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요령과 요점

청혜스님 법문

목운 2025. 3. 28. 18:44

※제가 청혜선원을 강추하는 터라 스님 법문 가운데 하나를 가져왔습니다.

[노력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중도'란 놓는 것도, 잡는 것도, 그렇다고 놓지도 잡지도 않는 것도 아니다. ​이미 언제나 중도이어서 우리는 중도를 벗어날 수 없다.

'내'가 있다는 착각에서 '내'가 무언가를 하려고 나서기 때문에 중도 속에서 다시 중도가 되려는 노력을 하게 되는데, 그래서 이것을 물고기가 물 속에서 물을 찾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깨달음은 수행을 통해서 점차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이란, 자기 의식이라는 거대한 착각 덩어리에서 벗어나는 일이므로, 의식(헤아림,관념) 속에서 잠자고 있는 자기를 건드려 깨어나게 하는 것이 법(불법,진리)의 역할이고, 선지식은 반드시 깨어난 사람어야 하며, 상대방이 착각인 관념의 세계에서 툭 벗어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크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깨어나기 위해서는 많은 말이 필요치 않다. 오히려 너무 다양한 법문들로 인해 사람들이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이다.

​깨달음이란 얼마나 단순한 일인지 모른다. 또, 얼마나 쉬운 일인지 모른다. 게다가 얼마나 가까이 있는 일인지 모른다.

​언제나 아무 일 없는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고, 꿈(의식) 속에 빠져 있는 이유는 '자기 방식'으로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지식(깨어난 이)을 만나는 일이 급하고, 선지식의 바른 이끌음으로 의식이라는 얇디 얇은 비누 방울의 막이 터지는 일이 시급하며, 머리에 불 붙은 듯 공부하라는 말은 썩 고마운 경책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떤 기대를 가지고 유명한 수행처에 가서 그곳에서 쓰는 수행법을 따라서 하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수 년 또는 수 십 년을 해 보기도 하지만, 그러다가 역시 깨달음은 아무나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라 생각하거나 또는 자기 노력의 부족이라 자책하고 포기하게 되고, 역시 깨어나는 일은 전생에 많이 닦았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막연히 다음 생, 또는 그 다음 생을 기약하는 경우가 이 시대에 수행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경우인 것 같다.

지금 목 전(눈 앞)이 어두운 이유는 수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비누 방울이 가볍게 톡 터져 버리듯 우리의 의식 세계는 그렇게 찰라에 톡 터져 버릴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방향이다. 수행을 죽을만큼 해도 수행으로 깨달음이 오는 것이 아니다. 노력보다 중요한 것이 방향이다. 방향이 틀렸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시원한 결과는 오지 않는다.

​땅 속에 하늘이 있고, 하늘 속에 땅이 있다. 우리는 이미 하늘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이 이미 그대로 중도이다. 지금 눈곱만큼도 의심하지 않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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