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하화중생의 공부

목운 2020. 2. 20. 09:05

며칠 동안 쓴 글에서 세계 변혁의 수단으로서 염두에 둔 것은 스피노자가 거론한 다중의 각성과 연대입니다. 이 점은 탄허스님이 수소폭탄을 이기는 게 민중의 맨주먹이라는 '토극수'의 해석에도 부합합니다. 다중의 연대를 최종적이다시피한 사례로 보여준 것이 우리의 2016년 촛불입니다.

세계화 병폐의 진단은 기생충으로, 해법은 2016년 촛불로 보여줬으니 이래저래 대한민국이 동방의 등불에 그치는 게 아니라 세계의 빛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침 일본쪽에서 들리는 뉴스가 기생충 관람이 1등을 하고 그들 국회에서 촛불혁명 책의 출간기념회를 한다 합니다.

다중의 각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리프먼이 지적한 '조작된 동의(manufactured consent)'를 모두가 잡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제학이 만들어낸 자유시장과 완전경쟁 시장이란 동네 장에만 있는 것입니다. 세계 시장은 다국적기업이 민주의 탈을 쓴 귀족계급을 앞세워 제국주의적 지배욕을 관철하는 곳입니다.

산업혁명 초기부터 자본축적에 몰입한 자본 계급은 오늘날 국제적 금융자본이 되어 TV를 비롯한 미디어와 CIA를 비롯한 안보기구를 이용해 매일매일 세뇌로써 조작된 동의를 유지합니다. 비록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오늘날 유일한 혁명의 길은 민주주의 내에서 우리처럼 다중이 연대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이 혁명이 성공하려면 조작된 동의 또는 세상 프로그램의 정체를 까발리는 게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첨단 물리학과 마음의 본성이 어떠한지 알아야 하고 매일 홀로 진리를 숙고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인격신과 피흘리는 제사의 유산을 고수하는 종교를 내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까지 진화역사가 그랬듯이 당대에 할 만큼 하고 나머지는 후대의 몫일 수밖에 없지만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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