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근원과의 합일, 그리고 노후 대책

목운 2023. 2. 4. 12:21

우연히 발음도 특이한 마이클 부블레라는 가수가 부르는 고향 노래를 들으면서 글재료 하나를 얻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고향 노래 가운데 하나는 가고파가 있습니다. 고향 노래와 더불어 심금을 울리는 주제가 애모와 이별의 노래일 것입니다. 이별은 만남의 이면이기 때문에 이별의 노래는 결국 사랑과 합일의 노래로 분류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들 노래에 누구든지 끌리는 이유는 쌩뚱맞다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 존재 심층에 있는 존재의 근원과 합일 본능을 자극하기 때문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오래 떨어졌던 고향엘 돌아가거나 애틋이 그리던 이성과 결혼한 경우를 살펴 봅시다. 많은 이들이 실제 체험했겠지만 고향에서 다시 일상에 깊이 매몰되거나 그리던 이와 결혼해서 오래 산 경우 우리가 그리던 애틋한 감정과 소망은 채워졌을까요?

그렇지 못하기에 술과 노름에 빠지거나 심지어 다시 고향을 버리거나 다른 이성과 사랑에 빠지거나 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물론 대다수는 안정적으로 관리된 일상 속에서 자손의 번성을 보면서 통속적이지만 만족하며 살긴 합니다. 하지만 무언가 깊이 새겨진 갈망이 일시적으로 고향이나 이성에 꽂혔을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수많은 음악과 문학작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노가 외친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는 평안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은 존재의 근원과 합일할 때까지 우리에게 진정한 만족은 없다는 사실의 증언이라고 생각합니다. 근원과 합일할 때야말로 세상 것들이 주는 기쁨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가장 중요한 일에 몰입하면 나머지는 모두 덤이라고 하신 말씀도 바로 존재의 근원과 합일하는 일의 중요성과 가치를 강조하신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스도의 저 말씀을 완전히 받아들이면 사막에서 홀로 수도하는 이들과 산중 토굴에서 수행하는 이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은퇴후에도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여 술자리에서 한 소리 또 하는 꼰대 모습이 글 쓰는 중에 갑자기 떠오릅니다. 늦게라도 깨달으면, 끝없이 과거 일을 나열하거나 몸의 일에 올인하는 어리석음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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