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이고와 이승훈, 그리고 종교

목운 2020. 9. 24. 18:54

8-9세기 당나라 이고 선생에 대해서는 제가 많이 거론했지만 제 동기동창 덕에 이승훈 선생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됩니다. 무슨 얘기냐면 이승훈 선생은 조선의 지배층이자 지식인이었음에도 왜 가문에 커다란 손실을 끼치게 된 서학의 선구자가 되셨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오늘날 세상에 구토가 날 정도로 민폐가 된 기독교가 떠오르는 것입니다. 아이러니지만 두 분 모두 당시 지배 이데올로기이자 문화 풍토를 조성한 종교와 관련해서 비슷한 결단을 하신 점이 제 관심을 끈 것입니다. 먼저 이고 선생은 불교도로서 선사들과 교류도 있었고 유엄선사에게서 견성 인증까지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온갖 불재의 폐단이 극에 이르러 사람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현실에서 불교와 결별하고 유교 경전 해설 속에 불교의 정수를 주입함으로써 신유학의 개창자가 되었습니다. 한편 제가 홀로 미루어 짐작컨대 이승훈 선생은 성리학 또는 신유학이 조선 말기 나라를 극도로 분열시키고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한 현실에서 서학이 신유학의 핵심을 담고도 남음이 있다고 보아 기독교 세례를 받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감히 저 분들에 비교할 수 없지만 제 경우도 기독교도(가톨릭)였지만 기독교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고 보아 기독교에서 신화와 비이성적 요소를 다 벗기니 신유학과 배치되는 게 없다고 판단해서 신유학의 가르침을 현대적 용어로 풀고 있습니다. 결국 종교란 스승의 가르침을 교리화하는 과정에서 당대 지배층에게 유리한 사이비를 마구 섞어 지배 이념이 된 후 매너리즘에 빠지면서 사람들에게 질곡이 되고 고통의 원인이 됩니다.

오늘날은 기독교가 그 지경이 되었으니 불교와 유교가 망한 것처럼 한번 완전히 망해버려야 산불이 지나간 뒤에 새 순이 나오듯 개창자들의 순수하고 올바른 가르침만 살아 남을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 기독교에 대해 구토가 날 정도로 외면하는(sick of) 사람들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시대 아닌가요? 하지만 버릇처럼 반복했듯이 목욕물을 버리더라도 그 물로 씻은 아이는 버리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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