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왜 태어났는지

목운 2023. 10. 25. 06:48

실험에 따르면 내 몸으로 여기는 것조차 몸의 다음 생존을 위해 만들어낸 것이고 결코 불변하는 게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고무손 실험과 마네킹 몸 실험을 보니 그렇습니다. 실제 손을 숨기고 고무손을 보면서 두 손에 똑같은 자극을 주다 고무손을 내려치니 고무손을 피하는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존재 전체가 그렇게 습관으로 만들어진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주의식에서 분리되어 한 점처럼 존재하는 게 우리 존재의 실상이라고 보는 제 경우 '그럼 왜 온전하고 하나인 우주의식이 한 점을 분리해서 이 몸을 취하고 이승에서 여러 체험을 하도록 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독서에 따르면 그것은 존재의 위대함과 장엄함을 계속 드러내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그 드러냄, 즉 창조는 오직 우주의식의 영광만을 위함입니다.

우주의식의 무한한 잠재력을 우리가 드러내고 체험하는 것 - 그것이 대단한 일이기에 우리는 우주의식에 도달할 때까지 그 무엇에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금강경은 '나라는 이미지(我相)'를 없애야 한다고 해서 위 실험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승에서 얻어진 나라는 모든 이미지가 몸의 다음 생존을 위해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깨치라고 합니다.

금강경은 같은 대목에서 우리가 실상이라 보는 것 모두가 그저 상일 뿐이니 이름만 실상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깨달으려면 믿는 마음이 깨끗하여 말씀을 제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아상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데 고무손 실험이 큰 도움이 되었기에 거론했습니다. 불가에서는 우리가 결코 몸이 아님을 계속 가르치는데 그것은 우리가 오직 우주의식에서 잠시 분리되어 나온 한 점 의식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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