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종교의 종언과 영성의 진화

목운 2023. 2. 23. 18:30

오늘은 유튜브로 인도 영성을 공부했습니다. 인도 영성이라 하면 리그 베다를 비롯한 네 가지 베다를 통칭하는 우파니샤드의 가르침이며 대략 3000년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수행법입니다. 근대에 와서 라마크리슈나와 마하리쉬, 두 분에 의해서 되살려져 서양에 널리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요점은 궁극의 실체이자 비이원적 근원이기도 한 브라만에 이르기 위해 서너 가지 요가의 핵심 사항을 실천하자는 것입니다. 즉 명상, 무주상 보시, 근원에 대한 봉헌 등이 그것입니다. 다만 브라만에 대한 비이원적 앎에 이르기 위해 오랫동안 꾸준하고도 올바르게 수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버리고 떠나 있음을 위해 글쓰기나 악기 연주와 마찬가지로 끝없이 연습해야 한다고 한 주문과 같습니다.

제 생각에 실상 동서 영성은 모두 산스크리스트어로 된 인도 영성이 퍼져나가 각 지방 언어와 문화로 다시 쓰인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 멸정복성을 통해 참나가 되는 것이 깨달음에 이르는 지름길이며(제가 정리한 '깨달음과 멸정복성'의 주제입니다), 이 수행에 전념함으로써 이승에서 최대한 진보하는 것이 이번 생뿐 아니라 다음 생을 위한 가장 현명한 대책이라는 주장도 우파니샤드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위에 거론한 19-20세기 인도 성자의 가르침이 서양에 전파되는 데는 영어가 큰 역할을 했고 인도가 영국 식민지가 되었음에도 영어를 자국어로 사용한 일이 서양 영성의 진화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블로그에서도 다루었지만 마하리쉬 님이 유럽에 소개된 데는 칼 융의 역할이 작지 않았고 라마크리슈나 님의 경우는 영어를 하는 제자들 역할이 컸습니다. 호킨스 박사도 자신의 영성을 비이원적 헌신(devotional nonduality)이라고 해서 우파니샤드 계열임을 확인한 적 있습니다.

제가 책과 블로그에서 주장하는 것은, 신유학은 중국 선불교가 진화한 것이고 선불교의 시조는 인도 사람인 달마 선사이기 때문에 신유학의 기원은 인도 영성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파니샤드 영성은 서양 신비주의 및 이슬람과 유대 신비주의와 전혀 배치됨이 없기 때문에 인도 영성과 신비주의 영성을 완전히 이해한다면  분열과 대결을 일삼는 기성 종교는 그 역할이 끝났다고 봅니다.

요컨대 민주정 시대는 개개인이 주권자요 왕이기 때문에 밖에 섬겨야 할 무엇을 전제하는 교리는 모두 버리는 게 마땅합니다. 과거에 대략 아시아 국가들은 왕즉불 사상에 기대어 통치를 원활케 하려는 의도가 있었고 유럽 국가들은 왕권신수설로써 왕실의 안정을 기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종교의 주된 역할이었습니다. 지구상 약 2/3의 인구가 민주정 하에서 사는 오늘날, 영성도 거기에 걸맞게 변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데 마침 인도 영성과 신비 영성이 여기에 딱 맞는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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