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예수의 초기 생애와 광야 체험

목운 2020. 12. 7. 08:39

"<광야에서의 6주간>은 내 인간 의식의 총체적 내적 정화기간이었다. 구태의연한 태도와 믿음과 선입견은 모두 해체되어버렸다." (41쪽)​

36-41쪽에서 그리스도는 태어나서 서른 살까지 삶이 어떠했는지 말합니다. 읽어보면 참으로 성서 편집자들이 예수의 신성을 부각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사실들을 의도적으로 누락시켰으리라는 게 짐작됩니다. 왜냐하면 그 또래 아이들처럼 그는 제멋대로였고 어머니를 거역하는 반항아였기 때문입니다. ​

특히 부당한 권세를 부리는 유대교 지도자들에 대해서는 "볼 때마다 열이 올라 고함을 지르며 분통을 터뜨렸다."고 고백합니다. 물론 남다르게 약자에 대한 연민과 동정심이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쨌든 "예리한 지성과 통찰력, 논쟁의 재능 등"의 탈렌트가 있었다고 고백하며 "야훼의 '심판과 진노'를 말하는 성경 속 선지자들을 역겨워했다"고 하는 점을 볼 때 깊은 학식으로 유대 전통과 신앙을 꿰뚫고 있었던 것도 틀림없습니다.​

비로소 20대 중반에는 '창조의 근본 원인과 그 본질을 이해하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을 가지고 탐구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이 모친과 이웃에게 끼친 괴로움에 대한 성찰과 자신의 이기적 행동에 대한 반성 등 내면의 작업을 거쳐 세례자 요한을 찾아갈 결심을 하게 됩니다. ​

약 5년간의 그러한 노력의 결과는 물론 타고난 근기가 상근기였겠지만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순간 우리가 듣는 돈오라 할 수 있는 체험을 한 것이었습니다. 즉 "나는 내 몸을 훑고 지나가는 엄청난 에너지의 파도를 느꼈다... 나는 너무나 놀랍게 의식이 고양되는 것을 느꼈다. 물밀듯이 엄습해오는 찬란한 행복감이 나를 황홀경 속으로 띄워 올렸다. 나는 환희에 도취되었고 거대한 빛을 의식했다." (40쪽)​

그리고는 말 그대로 신들린 듯 광야에서 6주간을 지낸 것인데 광야에서의 체험은 바로 "총체적 내적 정화"였으며 그 결과 "구태의연한 태도와 믿음과 선입견"이 완전히 지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양 기독교 신비주의와 동양 영성의 핵심에서 바로 이와 똑같은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유교에서 극기복례(克己復禮), 불교에서 멸정복성(滅情復性)으로 표현됩니다. 신약(마태복음 16:24)은 먼저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해서 이 점을 다시 분명히 확인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