기도  (0) 2018.12.07
아상 닦기와 불퇴위  (0) 2018.12.05
신인합일의 길  (0) 2018.11.23
선의 황금시대 후기  (0) 2018.11.16
훈련으로서의 마음 공부  (0) 2018.11.12
혜능의 근본 통찰 (2)  (0) 2018.11.11

Comment

영혼의 유일한 목적

2018.11.18 07:12 | Posted by 목운
오랜만에 딸이 와서 송도 현대프리미엄 아웃렛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두 번째 와보는데 20여년 전 미국에서 본 풍경과 거의 비슷해서 과거를 돌아보게 됩니다. 특히 식사중에 딸이 했던 '직장 초년에 남는 시간은 돈을 쓰는 시간이 되어버렸다'는 요지의 말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제 과거도 그렇고 두 아이의 직장생활을 들어보니 기계와 같은 사회 시스템에 매몰된 시간을 벗어나면 소위 레저란 시장이 요리하는 대로 열심히 소비하는 일이 됩니다. 20여년 전, 제 경우는 주말이면 아내와 성당에서 살다시피 했기에 그나마 조금 나은 듯했지만 그것도 계명의 준수를 좀더 심하게(?) 한 것일 뿐 진정으로 해방된 삶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오래 지속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자칭 종교 졸업생입니다. 결과적으로 삶이 참 기쁨과 행복을 위한 해방으로 향하기보다 점점 수렁으로 빠져든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돌아보니 책에서 읽은 것들을 모두 안다고 치부하고 하나도 실천한 게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신적 공간은 네 마음에 크나큰 평온을 안겨준다. 위대한 발상들은 고요히 가라앉은 마음에서 흘러나온다. 너 자신이 갖고 있다고 여기는 가장 큰 문제들까지 해결할 수 있는 발상들이. 또한 네가 자아를 실현하는 건 신적 공간에서이며 자기 실현이야말로 네 영혼의 목적, 유일한 목적이다.

네가 신적 공간에 머무를 때 너는 자신이 지금 체험하는 모든 것이 일시적임을 알고 이해할 것이다. 내가 네게 말하노니 천국과 지상은 사라져도 너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영원이라는 시야를 가지면 너는 사물을 그 본연의 빛 속에서 보게 되리라. (신과 나눈 이야기 1편, 193쪽)"

약 1년 전 10분부터 시작한 것이 지금은 매일 새벽 30분 ~ 1시간 홀로 고요히 앉아 생각을, 그저  지나가도록 하고 바라보거나 열렬히 신 의식과의 합일을 기원하며 지냅니다. 조금씩 나아짐을 느낍니다. 이 길은 면벽(面壁)처럼 아득한 일이지만 습관을 들이면 행한 만큼 이득이며 분명하게 삶이 개선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 얘기와 관음 설화  (0) 2018.11.29
개인 구원과 세상 구제  (0) 2018.11.26
영혼의 유일한 목적  (0) 2018.11.18
도덕경과 '대학'  (0) 2018.11.17
죽는 순간의 의식이 중요하다  (0) 2018.11.05
수양의 핵심인 중화  (0) 2018.11.02

Comment

도덕경과 '대학'

2018.11.17 15:30 | Posted by 목운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專氣致柔, 能婴兒乎. 滌除玄覽, 能無疵乎. 愛民治國, 能無爲乎. 天門開闔, 能爲雌乎. 明白四達, 能無知乎.

- 도덕경 10장을 옮겼는데요 '대학'의 핵심과 같다고 여겨집니다. 전반부 요지는 심령 깊이 도 하나를 붙들고 놓치지 말며 기운은 아이처럼 유지하고 마음을 티끌 하나 없이 정화하라는 것이고 후반부는 그렇게 할 때 나라를 경영하는데 막힘이 없을 것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치국평천하'가 '격물치지 성의정심'에 있다는 대학의 취지와 꼭같다고 생각합니다. 우징숑 님에 따르면 '도'란 초월적이면서 우리 깊은 심중에 머물러 있는 것(동서의 피안, 205쪽)이므로 제가 볼 때 동아시아인은 사실상 서양의 신과 똑같은 실체를 공경하며 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신기독'의 실천은 바로 신과의 만남이자 일치의 추구였습니다. 제가 누차 강조하는 것은 기술과 제국주의를 업은 기독교는 유일하거나 우월한 무엇이 아니라 폭력과 정복으로 독선을 누렸던 한 가지 사상체계(one of the belief systems)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인 구원과 세상 구제  (0) 2018.11.26
영혼의 유일한 목적  (0) 2018.11.18
도덕경과 '대학'  (0) 2018.11.17
죽는 순간의 의식이 중요하다  (0) 2018.11.05
수양의 핵심인 중화  (0) 2018.11.02
깨달음과 구원  (0) 2018.10.29

Comment

선의 황금시대 후기

2018.11.16 07:22 | Posted by 목운

어제 글의 연장이자 책의 후기 삼아 씁니다. 속물성에 대해서는 '알랭 드 보통'이 '불안'이란 책에서 심도 있게 다뤘지만 제가 볼 때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우선 금전적 이익과 물적 소유 그리고 몸의 즐거움밖에 없는 듯이 삽니다. 그러면서 정신은 고귀한 것을 흉내냅니다. 

두 번째로 이승 삶이 단판 승부인 것처럼 삽니다. 후생을 믿더라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세 면죄부 구매자들입니다. 그들이 대개 부호나 권력자였다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그들은 내면이 고귀하지 않다는 의미에서 위선자이며 예수는 위선자를 깨우치기 위해 심하게 나무란 일도 있습니다.

한편 저 자신도 속물을 완전히 벗어난 자는 아니지만 우리는 대개 '나는 해당 없다'는 심사에서 속물을 경멸합니다. 바이블도 마찬가지지만 선사들은 요컨대 '세상에 거하지만 세상 것이 되지 말라'고 합니다. 요컨대 속물이 되지 말고 초탈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정을 두지 않지만 세상 것밖에 없는 듯이 살아야 한다는 것은 반전이 있는 가르침입니다.

깨달음이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것들이 의식의 그림자에 불과하고 의식은 무한히 진화해야 한다는 것, 나아가 참된 본성이기도 한, 이 의식이 그 쓰임새인 마음에 정통해서 언제나 기쁘고 평화로우며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친절하게 대할 수 있도록 하자는 거라고 봅니다. 일원적 세계 또는 절대성을 체험하고 이원성으로 된 가시계를 멋지게 운용하자는 것입니다.

그 진화와 성취를 귀신도 눈치 채지 못하게 하자, 그러니 초능력이니 수월성(秀越性)이니 하는 것을 헌신짝처럼 여길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평상심이 도(道)다'고 할 때는 여기까지 나아간 경지를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공부의 요령과 요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상 닦기와 불퇴위  (0) 2018.12.05
신인합일의 길  (0) 2018.11.23
선의 황금시대 후기  (0) 2018.11.16
훈련으로서의 마음 공부  (0) 2018.11.12
혜능의 근본 통찰 (2)  (0) 2018.11.11
혜능의 근본 통찰 (1)  (0) 2018.11.10

Comment

훈련으로서의 마음 공부

2018.11.12 05:39 | Posted by 목운

'선의 황금시대' 논지의 핵심은 중국 선불교란 결국 외래종교인 불교와 자생종교인 도교가 하나되어 진화 발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한편 노장 사상은 장자가 시도한 대로 이미 유교와 융합된 것이기도 합니다. 

이고 선생을 사숙하는 저로서는 혜능의 맥을 잇는 두 줄기 가운데 청원 행사와 석두 희천 밑의 약산 유엄에 주목하면서, 다른 줄기인 남악 회양과 마조 도일 밑의 황벽 희운을 거론하고 싶습니다. 약산은 선종이 아니라 율종에 입문했다가 석두 희천과 마조 도일을 모두 모신 분입니다.

관료였던 이고 선생은 약산 유엄의 명성을 듣고 방문하여 깨우침을 얻었으나 당말의 척불 추세에 가담하여 말하자면 자신의 깨우침을 유교 언어로 바꾸어 복성서를 지으신 분입니다. 복성서는 주렴계와 주희에게 전승되어 신유학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황벽 희운은, 역시 관료였으며 이고와 비슷한 역할을 한 배휴가 받아쓴 전심법요와 완릉록에 그 가르침이 남아 있습니다. 황벽 선사는 역시 제가 사숙하는 호킨스 박사가 측정한 의식 지수로 보면 거의 그리스도와 붓다 의식에 이르신 분이라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황벽 선사는 우리 본래 불성과 다를 바 없는 우주적 마음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위 책, 135쪽). 무념 또는 무심이 된다는 것은 마음의 본성이 주인이 되도록 하여 그 쓰임새일 뿐인 마음에 대한 완전한 달인이 되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다시 말하면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낸다'고 할 때 그 마음을 내는 주체의 자리를 알아내고 아는 바를 항상 체험하면서(즉 느끼면서) 마음을 종으로 부리기 위해서 매일 일정한 시간을 내어 훈련하는 것입니다. 

이 주체의 자리를, 쓰임새인 마음과 구분하기 위해 우주적 마음, 주인공, 참나, 혹은 성령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공 자리에 들어 앉는 일은 초월적 의식의 도움이 꼭 필요한 일(기독교 용어로는 은총)이기 때문에 이고 선생은 에고로 에고를 다스리려 하면 더 큰 에고에 빠진다고 하였습니다.

'공부의 요령과 요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인합일의 길  (0) 2018.11.23
선의 황금시대 후기  (0) 2018.11.16
훈련으로서의 마음 공부  (0) 2018.11.12
혜능의 근본 통찰 (2)  (0) 2018.11.11
혜능의 근본 통찰 (1)  (0) 2018.11.10
혜능의 길과 신수의 길  (0) 2018.11.08

Comment

혜능의 근본 통찰 (2)

2018.11.11 06:59 | Posted by 목운

어린 시절에 혜능은 땔감을 팔아 가사를 도와야 했기에 문자를 접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땔감을 배달하고 돈을 받고 돌아서던 혜능은 문간에서 경전을 외는 소리를 듣자마자 곧바로 그 뜻을 깨쳤다고 합니다. 혜능이 깨달음을 얻게 된 말씀은 금강경의 "어디에도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는 것입니다. 

혜능은 참된 본성을 왕에, 마음을 그 나라와 신하에 빗대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본성은 마음 속에 머물고 마음은 본성의 움직임(책 84쪽)을 말합니다. 금강경의 말씀을 잘 들여다보면 마음은 부림의 대상입니다. 즉 본성의 쓰임새(用)일 뿐입니다. 선의 궁극 목적은 자신의 본성을 꿰뚫어보고 불성을 얻는 것인데 마음을 써서 알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신하가 왕을 확실히 알아보고 왕의 뜻대로 움직일 때 천국이 도래한다고 보는 점에서 동서 영성이 같다고 생각합니다. 보통의 삶은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살기 마련입니다. 혜능은 더럽혀지거나 집착하지 않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것을 무심이라 하였고 이 무심 상태에서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삼라만상 안에서 자유롭게 마음이 움직이게 하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혜능에게 중요한 것은 정신적으로 바깥 것에 집착하느냐 않느냐뿐이었습니다. 마음을 닦되 다른 이들과 함께 조화를 이루어, 나와 남이라는 족쇄 같은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진짜 본성이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단 한 순간도 자기 본성에서 멀어지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이상에서 미루어 정리하자면 혜능은 세상 속에서 닦음, 이분법을 벗어나기, 점진적으로 완성을 향해 감을 가르쳤습니다. 우리로서는 왕을 찾아 확고히 그 주도권에 따라 살기 위해 먼저 집착 없는 순수한 마음이 되어야 할 것인데 그것이 멸정복성의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규칙적으로 홀로 거하는 실천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상 선의 황금시대, 82~89쪽 참조)

 

'공부의 요령과 요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의 황금시대 후기  (0) 2018.11.16
훈련으로서의 마음 공부  (0) 2018.11.12
혜능의 근본 통찰 (2)  (0) 2018.11.11
혜능의 근본 통찰 (1)  (0) 2018.11.10
혜능의 길과 신수의 길  (0) 2018.11.08
장자의 핵심 사상과 선불교  (0) 2018.11.07

Comment

혜능의 근본 통찰 (1)

2018.11.10 07:42 | Posted by 목운

혜능에게는 5대 제자가 있었는데 남악 회양, 청원 행사, 남양 혜충, 영가 현각, 하택 신회가 그들입니다. 이 가운데 회양과 행사 휘하에서 약 200년에 걸쳐 가르침이 계승되어 선문오종이 생겨났습니다. 선문오종이라 함은 운문종, 법안종, 조동종, 위앙종, 임제종인데 모두 혜능의 근본통찰의 변주라고 봐야 합니다.

혜능의 근본통찰이라 하면 먼저 외부 현상이란 모두 우리 본성 또는 진면목이 되비친 모습이나 메아리일 뿐이므로 본성을 바라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또 혜능은 경전에 의존하지 않고 문답을 통해 산모를 도와주는 산파의 역할에 충실했다고 합니다. 이 점은 동굴의 우화를 설하고 대화를 통해 그리스 사람들을 깨우치려 했던 소크라테스와 매우 흡사하게 여겨집니다.

혜능은 비전(秘傳)을 묻는 중에게 "당신에게 전해진 것은 원래부터 아무런 비밀이 아니었소. 당신의 내면을 환하게 비춘다면 거기에 당신이 찾는 비전의 가르침이 있을 것이오."라고 답하였습니다. 아무리 깨달음 경지가 높은 선사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바라본 바를 불어넣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섭에게 염화시중의 미소로 가르침을 전한 붓다의 교외별전(敎外別傳) 전통인 것입니다. 사족을 붙이자면 아무리 지식을 많이 모으더라도 근본 통찰을 얻지 못하면 자만심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과 모든 외적 현상이 인간 의식의 결과물이라는 인식을 굳게 가지고 쉬지 않고 끈기 있게 닦는 것만이 취할 바라는 것입니다. (선의 황금시대, 68~82쪽 참조)

'공부의 요령과 요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훈련으로서의 마음 공부  (0) 2018.11.12
혜능의 근본 통찰 (2)  (0) 2018.11.11
혜능의 근본 통찰 (1)  (0) 2018.11.10
혜능의 길과 신수의 길  (0) 2018.11.08
장자의 핵심 사상과 선불교  (0) 2018.11.07
명상을 습관 들이기  (0) 2018.11.04

Comment

혜능의 길과 신수의 길

2018.11.08 18:59 | Posted by 목운

육조 혜능의 스승인 오조 홍인은 "마음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제 아무리 불법을 공부해도 소용이 닿지 않느니라. 마음의 참모습을 알고 참된 자신을 찾은 사람은 사람됨을 깨달은 자, 신과 인간을 가르치는 사람, 곧 부처니라"고 하면서 혜능에게 몰래 옷과 밥그릇을 전합니다. (선의 황금시대, 61쪽)"

혜능과 쌍벽을 이룬 제자 신수의 가르침은 계정혜를 닦음으로써 깨달음에 이르기 좋은 중하근기를 이끄는 대승의 길인 반면 즉각적인 깨달음을 말한 혜능의 가르침은 최상승의 근기를 가진 사람의 길이라 하겠습니다. (위 책, 66쪽). 능의 길은 단박에 참된 자신을 찾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죄를 피하고 선을 행하게 되며 형언할 수 없는 자유와 평화를 누립니다. 

반면 신수의 길은 계정혜 또는 육바라밀을 꾸준히 닦아 참된 자신을 가로막는 것들을 제거함으로써 점진적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보통 사람의 길이라 하겠습니다. 이 길에서 주의할 점은 복성서가 지적하듯이 에고 드라이브에 그쳐 실패할 위험이 농후하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혜능의 길에서 육바라밀을 닦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바라밀이라는 말대로 이미 마르지 않는 지혜의 원천에 이르렀기에 저절로 보시, 지계, 인욕이 발휘되는 것입니다. 

장자의 수행법인 마음을 삼감, 완전히 잊음, 꿰뚫어 봄이 지향하는 바와 마찬가지로 혜능의 길은 '불성이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 선과 악, 내용과 형태의 경계 너머에 존재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비이원론적(위 책, 64쪽)'인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십우도에 잘 묘사되어 있는데 그 과정에서 반드시 초자연적 도움을 받아 자발적 명상이 수동적 명상으로 바뀌는 순간이 마치 벽을 만나는 순간처럼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위 책, 39쪽 참조).

'공부의 요령과 요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혜능의 근본 통찰 (2)  (0) 2018.11.11
혜능의 근본 통찰 (1)  (0) 2018.11.10
혜능의 길과 신수의 길  (0) 2018.11.08
장자의 핵심 사상과 선불교  (0) 2018.11.07
명상을 습관 들이기  (0) 2018.11.04
명상은 선택 행위임  (0) 2018.11.02

Comment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