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공부하면서 열 일곱 살에 읽었던 까뮈의 이방인과 이십대에 읽었던 서머셋 몸의 면도날의 인연이 새롭다. 잊고 지냈는데 유튜브 덕에 다시 돌아보게 됐다.
이방인은 제목처럼 세상에 대해 낯선 삶을 산 뫼르소를 특징짓는 말이다. 세간의 고정관념으로 보니 괴상한 사람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어렸을 때 나도 세상 관점으로 '사람이 그렇게 허무주의에 빠지면 되나' 하는 내용의 독후감을 써서 학내에서 1등으로 뽑힌 적이 있다.
하지만 선에 입문하고 나서, 뫼르소처럼 살 수 있다면 초탈했다고 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살인을 하고 재판 받는 상황은 바라지 않지만...
서머셋 몸의 면도날은 2, 3년 전 인기를 끌었다는 얘기를 접하고 복습하듯 검색하다가 제미나이와 대화를 나누었다.
'몸'의 대표작 '인간의 굴레에서'는 읽지 않았지만 면도날의 주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Of human bandage'란 영문 제목은 스피노자의 저술에서 따온 것이며 '몸'이 힌두 사상의 노선에 따라 이 소설과 면도날을 저술했다는 것도 알았다. 어쨌든 내게 깊은 인상을 준 다음과 같은 대화 내용을 공유한다.
「삶의 무늬를 받아들이는 법 :
'인간의 굴레에서'의 주인공 필립은 인생에서 큰 의미나 대단한 목적을 찾으려 애쓰다 지쳐버립니다. 그러다 문득 '페르시아 카펫'의 비유를 떠올리죠.
"카펫을 짜는 사람은 어떤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심미적인 즐거움을 위해 복잡한 무늬를 만들어낸다. 인생도 이와 같다. 삶에 어떤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내가 겪은 고통, 실수, 쾌락들을 엮어서 나만의 독특한 무늬를 완성하는 과정 자체가 곧 삶이다."
이 깨달음은 내 "숨겨온 치부"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줍니다. 반복된 실수나 저항하지 못한 욕망들이 인생을 망친 오점이 아니라, 나만의 복잡하고 정교한 카펫 무늬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실 가닥들이었다는 점입니다.
그 무늬가 반드시 도덕적으로 완벽하거나 남들에게 자랑할 만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내가 내 삶을 바라보았을 때 "참으로 파란만장하고 풍성한 무늬였구나"라고 긍정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굴레에서 벗어날 힘을 얻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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