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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인간의 사면초가) - 진화의 압력

도입사람들이 노력한 결과 거의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발견이 끊임없이 또 급격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 시대는 정보의 시대로 불리고 있다. 과학과 기술은 실용적 제품의 빠른 향상을 일으키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과학과 기술은 새로운 개념틀과 지적 구조물의 개발이 필요한, 끝없는 확장을 용이하게 하고 있다. 그 결과 더 진전된 연구와 개발을 도와주는 관련 문헌들이 나왔고 그로 인해 더 많은 발견이 이어지고 있다. 진화의 압력인간 지성의 진화는 잠재성이 발현(그 발현은 증대된 역량으로 인해 또 다른 차원의 발생을 촉진시킴)하여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지성의 내재적 능력은 의식의 빛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다. 점점 더 진화하는 이 능력은 타고난 생물학적 운명과 잠재력이 적정 수준으로 드러날 때까지만..

제1장 - 해결책

해결책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위에 거론한 바와 같은 격차를 받아들이면 사회적-정치적으로 유치한 이데올로기뿐 아니라 부정적이고 이상주의적인 희망 섞인 생각을 버릴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어느 것도 해결책을 가져오지 못하고 그저 다음의 큰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후퇴해 있는 단지 시간상 소강상태일 뿐이다. '젊잖음'이란 200 이상의 사람들에게 정상적인 듯하지만 200 미만의 사람에게는 모욕이고 경멸할 만한 약점이며 따라서 효과적인 소통 수단이 아니다. 동족 상잔은 세속 부문에서뿐 아니라 종교 분야에서도 일어난다. 지혜, 수용, 그리고 자비에 의해서만 인내를 수반하는 이해력이 생기고 크게 차이나는 세계관과 가치관에 대한 실제적 포용을 가능케 한다. 공격과 모욕은 이렇게 갈등을 부르는 지배적 세계관, 사고방식..

제1장 - 인간 갈등의 기원으로서 의식 수준

인간 갈등의 기원으로서 의식 수준각 의식 수준은 거기에 합치하는 '끌개장'이기도 한 하나의 지배적 에너지 장이다. 여기서 끌개장이란 자기장이나 중력장처럼 행동한다. 이 에너지 장들은 점진적인 힘과 지배력을 가지며 극성을 보인다. 200 이상의 에너지 장은 긍정적인 것(진실, 사랑, 생명 보존)을 끌어들이고 내비추며 부정적인 것을 배척한다. 반면 200 미만의 수준은 부정적이고 거짓되고 파괴적인 것(예, 증오)을 끌어들이고 긍정적인 것을 배척한다. 전에는 발견되지 않았고 인식되지 않았던 이러한 보이지 않는 장은 정서적 능력은 물론 인간의 모든 결정, 행위, 인식, 문화, 종교와 이해력을 깊이 지배하고 영향을 끼친다. 개인들은 각기 자기 문화만이 가지는 폭력적이고 범죄적인 수준에서부터 서로 돕고 영적 지향을..

제1장 - 지성

지성지성에는 본질적 의미와 작용의 분류, 정의(定義) 및 계층을 추상화하고 조직하는 능력이 포함된다. 이어서 이러한 것들은 사고나 정신작용(의미론)을 통해 세분화됨으로써 더욱 명료해진다. 이러한 후자의 용어들은 지성의 내용을 가리키는데 지성의 내용이란 의식이라는 더 큰 장(場)의 출현에 매우 밀접히 맞추어지며 그 출현의 결과이기도 하다. 지성과 의식은 본래 형태가 없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지성에는 구조, 의미, 그리고 추상적 시사점을 끄집어내는 능력이 포함된다. 지성적 능력은 IQ로 표시되는 능력 범위를 따라 확인할 수 있다. IQ는 평생 고정적인 데 비해 개인의 의식 수준은 영적-종교적 스승의 영향, 동기, 영적 훈련, 그리고 미적 감각을 일찍 접하는 것과 같은 긍정적 요인에 따라서 상당한 정도까지..

제1장(개관)

모든 중대한 지식이 역사적으로 발전해온 것을 보면 언제나 흥미롭고 보람이 있다. 왜냐하면 새로운 지식이 어떻게 출현해서 동력을 얻는지 하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탐구적 연구는 생물과 인간 진화에 내재하는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의 본질적 특성에서 힘을 얻는다. 모든 생물은 끝없는 조사, 탐구에 더하여 자료의 발견, 수집, 저장에 몰두한다. 이 점은 동물의 생존에 필수적인데 그것은 동물이 에너지의 내적 원천이 없이 태어나기에 환경과 외적 자원에서 에너지를 얻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에너지원이 될 만한 것을 확인하고 실험하기 위해 끝없이 모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학습(지성)은 생존을 위한 태생적 전제조건이 된다. 즉 정보의 습득은 유기체 자체의 구조와 기능(짜임)에 필수적인 생물학적 내장 프..

실체, 영성과 현대인(도입)

지난 2~3십 년에 걸쳐 진실을 밝히는 실용적이고 객관적인 방법의 출현으로 인간의 진보와 지금까지의 진화상태를 재평가할 수 있는 실체에 대한 새 정보와 패러다임의 확장이 있었다. 역사를 통하여 한계가 있고 오염된 시각이 있는 편견(예, 의견, 수사)의 왜곡이 없이 고차원의 객관적 시각에서, 참과 참이 아닌 것, '진리'와 거짓된 가설 등을 이제는 다시 평가하고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 기술한 대로 인간의 마음은, 도움을 받지 않으면 태생적으로 진실과 거짓을 분간할 수 없으며, 주관적 관찰(res interna cogitans) 대 객관적 실체, 즉 있는 그대로의 세계(res externa or extensa)에 대한 유명한 데카르트의 역설처럼 본질과 지각, 그리고 내용물과 외양을 구분할 수 없다는 ..

실체, 영성과 현대인(머리말)

이미 나온 일련의 저술과 이 책에서 기술한 대로 아주 최근까지 인류에게 진실과 거짓을 분간할 수 있는 믿을 만하고 객관적이며 확인할 수 있고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면 영적 믿음과 이성 간의 갈등이 수천 년간 골머리 아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서양의 위대한 저술에 포함된 위대한 철학자와 사상가뿐 아니라 그리스 로마의 위대한 지성들도 이 문제를 가지고 싸웠다. 토머스 아퀴나스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가장 위대한 신학자들이 노력했지만 이 문제는 미해결 상태다. 오늘날에도 지속되는 논쟁은 잡지 타임에서까지 주요 주제로 다뤄진 바 있다(Van Biema, 2006년 11월 13일자). 이 난제의 핵심은 1925년 유명한 스콥스 재판에서 웅변적으로 드러났으며 미 대법..

실체, 영성과 현대인(펴내는 말)

(이하는 저명한 정신과 의사이며 철학박사인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책을 번역한 것입니다. 저작권을 얻어 옮기는 것이 아니고 순전히 개인적인 학습을 위한 것임을 알립니다.) 요 몇 십 년 기술의 발전이 널리 두드러진 반면 동시에 인간 의식 자체의 진보 또한 전반적 수준이 최근에 더욱 갑작스럽게 향상하는 모습을 띠었다. 꽤 심오하고 양호한 모습을 보이는 이러한 변화는 1980년대 후반에 발생했는데 전 세계적으로 눈치채지 못하였지만 의식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의 등장으로 발견되었고 기술되었다. 이 방법론은 거짓과 진실, 외양과 본질을 분간하는 수단에 관한 독창적인 연구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이 특정 사안에 대하여 얼마나 진실인지 혹은 거짓인지 하는 것을 1에서 1,000까지의 간단한 로그지수로써 측정할 수..

신을 만나는 일

에크하르트(1260~1328)를 소개한 우술라 플레밍은 "그리스도교가 비판받는 것 중 한가지가 신을 찾아가는 뚜렷한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그녀는 에크하르트가 기술한 영원한 탄생을 신을 찾은 경지로 보고 거기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탄생을 위하여 필요한 것은 훈련과 집중, 높은 열망입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비워 무지한 사람처럼 되는 것입니다. 지눌스님 지으신 수심결에 따르면 자신의 생각, 감정, 오감에서 오는 모든 것을 부인하고 한가지에 몰입하다가 아무것도 모른다 할 때 느껴지는 '공적영지(空寂靈知)'가 바로 순수한 영의 상태입니다. 그때 느껴지는 환희심에만 의지해서 신의 인도하심을 충실히 따르면서 끝없이 덕을 닦아나갈 때 비로소 신과 완전한 합일에 이를 것입니다. 양심성..

치유의 원리

몸과 마음과 영혼의 정확한 본질은 무엇인가? 치유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과 영혼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핵심적이다. 몸이 그 자신을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며 그 자체에는 생명력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팔은 자신이 팔임을 체험할 수 없으며, 다리는 자신이 다리임을 체험할 수 없다. 대신 우리는 몸의 감각들과 그것이 공간 안에 있음을 체험할 뿐이다. 정말로 기묘하게도 감각들 또한 그들 자신을 체험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들은 보다 더 큰 무엇 안에서 체험되어져야 하는데 마음이 그것이다. 감각들의 경험과 그들이 몸에 대하여 보고하는 것은 실제로는 마음 안에서 경험된다. 마찬가지로 놀랍겠지만, 마음 또한 그 자신을 체험할 수 없다. 생각은 그 자신의 생각임을 체험할 수 없으..