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크하르트 입문

소위 신비주의라 하는 수행 원리

목운 2020. 7. 12. 13:13

올해는 에크하르트와 지낼 것 같은 예감입니다. '훈화'와 '신적 위로의 책'을 이곳과 제 블로그에 대략 소개했는데 두 권의 경우 수십 번 읽어도 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느낌입니다. 그럼에도 수행 또는 의식향상에 뜻이 있는 분께는 바로바로 쓸모 있는 말씀이 가득합니다.

두 책에 이어 '고귀한 사람'이 이어지는데 역시 참나 찾기 또는 보살도와 다름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실용적 교훈으로 되어 있습니다. 인상깊은 것은, 이 책의 '내적인 고귀한 인간에게 심어져 있는 씨앗인 신적 형상'은 복성서의 성(性) 또는 참나에 해당하고 '씨앗을 덮고 있는 세속적 욕심'은 정(情) 또는 에고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면 역시 동서의 수행 원리가 같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복하자면 수행원리란 에고를 제거하는 과정인 정화, 덕 또는 의식이 향상하는 진덕명화에 이어 신인합일(동아시아 천인합일)에 이르는 것이고 그 과정을 지탱하는 두 기둥은 정좌와 영적독서입니다. 그 성취 체험을 철학용어로 정리한 분이 플로티누스고 그를 계승한 이들이 기독교의 아우구스티누스와 에크하르트입니다.

저 수행과정에서의 체험은 앞의 글에서 시사했듯이 말로 할 수 없기에 신비주의라고 하는 것인데 기독교 전통이나 우리의 선불교 내지 신유학 전통에서 그것을 말로 푸는 과정에서 사사로운 동기로 또는 에고 욕망인 줄 모르고 소위 '올바름'에 집착하면 싸움이 나기 마련입니다.

'고귀한 사람'에 나오는 참나 찾기의 세 가지 재미있는 비유와 아우구스티누스가 진술한 의식향상 6단계를 기술하려고 서론이 길었습니다. 첫째는 위에 거론한 정(情)을 흙에 비유해서 흙을 제거할 때 '사람들이 그 씨앗을 알아볼 것'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의 참된 본성을 해로, 그것을 가리는 에고를 구름이나 안개로 비유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참나는 에고를 제거할 때 저절로 빛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세 번째 비유는 목재나 돌로 조각상을 만들 때 떼어내는 것을 에고로 보는 것입니다. 역시 겉에 붙어 있는 것을 떼어낼 때 "그 아래 감추어져 있던 것이 모습을 드러내어 빛을 낸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우구스티누스를 인용하여 '우리가 영원성으로만, 신으로만 온전히 향한다면 그때 신의 상은 드러나 밝게 빛날 것이지만 만약 바깥으로 향한다면 그것이 세상이 좋다고 하는 덕목이라 할지라도 신의 형상(즉 성[性] 또는 참나)은 완전히 감춰져 버린다'고 보는 것입니다(193쪽 참조).

이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영적 성장단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 단계는 "의자로 가서 그것을 짚고 벽에 기대서는, 우유로 배를 채우는 단계"로서 막 입문하여 세속적 이끌림을 겨우 벗어난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단계는 "신의 충고와 가르침과 지혜로 급하게 달려가서 인간성에 등을 돌리고 신에게 얼굴을 향하는 때"로서 갓난 아이가 "어머니 품에서 벗어난" 경지로 봅니다.

셋째 단계는 어머니 품에서 더욱더 멀어진 단계로 "근심에서 벗어나며 공포를 집어던진다"고 합니다. 이 단계는 이미 '불타는 노력으로 신과 결합되어 있어서 신이 그를 기쁨과 감미로움과 지복으로 이끈다'고 합니다. 보통 수행의 어느 단계에서는 반드시 초월적 도움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가르침과 일치합니다. 네 번째 단계는 '신 안에서 더욱더 뿌리를 내려 모든 비난, 시련, 지겨운 일, 고통을 기꺼이 참아내고 즐겁게, 흔쾌히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192쪽).

다섯 번째 단계는 "어디서나 자기 자신 가운데서 기쁘게 산다"고 합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최고의 지혜가 풍부하게 흘러넘치는 가운데 조용히 머물러 쉴 때"라고 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자기 자신 가운데 머문다는 것과 조용히 머물러 쉰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특히 동아시아 영성에서 높은 경지를 설명할 때 꼭 들어가는 요소라고 봅니다.

마지막 단계는 '이전의 자신을 벗어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더 이상의 단계가 없는 수준으로서 영원한 안식과 지복을 누리는 단계입니다. 무상한 것과 시간적인 것을 완전히 망각하며 신의 상으로 이끌려 신처럼 되는 단계라고 합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표현은 자신을 벗어나서(entbildet) 변형된다(hinuberverwandelt)는 점입니다. 요컨대 우리의 존재 상태가 바뀌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것이 애벌레가 날개를 얻어 모습을 바꾸는 시적 이미지입니다. 공부의 완성은 에고가 소멸하고 새로 신적인 모습을 얻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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