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존재상태를 바꾸는 게 먼저임

목운 2021. 4. 9. 03:10

“너희의 진지한 탐구와 명상이... 오로지 ‘존재의 진실’을 향해서만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 너희는 자신의 본성이 점차 변화해감을 깨닫게 될 것이고 타인에 대한 지각 능력과 그들의 요구를 감지하는 힘이 전에 없이 커지기 시작할 것이다. 너희는 타인을 더욱더 이해하고 공감하고 배려하고 동정하고 부드럽게 대하게 된다. 실제로 이제부터는 영혼이 가진 신적 생명의 품성이 에고의 자연스러운 자기만족과 자기방어 충동을 제어하기 시작한다.” (447쪽)

궁극의 깨달음, 즉 우리나라에서 알고 있는 견성이나 활연관통을 얻기 위해서는 오직 존재의 근원과 그에 대한 진실을 탐구하고 거기에 대해 몰입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격물치지의 지향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감을 가진 우리는 세상에서 확립된 종교적 교리나,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사이비 영성이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온갖 요법에 휩쓸리기 쉽습니다.

참으로 우리 내면 깊이, 즉 영혼과 에고에 다리를 놓고 있는 심령 차원에서, 그리고 에고를 완전히 잊었을 때 생기는 영감과 침묵을 통해서 소통하는 영혼 차원에서, 오직 존재의 근원을 향해 있을 때 우리 존재 상태는 서서히 향상하게 됩니다. 그렇게 먼저 ‘존재의 근원’, 즉 신과의 관계가 재정립되고 소통이 원활해질 때 예외 없는, 그리고 차별 없는 용서와 친절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제가 기독교 생활을 할 때는 먼저 보이는 사람들에게만 집중해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면 자동적으로 신과의 관계가 바로잡아질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믿고 살았지만 그것은 장기적으로 힘도 없고 지속적이지도 않았습니다. 먼저 매일 규칙적으로 고요한 시간을 내어 신과의 관계가 긴밀해지고 깊어져야만 이웃 사랑도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지금 깨닫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웃 사랑 또는 자선이라는 것을 의식해서, 힘을 내서 한다는 것에는 이미 에고의 이런저런 동기가 개입되기가 십상입니다. 물론 그렇게 의지를 내서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신적 동기가 추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와 붓다께서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고 붓다께서는 한다는 생각이 없이 마음을 내라(應無所主 而生其心)고 하셨습니다. 이 일은 우리가 매일 고요히 홀로 시간을 내는 실천을 해서 언제 어디서나 신 의식과 함께 하는 일이 몸에 완전히 배었을 때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들이지 않았다면 거의 대부분 우리가 행하는 애덕 행위는 사사로운 이익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제 경험으로 증언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먼저 내 지향을 철저히 바꾸어 존재의 진실만을 탐구하면서 존재의 근원을 향해 살면서, 많은 시간을 들여, 즉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께서 얘기하신 대로 악기연주자나 작가가 기술 향상을 위해 똑같은 연습을 매일 꾸준히 하듯 우리도 시간을 들여 정좌와 독서를 함으로써 내 존재 상태를 향상시켜 나가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 그리스도의 편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고 소멸과 황금률  (0) 2021.04.12
심령(psyche)과 도심(道心)  (0) 2021.04.10
신성을 구현하는 길  (0) 2021.04.08
결혼과 남녀의 의식수준  (2) 2021.04.04
참나 찾기와 극기복례  (0) 2021.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