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환상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 지적 배경

에크하르트 입문

도미니코 회원으로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위치는 그가 받은 지적 영향을 평가할 때 또 다시 중요하다. 그가 도미니코 수도회에 들어간 것으로 해서 엄청난 특전이 있는 교육과 최고의 장서 이용이 보장되었기 때문에 중세 서구에 현존하는 철학이나 신학 서적 가운데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읽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이것은 실용적인 이유로 그 접근이 엄격히 제한된 대다수 중세 작가들과 두드러지게 대비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독일 도미니코 회원으로서 에크하르트가 특별히 받은 교육은 그의 사상에 근본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대 알베르트를 중심으로 하는 독일 도미니코회 학파의 존재는 최근에야 온전히 인식됐다. 그것은 아우구스티누스주의의 급진적 형태로 드러났는데 특히 프로클루스(그리스인), 아비세나(아랍인) 및 마이모니데스(유태인) 등의 신플라톤주의에 빚진 바 있다. 에크하르트를 그렇게 도전적인 사상가로 만든 것은, 에크하르트가 토머스 아퀴나스와 공유하는 좀 더 일반적인 도미니코회의 경향이라기보다 저러한 연관관계인 것이다.

 

이 독일 도미니코회 학파를 대표하는 이들 가운데 선봉은 디트리히 프라이버그다. 디트리히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이전 세대에 속하지만 에크하르트처럼 저명한 행정가이자 학자였으며 마찬가지로 파리대학에서 신학 교수를 했다. 디트리히는 도미니코 수도회에서 에크하르트의 멘토였음에 틀림없고 튜토니아 관구장으로서 에르푸르트 도미니코 수도원의 원장으로 젊은 그를 임명했었을 것이다. 그가 저술한 두 작품으로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 '지성에 대하여'와 '지복직관에 대하여'가 있다. 우리는 지성 자체를 다룬 논문은 에카르트에게서 찾을 수 없지만 그의 작품 어디에나 있는 지성에 관한 이론은 실상 디트리히의 이론과 같으며 위 두 텍스트에 자세히 논의돼 있다.

 

에크하르트가 디트리히 및 독일 도미니코회 학파의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 핵심 생각은 '지성'의 본성 및 의미에 대한 치열한 관심인데 여기서 지성이라 하면 현대 용어에서 '지성'보다 '의식'과 관련된 무엇이다. 우리의 현재 목적에 있어서 에크하르트가 우리에게 주로 부과하는 과제는, '마음'이나 '지성'이란 그것이 동적으로 활동하는 한에서 존재한다고 하는 믿음이다. 마음이 활동하는 정도와 그에 따라 마음이 존재하는 정도는, 그것이 아는 바의 실현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지성은 가변적인 존재성을 획득한다고 말할 수 있으며 존재의 실상은 그것이 활성화된 정도에 의존하며 또 활성화 정도는 그것이 관여하는 객체의 실현에 의존한다. 그렇게 해서 '지성'의 개념은 신의 본성을 묘사하는 데 적합한 것이며 신은 전지하며 존재하는 모든 것이 된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 지성은 몸에 갇혀 있고 그 실체성이 신과 신적 영역의 것보다 확실히 못한 대상으로 된 세상에 갇혀 있다. 따라서 인간 지성은 일반적으로는 그저 부분적으로만 실현된다. 둘째 '지복 직관에 대하여'라는 디트리히 저작에서 에크하르트는 인간 영혼 자체가 지성이라는 생각을 취했다. 기술적 용어로 이것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혼의 바탕'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리 지성'을 동일시한 것으로 에크하르트에게 있어서 그 의미는 우리의 가장 내면적 부분인, 우리 존재의 핵심이란 그 지성 자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극히 동적이고 근본적인 의미에 있어서 '마음'을 찾고 탐구하기 위해서는 우리 존재의 가장 내면적이고 친밀한 부분으로까지 찾아들어가야 한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많은 것을 독일 도미니코회에 빚지고 있지만 그의 사상 경향은 디트리히 및 대 알베르토와 두드러지게 다르다. 그는 그들의 백과전서식이고 과학적인 성향을 공유하지 않으며 에크하르트의 경우 대담하게 모험적인 지성주의 철학이 당대인들에게는 없는 신비적이고 개별적인 윤곽을 띠고 있다. 디트리히나 알베르토, 스트라스부르크의 울리치나 휴 리플린의 저술은 전문적인 반면 에크하르트의 강론은 일반적인 독자를 매우 분명하게 고무하고 자극하며 도전한다. 이러한 판단을 하는 것은 우리만이 아닌데 그것은 디트리히와 당대인들이 디트리히의 강론이 아니라 에크하르트의 강론을 보존하기로 택하였기 때문이다. 그들 간의 차이점은 에크하르트 작품에 팽배하고 그가 진리라는 커다란 짐을 진 것처럼 느끼게 하는 긴박한 분위기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실로 강론자로서의 에크하르트 안에서 우리는 그의 모든 생각의 저변에 있고 그의 생각에 놀라운 소통력을 부여하는 '신의 현존감'을 느낄 수 있다. 에크하르트의 사고 구조가 대략 13세기 후반과 14세기 전반 동안 독일 도미니코회 그룹을 지배한 철학적 운동의 사고 구조와 같다면 그것을 활성화한 정신은 전적으로 에크하르트에게 의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