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크하르트 입문

윤집궐중의 교과서

목운 2020. 7. 18. 08:30

남들 안 하는 공부 얘기하니 제가 뭐 대단한 수련을 하거나 굉장한 체험을 한 게 아닌가 하는 대접을 받습니다. 물론 그냥 스몰 토크의 한가지라는 것도 압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지라 세상을 떠들석하게 하지는 않았을망정 오감이 이끄는 대로 또는 세상이 제시하는 이런저런 나침반 따라 해볼만한 일 또는 짓은 거의 다 해봤지만 모두 오답이더라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비로소 우리 전통 가르침인 대학-중용을 실천하려 하는데 그 핵심 요지는 다시 서경 16자로 귀결됩니다. 서경 16자 가르침이란 '윤집궐중' 하라는 것이고 여기서 중이란 생각이 끊어진 자리 즉 희로애구애오욕이 발하기 전의 상태로서 천하의 근본이라는 게 중용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니 언제나 중을 잡고(집중) 그 상태를 놓치지 말라는 것인데 이것을 제대로 실천하는 이가 드물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모세와 예수를 따른다는 자들도 두 분이 무엇보다 먼저 홀로 완전히 내면에 들어가 신을 만났다는 것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한편 윤집궐중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신을 사랑하라"는 신명기 가르침과 완전히 같은 취지라고 보면 제대로 실천하는 한 유교와 기독교는 어긋날 일이 없다고 봅니다.

여러 단계를 비약하며 결론을 서두르자면 에크하르트의 글들은 윤집궐중의 교과서로 손색이 없다고 보며 동아시아 사상과 여러가지로 부합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한 구절만 인용합니다. "사람이 내적 작용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하나로 모아 영혼의 한구석 같은 곳에 집중시켜야 한다. 그리고 모든 상들과 형식들로부터 자신을 숨겨야 한다...

거기서 그는 망각과 무지에 도달해야 한다... 정적과 침묵 가운데서 우리는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바로 그곳에서 말씀은 자신을 드러내고 계시한다. (이부현 옮김, 276~277쪽)" 계시를 밖에서 구하면 종교이고 안에서 구하면 신비주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유학은 신비주의라고 보는 게 제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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