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크하르트 입문

고통과 무집착

목운 2020. 7. 6. 08:48

'신적 위로의 책' 2부에서 에크하르트는 30가지 논거 또는 사례를 동원해서 사람들이 고통을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저는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 추론하건대 그가 당대 최고 지성이자 고위 성직자였음에도 그가 담당한 베귄을 비롯한 대중의 고통에 관심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교회에서는 거의 최초로, 라틴어가 아니라 독일 보통 사람들 말로 강론을 했으며 대중적 인기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교황과 여타 고위 성직자들이 정치적 이익 추구를 위해 그를 희생양 삼았습니다. 즉 그는 유일무이하게 고위 성직자로서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이단으로 판결받았습니다. 오늘날까지 일부만 복권된 것을 보면 역시 기존 종교는 하루 속히 해체되어야 마땅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비그리스도교 신비주의 철학자인 플로티누스를 계승하면서도 초기교회 교부들 사상과 스콜라 철학 전통에 서서 교회의 교도권에 승복하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글을 읽으면 자기를 부인하라는 마태복음 16:24절과 영적인 가난을 설파한 5:3절에 대한 설명을 자주 만납니다. 전자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조건으로 에고를 비워내라는 것인데 후자도 결국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신적 위로의 책'에서는 5:3절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영적인 가난은 진복 팔단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지만 고통을 벗어나고 신적 위로를 받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즉 "그대가 신 안에 흘러넘치는 기쁨과 위로를 발견해서 갖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모든 피조물에서 벗어나 있어야 하며 피조물이 주는 모든 위로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귀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피조물이 당신을 위로하고 위로할 수 있는 한 당신은 결코 올바른 위로를 얻을 수 없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만약 신 아닌 것이 그대를 위로한다면 당신은 여기서도 저기서도 위로를 얻지 못할 것이다. 이에 반해 만약 피조물이 당신을 위로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피조물이 당신에게 달콤한 맛을 던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여기서도 저기서도 위로를 얻게 될 것이다. (이부현 옮김, 143쪽)"

그래서 선불교를 연구하는 이들이 쉽사리 에크하르트와 만나게 되는가 봅니다. 선불교도 세상의 모든 것에서 벗어날 때 진정한 해방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거듭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피조물에서 벗어난 경지에서 신을 발견하는지, 아니면 깨달아 세간을 벗어난 자유인(出世自由人, 선가귀감 73절)의 경지에 가는지 하는 표현상 차이만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에크하르트는 완전한 무집착의 경지에 도달할 때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할 수 있는 이원성 극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에크하르트 입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집궐중의 교과서  (0) 2020.07.18
소위 신비주의라 하는 수행 원리  (0) 2020.07.12
완전한 순명과 고통  (0) 2020.07.05
고통에 대한 근본 처방  (0) 2020.07.04
고통과 집착  (0) 2020.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