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요령과 요점 144

의식 성장과 깨달음(1)

종교에 상관없이 각자가 추구하는 학습의 목표를 의식의 진화 또는 성장으로 본다면 매우 공통적인 생각과 공감이 가능하리라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호킨스 님의 깨달음 3부작 첫 작품("Power vs. Force")이 '의식 혁명'이란 제목으로 번역된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신의 현존 탐구(Discovery of the Presence of God)‘라는 책에서 핵심이 되는 구절을 인용해보겠습니다. - “우리는 말과 행동이 아니라 영적인 성숙으로 세상을 변화시킨다. 그러므로 영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모든 이들은 세상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평생 봉쇄수도원에서 생활했던 기독교 성인들이나 선불교 수행승들이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을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의..

공부의 결말

가끔 집안의 손자뻘 되는 아이들을 관찰하면 이름이 자신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은 광경을 봅니다. 이름이 곧 '나다' 하는 것은 온전히 훈련과 세뇌의 결과인 듯합니다. 여기에서 유추컨대 우리가 가진 사고틀은 모두 세상에서 입력된 것입니다. 그 모든 입력을 분류하고 선택함으로써 소위 정체성이라는 것을 만들고 거기에서 자신의 삶과 운명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 삶이 아닌가 합니다. 이것이 대승기신론에서 말하는 심생멸의 세계, 즉 시공 안에서의 삶입니다.하지만 진정한 행복과 끝없는 의식의 상승은 심진여 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이름이 '나다' 하는 것이 입력되기 전의 말이 끊어진 세계입니다. 아이들은 존재 자체로 '생명은 기쁜 것이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 상태를 유지 향상시키려는 것이 바로 공자님이 학습(..

참된 해방과 지상천국

돌아보면 내심 깊은 곳에 있는 열망은 참된 해방과 지상천국을 누리고자 하는 데 있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제 경우 이를 위한 독서의 종착역이라 할 수 있는 책이 '그리스도의 편지'이고 그 앞 역이라 할 수 있는 책들이 '에고로부터의 자유'와 '내려놓기'입니다. 세권의 핵심은 극기복례이고 극기복례의 요체는 서양식으로는 거비정화(purification), 진덕명화(illumination), 신인합일(deification)이고 우리 식으로는 거경(居敬), 궁리(窮理), 역행(力行)인데 '종심소욕불유구'에 도달하여 '평천하'에 기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대학의 요체는 수신제가로 평천하하자는 것인데 평천하는 기독교식으로 해석해서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다시 말하면 수행을 해서 해탈을 ..

자아초월과 극기복례

하버드에서 75년에 걸쳐 행복의 핵심 요소가 무엇인지 연구했다는 동영상을 우연히 봤습니다. 답은 '좋은 관계'라고 하는데 어떻게 좋은 관계를 유지할지에 대한 답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동서양이 공통으로 말하는 '내가 바라지 않는 일을 남에게 하지 말고'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는' 황금률이 답이겠지요! 그런데 살면서 가장 실천하기 힘든 일 가운데 하나가 황금률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실천하려면 역지사지가 돼야 하고 그럴려면 자신을 완전히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개의 교육과정은 진짜 어려운 일은 그냥 괄호 안에 두고 넘어가는 게 일상이죠. 자신을 객관화하기 위한 실천이 바로 극기복례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반드시 심성론을 가르쳐야 하는데 심성론의 핵..

명상의 필요성

진화의 필요상 우리 생각과 감정은 외부로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깥에 있는 위협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의식을 안으로 돌려 생각이 없는 경지에 도달하는 일은 익숙치 않아 습관들이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신약성서는 그리스도가 조용한 곳에 가서 홀로 기도하셨다는 기록을 여럿 남기고 있듯이 성현들은 회광반조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지 않고 내버려두면 우리 생각과 감정이란 놀이공원의 거울집 아니면 다람쥐 쳇바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끊어 '텅비고 고요하며 신령한 의식(또는 앎)'의 상태에 안착할 때 비로소 시스템 내 사고를 벗어나 초월적(out-of-the-box) 지혜 내지 직관과 접할 수 있다는 게 과학과 영성의 공통된 결론입니다. 이것이 습관화되어 영감이 의식을 완전히 지배하게..

내려놓기와 명상

실상 저도 고교 졸업을 기준으로 해서 40년 이상 지났어도 좌고우면, 왔다갔다, 한 길로 가지 못했기에 의식이 분열되어 바닥의 경지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여기서 벗어나야 하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단단히 한 길로 기어 올라가는 중입니다. 2014~15년간은 주로 내려놓기 방편을 실천했습니다. 요약하면 (1) 부정적 감정 또는 불편한 사안에 대해 철저히 느껴보며 집중할 것, (2) 가장 극심한 파도에 몸을 맡길 것, 예를 들어 슬픔의 감정이라면 간장이 끊어질 정도로 슬퍼해보는 것입니다. (3) 하늘의 도움을 구하고 인도를 구할 것, (4) 고통의 과정을 참고 끝까지 견뎌낼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2016~17년간 좋은 안내서를 만나서 읽다보니 드디어 명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10분이..

극기복례와 명상

불교와 기독교도 그렇지만 높은 정신에서 나온 가르침이 세속권력의 존립 근거로 쓰이는 순간 그 깊은 맛을 잃어버리고 속물적인 것이 됩니다. 극기복례란 말도 저속화하고 상투적인 게 되어서 몸을 괴롭히는 일에까지 쓰이지만 그 본 뜻을 제대로 일러 주는 이가 드뭅니다. 제가 파악하는 한 극기복례는 성리학의 비조라 할 수 있는 이고 선생의 복성서가 압축 요약한 바 멸정복성과 대동소이한 말입니다. 즉 에고(情)를 소멸하여 참나(性)로 돌아갈 때 비로소 인간은 우리 존재의 근원을 올바로 공경하게 되고 당연히 고통이 그치고 참된 복락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가르침이 들어 있습니다. 예란 천리이고(탄허록 133쪽) 천리라 함은 바로 하늘의 명이 들어 있는 성(性)과 다르지 않습니다. 칠정 가운데도 부정적인 것들은 시기심..

평생 실천할 일

이제 겨우 초심자로서 깨달음 또는 마음에 관한 학습내용을 되풀이하는 이유는 첫째는 인문적 유희가 제 유일한 취미이고 둘째는 그간 세상에서 통하는 삶이 결코 참된 행복에 이르게 하지 못한다는 자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통하는 삶이란 착한 사람이 되고 성공한 사람이 되고 한 가지 더 보탠다면 독실한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흔히 성공한 사람들이 인정받고 있는 지점이 이것일 겁니다. 하지만 오늘날 고위 공직을 거치고 유명한 종교단체에 등록된 자들로서 부패인사로 심판받고 감옥에 가는 이들이 여러 두름이 되고 남습니다. 진정한 행복의 길은 깨달은 사람이 되는 것, 보살이 되는 것 또는 지상천국에 들어가는 것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저는 뒤늦게 깨닫습니다. 그런데 실상 이 세 가지는 모두 한 가지입니다...

천국에 이르는 길

앞서 정리한 제 공부의 요점은 평생 배우고 읽은 것의 결론이라고 해도 됩니다. 결국 고금동서에 걸쳐 인간 마음이 똑같이 생겼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그 모든 가르침의 요체는 같다고 보는 게 맞을 것입니다. 다만 정상에 오르신 분들이 문화와 언어에 따라 표현을 달리 했기에 많은 길이 있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오늘날 이 길에 들어서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은, 무언가 쟁취하고 성공하여 이러저러한 요건이 성취되어야 행복할 것이라고 세뇌하는 온갖 프로그램과 깨달음처럼 어려운 일이 내게 가능하겠는가 하는 의심입니다. 그래서 마하리쉬 님은 '깨달음이란 내게는 먼 얘기다.', '쉬운 일이 아니다.', '참나를 알기 위해 극복할 게 너무 많다'와 같은 생각을 모두 버려야 한다고 합니다. 7세기에 이 길을 안내한 승찬스님..

공부의 요체

제가 파악한 공부 목표로서의 깨달음이란 에고가 사라짐으로써 드러나는 비이원성의 상태를 말합니다. 공부의 방향과 지도를 가지고 있어서 평생 이 단순한 과정을 실천하기만 하면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마하리쉬 용어로 하면 바사나(習)를 다 버리면 마치 두레박 끈이 끊어져 물 속으로 들어가버린 상태인 '본연적 무상 삼매'의 삶을 살게 됩니다.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은 침묵과 고요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잊을 때 느껴지는 존재감 또는 의식(지눌스님이 말씀하신 공적영지와 같습니다)이 참나, 즉 우주의 유일한 실체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마하리쉬는 젖을 빠는 아기의 상태로 묘사합니다. 이 상태는 깨어 있는 상태, 잠든 상태, 꿈꾸는 상태의 바탕에서 이들이 서로 다른 상태임을 분간하게 해주는 스크린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