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 12

무위와 무지

제가 보기에 호킨스 박사, 20세기 인도 성자로 여겨지는 마하리쉬와 마하리지, 그리고 도덕경과 금강경의 이상을 공통적으로 엮어주는 경지는 비이원성입니다. 선악 이분법을 초월하여 일자(Oneness)를 체험한 경지입니다. 그 근거는 이들의 체험에서 나온 진술이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입니다. 도덕경 10장의 다른 구절은 논의의 여지가 많아 의견이 분분하지만 달리 해석할 수 없는 두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리지만 하는 게 없다고 할 수 있는가(愛民治國, 能無爲乎)이고, 둘은 완전히 꿰뚫어 알지만 모른다 할 수 있는가(明白四達, 能無知乎)입니다. 앞 구절은 "수없이 많고 한없는 중생을 제도하지만 실로 구제받은 중생은 없다"는 금강경 말씀에 통하며 금강경은 이것을 무위법(無爲法)이라 콕..

단상 2018.12.29

무위(無爲)와 무소주(無所住)

무집착의 문제는 도덕경의 무위자연과 금강경의 무소주(無所住) 실천에까지 닿는 문제입니다. 한편 1천 여년에 걸친 선불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믿음체계의 하나지만 실상은 노장 사상과 인도 불교가 융합된 체계라는 걸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러니 무위와 무소주는 같다고 봐도 됩니다. 그렇게 보면 무위자연이 실천에서 동떨어진 물건이 아니라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금강경 정신에 따라 내가 없이 하고, 한다는 생각 없이 한다는 것은 아상(我相, 즉 에고)이 없어진 상태에서 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월쉬에 따르면 정신이 나간(mindless) 경지입니다. 체험상 거기에 조금이라도 비슷할 거라고 여겨서 제 금연 체험을 말씀드렸는데 언젠가도 써먹은 표현이지만 나 자신은 물론 타인과 기타 사물을 '처삼촌..

단상 2018.12.28

종의 비유와 대리인

앞의 글에서 재벌 기업 신입직원이 회장의 대리인이 된다는 비유를 말씀드렸습니다. 대리인이란 신약성서에 나오는 종에 대응하는 학술 용어이기도 합니다. 주인 부재중에 주인을 대리해서 경영에 관한 권한을 행사하고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성서의 종은 대리인입니다. 학술논문을 볼 것도 없이 대리인이 주인의 뜻대로 경영을 할 때 대리인은 당연히 주인과 같은 권한을 행사합니다.현대 영성이나 예수의 가르침에서 공통적인 것은 우리가 완전히 신의 뜻에 일치할 때 우리는 바로 신과 같이 무한한 능력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실상 마태복음 18장 24절을 보면 종이 주인(임금)에게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받은 예가 나오는데 이것을 오늘날 가치로 친다면 자그만치 6조원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신의 뜻에 어긋나지만..

단상 2018.12.26

마음의 가난과 참된 풍요

어제 페이스북 글에 고교 선배가 달아주신 댓글이 계기가 되어 올려 봅니다. 진정한 풍요가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지'임은 신을 생각하면 이해됩니다. 저는 '신과 나눈 이야기'라는 책에서 개념을 잡았습니다. 즉 신에게 부족은 없고 당연히 신은 피조물에게서 경배와 복종은 물론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 존재의 사명이 '신이 되는 데' 있다는 것만 이해하면 참된 풍요가 완전한 무집착에 통한다는 것까지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제 경우 이 시간까지 신께서 모든 필요를 채워주셨고 더할 나위 없이 완벽히 돌봐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고 비유컨대 지금은 입사 초기라 역량이 부족할 뿐 앞으로 은혜를 입어 진급하면 회장이신 신의 100% 대리인이자 사자(使者)가 될 것이기 때문에 완벽히 풍요합니다. 어쩌..

마음의 가난과 존재양식

산상수훈의 청빈에 대해 가장 과격한 논지를 편 사람이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일 겁니다. 무소유 실천을 드러나게 하는 사람은 장사꾼이라고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요컨대 가난에 대한 에카르트의 정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사람'입니다('에리히 프롬과 현대성', 219쪽). 위에 인용한 책에 따르면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에크하르트의 청빈 사상을 계승하여 현대의 실생활에 적용코자 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란 자신의 욕망을 극복하고 자아를 초월하여 신에 대한 갈망이라든지 지식에 대한 욕망 따위가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노자와 완전히 연결된다고 봅니다. 도덕경 10장은 나라를 다스릴 만한 성인이라면 '무위'뿐 아니라 '무지'할 수 있냐고..

명상과 에고 버리기

의식 향상 또는 깨달음으로 가는 도구로서 명상과 더불어 요구되는 것이 탐진치를 없애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오만 가지 생각이 나오는 원천이자 에고를 구성하는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교나 기독교는 그냥 교단에 출석하는 것으로 때우고 손에 잡히는 방법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일찌기 이고 선생은 에고로 에고를 지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단했습니다. 요컨대 초월적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제 생각엔, 구세에 메시아가 필요하다는 사상은 바로 이 초월적 도움 없이 세상구제는 물론 극기복례도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개개인이 소아 또는 에고를 극복해서 내면에 천국을 건설할 때만 세상 구원이 시작될 것입니다. 탐진치를 없애는 손에 잡히는 방법으로 제가 발견한 것이 스티븐 데이비스의 '..

지복에 이르는 길

제가 칠순을 기념하여 책 하나 낼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왜 칠순이냐 하면 책 내용을 실천으로 입증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인간 의식이 진화해서 언제나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법은 이미 다 알려져 있습니다. 궁극의 진리 가운데 숨겨진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스승들 말씀입니다. 숨겨진 무엇이 있고 비법이 따로 있는 듯 말하거나 교단 또는 누군가에게 지속적으로 의존하게 하는 것은 모두 영업용이자 거짓입니다.제가 파악한 요점은 참된 자신(참나라 하겠습니다)이 마음껏 드러나 신의 대리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이것을 하느님의 종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참나가 드러나는 것을 막는 것이 있는데 (참나에 대응하는 말로) 소아(小我) 또는 에고(작은 마음이라고도 합니다)가 그것입니다. ..

단상 2018.12.23

명상의 주 목적

명상에 대한 접근도 다른 모든 경우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즉 단숨에 대박을 바라면 안됩니다. "명상의 주목적은 내면 삶을 의식하고 친숙해지는 데 있다. (마하라지)"고 합니다. 그런데 초기 조건의 민감성 원칙에 따르면 이것을 실천하는 삶과 하지 않는 삶은 인생 말년에 이르면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지 싶습니다. 제가 반면 교사로서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20년 전은커녕 10년 전에만이라도 시작했더라면 지금 훨씬 더 좋은 삶을 살고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새는 이승의 출구대책겸 하루 최소 10분 이상, 보통 평균 30분 정도 매일 실천하고 있습니다. 많은 것들이 질서잡혀가고 있고 주변 사정은 모든 면에서 매일매일 좋아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나에 대해 기분좋아지고 있습니다.제가 ..

진정한 신분 상승

우리는 누구에게나 존재의 고양 욕구, 즉 높아지고자 하는 깊은 욕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존재는 혼백육으로 되어 있습니다. 육을 버리면 혼은 올라가고 백은 흩어진다고 하니 백이란 기백(氣魄)이란 말의 쓰임새에서 유추컨대 육을 유지 운영케 하는 에너지 또는 혼과 육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듯합니다. 혼의 상승을 연구 탐구하고 훈련할 때까지는 그저 백과 육 차원에서 상승을 꾀하게 되는데 바로 신분 상승의 추구입니다. 이것이 전부라고 여기는 이들은, 역사책에서 보고 오늘날 고시 붙은 사람들의 행태에서 보듯 고작해야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 전체 공동체를 해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합니다. 백과 육이 흩어진 후에도 무언가 분간하고 결정할 주체로서의 혼이 상승하는 일에 일찌기 입문하여 상당한 수준에 이르면 백과 육..

단상 2018.12.16

만트라와 화살기도

제가 일관되게 추구하는 것은 의식이 크게 도약해서 세상 것에서 벗어나고 모든 것이 하나임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러고나면 오직 신적 사랑, 즉 조건 없는 사랑(바로 신 자체)이 저라는 도구를 거쳐 세상으로 비추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 문제의 해결과 온갖 치유를 덤으로 얻는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거기까지 가는 데 필요한 학습과 실천 가운데 효과 있는 것을 배우고 전하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이 일에서는 끝까지 한두 가지 단순한 일을 철저히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은 대충하고 중간에 그만두었기 때문입니다. 백성욱 선생 가르침을 한 가지 더 거론하면 부정적인 생각을 알아차리고 버리는 방법이 있는데, 떠오르는 생각 생각마다 '미륵존여래불'을 외면서 버리는 것입니다.강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