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신유학과 지어지선

목운 2021. 5. 16. 06:51

종교학자 길희성 님에 따르면 "동양 종교는 절대적 실재가 인간 심성 안에 이미 완전하게 내재한다고 보고 다만 그것을 깊이 자각하고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렇게 자기 발견과 실현을 통해서 인간은 절대와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 완벽한 일치를 이룰 수 있다고 보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신비적 합일(unio mystica)의 종교다."라고 합니다. 간단히 동아시아의 천인합일 사상이 그것이라고 봅니다.

신비적 합일이란 서양 신비주의에서 나온 말로 플로티누스의 일자 체험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말이기도 합니다. 따지자면 내재하는 신(Immanent God)을 강조하는 전통이며 동아시아에서는 하늘, 불성, 하늘의 뜻이기도 한 성(性) 등이 모두 내재하는 신과 같은 절대적 실체를 가리킵니다. 유불선의 융합인 신유학에서 거기에 이르는 방법은 약 천 년 동안 논의되고 실험된 바 있으니 큰 줄기가 주자학과 양명학입니다.

요점은 정좌를 통하여 희로애구애오욕이 나투기 전 상태를 보존하는 윤집궐중(또는 미발함양)을 실천해서 천리가 관철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일곱 가지 감정이 나투었을 때는 그것을 들여다 보아(内省) 에고가 없이(無私) 투명하게 처리하자(和의 구현을 위한 이발찰식)는 것입니다. 제가 살펴보니 기독교 신비주의나 신유학이나 요점은 똑같은데 세상이 이토록 어지러운 것은 근본 실체와 완벽한 일치를 이룰 때까지 쉬지 않고 정진하는(止於至善) 대신 밖으로 드러난 것을 평가해야 하는 한계 때문이라고 봅니다.

거기에서부터 절대적 투명성(誠)에 어긋나는 거짓과 사이비가 스며들어 종교를 비롯한 사회 시스템의 부패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샤르댕은 사람의 세 분류를 말했는데 이 현실을 타개하기는 무척 어려워 보입니다. 즉 산꼭대기까지 가는 사람, 중턱까지 가서 좌판 벌이고 노는 사람, 조금 가다가 되돌아 가는 사람 등이 바로 그 세 분류입니다.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행과 임종대책  (0) 2021.06.08
공자님과 예수님의 공통점  (0) 2021.06.05
사랑의 기술  (0) 2021.04.16
단군신화와 기독교  (0) 2021.02.26
대속론과 깨달음 수행  (0) 2021.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