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버린다는 것과 무아

목운 2023. 11. 13. 21:15

동기들 카톡방에서 버림으로써 더 커지는 게 아닌가 하는 화두가 있었고 많은 친구들이 공감하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저는 바이블 마태 16:24의 취지대로 나라는 것을 없다고(친구는 제로로 표현했습니다) 여길 때까지 전심전력 노력해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발견한 바로는 道를 이루는 것(=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의 전제 조건이기도 한 저 바이블 구절의 번역이 서너 가지로 갈리는 데 1. 자기를 부인할 것, 2. 자기를 버릴 것, 3. 자기를 끊을 것, 4. 자기를 잊을 것 등이 있습니다. 모두 자기를 제로로 여기는 것과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기 또는 나라는 것, 또는 에고 등등이 모두 학습된 환각 내지 착시 비슷한 것이라는 게 뇌신경학의 보고입니다. 대표적인 게 제가 몇 번 거론한 고무손 실험입니다. 진짜 자기라는 게 무라는 걸 느껴 아는 일에 생사문제 관통의 답이 있다고 봅니다. 한편 그 일이 코 만지는 것처럼 간단하다고 하는 스승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간단한 게 제일 어려워 보이는 게 저희가 직면한 딜레마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기도하고 명상하거나 심지어 신통하다는 수행법을 찾아다니며 노력한 끝에 불가에서 말하는 무아의 경지 또는 나라는 게 환각과 같은 것임을 느껴 안 분들이 있습니다. 이 분들은 대개 치유와 가르침을 베풀며 살게 되지만 그냥 보통 사람처럼 살거나 혹은 아예 은거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깨달음 이후에 종사하는 일이 무엇이든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마음 상태에서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렇게 한 소식 듣는 은혜를 누리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거론하는 깨달음의 조건 가운데 하나는 강력한 열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 경지가 무척 좋아할 만하고, 이승에서 누구에게나 맞는 최종적인 답이라는 점에서 가리키기를, 부처의 집에 태어난다거나 지상에서의 천국이라든가, 무루지라든가 혹은 종심소욕불유구라고 한다고 저는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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