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생각 중독과 가운데 길

목운 2024. 1. 26. 08:52

아침에 '생각이 중독이며 마음의 평화를 깨는 원인이니 명상을 하자'는 동영상을 봤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바로 떠오르는 반박이 있습니다. 즉 생각을 하지 않으면 일상생활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하는 것입니다. 샤워를 하다가 스승들이 이런 두 가지 입장에 대해 내린 처방이 소위 중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씁니다. 한자말로 중도라고 하면 현학적인 느낌이 들어 또 낯설어지지 않나요?

우리말로 풀면 가운데 길인데 요컨대 중독이 되지 않도록 생각에만 빠져 있지 말고 때때로 생각을 끊고, 내면에 아무런 생각 없이 고요한 지경에 자주 들어가보란 말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실상 제가 소개한 이고 선생의 복성서도 생각을 끊으라는 지침서입니다. 요컨대 과거도 생각지 말고 미래도 생각지 말라는(불려불사) 가르침입니다. 아울러서 감정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다스리라는 것인데 이러한 처방은 동서 고금이 같습니다.

오직 생각으로 설계하고 운영하는 세상의 모든 가시 현상이 현대 사회에서 우리 생존에 필요하지만 내면의 삶이 없는 듯이 거기에만 빠져 산다면 인간은 그러한 시스템의 부품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과거 거기에 대한 극단적 처방이 속세를 떠나는 것이었으며 그것이 오답이라고 하여 이데올로기로까지 나아간 것이 조선 성리학입니다. 이는 개인에게나 집단에게나 아주 오래 된 갈등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그에 대한 처방도 거의 수렴해가는 것으로 관찰되는데 즉 근본적으로 생각과 거리를 두는 삶을 살기 위해 명상 또는 마음챙김을 하라는 것입니다.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날 때는 생각을 가동하지만 그밖의 시간엔 내면에 들어가 마치 시비분별을 모르는 갓난아이처럼 존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맹자께서는 갓난아이 마음을 잃지 않는 이가 대인이라고 하셨을까요?

결론적으로 이승을 가장 잘 건너가는 처방은 그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은 가운데 길을 가는 것인데 다시 말하면  세상일에만 몰입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일에서 도망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배우고 수련하면서 우리가 타고난 신성을 마음껏 드러내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다시 말하면 전적으로 자유롭고 무한히 성취하는 삶, 그렇게 해서 초월적 기쁨과 유머를 만끽하였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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