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요령과 요점 147

장자의 핵심 사상과 선불교

우선 인용합니다. “선(禪)이라는 형태로 노장(老莊) 특유의 통찰을 그대로 되살리고 발전시키게 된 원인은 대승 불교의 충격 때문이었다. 토마스 머튼이 예리한 통찰력으로 관찰한 바와 같이 ‘장자의 사상과 정신을 진정으로 이어받은 사람들은 당나라 때의 중국 선사들이다.’ 현실을 바라보는 선사들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노장과 일치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선의 황금시대, 16~17쪽)” 우징숑(吳經熊) 님은 특히 장자의 핵심 사상이기도 한 ‘마음을 삼감(心齋)’, 완전히 잊음(坐忘)‘, ’꿰뚫어 봄(朝徹)‘이 선의 핵심 사상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이 세 가지는 장자 인간세와 대종사에 나오는데 그 번역은 중국 사람 간에도 많은 설이 있고 우리말로 그저 부드럽게 된 것들이 모두 핵심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보아..

명상을 습관 들이기(2)

우선 번역합니다. "명상을 많이 할수록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신과 더 깊게 일치해 갈 것입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영적으로 완고하지만 자기를 벗어난 사람은 그 의식이 확장됩니다. 명상으로 당신이 시공을 벗어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면 곧 신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신이 당신과 일치하면 모든 것이 당신과 조화를 이룹니다. 혼을 다하여 신에게 말을 걸도록 하십시오! (파라나한사 요가난다)" 스티브 잡스가 이분의 자서전을 끼고 살다시피 했다죠. 매일 규칙적으로 명상을 하는 것은 세상 삶을 성공적으로 사는 데 꽤 우회하는 길처럼 보이지만 실상 가장 효율과 효과가 높은 길이라는 것을 요즈음 깨닫습니다. "주역의 정신은 생각도 행함도 없는 열반 상태이며 우주와 소통하기 때문에 깨달은 자만이 여기에 이를..

명상은 선택 행위임

명상은 신성을 선택하는 행위입니다. 고요한 시간을 내서 발견하는 자명한 앎을 실행하려는 결단이기도 합니다. 유교와 불교가 도움이 되는 것은, 간편하지만 걸림돌이기도 한 인격신 '하느님'을 전제하지 않고 신성을 택하는 꾸준한 노력과 실천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묵상 과제로 나눔을 하고자 두 구절 가져옵니다."참나이기도 한 신성은 무시되고 잊혀지거나 우리가 택하거나 둘 중의 하나다. (데이비드 호킨스, 나의 눈)""마음이 한번 움직이는 것은 바로 볼 수 없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하는 것이니 참나로 돌아가는 일은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군자는 혼자 있을 때 삼가하며, 혼자 있을 때 삼가한다는 것은 곧 생각이 끊어진 자리를 지키는 일입니다. (이고, 복성서)"

공부의 요점

천국에 이르는 길 또는 지복을 누리는 길은 동서 영성에서 간단히 정의되어 있습니다. 서양 신학이나 철학을 간단히 요약하면 신이 다스리는 상태가 천국입니다. 즉 신의 뜻대로 삶을 살면 지금 여기서부터 천국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이 어려운데, 답은 에고 의식을 지워낼 때 신 의식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각 교단들은 정기적으로 출석하라고 하는데 그것은 하근기 또는 우중에게 해당하는 말입니다. 동양 영성에서는 극기복례를 통해 구현되는 인(仁)의 삶에 지복이 있다고 봅니다. 여기에서도 하근기와 우중을 대상으로 스승 또는 외적 권위에 복종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상근기에게 예란 천리를 말하며 천리란 서양의 로고스를 말합니다. 서양철학에서 로고스란 신의 뜻과 같고 중용의 용어로 하면 천명입니다. 천명은 성(性)에..

명상은 음적인 동시에 양적임

'신기독 수기중'은 홀로 고요히 있는다는 점에서는 음(陰)적이지만 오직 궁극의 실재를 지향하기 위해 전심전력한다는 점에서는 양(陽)적입니다. 다음에 인용하는 마이스터 에카르트를 보면 그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인용처는 바오로딸에서 나온 '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2002)'입니다."우리는 집착 없이 행하기를 배워야 한다. 그러나 훈련되지 않은 사람이 어떤 행위나 육신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상태에 이르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것은 엄청난 노력이 요구된다. 신은 훈련된 사람에게 언제나 현존하며 명백히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데 이를 위해서 특히 두 가지가 요구된다.첫째, 자신 안에 집중하여 마음이 외부 사물의 표상에서 벗어나 있고 외부 사물은 그에게 외계의 것으로 여겨져서 그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관련맺거..

왜 보살이 되어야 하는지

복을 구한다고 하면 구할 게 없는데 무엇을 구하냐고 반박할 수 있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가르침에 의하면 중(中)이나 공(空), 또는 성(性)의 자리는 원만구족하여 이미 모든 것이 있는 것으로 믿어집니다. 기독교나 힌두교 영성에서 말하는 신의 자리로 봐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선불교에서도 말이 끊어진 그 자리를 찾으면 더 이상 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일체를 부정했고 신 의식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에서 더 이상 찾을 게 없습니다. 바로 지복 상태임을 알게 됩니다. 호킨스 박사가 얘기하는 의식지수 600 이상의 상태인데 그때 깨달은 자는 이승과 저승에 대한 차별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이승에 있는 이유는 주변에서 도움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애덕의 요구에 따라 세상이 요청하는 일을 하게 될 것..

복을 구하는 공부

결국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모두가 복을 구하는데 왜 잘 안되는 것이며 명료하고 간단한 길은 무엇인가 하는 겁니다. 모든 철학과 종교가 나름대로 답을 제시하지만 왜 잘 안될까요? 저 자신도 많이 엇나가고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는 것을 환갑이 될 무렵 크게 넘어지고 깨달았습니다. 그 답은 홀로 있을 때 근신하고 진실하지 못했고 참마음(中)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참마음을 지켜 거기서 지시하는 대로만 살면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공부하고 그것을 몸에 익혀야 합니다. 그 가운데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생각을 끊고 침묵 속에 머무는 시간을 내는 것입니다. 이 일이 몸에 밸 때 신 의식(또는 존재의 근원 또는 부동의 동자)에 일치하게 되며 빈 상태에서 무엇이든 복된 것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즉..

명상, 침묵

지관문(또는 명상)을 통해 신인합일로 가는 길은 험난한 길입니다. 지루하고 답은 없이 사막을 가는 심정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바이블은 그 길이 '곧고 좁은'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스승들 말씀을 읽고 그냥 홀로 있는 시간을 자주 내면서 보시-지계-인욕 등 오행에 몰입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더 보탠다면 쉬지 않고 자신만이 부를 수 있는 이름(예, 미륵존여래불, 아미타불, 그리스도 예수 등)을 계속 부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당신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아지경과 같은 것을 바랍니다. 무아지경은 필연적으로 오고 갑니다. 인간 뇌가 그런 압력을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지극히 순수하고 가벼운 것이 아니고 길게 늘인 무아지경이라면 우리 뇌는 타버..

어떻게 살 것인가?

동아시아의 사상 또는 학문이란 결국 이곳에 살던 이들이 이승의 고통을 벗어나면서도 세상의 경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해법을 추구한 과정이라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이곳에서 발흥한 것으로 추정되는 도교와 유교에 불교가 더해지면서 통합적인 답을 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 답을 쉽게 풀면 '규칙적으로 정좌하여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지고 거기서 자명하게 얻어지는 매 순간의 실천방안을 세상에 펼치자'쯤 됩니다. 동아시아 지성인이 수천년간 실천한 것이 동일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결론을 조금 바꾸어 써보겠습니다. 우리 삶에서 성공의 토대는 신인합일을 이루는 데 있으며 그러기 위해 실천적으로는 모든 일에서 최우선적으로 존재의 근원(또는 제1원인, 신 의식, 불성)을 만나야 합니다. 이 경지는 반드시 규칙..

중(中)과 화(和)의 실천

아시는 분도 계시지만 엊그제 거론한 서경 16자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죠! 저는 한 됫박 구슬밖에 모으지 못했지만 무엇으로 어떻게 꿰어야 하는지(一以貫之) 감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은 순전히 탄허스님을 비롯한 여러 스승을 사숙한 덕입니다.서경 16자구란 '사람 마음은 위태하고 참마음은 미력하다. 갈고 닦으면 하나일 뿐이니 집중하여 그 속을 꽉 잡아야 한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또 실천력이 약해집니다. 우리말에서도 심중, 궁중 할 때 중은 깊은 속을 말합니다.사람 마음에서 깊은 속이란, 평소 잘 드러나지 않는 도심(참마음으로 해도 좋을 것입니다)으로 보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중용은 희로애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