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자유, 심진여와 심생멸

목운 2019. 6. 26. 07:34

어제는 고전음악에 대한 책을 읽다가 '서번트(servant)'가 '발레(valet)'보다 아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략 18세기 음악가들은 궁정에 채용되지 않으면 생계가 매우 어려워지지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들의 출신이 대개 '서번트'였기 때문이라 합니다. 모차르트는 여기에 반기를 들고 최초로 프리랜서를 선언한 음악가라 합니다.

각설하고 저쯤에서 자유라는 말이 동아시아에서 얼마나 영성 깊은 말인가 하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자유란 영어로 하면 'from self'죠. 밖의 것, 또는 밖에서 주입된 모든 것을 부인하고 내면의 것만 따라서 산다면 비로소 자유롭다 하겠습니다. 다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self'와 'Self'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1~2세기에 정리된 대승기신론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즉 심진여를 'Self', 심생멸을 'self'로 따로 구분하지 않으면 바로 혼란에 빠집니다. 그렇게 해서 마태오 16:24의 '자기를 부인하라(forget self)' 할 때도 심생멸을 말하는 것으로 알아들으면 경전들의 회통도 되고 요새 경영학이나 자기개발서들이 말하는 '자아 실현'이란 말도 명료해집니다.

요컨대 자유란 세상 살기와 몸의 진화에 복무하는 소아 또는 심생멸이 아니라 하늘의 프로그램이 새겨진(天命) 참나(性) 또는 심진여에 따라 살 때 누릴 수 있는 것이며 저는 공자께서 종심소욕 불유구를 말하실 때의 마음도 심진여라고 보는 겁니다. 심진여에만 의지해서 사는 데 꼭 필요한 수련이 명상이며 이 수련은 밥먹고 양치질하듯 해야 합니다. 동아시아 영성의 핵심이 여기에 있는데 서양도 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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