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깨달음과 갓난아이 상태

목운 2023. 12. 21. 08:21

명상에서 한 가지를 꾸준히 기원합니다. 생각, 감정, 오감을 벗어나 몸 바깥에서 이 몸을 비롯한 모든 사물을 차별 없이 하나로 보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것에 가장 가까운 상태가 갓난아이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갓난아이는 우리가 도달할 이상적 상태를 가리킵니다. 요컨대 맹자는 갓난아이 마음(赤子之心)이 바로 대인의 마음이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호킨스 박사는 우리가 노력해서 의식 수준이 올라가면 일단 갓난아이 때 수준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추측하기를 우리가 말을 배우고 기존 교육 시스템 속으로 들어가면 바로 의식수준이 하락하는 세상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지식은 분별을 학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갓난아이에게 선악 분별이나 사리 분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추측이 설득력 있는 이유는, 높은 의식에 도달한 분들이 증언하기를 깨달은 상태에 도달하면 지복감이나 기적 현상을 체험하지만 사람들이 보기에 '미쳤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리 분별이 없이 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것일까요? 호킨스 박사의 예에서 보면 주변 사람들이 요청하는 일을 수동적으로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분의 경우 사리 분별 있는 세상의 것들을 새로 학습하여야 했다고 합니다. 마하리쉬 님의 경우를 보면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면 노숙자처럼 몸의 일을 전혀 돌보지 않아 객사하였을 것입니다.

우리 보통 사람의 경우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저 여섯 바라밀을 쉬지 않고 닦으면서 일상에서 부딪치는 일들을 최선으로 처리하는 노력을 할 뿐인 것 같습니다. 최대한 생각, 감정, 오감의 영향을 벗어나서 아무런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대하고 특별히 고깝거나 불쾌한 사람도 살갑거나 유쾌한 사람 대하듯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깨달음에 이르면 원수를 사랑할 안목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억지로 하라기보다 우리가 얼마나 높은 의식에 도달했는지 알아보는 척도를 제시하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쨌든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사리 분별을 벗어나 모든 것을 세상에 내어 맡긴 상태로, 생명의 기쁨 속에서 웃고 즐길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을 갓난아이 가르침에서 짐작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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