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인생의 더 높은 목표

목운 2021. 2. 1. 16:36

“너희는 아름다운 다음 차원으로 넘어가기 전에 성취하고자 하는 영적 계획, 영적 목표를 세워놓았는가? 너희는 영적 의식의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정화되고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 준비가 되었는가? 아니면 아직도 세속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가?” (229쪽)

우리는 태생적으로 더 높은 존재 상태로 가고자 합니다. 그런데 높은 존재 상태란 우리가 보는 능력에 따라 다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맹자는 하늘의 작위(天爵)와 사람의 작위(人爵)를 구분했습니다. 하늘의 작위라 함은 인의충신이라는 선을 즐겨 실천하는 것인 반면 사람의 작위란 공경대부, 요즈음이라면 부와 권력의 크기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조건 없는 사랑은 유학의 인(仁)과 같습니다. 그야말로 하늘, 즉 신의 품성입니다.

유학에서 하늘의 품성을 쉬지 않고 드러내기 위해서 하는 공부 또한 ‘편지’와 일치하는데 곧 “충분한 정화”입니다. 이고 선생의 복성서에 따르면 에고, 즉 정(情)을 소멸하는 일인데 예(禮)가 아니면 무엇이든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기를 금하는 것, 즉 극기복례를 말합니다. 고금동서가 같으나 그 표현 방식은 시대에 맞추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책은 “무조건적 사랑이라는 <신 의식>의 영적 주파수에 일치하도록 단련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스승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천작, 즉 영적 목표가 높아서 그것에 매진하면 인작은 저절로 따라옵니다. 하지만 가시적인 세상에 사는 우리는 시야가 좁아서 그저 세속적 수준에 머물러 있기 쉽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서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고 일치하는 노력”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진력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말은 달리 표현하면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고 일치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조건 없는 사랑의 실천은 바로 그러한 존재 상태가 된 상태에서 베풂이 자연스럽게 되어야 합니다. 이러저러한 계명이나 윤리의 조건에 맞추려고 애쓰는 것은, 제 체험을 비추어 보아도 에고가 에고를 끌고 가려는 힘겨운 시도이지만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거론했지만 이고 선생은 일찍이 에고로 에고를 끊으려 하는 것은 더 큰 에고에 빠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마음과 목숨과 뜻, 또는 같은 취지지만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해 먼저 신과 일치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럴 때만이 교조적 바리새나 위선적 양반의 도덕을 벗어나 진정 영적으로 높은 수준의 성취를 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이 전제되어야 의식하지 않아도 언제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나 신 의식의 통로로서 저절로 신을 드러내며 살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마태 6:1)” 하라고 하신 것이나, 붓다께서 “베푼다는 생각 없이 보시하라(금강경)”고 하신 것 모두 똑같은 취지의 말씀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철저히 정화를 하되 ‘내가 없다(無我)’는 상태가 될 때까지 오직 신께 모든 것을 맡기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이 수행의 성공을 위해서는 홀로 고요히 있는 시간을 내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 그리스도의 편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향후 천 년의 과제  (0) 2021.02.04
존재의 근원을 체험하기  (0) 2021.02.02
평화에 기여할 초종교적 영성  (0) 2021.01.30
양과 염소, 그리고 영적 독서  (0) 2021.01.29
기독교의 한계  (0) 2021.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