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번뇌와 업장의 해결책으로서 깨달음

목운 2023. 1. 28. 07:12

동생네 스크린 골프장에서 일을 그만 두었다. 무슨 이유든 내게 일어난 일은 모두 내 의식이 초래한 것이라는 게 '그리스도의 편지'의 가르침이고 상식에도 맞다. 내 의식이 아주 높았다면 현명하고 부드러운 대화로 해결 못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한 후배 지적대로 고집이 있는데다 영악하질 못한 게 내 성정이다. 달리 말하면 어렸을 때부터 경망하고 미련했고 초등 1년 담임 지적대로 꽁무니 빼는 습성이 있다.

그 모든 약점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은혜와 좋은 운, 즉 무조건적 사랑(신성이자 존재의 근원, 그러니까 모든 존재의 참 부모) 덕에 잘 살아왔다. 달리 말하면 내 삶이 모두 공짜인 은총 덕분인데, 마치 내 덕으로 오인하며 살았으니 사실상 도둑질과 다름없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사니 대단한 과오도 아닐지 모르나 절대자 앞에 다르마의 위반인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명을 해친 크고 작은 과오와 부당하고 비밀스럽게 취한 쾌락, 그밖에 다르마에서 벗어난 과오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이 점도 어쩌면 세상이 그렇게 생겨먹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나이 60에 깨달음에 이르겠다고 시작한 공부가 약 3천 일을 지났는데 여전히 과거처럼 살 수는 없다. 따져보니 바닥 체험을 하고 고향에 와서 삶을 도모한지 만 9년을 지나 10년차 첫달인데 개월로 108달을 막 지나면서 다시 큰 번뇌를 겪는다.

이런 일을 겪는 뜻은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지 않으면 번뇌의 소멸과 고통의 종식은 불가능하다는 경고인 것 같다. 위 편지에 따르면 깨달음에 이르지 않으면 일시적으로 간절한 기도로 응답을 얻긴 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잘 안된다고 한다. 불가에서도 나 같은 하근기는 9천 일을 제대로 공부해야 번뇌가 없는 누진통에 이른다고 가르친다.

깨달은 상태란 에고가 소멸하여 참나 또는 신성에 일치하였기에 지혜는 물론 무조건적 사랑이 자유자재로 구현되는 경지다. 유가의 표현으로는 조차전패시에도 천지생물지심인 인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에고가 소멸하였다 하면, 사랑이란 우주법칙에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비이원성에 도달하였으니 차별의식과 경쟁심에서 나오는 비판의식이 완전히 사라진 경지를 말한다.

그 때는 당연히 바라는 게 무엇이든 이뤄지며 번뇌도 고통도 없어진다고 짐작할 수 있다. 특별히 마하리지 님을 보니 실제로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마음이 성취되고 완전히 아이와 같은 상태가 되었으니 참고할 만하다. 다만 불교와 내가 읽는 그리스도의 편지에 따르면 번뇌의 원인에는 전생의 트라우마 내지 카르마도 있기 때문에 더욱 철저히 마음을 모아 닦아나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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